한국 교육에서
‘다양화’의
이중적 함의
전대원
위례한빛고등학교 교사.
‘다양성’이란 말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자고 하면 이에 대해서 반대되는 의견을 표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양함을 긍정적 함의를 가진 단어로 전제한다면 그 반대에는 획일성이란 말을 떠올릴 수 있다. 획일화된 교육을 찬성 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교육에서 다양화가 뜻하는 함의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만약에 다양성이 일종의 차별로 받아들여지거나 복잡성의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 함의가 꽤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른바 학생부종합전형이 일부 사람들에게 ‘깜깜이 전형’이란 비난을 받은 것도 다양성이 복잡성의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학력고사 시절 커트라인이 몇 점이라고 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현행 입시를 바라볼 때 각종 수시 전형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성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복잡성이 입시 정보 격차를 가져오고 실제 입시 결과의 격차를 불러 올 것이란 두려움으로 전환된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다양성은 매우 필요하고 당위적 차원에서도 부정될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현상적으로 이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나타나는 것에는 이런 현실적 상황이 있다. 문제는 그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불만이 실재하는 교육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이 투영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21세기 교육에서 다양성이 심화되는 과정과 이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고찰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이나 후퇴가 이뤄진 과정을 살펴보면서 한국 교육에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지켜 나가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교사로서 경험한 개인적 교육 생애사와 연관 지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처음 교직에 들어온 게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이 있던 2002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립학교 교단에 서기 위해서는 임용고사라는 공개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당시만 해도 아직 인터넷 강의가 전면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어서 노량진 고시 학원가에 가서 교육학과 전공 강의를 들으며 시험을 대비하였다. 몇 백 명을 좁은 강의실에 닭장처럼 몰아넣은 곳에서 많은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였다. 강사는 설명을 하고 수강생들은 각자의 노트에 필기를 열심히 받아 적는 전형적인 고시 문화가 미래의 교사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을 뽑는 시험을 대비하는 곳이었지만, 여전히 20세기의 획일성이 교사 임용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2년 제7차 교육과정의 시작
당시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의 충격파가 아직 남아 있었고 20세기를 벗어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계획되어 있었고 세계인의 축제가 예정되어 있던 그때 고등학교에는 새롭게 7차 교육 과정이 도입되었다. 임용고사에는 당연히 7차 교육과정의 내용이 시험 범위에 들어가 있었고, 여기에는 구성주의 교육관과 자기주도학습, 선택형 교육과정의 도입 등이 강조되고 있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가의 강의실 분위기와 새로운 교육 과정의 내용은 사실상 불일치했다.
   다행히 시험을 통과하고 이듬해 3월 교단에 서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행운이 작용했던 것이 2001년에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7·20 교육여건개선계획’이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교육 현장에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학급 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만든 것이었다. 학창 시절 저학년 때는 2부제 수업을 하였고, 교실에서 60명 이상이 바글바글하던 기억이 생생하던 차에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그렇게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뽑아야 할 교사 규모가 갑자기 늘어나버렸고, 후에도 두고두고 당시 임용고사 수험생들이 큰 덕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앞서 임용 준비하며 공부했다고 언급한 7차 교육과정이었다. 제7차 교육과정은 고등학교에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2학년과 3학년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의 과목 선택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나 운용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되었다. 아직 콩나물 교실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때에 선택과목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겠냐는 반대가 많았다. 학급당 인원을 35명 이하로 획기적으로 줄이는 조치도 고등학교에 본격적으로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과목에 따른 이동수업이 대폭 늘어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다양성을 논함에 있어서 7차 교육과정 시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적어도 고등학교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교과목의 다양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 1>은 제7차 교육과정 총론에서 사회과에 해당하는 부분만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특별히 사회과를 예시로 삼은 것은 교과목의 종류가 급격히 늘어나서 선택형 교육과정의 도입을 실감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지리교과에서는 <경제지리> 교과목이 신설되었으며, 일반사회에서는 <법과 사회>, 역사에서는 <한국 근현대사>가 새로이 선택과목으로 등장하였다.

표 1. 고등학교 사회과 선택 중심 교육 과정


   6차 교육과정까지도 제2외국어 등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과목 선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교과목의 다양화와 학생 선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7차 교육과정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선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교 단위 선택이었지 학생 개개인 단위의 선택은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택형 교육과정 도입이 가져온 변화
교육과정에서 선택형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고등학교에는 여러 변화들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반 편성에서 나타났다. 그동안 고등학교에서 반 편성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문과와 이과만 나눠지면 그 다음부터는 기존에 하던 방식인 성적순 반 편성만 하면 되었다. 열 개 반이 있을 때 1등은 1반, 2등은 2반 순으로 가다가 10등을 10반에 배정하고, 다시 11등은 10반에 배정하여 역순으로 가는 방식이 고전적 반 편성 방식이었다.
   학생의 반별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선택과목이 비슷한 학생들을 같은 반으로 묶는 방식을 선택해야만 했다. 기존 반 편성에서 유일한 기준이었던 성적을 더 이상 적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최대한 선택과목 중심으로 반을 편성하고, 그래도 같은 반 내에서 다른 선택 군이 나오면 두 반이나 세반씩 묶어서 이동시키는 방식을 취하였다. 과거 학교에 등교하면 한 교실에서 계속 수업을 듣던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이런 표면적인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변화이다. 학교 관료제 사회에서 정량적 담임 평가로 작용했던 학급 성적이 유명무실해졌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담임교사가 학급 평균에 무지 신경을 많이 썼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정량 평가가 불가능한 교직 사회에서 관료 조직의 압박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학급별 성적이었다. 꼴찌반 담임이 교장실에 불려갔다고 소문이 돌던 학교 내 전설이 그런 문화의 산물이었다.
   더 이상 학급 성적은 학교의 관리자가 담임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가 없게 된다. 출발점을 동일하게 하지 않고서는 동등 비교가 불가능한 법인데, 선택과목별 반 편성이 이런 기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가끔 변화된 교육과정을 이해 못한 관리자가 무리하게 반 평균에 따른 서열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구성원 스스로가 동의하지 못하는 기준이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학교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던 획일적 평가 기준 하나가 근본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대학 입시의 변화
교육 과정의 변화는 연쇄적으로 대학 입시의 변화를 가져왔다.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되어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교육과정 변천에 따른 제도적 변화였지만 기본적으로 총점으로 성적을 발표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출제 형식만 달랐을 뿐 성적 산출 방식만 놓고 보면 기존의 학력고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340점 만점에 대학교 학과별 커트라인이 총점으로 정해지는 방식이었던 학력고사와 유사하게 수능시험을 바라보고 제도를 받아들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7차 교육과정과 만나면서 시험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거의 동일한 과목을 응시하여 총점 기준으로 전국 단위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시험의 실시가 불가능해졌다. 학생 별로 배운 교과목이 다르니 획일화된 시험 자체를 실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목을 선택하였으니 응시해야 하는 과목도 선택을 허용하는 체제가 대학입시에서 도입될 수밖에 없었다.
   2002학년도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제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고3이 되어 2004년에 치른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이른바 원점수라는 것이 공개되지 않고 백분위와 이에 따라 산출되는 표준점수, 그리고 등급만 표기되는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이때부터 선택과목 간 유불리가 수험생들 선택과목 선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원래 의도는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과목들을 선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선택과목별 수험생들이 섞일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을 상대평가하게 되면 통계적으로 각 과목의 수험생 역량이 평균에 근접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가령 과학 탐구에서 물리와 생물을 선택한 학생들 간에 편차가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는 제도는 다양성을 전제하는데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면서, 본래 다양성이 추구하던 가치가 훼손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목표로 하는 대학이 어디든 경제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사회탐구 영역에서 경제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보면 경제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마저 등급제에서 손해를 보게 될까 봐 다른 과목을 선택하여 수능 시험을 보고 경제학과에 응시하는 경우가 꽤 많이 발견된다. 제도의 다양성이 선택의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교육 제도나 입시 제도의 설계상의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대학 입시 유불리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 가져온 폐해로 해석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문제 대처 능력 향상이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생들의 점수가 향상되면서 변별을 위한 무리한 킬러 문항 출제가 남발되고 있다. 획일적 문제 풀이 훈련이 아니면 고득점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학력고사 시절부터 입학 시험을 문제은행 식으로 출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왔었다. 점수에 연연하지 않게 기본적인 학력을 측정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한국적 맥락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전국 단위의 통일된 시험을 치르기에 안성맞춤인 나라이다. 미국처럼 대륙을 횡단할 정도로 국토가 넓지 않고 전국이 표준시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서 표준화 시험을 치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과거 시험이라는 문화적 전통이 이런 표준화 시험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어주었다. 굳이 문제은행 식으로 여러 차례 시험을 보지 않아도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 당락을 가르는 것이 효율적이고 승복하기도 쉽다. 실제로 수능 초기에 시험 기회를 여러 번 준다는 차원에서 동일 학년도에 두 차례 시험이 실시되기도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폐지되었다. 다른 시기에 치러지는 시험의 난이도를 같게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험 관리의 문제도 컸을 것이다.
   참고로 문제은행 식 출제가 어려운 것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사교육의 존재 때문이다. 대학 입시에 특화된 사교육의 존재는 문제은행 식 출제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문제 자체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서 점수를 높이는 방식이 일상화된 곳에서 문제은행에서 나온 시험문제는 제대로 된 변별력을 갖출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 실시되는 각종 자격시험에서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문제은행 식 출제에 대한 적응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교육감 직선제가 가져온 교육 행정의 변화
교육의 다양화와 입시의 문제는 글의 말미에 한 번 더 점검하기로 하고 학교의 관료 문화와 다양성의 문제를 고찰해보기로 하자. 관료제는 다양성과 배치되는 조직 시스템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흔히들 관료제는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에 적합한 조직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관점에서 보면 1960년대 고도 성장기에 하나의 목표로 전 국민을 동원하고 매진하도록 하는 데에 관료제가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하였을 것이다.
   교육 제도와 행정에서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이른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로 대표되는 획일적 교육 문화도 이런 사회 분위기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1970년대 고등학교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2004년이다. 제7차 교육과정이 전면화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과거의 획일적 교육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문화적 차원에서 지배적으로 공유되는 시기였다. 그러기에 20세기의 학교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관료제 사회의 변화는 매우 더디게 나타났다. 학생의 선택을 중시하는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의 변화가 나타났지만, 이를 담보할 교직사회의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승진 시스템의 잔존과 함께 리더십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균열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에 지방자치제도에 따라 각 광역자치단체별로 교육 자치도 실시되고 있었다. 각 시도에 있는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교육 행정을 하도록 했지만 중앙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하였고, 교육감 선출도 간선제로서 변화를 가져오기에 매우 미흡하였다. 학교 운영위원 등이 참여하는 간선제는 각 시도 교육청에 자리 잡고 있는 관료제 라인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른바 정치세력화한 지방 교육계 파벌이 돌아가면서 교육감을 한다는 비난이 쇄도하였다.
   여기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교육감 직선제였다. 일부에서는 교육이 정치에 종속된다 하여 교육감 직선제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는 하나, 교육계 내부의 권력 라인이 무너졌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였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교육감 구성의 다변화를 들 수 있다. 언론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한 것에 주목하였다. 정파적 관점을 떠나서 우리나라에 진보적 세력이 일정 부분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교육에 있어서도 그만큼의 지분을 인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회 변화에 토대를 둬야 하는 것이 교육이기에, 교육 역시 사회변화만큼의 변화를 이뤄내야 할 당위성도 있다. 교육의 독자성이 있다 해도 그 자체로 사회 속에 존재하며 동시에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2009년 5월에 경기도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 출신의 김상곤 교수가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이것은 교육 관료 사회에서 매우 큰 충격파를 주게 된다. 일선 교육 행정을 담당하는 곳에는 보수적 색채가 매우 강하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여기에 큰 변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약간 엇박자로 볼 수 있는 것이 당시 중앙정부의 경우 10년 동안의 진보 정권이 막을 내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997년에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처음 이뤄졌을 때, 교육에서 특별히 진보적 의제 설정이 강력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전교조를 합법화했지만 대북정책에서 햇볕정책과 같은 정도의 차별화된 교육정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7·20 교육여건개선계획’은 당시에 여러 정치적 논란을 불러왔지만,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학급 당 인원을 35명으로 줄이는 것에 어떤 정치적 이념 대립이 나타날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추진 방식이나 정책 추진의 완급이 논란이 될 수 있었는데, 교육의 본질적 관점에서 보면 부차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전까지 교육개혁의 큰 틀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 나온 ‘5·31 교육개혁안’에 바탕을 두었고, 이후 정부에서도 이 흐름을 거의 계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교조 등에서는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안이라고 비난했지만, 이후 정부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어떤 흐름 자체가 바뀐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책 기술 차원의 변화가 대부분이었고 교육이념적 차이에 따른 심오한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많이 달랐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두발 자유화와 체벌 금지, 강제 야자 폐지 등 학생 생활의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지금은 교육 현장에서 상상하기 쉽지 않은 체벌이 10여 년 전만 해도 꽤 만연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아침 일찍 등교하여 저녁 10시 무렵까지 공부를 하다가 하교하는 문화가 일상이었다.
   이런 천편일률적 학교 문화에 균열 지점을 만든 것이 교육감 직선제였던 것이다. 입시 제도와 교육과정 상에서만 논의되던 다양화가 학교 문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강제 야자는 학생들에게 학습 경험의 다양화를 제공하지 못하고, 두발 단속은 생활의 다양화를 막는 조치였다. 체벌은 이런 강제적 환경을 가능케 하는 단속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 모든 것이 교육감 직선제 하나로 변해버리게 된 것이다. 기존 간선제 시스템에서 나온 관료형 교육감이 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변화의 장면이었다.
승진 경로의 다변화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관료 사회에도 다양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승진의 통로가 마련되었다. 교사들의 승진에는 두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오랫동안 점수를 쌓아서 승진하는 시스템이다. 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담임 몇 년, 부장 몇 년, 연구점수 몇 점, 농어촌 등 기피지역 근무 등의 점수를 다 더해서 정량화하여 성적순으로 승진 대상자를 선발하는 방식이다. 관료제 사회의 전형적인 방식 중 하나인데, 창의성과 유연성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또 하나의 경로는 장학사이다. 임용고사처럼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서 장학사를 선발한다. 임용시험과 달리 승진 시험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지점은 시험이란 제도가 높은 차원의 능력을 검증하기엔 적합하지가 않다는 것에 있다. 일선에서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뽑는 것에서는 일정 부분 지식의 양적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지만, 교육의 전반적인 부분을 기획하고 리더로서 학교를 이끌어갈 사람을 선발할 때조차도 시험이란 방식을 이용하는 것은 인재 채용의 획일성을 심화시키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학교장 공모제가 활성화되고 장학사 선발에서도 평판 조사를 하거나 면접 등을 통해 선발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오랫동안 승진을 준비해온 기존 시스템 준비자들 입장에서는 파이를 나눠야 해서 불만이 제기되었지만, 새로운 인재 유형이 승진 라인에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개인적 경험에서 평가하자면 그동안 승진 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좀 더 다양한 인재들이 들어갔으면 하는 자리에 관료제적으로 상명하복에 충실한 사람들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물론 관료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도 필요하고 그만큼의 안정성이 담보되지만, 또 그만큼의 경직성과 창의적이지 못한 일처리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교직 사회의 안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극렬한 저항도 있다. 이게 정치적 당파와 맞물리면서 큰 대립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보수적인 중앙정부와 진보적인 교육감의 동거는 이런 상황을 증폭시킨다.
   현재 교육계 내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내부형 공모 교장에 대한 대립이 이런 연장선에 있다. 승진 점수를 쌓아 놓지 않은 평교사를 교장으로 임명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한국교총 등 보수 교육계에서는 이를 무자격 교장이라고 명명하면서 반대하고 나선 것이고, 내부형 공모제의 확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교육 관료의 다양한 충원이라는 관점에서 옹호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다양화
보수 교육계가 다양화 논리로 강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정책은 고교 다양화였다. 초·중등 교육에서 다양화를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이냐의 경계선을 두고 많은 논란이 야기된다. 만약 이 논란의 쟁점 부분이 이념적 차이와 연계되는 부분이면 논란은 증폭되고 대립은 격화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한 이주호 전 장관이 저술한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라는 책의 제목이 꽤 의미심장하다. 평준화가 다양화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제목에서 나타내고, 이를 통해 평준화 정책에 대한 반대를 공식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부침이 있긴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고교평준화 정책은 많이 깨져있는 상태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꽤 다양한 학교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외국어고, 국제고, 영재고, 과학고 등 특성화된 교육 과정을 가진 고등학교가 있고, 여기에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라는 선택지가 더해진다.
   이런 다양화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이론은 정말로 고등학교가 다양화되었냐는 비판이다. 외국어고등학교가 외국어 인재를 길러야 하는데, 한동안 의대 진학생이 많다고 해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특별한 목적이라는 것에 맞는 교육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대학에 잘 보내기 위하여 우열반 가리듯이 우열 학교를 가리는 기능 이외에 더 무엇이 있냐는 것이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자사고가 교육과정 다양화 측면에서 비난을 피해 가기가 어렵다. 모 고등학교는 의대 사관학교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였다. 어떨 때는 이런 비아냥이 오히려 학교를 홍보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연계에서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가야 할 코스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고교 다양화로 시작되었던 정책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다양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 한동안 외고 돌풍이 몰아치고 외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비 부담이 사회문제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어 인재가 그렇게 많을 리는 없고, 오직 대학 입시에 대한 유불리 차원에서 고등학교 선택이 좌우되면서 벌어진 문제인 것이다. 외국어가 좋아서 외고에 진학한다는 순진한 경로가 먹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수능에서 선택과목 체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부작용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사회 구조가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의 순기능을 전제하고 시작한 다양화의 시도가 획일화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악순환의 되풀이다.
   여기에 교육이 교육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제도 한몫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특목고 선호 현상이 교육의 특수한 목적 자체가 아니라 입시 자체에 대한 성과에 집중되면서, 교육이 아닌 학생 선발에 치우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하나의 기준에서 우수한 학교와 열등한 학교를 나누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다양성을 훼손한다. 특목고는 스노브 효과(snob effect)와 선발 효과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시장적 가치도 실현하지 못하고 교육의 본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오직 입시 성과가 존재의 의의를 자가발전으로 만들어낼 뿐이다.
   이런 상황은 애초에 달성하려던 다양화의 목적 자체를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외국어 인재가 갈 수 있는 학교, 특별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율형사립고 등의 존재는 필요한 법인데, 이를 부작용이 가려버리는 불상사를 낳는다.
   다양화의 측면에서 새롭게 도입된 고등학교 체제가 자율형 공립고이다. 사립고에만 자율성을 주는 시스템이 공립 고등학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으니 그에 맞는 공립 고등학교 체제로 도입된 것이 자율형 공립고이다.
   선발효과 측면에서 보자면 꽤 성공적이었다. 우수한 교장 선생님을 내부형 공모제 형태로 모셔오고, 주위의 우수한 선생님을 초빙 형태로 채용한다. 공립학교에도 일반적인 인사 시스템으로 전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장이 특별히 우수한 교사를 초빙해 오는 시스템이 있다. 이른바 초빙교사제도라하는 것인데, 일반 고등학교보다 자율형 공립고에는 불러올 수 있는 초빙교사 인원이 훨씬 많이 배정된다.
   여기에도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정된 우수 자원의 교사가 자율형 공립고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노브 효과에 따른 선발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교육의 질적 경쟁이 아니라 포장재 경쟁이 공립 고등학교 내부로 연장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불만이 높은 이유
결국 한국 교육의 문제는 입시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명박 정부에서 야심 차게 도입되었던 입학사정관 전형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여 입학 사정에 활용하는 취지는 좋았는데, 새로운 획일화 압력에 직면했고 과열 양상을 보였다. 입학사정관에게 보여줄 자료라며 천편일률적인 자료가 무지막지하게 생성되었다. 자기의 실적을 보여주겠다면서 박스 한 상자 분량의 자료를 준비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게 모두 학생의 역량을 나타내는 자료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내 앞에서 어느 학생이 신문을 복사한 A4용지에 원본 대조필도장을 찍은 것을 목격한 일도 있다. 자신이 한 스크랩을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창의성 있는 인재를 구하려는 입시제도 앞에서 획일적인 대책으로 승부하려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합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한경쟁에 내몰린 불만들이 터져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부작용을 겪은 끝에 입학사정관 전형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어갔다. 부모 찬스를 이용하여 해외 봉사 활동을 다녀오는 등의 보여주기 식 학교 밖 스펙 경쟁이 무한대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 찬스가 심해진다며 세간의 불만을 높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한국형 입학사정관제로 정착하면서 교사들의 업무량이 폭증하였다. 이런 면 때문에 개인적으로 학종 전형에 대하여 약간의 불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게 긍정적으로 바뀐 것은 대학의 반응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정부가 독려하니까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학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나름대로 각자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모집하기 위한 제도로 학종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학종이 확대되던 시기에 농어촌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도시 지역에 비하여 지역적 불편이 있는 곳이었는데, 입시에서 의외로 성과를 거두는 학생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학생들이 생각보다 좋은 대학에 곧잘 입학하는 것이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나름 좋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다른 측면을 비판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사실 단순한 잣대로 하기엔 그냥 수능 성적순이 깔끔하긴 하다. 수능 등급제나 백분위 점수보다 더 확실한 것은 과거 학력고사 시절의 총점 순이 될 것이다.
   우열을 가리는 확실한 기준이 제시되면 제시될수록 획일화의 정도는 심해 질 수밖에 없다. 확실한 기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잣대를 단일화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깜깜이’라는 말에는 복잡함이란 측면을 내포한다. 확실히 학력고사 시절에 비하여 복잡성이 더해지기는 했다. 필자만 해도 같은 대학의 과친구들은 대략 비슷한 점수대에서 모집되었다. 커트라인이 높건 낮건 간에 대충 해당 점수대의 학생들이 모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확성 자체가 오늘날의 입시에서는 존재하기가 어렵다. 정시와 수시로만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수시 내에서도 여러 전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논술전형이라고 하면 입시를 잘 몰라도 글쓰기로 대학을 간다는 상식 정도의 추정이 가능한데,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하면 어떻게 뽑는지 난감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여러 복잡성이 다양화의 취지로 이해되지 않고 불공정성이라는 의미로 다가갈 때 제도에 대한 반작용이 심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우리 고등학교 교육은 또 한 차례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고교학점제라는 제도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도입된 선택과정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전면화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비하여 고등학교에서는 교과 교실을 확충하고 있다. 사회과 교실, 과학실, 국어과 교실 등의 이름을 가진 교실들이 다수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지적 성장 과정을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되는 것인데, 7차 교육과정으로 처음 선택형 과정이 도입될 때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7차 교육과정 도입기보다 한결 나은 점이 있다면 저출생의 여파로 학급당 인원이 20명 대 초반으로 주저앉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에 무리하게 35명으로 줄인다고 비판을 받았던 것에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김없이 반작용도 존재한다. 여전히 입시의 문제에 부딪힌다. 고교학점제와 조화롭기 어려운 수능 중심의 정시 체제를 확대하기로 정책 방향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실시되는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7차 교육과정이 전면 시행되면서 수능 시스템이 크게 변화를 겪었는데, 고교학점제 시대에 수능을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 이공계 전공자들 중심으로 선택형 교육 체제에 대한 이의제기가 많은 편이다. 고등학교에서 쌓아서 와야 할 지식들을 제대로 축적하지 않고 들어오는 대학 신입생들이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절반의 진실만을 보여준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진학 학생들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다른 학생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공계 상위권에 갈 학생들에게 물리 과목이나 수학의 모든 영역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까지 필수화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적성과 실력에 맞는 자기만의 교육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이를 획일화로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교육에서 다양성의 가치
교육에서 다양성이라 하면 결국은 다양한 학생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목소리가 큰 집단은 학벌에서 상위권 대학 출신일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모든 지식의 표준을 자신을 기준으로 하면서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이른바 인서울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등급은 평균 2등급 이내다. 2등급은 상위 11% 이내를 가리키는데, 결코 절대 다수로서 비율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나마 상위권 대학으로 한정하게 되면 상위 5% 이내의 극소수가 된다. 지식자체가 인식의 끝을 지향하기 때문에 서로 다르게 구성된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표준화를 강제하는 기제가 된다. 다양성이란 그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교육이란 분야에서 그것을 필요로 한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선한 목적 자체가 그 실현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교육 정책에서 다양화의 시도는 여러 부작용과 반발에 부딪혀 왔다. 그러나 그런 반발과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다양성 자체를 포기할 수도 없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한국 교육은 조금씩이나마 변화해 왔으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도 사실이다.
   교육에서 당위를 실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교육은 공공재인 동시에 개인의 신분 상승 수단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기제를 잘 다루면서 공공선을 이뤄나가야 할 책무가 교육 전문가와 참여자 모두에게 있다. 다양함을 위해 복잡성을 이해하고, 수준 높은 공정성을 위해 낮은 차원의 공정성을 발전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요구되고있다.
목차
종교적 다양성에 관하여
한국 교육에서 ‘다양화’의 이중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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