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의 충격파가 아직 남아 있었고 20세기를 벗어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계획되어 있었고 세계인의 축제가 예정되어 있던 그때 고등학교에는 새롭게 7차 교육 과정이 도입되었다. 임용고사에는 당연히 7차 교육과정의 내용이 시험 범위에 들어가 있었고, 여기에는 구성주의 교육관과 자기주도학습, 선택형 교육과정의 도입 등이 강조되고 있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가의 강의실 분위기와 새로운 교육 과정의 내용은 사실상 불일치했다.
다행히 시험을 통과하고 이듬해 3월 교단에 서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행운이 작용했던 것이 2001년에 김대중 정부가 발표한 ‘7·20 교육여건개선계획’이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교육 현장에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학급 당 학생 수를 35명 이하로 만든 것이었다. 학창 시절 저학년 때는 2부제 수업을 하였고, 교실에서 60명 이상이 바글바글하던 기억이 생생하던 차에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그렇게 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뽑아야 할 교사 규모가 갑자기 늘어나버렸고, 후에도 두고두고 당시 임용고사 수험생들이 큰 덕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앞서 임용 준비하며 공부했다고 언급한 7차 교육과정이었다. 제7차 교육과정은 고등학교에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2학년과 3학년에서 운영하게 하였다.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의 과목 선택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나 운용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되었다. 아직 콩나물 교실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던 때에 선택과목을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겠냐는 반대가 많았다. 학급당 인원을 35명 이하로 획기적으로 줄이는 조치도 고등학교에 본격적으로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과목에 따른 이동수업이 대폭 늘어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다양성을 논함에 있어서 7차 교육과정 시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적어도 고등학교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교과목의 다양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 1>은 제7차 교육과정 총론에서 사회과에 해당하는 부분만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특별히 사회과를 예시로 삼은 것은 교과목의 종류가 급격히 늘어나서 선택형 교육과정의 도입을 실감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지리교과에서는 <경제지리> 교과목이 신설되었으며, 일반사회에서는 <법과 사회>, 역사에서는 <한국 근현대사>가 새로이 선택과목으로 등장하였다.
표 1. 고등학교 사회과 선택 중심 교육 과정
6차 교육과정까지도 제2외국어 등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과목 선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교과목의 다양화와 학생 선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7차 교육과정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선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교 단위 선택이었지 학생 개개인 단위의 선택은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