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
존중되는
학습 장면 만들기
이보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내가 박사과정을 밟으러 미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게 영어로 진행되는 토론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모국어로 읽어도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영어로 읽어야 했고, 수업 시간에는 영어로 토론하는 학생들의 말을 이해하고 영어로 내 생각을 전달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학생들이 워낙 말을 빨리하다 보니 한 사람의 말을 다 이해하고 소화하기도 전에 다른 학생이 그에 대한 말을 덧붙이고 있었고 나는 그저 그들이 한 말을 듣고 이해하기에도 바빴다. 당연히 내가 토론에 참여해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그 때문인지 첫 학기가 끝난 후 교수들끼리만 진행하는 신입생 평가 회의에서 나는 ‘조용한 학생(a quiet student)’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의 지도교수님은 회의 내용을 나에게 전달해주면서 “토론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라는 피드백을 주셨다.
   소위 ‘좋은 학생’이 되고 싶었던 나는 지도교수님의 말대로 그다음 학기에는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학습 내용은 만만치 않았고, 학생들의 말의 빠르기를 내가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래서 토론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수업의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다 보니 다른 학생들보다 토론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속도가 약간 더디다. 그런데 나는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가끔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하기는 할 텐데 그게 그 순간에 토론하는 내용이 아니라 바로 전에 이야기하던 주제일 수 있다. 다소 뜬금없거나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들려도 조금 이해해달라.”는 것이 내가 해당 수업 교수님께 부탁드린 내용이었다. 면담 이후 교수님은 작은 행동 변화를 보여주셨다. 하나의 주제에 관한 토론이 끝나려고 할 즈음에 항상 나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어봐 주셨다. 어떨 때는 나에게 “한국의 상황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라면서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 대해 질문하셨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것이 좋은 교육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물론 이 질문은 나뿐 아니라 중국인인 내 동기에게도 자주 하셨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우선 내가 수업 중에 발언하는 경험을 늘릴 수 있었다. 성공 경험이 쌓이면서 그때부터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토론 중간에 개입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학생이 되었다. 또한 내가 발언할 때 다른 학생들이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교수님은 학생들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냄으로써 그들의 참여 자체를 또 하나의 교육 콘텐츠로 만들어내셨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주변인이 될 뻔한 학생들을 오히려 중심인물로 만들어 주셨다. 학습 장면에서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도 하고, 학습 분위기를 특정 방향으로 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교수자가 그 힘을 잘 사용할 수 있다면 학습자뿐만 아니라 교수자 자신이 학습할 기회도 확대되고 크게 성장할 기회가 열린다. 이 글에서는 학습 장면에서 학습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짚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요소별로 교수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모든 학습자를 아우르는 학습 장면(inclusive classroom)을 만들기 위해 교수자가 시도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란다.
교수자의 고정관념은 학습자의 능력 발휘를 제한할 수 있다
교육학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연구가 있다.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클라우드 스틸(Claude M. Steele)과 그 동료들이 진행한 연구이다. 1) 연구진은 흑인들의 학업 수행이 백인들의 학업 수행보다 낮은 이유가 실제 능력 차이라기보다는 ‘흑인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고정관념에 의한 결과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이 연구물의 시리즈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먼저, 흑인과 백인들을 모집하여 무작위로 두 가지 조건에 무선배정(random assignment)한다. 각 조건에는 흑인과 백인의 수가 비슷하게 포함되도록 하고 표준화된 시험문제를 풀도록 한다. 단, 한 조건에서는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이것은 지적 능력을 검사하기 위한 것이다(고정관념 위협이 있는 조건)’라는 지시문을 주고, 다른 조건에서는 ‘이는 문제 해결 과제이다(고정관념 위협이 없는 조건)’라는 지시문을 준다. 연구 결과, 가설은 지지되었다. 즉 고정관념 위협이 있는 조건에서 실제로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고정관념 위협이 없는 조건에서는 흑인과 백인 간에 점수 차이가 없었다. 흑인들만 놓고 보았을 때는 고정관념 위협이 없는 조건의 흑인들이 고정관념 위협이 있는 조건의 흑인들보다 점수가 높았다. 이와 같은 연구는 그 이후에도 실험 방법(예: 지시문을 달리함, 생리학적 측정치 활용 등), 연구 대상, 비교 차원(예: 인종 차이가 아닌 성 차이) 등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반복적으로 수행되었고 비슷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종합 결론은 고정관념 자체가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고정관념으로 인해 유발된 불안감이 수행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교수자들에게 자신을 성찰해볼 기회를 준다. 교수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학생이 조금 더 적극적이다’, ‘여학생이 조금 더 꼼꼼하다’, ‘특목고를 다닌 학생들이 더 잘한다’,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등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또는 자신만의 빅데이터-편향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수자들도 특정 배경을 가진 학생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고정관념이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고정관념은 그 사람이 가진 배경적 특성(demographic characteristic)과 관련을 가진다. 성, 출신 학교, 출신 지역, 나이, 전공, 종교 등. 고정관념을 가지는 그 자체가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사고하려는 경향을 가진 데다 고정관념은 많은 양의 정보를 신속히 처리할 때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에 의해 특정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면, 교수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수자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특정 학생(들)을 무의식적으로 학습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학습 장면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학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학습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학생들은 그 수업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충분히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교수자의 편견으로 인해 교실 안에서 교수자-학습자 사이의 상호작용도 달라진다. 초중등 교육과정의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선생님들은 대체로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 발표 기회를 더 준다고 한다. 외모와 관련한 언급은 여학생에게 더 많이 하는가 하면(예: “오늘 예쁜 옷을 입었구나”), 처벌은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 더 많이 주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2) 이렇게 교수자들은 학생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편견 섞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교수자가 학생들의 학습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평균적으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조용한 편인데, 이것이 단순히 성별 차이인 건지 교사가 만든 교실 분위기에 의해 강화된 특성인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언급한 연구 결과는 남녀 차이에 대한 것이었지만, 더 다양한 차원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다. 적극적인 학생과 소극적인 학생, 새로운 지식을 빨리 터득하는 학생과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학생 등 개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내가 교수자로서 그들에게 과연 똑같은 기회가 가게끔 하는지 돌아볼 만하다.
   교사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대부분의 교사는 자신이 성 편견 없이 학생들을 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행동을 조사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이 행동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믿어 스스로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고무적인 사실은, 자신이 공정하다고 믿는 교사들에게 성 고정관념이나 편견과 관련한 교육을 진행하게 하고 그 장면을 녹화하여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게 할 경우 자신이 편향됐음을 자각하여 이후 행동에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학습자들이 교실 안에서 학습의 기회를 균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수자도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에 따라 교실 분위기가 바뀔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교육도 변화 할 수 있다.
   교수자도 사람이기에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수자라면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인식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 고정관념이 틀릴 수도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교수자는 자신의 고정관념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수업 중에 하게 되는 말과 행동)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 말과 행동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오늘 학생에게 했던 말이 혹시라도 어떤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혹시 과제평가를 할 때 특정 성별이나 특정 학교 출신의 학생에게 좀 더 후하게 점수를 주지는 않았는가?’, ‘내가 혹시 특정 부류의 학생들에게 더 호의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는가?’ 등에 대해 성찰하고 다음 수업을 계획할 때 행동을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하나씩 실천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결점이 있고 결점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0이 될 수는 없어도 0에 수렴하는 그래프를 그릴 수 있듯이, 결점을 줄이는 것은 노력으로 가능하다.
학습 장면에서 학습자를 둘러싼 모든 사람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

① 역할 모델로서의 교수자

내가 신임 교원으로 임용된 당시에는 신임 교원의 교수역량 증진을 위해 마이크로티칭을 한 번씩 받도록 학교에서 의무화했다. 마이크로티칭이란, 내가 실제로 수업하는 장면을 15~20분 정도 촬영한 후, 그것을 교육 전문가와 함께 보면서 나의 교수 스타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비슷한 경력을 가진 다른 교수들과 함께 이 활동을 진행했는데, 서로의 교수 스타일에 대해 피드백도 해주는 등 큰 도움이 되었던 세션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낯간지러운 일이 또 있으랴.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무릅쓰며 내 모습을 시청한 후 피드백을 받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바로 내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어리둥절하여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말인즉슨, 내가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질문을 한 후, 학생이 손을 들고 답변을 할 때 굉장히 적극적으로 그 답변을 들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뒤에 앉아 있으면 뒤쪽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잘 들리지 않을 때는 다시 말해달라고도 하고, 답변하는 학생과 눈을 잘 마주친다는 것이었다. 사실 상담을 배웠던 나에게 이러한 기술(skill)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사람과 이야기할 때 눈을 맞추며 열심히 듣고 필요한 경우 재질문 하는 것은 상담에서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들이다. 원래부터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것이 롤 모델이 된다니 그건 무슨 뜻인가 싶었다. 전문가의 설명은 이러하였다. 학생들은 ‘영향력이 있는 존재(교수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저 학생이 중요한 말을 하는 건가? 왜 교수가 저쪽으로 이동하지?’하며 다른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 자신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업 안에서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러한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 저 교수는 학생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어서, 학생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고 자기 생각이 중요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학습 동기가 강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을 책에서 읽었더라면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텐데, 내가 한 행동을 직접 관찰하면서 피드백을 받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하였다(물론, 위의 예시는 다행히도 긍정적인 사례였지만, 그 외에 내가 했던 다른 행동들을 돌이켜보니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들도 많았다). 내가 교수자로서 교실 안에서 하는 말 하나, 행동 하나가 학생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던 기회였다. 그때부터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매우 힘들기도 하다!). 수업에 일부러 미리 가서 준비를 한다든지(내 수업은 주로 사범대 학생들이기에 미래 교사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의 말투나 톤 같은 것까지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학습자들은 학습 장면에서 무엇을 배울까?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지식(knowledge)과 기술을 습득한다. 예를 들어, 통계 수업에서는 통계와 관련된 지식(예: 평균의 개념, 정규분포에 대한 이해 등)과 통계를 사용하는 기술(예: 통계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평균값 구하기, 엑셀 시트에 데이터 정리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내가 주로 가르치는 상담 관련 과목에서도 상담(counseling)과 관련한 다양한 이론도 배우고 해당 이론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배운다. 대부분의 교과목은 교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만, 학습자들이 그것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학습자들은 학습 장면에서 자기가 문제를 만들어 스스로 해결해 나가면서 자기주도성이나 자기관리 능력도 배운다. 또래들과 협업하면서 협력하는 방법,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 등 대인관계 기술도 배운다. 즉 교과 지식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필요한 중요한 역량도 개발하게 된다. 이렇듯 학습 장면에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학업에 임하는 자세 등 생애 관련 기술도 배우게 되는데, 이러한 요소는 교수자가 수업 설계 시 의도적으로 통합시켜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협업 능력이 중요한 역량이라고 판단되면 협업하는 형식의 과제를 부여한다든지, 교수자의 개념 설명 이후 해당 내용을 또래에게 설명해 보게 하는 활동을 넣는다는지 하는 식으로 세밀하게 수업 안에 녹여낼 수 있다.
   하지만 교수자가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바로 교수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해 넣지 않은 부분이다. 학습자는 교수자가 설계한 수업 안에서 다양한 지식과 기술, 태도, 역량 등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교수자를 통해서도 배운다. 반두라(Bandura)와 동료들은 유명한 보보인형 실험(Bobo doll experiment)을 통해 인간이 관찰과 모델링을 통해 학습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3) 보보인형 실험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선 이 실험은 어린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어른(연구원)이 보보인형(일종의 큰 오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툭 치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을 망치로 때리는 것을 관찰하게 한 후 보보인형을 주면 아이들도 똑같이 망치로 때리면서 논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어른의 성별이 아동 본인의 성별과 같을 때 모방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과 유사한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그 경향성은 그 타인과 나의 관계가 긴밀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두라의 이론에 따르면 학습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어떤 누구라도 관찰하면서도 배우게 된다. 특히나 교수자는 학습자 입장에서는 영향력이 큰 존재다. 대부분의 학습자에게 교수자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수업을 관장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가진다.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을 수 있지만, 많은 경우 학생들은 교수자와 좋은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학습자들도 알게 모르게 교수자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모방하게 되고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기준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교수자로서 바람직한 행동과 올바른 말을 사용한다면 그 자체로도 학습자들에게는 좋은 학습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교과서, 책, 예시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

내 눈앞에 보이는 인물만이 역할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도 충분히 영향을 가질 수 있다. Diversitas 2호에도 소개된 바 있는 Lessons in Herstory라는 앱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 역사책에 등장하는 여성이 11%밖에 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하에 만들어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휴대전화기를 역사책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 가까이 가져가면 동시대에 활약했던 여성 인물들을 보여주는 앱이다. 교육계에는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이 이전부터 존재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남성이면 여학생의 학습 동기나 진로 동기가 저하 될 수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특히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의 줄임말로, 쉽게 말하면 이공계 학문 영역을 포괄하여 칭하는 용어) 분야에서는 이 점이 많이 논의되고 연구되어 왔다. 4)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한 번 떠올려보라.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이름을 들어본 과학자 중에 여성은 몇 명이었는지. 요즘의 학생들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주로 마리 퀴리(Marie Curie) 정도를 떠올리거나 좀 더 최근의 과학자로 제인 구달(Valerie Jane Goodall)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과학자 중 여성 모델을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본 과학 교과서에는 주로 남성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연구 중에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석한 사례들이 있다. 교과서 삽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성별뿐만 아니라 그림 안에 나타난 역할 등을 분석하기도 하는데, 과학, 수학 교과서에는 남성 인물이 여성보다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5) 도덕이나 국어 교과서에도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등장하는데, 남성들은 야외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 여성들은 가정 활동을 표현하는 경우에 더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6)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다문화주의 관점에서 삽화를 분석하는 연구도 생겨났는데, 다문화 배경을 가진 인물이나 장애인의 등장 빈도가 현저히 낮음을 보여주고 있다. 7) 교과서의 삽화가 학생의 인생과 인과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반두라의 설명을 빌리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있을 수 있다. 자기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유명 인물이 교과서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면, 학생으로서는 ‘내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심을 품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희망적인 사실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교과서는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도는 느릴지언정 말이다.
   위의 사례는 주로 초중등 교과과정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이지만, 대학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시청각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졌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해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나는 강의하는 과목의 성격상 슬라이드에 인물 삽화를 종종 사용하는 편인데, 나조차도 백인 사진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 깜짝 놀랐었다. 가족과 관련한 내용을 다룰 때도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보여주는 그림이 대다수였다(남녀 성인 부모에 자녀가 한두 명인 가족). 하지만 요즘에는 가족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어서(예: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등), 자칫 그러한 삽화로 인해 누군가의 가족은 ‘정상적 가족’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진로상담 과목을 가르칠 때는 상담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의 배경에도 신경이 쓰인다. 혹여나 특정 성별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들만 진로 문제를 가진 것처럼 비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수업 시간이나 시험 문제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도 한국인 이름뿐 아니라(예: 김 박사), 다양한 외국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최대한 모델을 다양화하려고 한다(예: 곤잘레스 박사, 왕 박사 등).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인물에 대한 학생들의 수용도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나눌 때 학습효과가 높아진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실을 만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고등교육기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진리탐구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이 오가는 것이 유리하다. 8)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이론이 발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기존 이론에 대한 회의 또는 반박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만약 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이었다면, 학문의 발전 정도가 지금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고등교육기관이 진리탐구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구성원들이 진리탐구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이 수용되는 교실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여기에 몇 가지만 소개해보기로 한다.

① 질문을 잘 활용하기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교육자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교수자가 수업 중 질문을 하거나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보면 침묵하는 경우들이 꽤 있다. 과연 학생들에게 생각이 없어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온 정도의 성인이라면 분명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이 그렇지는 않더라도 분명 일부분의 학생들은 그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수자의 역할은 그 대답을 끌어내어 교실 장면에서 말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수업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업 분위기를 학기 초반에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학기 초반에는 정답이 없는 질문을 주로 하는 것이 좋다. 학생들은 정답이 있는 질문을 물어보면 틀린 답을 할까 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그래서 답변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틀린 답을 해도 상관없는데, 학습 장면에서 학습자들은 이왕이면 잘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답이 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선뜻 답하지 않는다. 물론 교실 안에서 신뢰관계가 잘 형성되고 나면 학생들은 틀린 답이라 하더라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학기 초반에는 서로 서먹서먹하기 때문에,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정답 없는 질문 위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교과 특성상 답이 있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면, 답이 하나만 있는 질문보다는 답이 여러 가지인 질문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더라도 잃을 것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좀 더 위험 감수(risk-taking)를 하게 된다. 이 분위기가 잘 만들어지고 나면, 교실 안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학생들과 상호작용할 때는 개방형 질문을 자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위 개방형 질문(open question)은 ‘왜’, ‘어떻게’, ‘무엇을(이)’과 같은 질문이다. “이 현상은 왜 일어난 것 같나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등은 답변에 자유도가 큰 질문들이다. 반대로 폐쇄형 질문(closed question)은 ‘예/아니오’로 답변이 가능하거나 답안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뜻한다. “이 방법은 효과적일까요?”, “XYZ이론은 참 말이 안 되죠?” 등과 같은 질문이다. 개방형 질문이 절대적으로 좋고 폐쇄형 질문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과 맥락에 맞게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폐쇄형 질문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학생들은 답변의 자유도에 제한을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답을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 때문에 답변하기를 꺼릴 수 있다. 이는 자유롭게 답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고, 결국 학습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볼 때 폐쇄형 질문을 자주 하고 있다면 혹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많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 “여러분은 졸업하고 나면 결혼을 할 거죠?”, “000할 때, 화나죠?”, “남학생들은 이해 못 하겠죠?”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면, 자신의 머릿속에 ‘졸업을 하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든지 ‘내가 여성이니 남학생은 내 생각에 공감 못할 것이다’라는 식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정말로 상대방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여러분은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건가요?”와 같은 식으로 물어봄으로써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내가 정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학습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솔직하고 자유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 될 수 있다.

② 학생의 말에 반응해주기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생각을 말했을 때 반응을 잘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답변에 대해서 다 긍정해주라는 뜻은 아니다. 교육적 차원에서 적절하지 못한 답변을 하거나 방향성이 어긋났을 때는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의견을 낸 학생에게 강화(reinforcing)를 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교수자가 먼저 질문을 했는데 한 학생이 답변을 했다면 “○○ 학생은 그렇게 생각했군요.”, “지금까지 나온 의견과는 다소 관점이 다른 의견이네요.”, “매우 새로운 시각이네요.” 등과 같이 독려 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그 학생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토의에서 학생의 참여가 가치 있는 행동이었음을 보여주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끔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다. 또한 그 장면을 본 학생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의견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들게 된다.
   학생들이 질문을 할 때 교수의 반응도 중요하다. 학기 초반에는 아무래도 질문을 주저하기 쉬운데 그럴 때에도 용기를 내어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때, 첫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교실 분위기가 많이 좌우될 수 있다. 질문의 종류는 상관이 없다. 아주 단순한 질문이더라도 독려하고 강화해주면 좋다. “선생님, 저번에 말씀하신 과제1의 마감 기한이 언제예요?”와 같은 질문에 “저번에 말했는데, 그때 안 듣고 뭐 했어요?”라고 답하는 방식은 학생을 탓하는(blaming) 방식의 진술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답 안에는 교수의 짜증이 섞여 있다. 학생들이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 교수의 감정이 어떤지를. 이런 대답을 듣게 되면 학생들이 그다음부터는 질문을 잘 안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본인이 창피해지는 것도 싫고 교수자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면 된다. “마감 기한이 헛갈렸군요. 마감기한은 12월 7일까지입니다. 수업 계획서에도 적혀 있으니 참고하세요.”라고 말이다. 만약 여기에 좀 더 독려를 하고 싶다면 “다른 학생들도 헛갈렸을 텐데 대표로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와 같이 반응함으로써, 힘을 더 불어넣어 줄 수 있다.

③ 또래들과 상호작용하는 기회를 늘리기

토론과 토의를 활용하는 수업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수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교수자가 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형태의 수업은 아무리 다양한 질문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받는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소그룹 토의나 토론을 자주 하면 학생들은 또래들의 생각을 듣거나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다양한 관점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고등교육 장면에서 교양수업은 특히나 나와 다른 또래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좋은 기회이다. 전공이 서로 다른 학생들끼리 하나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면 저마다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교수의 강의만 듣고 간다면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은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다양한 관점을 듣고 배울 기회는 갖지 못하게 된다. 10-15분이라도 옆 사람과 자기 생각을 주고받는 활동을 수업 중간중간에 배치하면 교수의 일방적 시선이 아닌 다채로운 시선을 접할 수 있으니, 교수자가 이런 점을 고려하여 수업을 설계하면 좋다.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수업의 경우에는 각 조에 비교적 다양한 구성원이 포함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과제의 성격이나 교과 성격에 따라서는 오히려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조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하는 과제라면 다양한 구성원과 작업하는 방식을 한 번쯤은 택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여기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구성원이 다양할수록 의사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배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실제의 사회는 동질적이지 않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와 많이 다른 사람들과 일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런 상황을 학교에서 연습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답답함도 느껴보고, 그 좌절감을 갖고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 아닐까. 단, 이러한 경험을 교육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주의할 점이 있다. 조별 프로젝트의 ‘결과’만 평가하게 되면 자칫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간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가능한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좋다. 각 조원이 결과물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얼마나 협력적으로 일했고 얼마나 열심히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려고 했는지 등의 태도와 자세를 평가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설계해 넣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에 내재된 암묵적인 가정이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다
언어란 본디 추상이고,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개념을 소통이 용이하도록 한두가지 말에 함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생겨난 ‘썸’이라는 단어는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관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용어다.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 언어이다. 그런데 언어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반대로 언어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영향을 받을 때도 있다. 최근에는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20년 전 정도만 해도 장애인에 대비되는 말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차별적인 표현이었다. 장애인에 대비되는 말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장애인은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니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었고, 이제는 장애가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과 글에도 암묵적인 가정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들이 제3의 시선으로 검토해주고 있고, 이 기회에 그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일례로 내 수업에서 자녀가 부모의 영향을 받는 여러 가지 경로의 하나로 유전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녀는 부모와 유전적 정보가 유사하기 때문에...’와 같은 식으로 설명할 때가 있다. 이 문장에서 문제점을 혹시 발견했다면, 당신은 다양성 감수성이 매우 높은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깔려 있는 암묵적인 가정은 ‘자녀’가 생물학적인 자녀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부모-자녀 관계는 얼마든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입양을 하거나 자녀가 있는 사람과 결혼할 경우, 생물학적 관계는 없더라도 엄연한 부모-자녀 관계가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가족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져서 이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있을 확률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때문에 부모-자녀의 유전적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생물학적 자녀(biological children)’라고 구체적으로 짚어서 이야기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예시를 들 수 있다. ‘결혼을 아직 하지 못했다’는 의미의 미혼(未婚)이라는 표현에는 '결혼'을 당연시하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비혼(非婚)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었다. 일상적인 언어에 내재된 (차별적) 가정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생겨난 변화이다.
   내가 속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논문을 작성할 때,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양식을 많이 사용한다. 6차 APA 양식에 이어 가장 최근에 나온 7차 APA 양식에서도 편견을 최소화한 언어(bias-free language)를 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지침에서는 연령, 장애 여부, 성, 성 정체성, 인종이나 민족 정체성, 사회경제적 지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언어에 담긴 편견 이슈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할 때는 연로한 또는 어르신(‘elderly’, ‘seniors’)이라는 표현보다는 나이가 든 성인(‘older adults’)과 같이 표현하기를 권고한다. 아시아인을 지칭할 때는 ‘Orientals’보다는 ‘Asians’로 표기하기를 권고하는 등, 역사적으로 특정 집단을 비하하면서 등장했거나 정확하지 않은 표현을 지양하고 가능한 중립적인 언어를 택하기를 권한다. 9) APA 양식은 사회과학에서 영어로 글쓰기할 때의 지침이라 우리나라 맥락에 모든 것이 다 맞지는 않지만, 그런 지침을 만들고자 한 노력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우리도 우리의 말에 내재된 암묵적 가정은 없는지 살펴보고, 그 말로 인해 누군가가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교수자의 노력
앞서 이야기했듯이, 교수자의 고정 관념이나 편견은 수업 내용, 수업 방법, 교수자의 태도 등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것이 학습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좋지 않은 영향을 최소화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수자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자각이 있으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만, 자신의 문제를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가 없다. 자기를 스스로 점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습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양성과 관련하여 얼마나 교실 안에서 수용적이었는지에 대한 문항을 개발하여 학습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제품과 서비스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의견을 물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듯, 교육을 하는 사람은 교육의 최종 수혜자인 학생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수업 성찰지를 작성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매 수업이 끝나고, 간단하게라도 오늘 수업에서 누군가가 배제되지는 않았을지, 내가 사용했던 수업 자료는 최대한 다양한 사례를 포함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돌아보고 기록해두면, 다음 수업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하루 이틀 만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매번 자신의 교수법을 성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것이다.
   최소한 내가 운영하는 교실 안에서만이라도 모든 구성원이 학습 과정에 포함될 수 있도록 강의를 설계하고 운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은 대다수 대학 기관에 교수학습개발원(학교마다 명칭은 다를 수 있음)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는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어서 강의에 관련된 다양한 자문을 얻을 수 있다. 수업 설계부터 수업계획서 작성, 수업에 활용하는 갖가지 기술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으니, 이러한 자원을 잘 활용하면 좋다. 사실 ‘다양성 민감성 기르는 방법’ 또는 ‘다양한 구성원을 수용하는 교실’처럼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담은 워크숍이 많으면 좋겠지만, 자신이 속한 기관에 따라 상황은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콕 짚어 ‘다양성 교수학습법’이라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을 배우면서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면 좋을지를 고민해보면 좋다. 요즘에는 인터넷에도 자료가 많으니 스스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학습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스스로 학습하는 것과 별도로 또래 교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동료 교수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다양성 관점에서 교수법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배울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자신에 대해 깨달을 기회도 적어지고, 그 기회가 적어지면 다양성이 존중되는 교실을 만드는 일도 먼 나라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다른 사람이 강의하는 것을 관찰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은 인터넷에도 다양한 강의자료가 많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특강을 들으면서, 동시에 강의자의 말이나 행동이 다양성 관점에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며 비판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수자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과 다른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교류하면 좋겠다. 직접 교류가 어려우면 간접 경험으로라도(책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날 때 편안함을 느끼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 위주로 만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직업을 가졌거나 비슷한 교육수준을 지녔거나 같은 지역에 살거나 하는 등 말이다. 그 자체가 나쁘거나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제한된 사람과 교류하다 보면 이 사회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다. 그러니,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학습 장면을 만들기 위한 교수자로서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기 개발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자 스스로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학습자에게 좋은 교육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목차
과학기술은 왜 더 많은 여성을 필요로 하는가
다양성이 존중되는 학습 장면 만들기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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