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분야의 소수자 여성에 대한 지원은 정책과 교육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실행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여성 과학기술인 정책은 2002년 <여성과학기술 육성 및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으로 시작하여 2004년부터 5년마다 수립되는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기본계획>
(이하 <기본계획>)을 중심으로 펼쳐져 왔다. 작년부터 제4차 <기본계획>이 시행 중이며 지금까지 각 기본계획에서 추구했던 목표는 아래와 같다.
•제1차 기본계획(2004-2008) | “여성과학기술인과 함께 하는 조화로운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현” |
•제2차 기본계획(2009-2013) | “여성과학기술인이 선도하는 창의적 과학기술사회 구현” |
•제3차 기본계획(2014-2018) | “양성이 함께 이끄는 과학기술과 창조경제” |
•제4차 기본계획(2019-2023) | “여성과학기술인의 잠재가치가 발현되는 사회” |
제3차 <기본계획>에서 ‘양성’이 언급되기는 했으나 이 기본계획에서 주로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성 과학기술인이다. 여성 과학기술인의 숫자를 늘려서 성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여성 과학기술인의 유입을 늘리고 경력 이탈을 막기 위한 사업이 많이 수행되어 왔다. 예를 들어 여학생 멘토링, 일-가정 양립 및 경력단절 예방을 위한 직장 보육시설 확대, 복귀자나 재취업자를 위한 지원 사업 등이 눈에 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0년에 10%대였던 과학기술 연구개발인력 중 여성 비율이 2018년에는 20%로 2배가 되었다. 이 속도대로라면 언젠가는 여성 비율도 50%가 넘고, 더 시간이 지나면 결국 1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따는 남녀 비율도 비슷해질까?
실제로 과학기술 분야 성비 불균형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이라고 보는 이들이 없지 않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미래도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단,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10%가 현재의 20%가 되기까지 5년에 한 번씩 새로 목표를 세우고 여러 사업을 추진해 온 정책적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여학생의 진로 지도 및 역량 강화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직장에 보육시설을 확충하거나 남성에게도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다시 취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책만으로 충분한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불필요하다거나 그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정책이 양적인 성장에 성과를 내온 만큼 이제 질적인 도약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여성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한 지금까지의 지원 사업에서 핵심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사회 및 과학기술계의 성차별적인 구조 탓에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고,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소수자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 여성 과학기술인을 지원하는 정책의 존재 이유였다. 사실상 여성에 대한 결핍 모델에 근거한 것이다. 이 결핍 모델은 과학기술 분야 여성의 소수자성을 개인의 선호와 능력 중심의 평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는 이들이 수긍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여성들이 구조적인 차별을 받는다고 보는 입장이든 여성들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보는 입장이든, 남성에 비해서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소수자 여성들을 따로 교육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반대할 명분은 거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결핍 모델에 근거한 여성 대상 사업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학생 공학교육 선도대학 사업을 분석한 한경희 등에 따르면,
3)
여학생 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여학생 집단을 부각시킴으로써 남녀 학생 모두에게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가진다. 남학생은 여학생에게만 주는 특혜로보고 역차별이라며 문제 삼고, 여학생의 경우 여성을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바라본다는 생각에 참여를 꺼린다는 것이다.
비슷한 고민이 이공계 교육에서도 시작되었다. 이공계 대학의 성인지 교육은 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소수인 여학생들의 특성을 반영함으로써 대학교육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공계 전공은 과학적 추상성과 엄격한 논리, 수학적 사고 등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나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비인간적 학문으로 알려져 왔다. 이공계 문화는 관계보다는 지식이나 논리 등을 우위에 두는 남성적 속성을 갖는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공계 교수들은 여학생들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배려하거나 남학생에 비해서 기대치를 낮추는 방식으로 여학생과 상호작용해 왔다.
4)
여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과학기술학도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어려운 현실이다.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공히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고, 그들의 공평한 학습 및 사회진출을 위하여 교수들은 여학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인지적 교육은 주로 남학생과는 다른 여학생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교수법을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의 이공계 교육이 남녀의 실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여학생과 남학생을 똑같이 대함으로써 결국 남학생 위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면, 최근까지 주로 실행된 성인지적 교육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배려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성평등을 지향한다고 해서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 없이 똑같이 대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이미 다르게 자라온 남녀 학생의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은 협동적 과정을 중요시하고 자기 확신보다는 외부의 인정에 의존하며 암시적 의사소통과 맥락적, 직관적 사고를 하는 반면, 남성은 경쟁적 결과를 중요시하고 자기 홍보에 적극적이며 직접적 의사소통과 분석적, 논리적 사고를 한다. 이러한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여성과 남성을 동일하게 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여성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남녀 차이가 실재함을 인정하고 그중 문화적으로 소수자에 해당하는 여학생을 배려하는 교수법을 개발하고 실천하자는 것이 바로 기존 성인지적 교육의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성인지적 교육에서는 주로 수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나 교수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 등을 통해서 남녀 차이가 배려되고 여학생들의 결핍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남녀를 구분하는 표현이나 여성을 차별하는 농담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학생이 지나치게 자신을 탓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능력을 발휘하게끔 도와주는 한편 눈물을 보일 경우 단호하게 지도하는 것 등이 구체적인 사례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성인지적 교육은 나름의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다. 남녀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를 애써 외면하면서 명목상의 평등을 추구하기보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기존 교육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남녀 차이에 기반한 성인지 교수법은 젠더정체성을 고착시키고 개별 학생의 차이 및 다양성을 간과하는 한계를 가진다. 여성 과학자가 특유의 모성과 섬세함으로 과학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성성을 여전히 모성이나 섬세함 등으로 전형화하는 문제점을 갖는 것처럼, 여학생의 소극적인 태도나 낮은 자신감 등에 주목하는 교육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결핍되거나 열등한 존재임을 당연시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특혜도, 특별한 배려도 아닌 방식으로 여성 과학기술인을 육성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를 젠더정체성으로 본질화하지 않는 새로운 성인지적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