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변동과
다양성
최슬기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태어나는 순간 생년월일은 정해집니다. 한 해가 갈수록 한 살씩 늘어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빠르게 혹은 늦게 나이 먹을 수는 없습니다. 첫 순간에 나머지가 정해지는 것이지요. 성유전자도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으니 주어진 유전자를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는 모습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나이에서도, 같은 성별에서도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한해 100만 명 이상씩 태어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58년 개띠가 ‘아마’ 그 시절일 겁니다. ‘아마’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50년대에는 인구통계를 정확히 수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후 인구변화를 보니 58년 개띠가 그 부근은 되었을 것 이라고 대략 짐작할 뿐입니다. 또 한 번 100만 명씩 태어나던 시절이 1971년을 전후한 때입니다. 이 두 시기 사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던 때입니다. 인구피라미드 그림에서 위쪽 봉우리 두 개 사이가 이에 해당합니다(<그림 1> 참조).

그림 1. 우리나라의 인구피라미드

출처: 통계청 (2020).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1983년과 2001년
출생아 수는 해마다 조금씩 줄거나 늘어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숫자가 크게 바뀌는 시점이 있습니다. 1983년이 그때입니다. 1982년에 80만 명대가 태어났는데 1984년에는 60만 명대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다시는 80만 명대로 늘어나지 못합니다. 또 있습니다. 2001년입니다. 2000년에 60만여 명이 태어났는데 2002년에는 40만 명대로 줄어듭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50만 명대 출생아 수는 2001년 딱 한 해만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2016년까지 15년 동안 40만 명대 출생아 수가 유지됩니다.
   2015년도부터는 그나마 40만 명대를 유지하던 출생아 수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2017년도에 처음 35만 7천여 명이 태어나면서 30만 명대로 진입하였고, 올해 2020년에는 20만 명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100만 명이 태어나던 시절에 한국은 가난하기도 했습니다. 100만 명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부양비(dependency ratio)라는 지표가 있습니다. 15-64세 인구대비 0-14세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를 백분비로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0-14세 인구는 너무 어려서, 65세 이상 인구는 나이가 많아서 부양을 필요로 하는 인구로 보고, 이들의 규모가 15-64세 인구 대비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출생아 수는 조금씩 줄어드는 반면 한 해 80만여 명씩, 최대 100만 명이 태어났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양비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그림 2> 참조).

그림 2. 부양비, 1960~2067년

출처: 통계청 (2019). <장래인구특별추계: 2017~2067년>


   이렇게 부양비가 줄어들면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 것을 인구학적 배당(demographic dividend)이라고 합니다. 부담이 자산이 된 것이지요. 젊은 노동인력이 풍부한 시기에 그에 걸맞은 산업발전이 이루어지면서 한국 경제도 빠르게 발전하였습니다.
2017년이 가장 좋았습니다
부양비로 보자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좋은 시절은 2017년입니다. <그림2>에서 보듯이 이때가 가장 낮은 부양비를 기록한 해입니다. 이후부터는 급격히 커져가는 노년부양비로 총 부양비가 증가하게 됩니다. 부양비가 올라가니 이제 좋은 시절은 끝이 난 것일까요? 다가올 미래엔 일할 사람도 소비할 사람도 줄어들고, 노인들만 많아져서 국가 재정도 파탄 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양비가 올라가고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그렇지만 다가올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급격한 인구증가에 적응하고 그 변화를 기회로 이용했던 것처럼, 이번엔 인구감소에 대응하면 됩니다.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요.
   제가 인구문제에 대해 특강을 할 경우에 마지막 자료로 보여주는 슬라이드가 있습니다. 남자 축구 랭킹과 인구 순위입니다. <표 1>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017년 9월 기준입니다. 인구수는 2015년 에서 가져왔습니다. 인구수가 많은 나라가 꼭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작 인구수 천만 명 내외인 포르투갈이나 벨기에가 상위권에 있습니다. 인구 8백만 명으로 인구수로는 전 세계 99위 밖에 안되는 스위스가 축구는 세계에서 7번째로 잘합니다. 많이 낳아서 그중에서 잘하는 아이를 뽑는 방식으로는 결코 상위권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는 5천2백만 명입니다. 이 숫자가 줄어든다고 반드시 축구 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개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이를 키워가는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표 1.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과 인구 규모

몸이 커지면 옷을 바꾸어야
인구가 달라졌습니다. 백만 명이 태어나던 시절도 있었는데 올해는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을 겁니다. 인구 증가를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자연 감소가 시작될 겁니다. 외국에서 인구순유입이 있지 않는 한 인구가 감소한다는 말입니다. 달라진 만큼 우리의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먼저 개개인의 생각, 가치관, 규범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에 맞춰 사회제도들도 바뀌어야 합니다. 몸이 커지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앞서 나이와 성별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일 뿐 자기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이와 성별은 주어지지만, 그에 해당하는 역할은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엔 연령규범, 성규범이 강고했습니다. “몇 살이야?”하는 질문은 초등학생들이 싸울 때만 쓰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이 질문은 내면화되어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여자가 무슨…”, “남자는 모름지기…”라는 말도 흔히 듣던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과거의 규범은 약화되었지만 새로운 규범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표 2.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출처: 통계청 (2019). <2018년 생명표>


   <표 2>는 2018년에 태어난 아이가 그 해 연령별 사망확률로 일생을 살아간다면 몇 살까지 보통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남성은 79.7세, 여성은 85.7세까지 살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녀 합쳐서 평균 82.7세입니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지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건강수명입니다. 기대수명에서 유병 기간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남성의 건강수명은 64세, 여성의 건강수명은 64.9세까지입니다.
   표에 제시된 유병 기간은 평균적인 것입니다. 65세 이상 고령층 안에서도 차이가 크게 납니다. 50대에 못지않게 건강한 노인도 있는 반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있습니다. 왕성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노인과 그렇지 못한 노인도 있습니다. 2018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중 취업자는 2백3십만 명으로 전체 고령자의 31.3%에 달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을 상대적으로 젊은 영올드(young-old)와 75세 이상인 올드올드(old-old)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이에 맞춰 역할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옛날 틀을 완전히 벗어난 개념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나이를 떠나서 다양한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9년에도 M-curve는 존재합니다
몇 살부터 일을 시작하는게 좋을까요? 대학 학력이 보편화된 반면 취업은 어려워지고, 첫 직장이 중요해지면서 취업 시기는 점차 뒤로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 그만두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퇴사가 모두 자발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림 3>은 연령대별 여성의 고용률을 보여줍니다. 25-29세에 정점을 이룬 고용률이 30대에 접어들면 일부 감소합니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면 다시 올라갑니다. 이러한 현상을 M-curve라고도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관찰되는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 보통은 여성 고용률이 남성 고용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일 뿐 M-curve를 그리진 않습니다.

그림 3.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

출처: 통계청 (2020).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고용률이 떨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요? 30대는 여성의 결혼과 출산이 집중된 시기입니다. 일과 가정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어떤 여성들은 일을 포기하고, 어떤 여성들은 출산을 포기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여성의 고용률도 낮고, 출산율도 낮은 것은 같은 원인에서 비롯됩니다. 그나마 M-curve의 낙폭이 2009년도보다는 2019년도에 줄어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여전히 성과 연령 규범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그림 4>는 성별에 따라 첫 결혼의 평균 연령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1990년에는 여성 24.8세, 남성 27.8세였던 평균 초혼 연령이 점차 늦춰져서 2019년에는 여성 30.6세, 남성 33.4세가 되었습니다. 여성은 5.8세가, 남성은 5.6세가 늦춰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남녀 초혼 연령 차이입니다. 1990년부터 2019년 지금까지도 3살이라는 연령 차이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동갑끼리 결혼하거나 여성이 연상인 결혼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연령규범이 오늘까지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림 4. 성별에 따른 평균 초혼 연령

출처: 통계청 (2020).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과거보다는 약화된 성규범, 연령규범 속에서도 아직 새로운 가치관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앞서 보여드린 M-curve나 남녀 초혼 연령 차이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구변화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직 새로운 규범 틀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에 조바심을 느끼는 것은 저뿐일까요?
엄마 노동자와 아빠 노동자
성규범에 있어 변화는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이를 여성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그림 5>는 지난 20년 가까이 한국 사회가 성평등한 가정과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만들어진 양상을 보여줍니다. 직업 없이 전업맘(stay-at-home mom)인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는 없는 커리어우먼도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는 없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일 수도 있고, 아예 독신일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을 합친, 아이도 일도 가진 워킹맘도 있습니다.
   <그림 5>의 A는 여성만이 다양한 역할로 분화된 경우입니다. 여전히 일과 가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은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워킹맘은 가정과 일터에서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기 힘들어합니다. 인구학에서는 이 두 영역이 똑같이 ‘막무가내 어린아이’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떼를 쓰며 우는 아이처럼, 아이도 직장도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요구합니다. 워킹맘의 어려움은 이러한 내적 갈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녀를 가진 여성보다 자녀가 없는 여성의 임금이 더 높은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모성에 따른 임금차별(motherhood wage penalty)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전업맘과 워킹맘 간에 네트워킹이 서로 어렵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할 분화와 갈등이 여성에게서만 이루어지면서 젠더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림 5. 일과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출처: 최새은·정은희·최슬기 (2019). <남자가 출산휴가를 간다면?>


   결혼도, 출산도, 취업도 선택입니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등장하는 것은 장려할 사항이지 강제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화가 여성에게서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집안일을 담당하는 일인부양자모델(single breadwinner model)은 많이 약화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절대다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게 되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A에서 아빠 역할이 흐릿하게 그려진 것은 아빠 역할이 강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생기면 오히려 노동자 역할이 강조됩니다.
   지난 2년 동안 육아휴직을 다녀온 아빠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육아가 결코 쉬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투 같았다고도 말했고, 직장에 있는 시간이 더 편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 체득한 아빠 역할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엄마이며 노동자인 경우에 겪는 어려움이 아빠이며 노동자인 경우가 많아진다고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B의 경우가 더 이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과 가정 두 영역 간 경직성으로 인한 갈등이 어느 일방만이 짊어지고 있을 경우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여성만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겪는 문제라고 본다면, 적어도 수인가능한 수준으로 갈등이 조절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처럼, 다양한 남성의 등장, 그리고 자녀가 태어날 경우에는 아빠 노동자로 재 탄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목차
다양하지 않음에 질문을 던지다
인구 변동과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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