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범에 있어 변화는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이를 여성 문제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 도 있습니다. <그림 5>는 지난 20년 가까이 한국 사회가 성평등한 가정과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만들어진 양상을 보여줍니다. 직업 없이 전업맘
(stay-at-home mom)인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는 없는 커리어우먼도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는 없는 딩크족
(double income no kids)일 수도 있고, 아예 독신일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을 합친, 아이도 일도 가진 워킹맘도 있습니다.
<그림 5>의 A는 여성만이 다양한 역할로 분화된 경우입니다. 여전히 일과 가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은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워킹맘은 가정과 일터에서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기 힘들어합니다. 인구학에서는 이 두 영역이 똑같이 ‘막무가내 어린아이’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며 떼를 쓰며 우는 아이처럼, 아이도 직장도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요구합니다. 워킹맘의 어려움은 이러한 내적 갈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녀를 가진 여성보다 자녀가 없는 여성의 임금이 더 높은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구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모성에 따른 임금차별
(motherhood wage penalty)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전업맘과 워킹맘 간에 네트워킹이 서로 어렵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할 분화와 갈등이 여성에게서만 이루어지면서 젠더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림 5. 일과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출처: 최새은·정은희·최슬기 (2019). <남자가 출산휴가를 간다면?>
결혼도, 출산도, 취업도 선택입니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등장하는 것은 장려할 사항이지 강제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화가 여성에게서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집안일을 담당하는 일인부양자모델
(single breadwinner model)은 많이 약화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절대다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게 되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더 강하게 느낍니다. A에서 아빠 역할이 흐릿하게 그려진 것은 아빠 역할이 강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생기면 오히려 노동자 역할이 강조됩니다.
지난 2년 동안 육아휴직을 다녀온 아빠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육아가 결코 쉬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투 같았다고도 말했고, 직장에 있는 시간이 더 편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 체득한 아빠 역할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엄마이며 노동자인 경우에 겪는 어려움이 아빠이며 노동자인 경우가 많아진다고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B의 경우가 더 이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과 가정 두 영역 간 경직성으로 인한 갈등이 어느 일방만이 짊어지고 있을 경우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여성만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사람은 누구나 겪는 문제라고 본다면, 적어도 수인가능한 수준으로 갈등이 조절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처럼, 다양한 남성의 등장, 그리고 자녀가 태어날 경우에는 아빠 노동자로 재 탄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