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감정의 다양성에 대한 용인 구조
선불교 중 남종선을 중심으로
자현 玆玄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인간의 감정 문제와 남종선의 긍정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동양학의 오랜 과제 중 하나다. 동양학에서 진행된 인간의 감정에 대한 논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감정을 부정하는 관점으로, 초기 불교의 욕망 제한이나 『장자』의 ‘진인무몽眞人無夢’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감정을 인정하는 동시에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견해로, 『논어』의 “종심소욕이불유구從心所欲而不踰矩”나 왕필의 성인유정무애聖人有情無礙의 주장, 또는 천태지의天台智顗의 성구설性具說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백장야호百丈野狐」에 등장하는 불낙인과不落因果를 넘어선 불매인과不昧因果의 경지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마지막 셋째는 감정에 대한 긍정이다. 이는 욕망을 이상과 분리하지 않고 일체화시키는 관점으로 육조청담의 정감주의나 남종선의 현실긍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종선의 대두와 강남문화의 특징: 1) 회수淮水의 분기와 감정을 용인하는 강남문화
중국과 인도처럼 영토가 넓은 국가는 위도를 기준으로 지형에 따른 분기점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중국은 황하와 양자강(장강) 사이에 존재하는 회수가 기준이 된다. 이 회수를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이라는 지역을 분기하는 용어가 사용된다. 회수가 남북을 분기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회수를 중심으로 기후대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안자춘추』의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언급을 통해서 분명하게 인식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오랜 역사와 고른 인구분포는 기후적인 차이와 맞물려 강남과 강북에 서로 다른 문화가 발전하는 배경이 된다. 즉 강남과 강북은 하나의 중국 안에 있더라도 문화적으로는 큰 차이의 이질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시대 중국은 철저하게 강북 중심이었다. 강북을 대표하는 철학이 예禮를 강조하는 유가며 정서적으로는 『시경』이라면, 강남은 자연을 강조하는 도가와 굴원屈原으로 대표되는 비장미의 『초사』이다. 유가의 인仁은 “이인상여二人相與” 1) 즉 인간끼리의 관계며, 이로 인해 내면적인 의義와 외부적인 예禮가 강조된다. 예 역시 인과 마찬가지로 관계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유가는 집단적인 강북문화를 대변한다. 이에 반해 도가의 도는 진리 중심적이며 명철보신明哲保身을 강조하는 개인성을 가진다. 실제로 도가가 양주楊朱를 필두로 하는 위아주의爲我主義와 관계가 깊다는 연구는 도가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잘 나타내준다. 또 이와 같은 개인성은 장자에서처럼 현실을 넘어선 자유에 대한 동경과도 잘 맞아 든다.
  다음으로 『시경』에 수록된 305편의 시들은 크게 풍風·아雅·송頌의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 중 풍風인 국풍國風은 여러 나라의 민요를 바탕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를 아우르는 아雅는 국가의 공식 연회와 관련된 의식가이며, 頌은 종묘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제례악시祭禮樂詩이다. 즉 정감적인 것도 있지만, 제도적이고 국가적인 측면에 더 큰 비중이 할애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초사』는 굴원과 송옥宋玉 및 경차景差 등에 의한 남방의 정감 문화를 묶은 것으로 한나라 초의 유향劉向에 의해 가장 먼저 정리·부각된다.
   『초사』의 압권은 단연 굴원의 「이소離騷」이다. 「이소」는 『이소경』이라는 별본으로 유행하면서 경전의 권위를 가질 정도로 널리 사랑받는 문학작품이다. 「이소」에서 굴원은 혼군과 국정을 농단하는 권신들을 상대로, 비분강개하는 심정을 처연하면서도 강도 높게 토로한다. 이는 군주에게 3번 간해도 바뀌지 않으면 물러나라는 유교적인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굴원은 스스로의 울분을 참지 못한 채 멱라수에 투신해 생을 마감한다. 이 또한 부모에게 받은 신체를 온전히 되돌려야 한다는 유교적인 효 인식과는 완전히 상이하다. 즉 유교와는 다른 정감적인 면모와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게 목도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중국은 선진시대부터 거대한 영토와 기후환경의 차이에 의해서 강북과 강남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중 중국 문명의 중심은 섬서성과 관중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강북문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남종선의 대두와 강남문화의 특징: 2) 강남문화의 특징과 정감주의의 발전
중국사에서 강남이 한족 문화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것은 삼국시대 오나라부터이다. 조조의 위나라는 265년 제5대 조환이 사마염에게 양위하면서 진晉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280년에는 오吳가 진에 의해 평정되면서 삼국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그러나 291년 번왕들에 의한 ‘팔왕의 난’이 촉발되고, 이 과정에서 북방의 흉노족에 의해 영가 연간(307∼312)에 ‘영가의 난’이 발발한다. 결국 제4대 민제愍帝가 사로잡히면서 316년 진나라는 멸망한다.
  서진의 멸망 과정에서 사마예가 강남의 건업 즉 남경에 수도를 세우고 317년에 수립하는 왕조가 동진이다. 이로 인해 중국사는 강북의 선비·흉노·갈·저·강의 5호에 의한 16국과, 강남의 오→동진→송→제→양→진으로 계승되는 6조에 따른 남북조시대가 전개된다.
  위·진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은 현학玄學 즉 신도가新道家이다. 위·진에서 현학이 주가된 것과 달리, 6조에서는 위진시대에 시작된 청담淸談이 유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위진현학’과 ‘육조청담’인 것이다.
  청담은 위·진 교체기에 죽림칠현에 의해 확립된다. 사마씨의 전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당시의 정치적인 현실 속에서, 지식인들이 현학의 본체론에 입각한 탈속의 자연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즉 청담에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따른 지식인의 고뇌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청담의 관점과 사유방식은 동진 시기에 더욱 유행한다.
  청담의 특징은 자연과 탈속인데, 이는 강북을오이민족에게 빼앗긴 이주한 귀족들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방어기제의 필연성 속에서 작용하기 용이했다. 즉 현실부정이라는 위진 교체기의 문제의식이, 남조에서는 오랑캐로 천시하던 이민족에 의해 더욱 선명해지며 청담 유행의 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자신의 부정으로까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청담의 주체는 현실에 염오染汚되지 않는 청정성을 지향하는데, 이는 청담에 주관주의와 정감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깃드는 배경이 된다.
  청담의 상징 인물로 가장 선명한 것은 앞서 언급한 죽림칠현이다. 그러나 청담을 모은 문헌인 『세설신어』의 편집자는 남조인 송宋의 유의경이며, 이의 주석註釋은 양梁의 유준이다. 즉 이는 남조의 청담 유행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세설신어』를 보면,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유령劉怜이 방에서 나체로 사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유령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와 같은 행태를 비판하자, 유령은 “나는 천지를 집으로 삼고 방을 잠방이(속옷)로 삼는다. 제군들은 어찌하여 내 잠방이 속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라는 말로 응수한다. 2) 이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예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개인적인 주관에 입각한 탈속적이고 자유로운 면모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설신어』에는 개인의 감정존중을 넘어서 감정 그대로를 긍정하는 모습도 다수 확인된다. 이는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왕융王戎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왕융이 어린 아들인 만자萬子를 잃었다. 친구 산간山簡이 그를 위로하러 갔다. 왕융은 너무도 슬퍼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산간이 말했다. “어린애는 품에 안을 정도로 작은데, 어찌 이 지경에 이른단 말인가?” 왕융이 답했다. “성인聖人은 정情을 잊어버린다. 또 최하의 사람들은 정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정이 우리에게 모여 있지 않은가!” 산간도 이 말에 감복하여 다시금 그를 위해 슬피 울었다. 3)


   인용문에서 확인되는 감정에 대한 긍정은, 본체론을 바탕으로 현상마저도 본체 안으로 끌어들여 승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감정에 대한 긍정 인식은 현학의 시원자로도 평가받는 왕필로까지 소급된다. 『삼국지』 권28에는 왕필과 하안의 5정五情에 대한 논의가 수록되어 있는데, 중국철학의 감정 인식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안은 『장자』의 관점에 입각하여 성인은 희·노·애·락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 이론이 심히 정밀하여 종회鍾會 등이 이를 따랐다. 그러나 왕필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성인이 사람들보다 빼어난 것은 신명神明이요, 같은 점은 5정五情이라고 보았다. 신명이 무성하므로 충화沖和를 체득하여 무無와 통한다. 그러나 오정은 보통 사람과 같기 때문에 기쁨과 슬픔 없이 사물에 감응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은 사물에 감응은 하지만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제 그 얽매임이 없다하여 다시금 사물에 감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됨이 많다. 4)


   인용문을 보면 하안이 성인무정론聖人無情論을 주장한 것과 달리, 왕필은 오욕이 존재하지만 여기에 얽매이지 않는 성인유정무애론聖人有情無礙論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배휘裴徽가 왕필에게 ‘공자는 무를 말하지 않았는데, 노자는 무를 강조한 이유를 묻는 것’ 속에서도 살펴진다. 이때 왕필은 “성인(공자)은 무를 체득했으며, 무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므로 유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자와 장자는 유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가르친 것이다.”고 답한다. 5) 현학의 특징 중 하나는 노자와 장자를 주로 다루면서도,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자를 더욱 높게 평가한다는 점이다. 이는 강북문화의 틀 속에서 강남문화를 수용한 영향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왕필의 논의보다 왕융의 감정에 대한 인식은 보다 진일보한 동시에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왕필이 성인을 중심으로 오정의 기본을 긍정하고 있다면, 왕융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감정의 발로 일체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하안 → 왕필 → 왕융’의 변화가 읽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마침내 왕장사王長史의 “나는 마침내 정情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라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6) 이렇게 본체론에 입각해서 감정을 긍정하는 중국철학적 흐름은 후일 남종선에 의한 ‘일상의 긍정’으로까지 완성된다.

남종선의 대두와 강남문화의 특징: 3) 혜능의 태도와 강북의 강남문화 용인
강남문화의 개인 강조와 감정을 깊이 긍정하는 관점은 도생道生에 의해서 제기된 돈오와 불성사상이 강남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도생에 의해서 강남에 전파된 『대반열반경』의 유행은 양무제에 의해서 총 71편의 주석이 집대성되는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의 편찬을 통해서 인지해 볼 수 있다. 7)
   혜능 철학의 핵심은 불성이라는 본래 완성에 입각한 견성見性 즉 견불성見佛性이다. 이를 6조혁명六祖革命이라고 하는데, 8) 축약하면 본래 갖추고 있는 완전성에 대한 재발견 혹은 재인식을 의미한다. 이는 수행을 통한 확보가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기 때문에 깨침에 있어서도 돈오의 구조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혜능에 대한 자료를 집취한 『육조단경』에는 혜능이 빙무산으로 홍인을 친견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기존의 북방문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주목된다.

혜능은 어머니의 뒷일을 조치하고, 작별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30여일을 지나지 않아 황매현에 이르러 오조를 예배했다. 조사께서 물었다. “자네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내가 답했다. “제자는 영남 신주新州의 백성으로 멀리서 스님을 뵙고자 왔습니다. 오직 붓다 되기를 구할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자네가 영남인이라면 오랑캐(獦獠)인데, 어찌 감히 붓다가 된단 말인가?” 내가 말씀드렸다. “사람에게는 남북의 구별이 있을지언정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있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오랑캐라는 이 육신은 화상과 같지 않지만, 불성에는 어떻게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조께서 다시 나와 더 말하고자 하였으나, 좌우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의식해 대중을 따라서 일하도록 지시하셨다. 나는 스님께 여쭈었다. “제자는 스스로의 마음이 항상 지혜를 생하여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아야만 복전福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화상께서는 어떠한 일을 시키실지 궁금합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오랑캐치고는 근성이 예리하구나. 딴말 말고 후원에나 가 있거라.”
혜능이 후원으로 물러나 어떤 행자의 지시로 장작을 패고 방아를 찧으며 8개월여를 보냈다. 조사께서 하루는 문득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나는 네 소견이 쓸모 있다고 생각했다만, 나쁜 마음을 가진 이가 너를 해칠까 싶어 너와 말하지 않았다. 너도 눈치채고 있었느냐? 내가 말씀드렸다. ”제자 또한 스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방장실에 가는 것을 삼가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9)


   인용문에서 혜능이 출가를 위해 노모에 대한 뒷일을 마쳤다는 설정은 강북의 유교적인 효孝 관념을 나타낸다. 또 혜능이 홍인을 처음 친견할 때, 본향本鄕을 물은 것 역시 유교의 농업사회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즉 여기까지는 강북문화에 입각한 측면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혜능의 출신지가 영남의 신주라는 말을 듣자, 홍인이 갈료獦獠 즉 오랑캐라고 말하는 것은 강북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차별적인 인식 속의 언행이다. 오랑캐 발언은 혜능도 인정하는 바이며, 뒤에서도 한 번 더 확인된다. 이는 당시 강북 중심의 화이관이 작용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당나라 중기까지도 강남은 강북에 비해 차별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사람에게 남북이 있다.’는 혜능의 언급을 통해서도 재확인된다. 즉 수나라 때 대운하가 완성되었음에도, 전통적인 강북의 주류인식 속에서 강남에 대한 차별은 항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것은 그 다음에 살펴지는 혜능의 홍인에 대한 반발이다. 혜능은 불성의 보편성을 주장하며, 홍인의 말에 말대답을 한다. 혜능이 주장한 논리는 불교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강북의 유교 문화 속에서는 이것이 설령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어른에 대한 말대답은 쉽게 용인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당시 상황은 행자로 입문하려는 혜능이, 스승으로 모시려는 분이자 방장(주지)이었던 홍인을 상대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는 자성 운운하며, 어떤 일을 시킬 것인지를 묻는 대목 속에서 한 번 더 확인된다. 즉 이 부분에서 강남의 개인을 중시하는 자기표현이 강한 문화를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혜능과 홍인의 상면에는 강북과 강남이라는 두 문화권의 충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홍인은 혜능의 근성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이 해칠 것을 염려하는 것으로 인용문은 마무리된다. 즉 강남문화에 대한 배척이 아닌 용인의 모습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는 강남이 강북에 비해 차별받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에는 강남문화 역시 강북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보게 한다. 실제로 선종이라는 개인의 수행과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문화의 특징은, 집단적이고 관계성을 중시하는 강북문화보다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강남문화에 보다 부합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성이 강한 수행문화인 선불교의 주류는 북종보다 남종이 태생적으로 유리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혜능과 신수神秀 당대의 주류는 신수의 북종선이었다. 이는 신수가 장안과 낙양의 양경兩京을 거점으로 ‘양경법주兩京法主 삼제국사三帝國師’의 칭호를 듣는 것을 통해서 판단해 볼 수 있다. 또 남종선의 대두 초기에 이와 같은 북종선의 압도 현상이 확인되는 것은, 홍인이 강남인인 혜능을 오랑캐로 보는 차별인식과 같은 연장선상을 통해서도 이해된다.
   그러나 혜능 이후 남종선은 강서의 마조도일과 호남의 석두희천에 의해서, ‘안사의 난’으로 기울어진 당나라 후기의 사상계를 주도한다. 이는 안사의 난으로 피폐해진 장안과 낙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강남의 경제력과 문화가 강북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관련된다. 즉 강북문화의 퇴보와 강남문화의 약진 속에서 남종선은 일시에 개화開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원론의 세계관과 인간 감정의 문제: 1) 중국철학의 인성론과 혜능의 불성 이해
중국철학의 핵심에는 춘추시대 말부터 대두하는 인성론人性論이 존재한다. 10) 이러한 중국철학의 변화는 전통적인 인격천관人格天觀이 전쟁이라는 혼란하고 인간의 지력이 요청되는 시기를 맞아 붕괴되는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인성론이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파악을 의미한다. 중국 인성론사에서 가장 크게 회자되는 것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다. 말만 놓고 보면, ‘성선’과 ‘성악’은 완전히 대립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성선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점에서의 정의이며, 11) 성악은 인간의 현 상태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12) 양자는 결코 대립 관념이 아니다. 즉 중국철학에서의 성선과 성악은 인간의 본성을 어떤 방향에서 보고 있느냐와 관련된 것일 뿐, 양자는 공히 성선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성론이 성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상서』 「탕고湯誥」의 “오! 상제上帝께서 백성들에게 선함(衷)을 내리시니, 항상된 성性이 있음이로다.” 13) 『중용』 <수3구首三句>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와 같은 天과 性의 연결구조 때문이다. 14) 천은 전통적인 인격천人格天에서 춘추 말기부터 인격적인 요소가 축소되면서 법칙적인 의리천義理天으로 변모한다.
   중국의 천天은 하나라 때 절대자인 하느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상商 즉 은나라 때는 절대신의 명칭이 제帝로 바뀌게 된다. 이후 은이 주周로 바뀌게 되면서 하느님은 제에서 다시금 천이 된다. 이 천 역시 은나라의 제와 같은 인격천人格天 즉 주재천主宰天이다. 이런 절대적 신의 속성은 당연히 선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천이 인간에게 부여한 속성이 성性이다. 즉 이런 구조에서는 인간에게 품부된 성性 역시 선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일원론의 관점 속에서 심과 성은 두 가지로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선불교 역시 심성미분리心性未分離의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중국 인성론의 관점과 직결된다. 그러나 신유학 중 성리학에 오면, 이들은 唐·宋의 불교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심을 포괄적 관점으로 규정하고, 성性과 정情을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구조체계를 정립하기도 한다. 즉 장재張載의 심통성정설心統性情說과 15) 이의 발전인 본연지성本然之性(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 그리고 4단과 7정의 구조이다.
   심통성정의 구조는 중국 찬술설이 유력한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의 구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된다. 심통성정의 구조에서 정情은 극복이나 승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성性이 천리天理를 보존한 인간의 본래적인 완전성이라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즉 ‘존천리存天理 거인욕去人欲(遏人欲)’의 구조로 이렇게 되면 정감 혹은 감정이 긍정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심성의 미분리는 신유학 중 육왕학 즉 심리학心理學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에서, 중국 인성론의 본류는 심성의 미분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심성의 분리를 강조하고 정情을 극복대상으로 인식하는 성리학은 중국의 인성론사에서는 도리어 이질적이라는 인식도 가능하다.
   중국의 보편적인 인성론에서 심은 성과 직결된다. 또 혜능 당시는 당연히 송대에 확립되는 심통성정설의 개념은 도출되지 않았던 때이다. 그러므로 혜능은 불성을 곧 불로 이해하는 불성즉불佛性卽佛의 관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인도불교에서 불성이라는 표현은 대승의 『대반열반경』 등에서 확인되지만, 이는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관점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원론적인 배경을 가지는 인도 대승불교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불성보다는 여래장이라는 미래성불의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일원론을 배경으로 하고 또 철학의 중심이 인성론인 중국에서는, 미래의 내세적인 가능성인 여래장보다는 한자적인 의미에 있어서 보다 실체적인 ‘성性’이라는 글자에 주목한다. 이렇게 해서 유행하는 개념이 바로 불성이다.
   불성이란, 현재에 존재하는 붓다의 완전한 속성을 의미한다. 중국불교의 불성 주장 논리는 그것이 미래의 완전성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진정한 완전성이라면 현재의 불완전이 미래에 완전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완전함일 뿐이라는 관점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불완전함으로 이 완전함은 가리워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단지 완전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러한 완전함에 대한 인식적인 자각이 바로 남종선에서 말하는 돈오이다.
   혜능의 견성 구조는 현재에서 본성 즉 불성을 자각하면 그대로가 붓다일 뿐이라는 ‘불성즉불佛性卽佛’의 논리이다. 불성즉불에 대한 돈오 자각은 개체 자체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즉 나를 바꿔서 붓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붓다임을 자각하는 구조이다.
   또 이런 구조 안에서는 정情 역시 붓다 안의 감정이자 정감이 된다. 즉 불완전을 완전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 자체가 완전임을 긍정하고 이를 붓다로 재인식하는 관점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일체는 완전일 뿐 불완전은 존재할 수 없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현상과 모순에 대한 깊은 본래적 긍정이 존재하게 된다. 이는 위진 신도가 및 육조청담의 정감주의를 계승하는 측면인 동시에, 양명학의 ‘현성양지現成良知’나 ‘만가성인滿街聖人’과 상통하는 측면이다. 16) 즉 중국철학의 정감 긍정에 있어서 우리는 ‘육조청담 → 육조혁명 → 양명학’의 흐름을 읽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일원론의 세계관과 인간 감정의 문제: 2) 남종선의 현실긍정과 인간의 감정 문제
불성의 완전함은 그것이 절대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약되거나 가리어져서는 안 된다. 즉 불완전함이 완전함을 장애한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완전성에 대한 불성 인식이 확립되면, 인간의 감정 역시 완전성 안에 가설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남종선에서 구체적으로 대두하는 인물이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주장하는 홍주종洪州宗의 마조馬祖이다. 마조가 말하는 즉심즉불의 마음은 특수하게 변화된 마음이 아닌 일상의 마음 즉 평상심이다. 그러므로 마조에게는 평상심이 곧 도가 되는데(平常心是道), 이는 일상 전체에 대한 긍정인 동시에 모순을 넘어서는 완성으로서의 현실 인식에 다름 아니다.
   평상심시도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恒茶飯事)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종정語黙動靜이 모두 진眞이 된다. 17) 임제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을 말하지만, 18)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구조 속에서는 굳이 수처작주를 하지 않아도 언제나 입처는 개진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임제는 『임제록』의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천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불법은 노력이 필요 없다. 그저 일 없는 일상이면 될 뿐이다. 대소변을 보고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눕는다. 어리석은 이는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이는 알 것이다.”라는 것이나, 19) “만약 어떤 사람이 도를 닦으면 도는 행해지지 않고, 만 가지 삿된 경계가 앞다투어 발생한다. 지혜의 검을 뽑아 들면 한 물건도 없으며, 밝음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어둠이 밝아진다.”는 구절 등이 그것이다. 20) 즉 궁극적인 완성에 대한 긍정은 곧 불완전과 모순에 대한 긍정 역시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체는 수처작주가 필요 없는 언제나의 개진皆眞이며, 그것은 처음부터 변화할 수 없는 불변이었던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 주된 논점은 자연스럽게 현재라는 변화 즉 작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본체론을 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본체는 사라지고 작용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성性은 그 자체로 온전한 작용이 된다. 즉 ‘작용시성作用是性’이며 ‘전체작용全體作用’인 것이다. 21) 이렇게 되면 이제 그 어떠한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도 일체는 모두 불성일 뿐인 ‘현성現成’이 된다.
   작용이 성이며, 전체가 작용인 현재에서 부정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남종선은 인간의 감정을 그 자체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종선의 인욕긍정과 관련해서 임제가 스승의 죽음에 통곡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때 다른 조문을 온 승려가 “깨달은 사람도 우느냐?”고 묻자 임제는 “슬픈데 어쩌나!”라고 답한다, 이 문답은 감정은 조절대상이 아닌 그 자체의 완전함으로, ‘감정밖에 별도의 정각正覺이 있을 수 없고 정각이 곧 감정이라는 점’을 잘 나타내준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감정 자체가 깨달음의 활발발活潑潑한 경지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즉 감정은 인간 자체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우리의 호오好惡와 무관하게 언제나 진리의 현현顯現이 된다. 나와 진리의 일체성 속에서, 감정은 언제나 정당한 옳음이 되는 것이다.
남종선에 대한 미학적 판단
남종선의 명상주의란, 필연적으로 인식론에 따른 주관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명상이라는 내면적인 변화를 객관화시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며, 명상이 추구하는 행복 역시 객관적으로 계량화되거나 개념화되는 것은 쉽지 않다. 즉 남종선의 주관주의는 철학보다는 미학적인 판단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가치인 것이다.
   예술적 대상을 예술 작품이 아닌 그 속에 내재한 정신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인데, 이는 동아시아 회화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남종선의 미학적인 흐름이 회화라는 지극히 현상적이고 기술적인 측면까지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바움가르텐이 철학으로부터 ‘감성적 인식의 학’으로 미학을 독립시킨 이후, 오늘날에는 도리어 철학의 합리적인 관점보다도 주관을 통한 행복이 우위를 점하는 미학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즉 이성보다도 감성이 우위가 되는 ‘철학 위의 미학’ 또는 ‘철학을 넘어선 미학’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학과 통하는 남종선은 인간 행복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일상의 인식 환기’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미학이란, 개인별 편차에 따른 주관성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명상에 따른 행복 추구는 미학과 연결된다. 또 인식 주체에 결부와 문제는 필연적으로 다양성의 의미를 내포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미학과 명상에 있어서 모든 다양성은 그 자체로 용인되고 완성이 될 수 있다. 기준에 의한 판단이 아닌, 다양성 자체의 완성 이것이 보다 올바른 정의로 드러나고 있다. 즉 정의되는 사회가 아닌 다양성 속에서 정의가 논의되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진정한 정의인 것이다.
목차
한국시(詩)에서 만나는 생물다양성과 동물권
인간 감정의 다양성에 대한 용인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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