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과 여가(leisure) 이분법에서 다양성 추구하기:
팬과 팬덤에 대하여
이리나 리안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일반적으로 많은 학술 문헌은 팬덤을 문화 및 미디어 연구의 맥락에서 분석하며 극단적인 형태의 여가활동으로 언급하고 있다. 종종 ‘종교’, ‘국가’, 또는 ‘시장’과 같은 은유를 통해 팬들을 아주 먼 곳에 있는 국가, 특정 장소, 혹은 콘서트 등 팬덤의 근원지로 (상상의 또는 실제적인) 순례를 무릅쓰기까지 하는 광신적이고 지나치게 헌신적이며 집착하는 소비자들로 규정(프레임화)한다 . 예를 들어, 메리엄-웹스터 사전(Merriam-Webster Dictionary)은 팬의 동의어로 중독자, 광(狂), 열광자, 열성 신자, 광신도, 바보, 괴짜, 사냥개, 마약쟁이, 미치광이 등 (addict, aficionado, buff, bug, devotee, enthusiast, fanatic, fancier, fiend, fool, freak, habitué, head, hound, junkie, lover, maniac, maven, nut) 꽤나 부정적인 비유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프레임들은 팬에 대한 낙인 찍는 과정과 사회질서에 도전는 그들의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관습적인 일(work)과 여가(leisure)의 이분법에 얼마나 다양성이 부족한지도 보여준다. 이 에세이에서는 팬을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ial actors)로 개념화하고, 일/여가 이분법의 사회적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화할뿐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인 일 제도에 대한 대안적 제도까지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제안한다.
   기존 사회질서를 바꿀 수 있는 팬들의 힘을 처음 접한 것은 2007년이었다. 당시에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센터장에게 직업 목표에 대해 물어본 것이 기억난다. “이 공간 보이시나요?” 그는 센터의 크고 텅 빈 공간을 향해 손짓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곳이 사람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나는 사명―혹은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한편으론 러시아에 있는 나의 한국 가족을 떠나 이스라엘로 와서야 그것을 찾게 된 것이 이상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한국을 가까워지게 하려는 나의 첫 시도는 실패했다. 무료 언어 수업, 무료 영화, 그리고 무료 음식으로는 사람들을 거의 모을 수 없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항상 궁금해했고 현재도 그러한 고려인의 딸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이런 실망스러운 경험 후에 나는 센터를 잠시 떠나 처음으로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돌아왔을 때는 한국어 수업에 등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전화 메시지, 이메일, 대기자 명단들로 넘쳐나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있었다. 10년 동안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기를 누렸던 한류가 마침내 이스라엘에도 진출했던 것이었다. 내가 떠나있었던 동안 한국과 이스라엘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이스라엘의 한국 대중문화 팬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흥미가 학문적인 탐구심과 교차했던 맨 처음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한류가 자체적인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행사, 그리고 몇몇 리더들을 통해, 이스라엘 내에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자리 잡은 2011년, 나는 동료이자 친구인 알론 레브코위츠(Alon Levkowitz)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된 여성 팬들 있죠? 그들에 대한 기사를 함께 써보죠.”라고 제안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이스라엘과 한국 기업 경영자들 간의 문화 교류에 초점을 둔 심각한 주제의 국제 경영학 논문을 막 시작한 때였지만, 그의 제안은 무시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었다. ‘딱 한 편의 기사만 쓰고 국제 경영 논문으로 돌아갈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선택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실수’였다.
   알론과 나는 그전까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팬들과 팬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하고, 여러 행사들에 참여하며,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드라마들을 보기도 했다. 나는 알론이 『한류: 아시아와 그 너머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Hallyu: Influence of Korean Culture in Asia and Beyond)』이라는 제목의 한류에 관한 첫 영문서적들 중 하나에 실렸던 챕터를 보여줬던 것을 기억한다. 노수인 교수가 쓴 그 논문은 이집트내 온라인 한국 드라마 팬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 였다. 1) 그 논문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리고 노수인 교수가 이집트의 한류에 대해 쓸 수 있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의 한류에 대해 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했다. 우리는 한류 팬인 세 명의 친구에게 테스트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기점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히브리어 커뮤니티들에 그 설문 조사를 게시했을 때 우리는 큰 반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무려 거의 400개라는 응답으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참가자들은 관심에 감사를 표했고, 그중 일부는 일반 댓글난에 직접 글을 남겨주기도 했다. 나는 그중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메시지를 한국에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전해주세요. 여기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사랑하는지, 또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세요.


   나는 이 호소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비록 나 자신을 한류 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도 왠지 나는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이 공동체의 일원인 것 같이 느껴졌다. 이것을 세상에 알릴 기회는 곧 찾아왔다. 알론이 미시간 대학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온라인상 한류 확산을 일컫는 '한류 2.0'에 관한 논문들을 모집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곧 논문 초록을 제출했고 게재 승인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에서의 한류에 대한 나의 학문적 여정은 이렇듯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던 건 첫 번째 여정이었다. 미국에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고, 첫 국제 컨퍼런스이자 첫 학술적인 기여였으며,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우리는 주최 측의 초청을 받아 단행본 『한류 2.0: 소셜 미디어 시대의 한류(Hallyu 2.0: The Korean Wave in the Age of Social Media』)에 한 챕터를 제출하고 2), 3년간 수많은 수정과 개선 과정들을 거쳐 가야 했다. 가수 싸이의 파리 콘서트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 우리의 논문이 실린 그 책은 2015년에야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름의 소비: 이스라엘 내 한류 사례 연구(Consuming the Other: Israeli Hallyu Case Study)」라는 제목을 붙인 그 논문은 양국의 경제적, 외교적, 또는 문화적 관계의 부족에서 비롯된 이스라엘 속 한국 대중문화의 타자(他者)성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속 한국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이스라엘 민족의식이나 기억에 없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의 한국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였다. 1990년대에 중동 지역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과,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들을 겨냥했던 아랍보이콧의 줄어든 영향은 한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관계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격차는 점차 해소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했다. 이 같은 외래성(foreignness)은 보편적이고 세계적이라 여겨지는 미국의 미디어 텍스트 내에서는 묵살된다. 한국 출신은 항상 의문시되어 왔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 내 한류 팬덤에 대한 초점은 한국 대중문화 흐름의 성패에 있어 팬들의 역할을 분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인구가 9백만 명에 불과한 작은 시장이며 국한된 소비자 기반을 구성한다. 따라서 더 큰 규모의 중동 아랍어권이나 유럽과 북미의 부유한 시장에 비해 이러한 작은 시장에서 시장 확대 기회를 향한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의 관심은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내 한류의 전파는 거의 전적으로 팬들에게 달려 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늦깎이’이다. 한류 팬덤은 아시아와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얻은 후에 비교적 늦은 21세기 초에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전환은 2000년대 후반 이스라엘에 한류가 진출하며 시작됐다. 2006년 첫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2005)」이 이스라엘 케이블 연속극 채널인 비바(Viva)에서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고 같은 채널에서의 차기 한국 드라마 방영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타자성과 외래성은 곧 다음과 같은 상호연관된 두 가지 낙인들로 인해 악화되었다. 첫째, 대중문화―특히 팬덤들 사이 위상이 낮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둘째, 해당 팬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
   예들 들자면, 이스라엘과 한국 언론의 급증한 관심은 여러 기사와 TV 프로그램들의 기획으로 이어졌고, 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관심이 기뻤다. 2008년 이스라엘 국영 신문은 이스라엘 내 한국 TV 드라마의 인기를 문화적 취향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2013년에는 또 다른 이스라엘의 인기 신문이 케이팝이 어떻게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정복”했는지에 대한 3페이지 분량의 표제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나는 곧 언론이 한류 여성 팬들을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며 조롱하고, 소외시키고, 낙인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드라마의 일본 여성 팬들에 대한 연구들 내 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연애와 성생활이 부족한, 심지어는 아름다운 한국 남자들에 대한 공상에 잠겨 나라를 배반하고 있는 존재들이란 오명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1) 한국 대중문화의 타자성, (2) 압도적인 여성 비율, 그리고 (3) 팬덤 위계상 한국 드라마의 낮은 위치 등의 요소들이 곧 한류 팬들에게 투영되어, 그들이 평가받지 않고 안전하게 팬덤을 공유할 수 있는 소외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밖에 없게끔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이 공동체의 보호 아래 통일된 그들은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그들의 문화와 다른 나라의 문화 사이 격차를 줄이고자 한 소명 의식이 그들을 이 변혁적인 여정으로 인도한 셈이다. 하지만 한류 팬덤에 씌워진 삼중의 오명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팬들은 노동 제도의 지배를 방해하는 극도의 여가 활동을 하는 극단적인 ‘숭배자’, ‘애국자’, ‘소비자’로 규정되어 있다.
"숭배자들": 팬덤과 상징적 순례
일반적으로 종교적 은유들은 팬들을 팬덤의 근원지로 향한 상상 또는 실제적인 순례를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각오가 되어 있는 광신적인 숭배자들로 묘사한다. 이러한 종교적 비교는 우연이 아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팬의 첫 정의는 1682년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fan)은 일반적으로―그리고 아마 꽤 적절하게―광신자(fanatic)의 축약된 형태로 여겨진다. 라틴어로 ‘성소’ 또는 ‘사원’을 의미하는 파눔(fanum)에서 유래한 광신자(fanatic)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영어에서 팬은 일찍이 17세기 후반에 등장했으나, 2세기 동안 사라졌다가 19세기 후반에 다시 나타났다. 재등장했을 때 이 단어는 종종 스포츠에 골몰한 관찰자 또는 참가자들을 지칭했다. 3)


   ‘팬’이라는 단어가 광신도라는 종교적 기원을 두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곧 다른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성지에서 ‘한류의 땅으로’: 이스라엘 내 한류의 상징적 여정(From Holy Land to ‘Hallyu Land’: The Symbolic Journey Following the Korean Wave in Israel)」이란 제목의 이 논문 4) 은 성(Holy)지와 한류(Hallyu)를 이용한 말장난에서 비롯되었다.
   이 연구의 설문조사 참가자들은 한류를 인생을 바꾼 경험으로 여기며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느낀다고 보고했다. 예를 들어, 한 참가자는 “한국 드라마들에 제가 느끼는 개인적인 유대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마음이 편안해요… 한국에 너무 가고 싶고, 만약 갈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전 꼭 집에 온 것 같을 거예요.”라고 귀향의 느낌을 묘사했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팬들은 이 ‘집/고향’을 미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순수의 장소로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한류 팬들은 대부분 한국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종 그들이 상상하는 한국으로의 여행은 귀향에 대한 몽상이 되었다.
   한류를 통해서 팬들은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그들이 ‘진짜’ 고향과 삶의 사명을 찾은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상의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순례는 가상의 여행을 훨씬 넘어서 ‘진정한’ 문화적 경험을 초래한다. 한류는 팬들 자신의 이야기와 꿈을 투영하는 렌즈 역할을 하며, '한류 랜드'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종교적 영감에 바탕을 둔 팬덤 연구들과 한류 성공에 대한 언론 보도들은 팬들이 겪는 변혁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그들을 눈이 먼 광신적인 군중으로 규정한다. 엔트먼(Entman) 5) 은 “프레임화는 인식된 현실의 일부 측면을 선택해 특정한 문제 정의, 인과적 해석, 도덕적 평가 및 논법을 의사소통 매체에서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팬들의 주체성을 종교적인 틀에 국한시키는 것은 오히려 그에 대한 이해 범위를 좁힌다.
"애국자들": 팬덤과 정치
니심 오트마즈긴(Nissim Otmazgin)과 함께한 국가적 프레임을 통한 유대인 및 팔레스타인 한류 팬에 대한 연구 6) 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의 다채로운 커뮤니티 내 모두에게 케이팝은 탈출구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의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자 지구 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 기간 (2012년 폭격 당시) 우리는 잠을 전혀 잘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터널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분마다 3개의 로켓이 발사되었고, 구급차 소리와 겁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 중간중간 전 제가 좋아하는 세계로 도피했어요. 드라마든 음악이든 볼륨을 최대로 높여 틀어 놓고, 더 이상 아무것도 듣거나 느끼지 못하도록. 두려움과 현실로부터 도망쳤다고 할 수 있죠.


   우리는 또한 한국 관련 행사나 한국어 수업을 통해 한류 팬덤이 이 두 그룹의 팬들을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아랍 팬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아랍인들은 테러 및 갈등과 부정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이러한 만남들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 가게 되면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길 꿈꾸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팬덤은 지리적으로 근접하지만, 의미 있는 상호작용의 기회가 많지 않아 갈등을 겪고 있는 그룹들을 화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두 고립된 그룹들의 상호 팬덤을 향한 상징적인 여정인 것이다. 즉, 케이팝 팬들은 팬덤으로 인해 낙인이 찍히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힘을 얻기도 한다.
   2018년 우리는 뉴욕대학교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장기은 씨에게서 우리가 저술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한류 팬들에 관한 기사에 대해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데이비스 평화프로젝트(The Davis Project for Peace) 국제 장학금을 받아 히브리 대학에서 아랍과 유대인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여름 집중코스를 계획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연구가 갈등하는 두 집단 사이의 공통 기반을 구성하는 정치적 행동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마찬가지로, 리모르 쉬프만과 술라파 지다니(Limor Shifman and Sulafa Zidani)와 함께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2012)> 리메이크한 중동 영상들에 대한 연구 7) 에서 우리는 대다수의 영상 제작자들이 종종 풍자의 형태로 그들만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실상에 대해 주장하기 위해, 또는 재미나 패스티시(pastiche)를 위해, 이 뮤직비디오를 참조로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동과 같은 분쟁지역에서 만들어진 <강남스타일> 의 리메이크들은 분쟁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강남스타일>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을때, 헤브론(Hebron)에서 순찰 중이던 어떤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한 팔레스타인 결혼식 파티에 합류했다. 이 동영상은 입소문이 났고, “춤추는 이스라엘 군인들”은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문구가 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 또는 일반적인 대중문화가 중동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리메이크는 기존에 한정적으로 정형화되었던 민족문화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또한, 함께 춤을 추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군인들과 같은 이미지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라도 오랜 라이벌들을 같은 곡조에 맞춰 춤을 추게 할 수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의 연구 8) 는 해리포터 팬들의 조직적인 행동―기부, 시위, 그리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청원과 같은―을 통한 정치운동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개선하는 그들의 능력에 주목하고,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팬들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한류 팬들의 #Blacklivesmatter와 반 트럼프 캠페인과 같은 사회적 무질서와 심지어 폭력행위에 대한 개입은 팬덤이 반체제적이고 규범의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반노동 체제라는 오명을 강화시킨다.
"소비자들": 팬덤과 기업가정신
팬덤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장적 은유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대중문화의 생산, 소비, 유통에서의 팬들의 ‘참여 문화’에 대한 젠킨스의 2006년 연구 9) 덕분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팬들을 “과잉 헌신적인 소비자들”로 묘사하고 그들의 여가 활동을 ‘진짜’일을 하는 것의 안티테제(antithesis)로로 강조하기 때문에, 팬덤과 소비주의의 연관성은 보통 부정적으로 여겨진다.
   한류 팬덤 내에서 극성팬들은 “Koreaboos”로 알려져 있고,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구매하고, 홍보하는데 집착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대다수의 한류 팬들은 그들을 지나치게 열광적이고, 극단적이며, 강박적이라고 여겨 그들과 선을 긋는다.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방탄소년단의 가수 지민을 닮기 위해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받은 백인 영국인 올리 런던(Oli London)의 경우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은 한류 팬덤 내 극소수에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팬덤 전체를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
   종교, 국가, 경제 등의 맥락에서 팬과 팬덤을 프레임화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문화적 교류/변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들을 극단적 여가와 연관시켜 낙인을 찍는다.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문화 대조적 저술(writing against culture)”을 제안한 중동의 저명한 인류학자 릴라 아부-루고드(Lila Abu-Lughod)의 연구 10) 를 기반으로 한다. 문화 저술, 또는 다른 사람들을 문화적 주제로 프레임화하는 것은 그들을 소수의 캐리커처화된 특성들로 정의하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그들의 잠재력을 제한시키고 과소평가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류 관련 문헌들은 전형적으로 콘텐츠 이전의 메커니즘과 과정을 간과하고, 단순하게 팬들 사이에서 문화 콘텐츠가 생겨난다고 가정하는 접근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문화 콘텐츠의 능률적인 선두자와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열렬한 소비자로서, 일/여가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심지어 반전시켜 일과 팬덤과의 첨예한 분열에 대한 공통적 이해에 문제 제기를 한다. 즉, 팬덤은 사회적 행위의 원동력이 되는 독특한 문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적, 인종적, 사회적 경계를 넘는 문화 콘텐츠의 확산을 가능케 하는 효율적인 풀뿌리 제도(grassroots institution)이다.
끝 맺는 말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서 극동은 가장 먼 곳, 세계의 끝이었다. 처음 (한국) 드라마를 보았을 땐 언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뿐더러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요즘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 꼭 고향에 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난 어쩌면 전생에 한국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적 또는 가상적 여정이란 개념에 매료된 나는 나의 연구에서 팬들이 한류를 통해 어떻게 그들만의 한국을 상상하고, 그들의 사명을 구상하며, 자신들의 삶을 투영하여 문화적 교류/변화의 주체가 되는지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의 여정은 나의 것과 많이 닮았다―나의 한국적 정체성을 가족사나 출생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에서야 비로소 찾은 것과 같이. 나는 항상 나의 학생들에게 우리의 연구 관심사는 우리의 개인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디아스포라적인(diasporic) 한국인과 한류 팬 사이 유사성을 깨닫는 데는 사실 시간이 다소 걸렸다. 둘 다 먼 ‘고향’을 상상하고 여러 정체성, 문화, 그리고 장소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여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연구는 팬들이 한류 팬덤을 소비하고, 실천하고, 기념할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것들에 대한 담론과 기업가적인 활동(entrepreneurial activities)을 통해 그 장르에 대한 관심을 부채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이니셔티브(initiatives)는 팬들이 그들의 팬덤을 공표하고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일/여가 이분법을 뛰어넘는 경제적 또는 제도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제도를 구축한다.
   팬들을 ‘경배자’, ‘애국자’, 또는 ‘소비자’로 문화화하는 것에서 벗어난, 제도적 기업가정신(institutional entrepreneurship)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일과 여가 사이의 사회적 경계를 허물고 변형시키는 팬덤의 풀뿌리 역학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팬-기업가정신에 의해 주도되는 문화적 번역 (혹은 오역)은 이러한 공동체 구축의 핵심이다. 기업가로서의 팬들은 새롭고 때로는 예상 밖의 제도적 플랫폼을 만듦으로써 그들의 커뮤니티를 공동 창조하고,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을 개척한다. 팬과 기업가정신 두 주체는 모두 일과 여가를 ‘결합’시켜 상품들과 아이디어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일/여가 이분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팬-기업가정신은 새로운 마케팅 경로들을 활용하고,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며, 새로운 홍보 수단을 도입하고, 관련 상품과 서비스의 매개체들을 창출해내 일과 여가 활동을 초월한 복합 기관으로서의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더 넓은 시각에서 이스라엘 한류 사례는 팬덤을 기껏해야 극단적인 소비로 치부하는 기존의 경직된 일/여가 이분법의 다양성 부족을 극복함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이루는 어려움과 가능성을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팬‐기업가정신에 대한 제도적 관점은 일‐여가 이분법의 양면적 관계성을 드러내는 반면, 동시에 이러한 이분법을 논의하고, 다양화하며, 입증하기도 한다.
목차
일(work)과 여가(leisure) 이분법에서 다양성 추구하기: 팬과 팬덤에 대하여
Call for Diversity in Work/Leisure Binary: On Fans and Fand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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