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프레임들은 팬에 대한 낙인 찍는 과정과 사회질서에 도전는 그들의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관습적인 일(work)과 여가(leisure)의 이분법에 얼마나 다양성이 부족한지도 보여준다. 이 에세이에서는 팬을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ial actors)로 개념화하고, 일/여가 이분법의 사회적 경계를 확장하고 다양화할뿐 아니라 기존의 지배적인 일 제도에 대한 대안적 제도까지도 구축할 수 있는 것으로 제안한다.
기존 사회질서를 바꿀 수 있는 팬들의 힘을 처음 접한 것은 2007년이었다. 당시에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센터장에게 직업 목표에 대해 물어본 것이 기억난다. “이 공간 보이시나요?” 그는 센터의 크고 텅 빈 공간을 향해 손짓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곳이 사람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나는 사명―혹은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한편으론 러시아에 있는 나의 한국 가족을 떠나 이스라엘로 와서야 그것을 찾게 된 것이 이상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한국을 가까워지게 하려는 나의 첫 시도는 실패했다. 무료 언어 수업, 무료 영화, 그리고 무료 음식으로는 사람들을 거의 모을 수 없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항상 궁금해했고 현재도 그러한 고려인의 딸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이런 실망스러운 경험 후에 나는 센터를 잠시 떠나 처음으로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돌아왔을 때는 한국어 수업에 등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전화 메시지, 이메일, 대기자 명단들로 넘쳐나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있었다. 10년 동안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기를 누렸던 한류가 마침내 이스라엘에도 진출했던 것이었다. 내가 떠나있었던 동안 한국과 이스라엘은 더 가까워져 있었다.
이스라엘의 한국 대중문화 팬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흥미가 학문적인 탐구심과 교차했던 맨 처음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한류가 자체적인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행사, 그리고 몇몇 리더들을 통해, 이스라엘 내에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자리 잡은 2011년, 나는 동료이자 친구인 알론 레브코위츠(Alon Levkowitz)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TV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좋아하게 된 여성 팬들 있죠? 그들에 대한 기사를 함께 써보죠.”라고 제안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이스라엘과 한국 기업 경영자들 간의 문화 교류에 초점을 둔 심각한 주제의 국제 경영학 논문을 막 시작한 때였지만, 그의 제안은 무시하기엔 너무 매력적이었다. ‘딱 한 편의 기사만 쓰고 국제 경영 논문으로 돌아갈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선택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실수’였다.
알론과 나는 그전까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팬들과 팬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하고, 여러 행사들에 참여하며,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드라마들을 보기도 했다. 나는 알론이 『한류: 아시아와 그 너머에서 한국 문화의 영향(Hallyu: Influence of Korean Culture in Asia and Beyond)』이라는 제목의 한류에 관한 첫 영문서적들 중 하나에 실렸던 챕터를 보여줬던 것을 기억한다. 노수인 교수가 쓴 그 논문은 이집트내 온라인 한국 드라마 팬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 였다. 1) 그 논문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리고 노수인 교수가 이집트의 한류에 대해 쓸 수 있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의 한류에 대해 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했다. 우리는 한류 팬인 세 명의 친구에게 테스트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기점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히브리어 커뮤니티들에 그 설문 조사를 게시했을 때 우리는 큰 반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무려 거의 400개라는 응답으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참가자들은 관심에 감사를 표했고, 그중 일부는 일반 댓글난에 직접 글을 남겨주기도 했다. 나는 그중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메시지를 한국에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전해주세요. 여기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사랑하는지, 또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국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세요.
나는 이 호소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비록 나 자신을 한류 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도 왠지 나는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이 공동체의 일원인 것 같이 느껴졌다. 이것을 세상에 알릴 기회는 곧 찾아왔다. 알론이 미시간 대학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온라인상 한류 확산을 일컫는 '한류 2.0'에 관한 논문들을 모집한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곧 논문 초록을 제출했고 게재 승인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에서의 한류에 대한 나의 학문적 여정은 이렇듯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던 건 첫 번째 여정이었다. 미국에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고, 첫 국제 컨퍼런스이자 첫 학술적인 기여였으며,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우리는 주최 측의 초청을 받아 단행본 『한류 2.0: 소셜 미디어 시대의 한류(Hallyu 2.0: The Korean Wave in the Age of Social Media』)에 한 챕터를 제출하고 2), 3년간 수많은 수정과 개선 과정들을 거쳐 가야 했다. 가수 싸이의 파리 콘서트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 우리의 논문이 실린 그 책은 2015년에야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름의 소비: 이스라엘 내 한류 사례 연구(Consuming the Other: Israeli Hallyu Case Study)」라는 제목을 붙인 그 논문은 양국의 경제적, 외교적, 또는 문화적 관계의 부족에서 비롯된 이스라엘 속 한국 대중문화의 타자(他者)성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속 한국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이스라엘 민족의식이나 기억에 없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의 한국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였다. 1990년대에 중동 지역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과,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들을 겨냥했던 아랍보이콧의 줄어든 영향은 한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관계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격차는 점차 해소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했다. 이 같은 외래성(foreignness)은 보편적이고 세계적이라 여겨지는 미국의 미디어 텍스트 내에서는 묵살된다. 한국 출신은 항상 의문시되어 왔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 내 한류 팬덤에 대한 초점은 한국 대중문화 흐름의 성패에 있어 팬들의 역할을 분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인구가 9백만 명에 불과한 작은 시장이며 국한된 소비자 기반을 구성한다. 따라서 더 큰 규모의 중동 아랍어권이나 유럽과 북미의 부유한 시장에 비해 이러한 작은 시장에서 시장 확대 기회를 향한 한국 콘텐츠 창작자들의 관심은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내 한류의 전파는 거의 전적으로 팬들에게 달려 있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늦깎이’이다. 한류 팬덤은 아시아와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얻은 후에 비교적 늦은 21세기 초에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한국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전환은 2000년대 후반 이스라엘에 한류가 진출하며 시작됐다. 2006년 첫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2005)」이 이스라엘 케이블 연속극 채널인 비바(Viva)에서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었고 같은 채널에서의 차기 한국 드라마 방영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타자성과 외래성은 곧 다음과 같은 상호연관된 두 가지 낙인들로 인해 악화되었다. 첫째, 대중문화―특히 팬덤들 사이 위상이 낮은 한국 드라마―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둘째, 해당 팬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
예들 들자면, 이스라엘과 한국 언론의 급증한 관심은 여러 기사와 TV 프로그램들의 기획으로 이어졌고, 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관심이 기뻤다. 2008년 이스라엘 국영 신문은 이스라엘 내 한국 TV 드라마의 인기를 문화적 취향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2013년에는 또 다른 이스라엘의 인기 신문이 케이팝이 어떻게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정복”했는지에 대한 3페이지 분량의 표제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나는 곧 언론이 한류 여성 팬들을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며 조롱하고, 소외시키고, 낙인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드라마의 일본 여성 팬들에 대한 연구들 내 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연애와 성생활이 부족한, 심지어는 아름다운 한국 남자들에 대한 공상에 잠겨 나라를 배반하고 있는 존재들이란 오명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1) 한국 대중문화의 타자성, (2) 압도적인 여성 비율, 그리고 (3) 팬덤 위계상 한국 드라마의 낮은 위치 등의 요소들이 곧 한류 팬들에게 투영되어, 그들이 평가받지 않고 안전하게 팬덤을 공유할 수 있는 소외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밖에 없게끔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이 공동체의 보호 아래 통일된 그들은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그들의 문화와 다른 나라의 문화 사이 격차를 줄이고자 한 소명 의식이 그들을 이 변혁적인 여정으로 인도한 셈이다. 하지만 한류 팬덤에 씌워진 삼중의 오명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팬들은 노동 제도의 지배를 방해하는 극도의 여가 활동을 하는 극단적인 ‘숭배자’, ‘애국자’, ‘소비자’로 규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