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다양성, 미래 경쟁력에 답하다
이항심
건국대학교 상담학과 교수
다양성이란 주제가 우리 한국 사회의 교육 장면 그리고 조직에서도 점점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나 연구를 할 때 우리는 주로 집단 간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이나 성별 등을 기준으로 여성과 남성, MZ 세대, 시니어 세대, 장애인과 비장애인, 인종별·국가별·종교별 등 다양한 집단 간에 따르는 차이 등으로 다양성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지만, 집단 간 다양성을 넘어 개인 내의 다양성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나’라는 한 사람을 하나의 집단 정체성으로만 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 남자이고 중산층이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외국인 여성이고, 상류층으로 분류되면서 무슬림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은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존재이고 사회적 주류 정체성과 소수자 정체성을 동시에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한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사회 및 문화적 정체성의 복합성과 교차성을 Intersectionality 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인 내 Intersectionality가 함의하고 있는 내 안의 복잡하고 교차적인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인지하는 것은 다른 소수자 집단의 소수성에 대한 공감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즉 개인 내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훈련이 집단 간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 내의 다양성’을 Intersectionality의 프레임으로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정체성 측면에서만 살펴보는 것을 넘어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적 정체성과 연결해 볼 수도 있다. 100세 시대의 도래 및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 환경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학생들과 직업을 이미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본캐와 부캐 등 일터에서 멀티 페르소나의 건강한 발현을 바탕으로 ‘내 안의 다양성’을 통해 미래 경쟁력에 답을 찾아가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본캐와 부캐가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
최근 기억에 남는 선물 중 하나는 친한 지인분이 직접 만들어서 주신 나무로 만든 예쁜 도마와 핸드폰 거치대이다. 실제 목공 장인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디자인이나 쓰임새가 우수한 작품이다. 목공을 좋아하시다 보니 작은 물건들을 나무로 만드시다가 아예 집도 한 채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집까지 지으셨으면 직업이 목수이신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이 선물을 주신 분의 본캐는 글로벌 바이오 회사의 대표이시다. 즉 본캐는 바이오 회사 대표, 부캐는 목공·집짓기 등을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 자신의 주 본업인 본캐와 여러 개의 부캐로 활동하시는 분들을, 또 학생들을 만날 수가 있다. 본캐는 교수이지만 부캐는 주말에 기타·베이스를 연주하시면서 공연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연극 공연을 무대에 올리시는 분들, 작가나 시인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본 캐릭터와 부캐릭터의 준말인 본캐, 부캐는 요즘 시대의 우리가 가진 다양한 모습과 정체성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아닌가 싶다.
   개인이 가진 다양한 부캐의 정체성이 직업으로 연결되면 2개 이상의 복수 직업을 가진 N잡러로 활동을 하게 되기도 하고,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연결되면 취미 부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발견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다양한 SNS 플랫폼에서 다계정을 만들어서 쓰는 현상으로도 발현되고 있다. 최신 소셜미디어 사용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Z세대의 경우 평균 두 개 이상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계정에 따라 전혀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캐·부캐가 대변하는 개인 내 하나 이상의 다양한 정체성, 즉 멀티 페르소나가 시대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페르소나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적 필요와 역할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 쓰듯이 상황에 맞는 정체성을 다양하게 만들어 가는 다층적 자아상을 의미한다.
   본캐와 부캐로 표현되는 멀티 페르소나의 유행은 100세 시대, 평생 직업이란 개념이 사라져 가고 팬데믹의 영향으로 그 어떤 시대보다 불안해진 경제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직업적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개인이 경제적인 안정 추구를 하는 동시에 빠른 직업 환경 변화에 진로 적응성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대처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현상을 이런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살펴보는 것은 제한적 이해에 머무는 것일 수 있다. 여러 다른 관점에서도 이 현상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하나의 정체성으로 획일화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고 통합해 가려는 일종의 ‘자기다움으로의 회귀’와 같은 깊은 내면의 욕구들이 발현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분업화로 인해 물질적인 부를 이룰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잘게 쪼개진 기계적인 분업화 업무들로 인해 내 안의 다양한 모습으로 인지될 수 있는 자기다움에 대한 통합적 경험이나 이해가 결여되면서 인간의 기계화로 인한 정신적 피폐가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탈산업화 시대,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점차 “나다운 것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획일적이고 분절화된 나의 모습을 넘어 본캐와 부캐 및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각도와 채널로 ‘나 다움’에 대한 탐색을 하면서통합된 나를 경험하고 찾아가려는 노력이 반영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향해, 본캐와 부캐의 시대, 나다움에 대해 깊이 질문하는 시대로의 이행이다. 그렇다면 이런 나다움을 향한 내 안의 다양성이 일터에서는 어떻게 잘 발현될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내 안의 다양성이 미래 경쟁력으로 연결되다
나다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시대적 흐름은 일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도 관계 재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의 주 연구 분야인 진로심리학에서는 조직과 개인의 변화된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론을 소개하고, 양적·질적 데이터 기반의 경험적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이론과 개념을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산업화 시대의 전통적 커리어 패러다임 모델과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커리어 패러다임 모델을 사다리와 정글짐의 예시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다음 그림 참조).
   사다리와 정글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들이 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사다리는 상하 이동만 가능하지만, 정글짐은 상하 이동뿐만 아니라 좌우 이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의 진로 발달에 적용해 보면, 정글짐 위에서는 업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나의 경력을 자유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통적 커리어 패러다임 모델과 새로운 커리어 패러다임 모델
출처: 이항심(2020)1)


   이를 진로심리학자들은 무경계 진로(boundarlyless career)또한 그러다 보니 성공의 기준도 달라지고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성공을 판단하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글짐 위에서는 자신이 정의하고 멈추는 곳이 바로 성공의 지점이다. 진로심리학자들은 이를 주관적 심리적 성공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성공의 기준과 모습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나에 대한 이해도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잘 아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이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지속적인 직업 세계에 대한 학습, 전 생애에 걸쳐서 직업적 멀티 페르소나를 개발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혹은 진로 무질서 이론으로 설명한다. 무경계 진로는 정글짐을 타는 것처럼 하나의 고용 환경이나 조직에서 평생 경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조직이나 전문 분야 혹은 섹터 경계를 넘나들면서 복합적이고 다양한 경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산업과 직업 환경의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 직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직무들, 특히 융·복합적이고 경계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직무들이 생겨나는 과정 속에서, 직장 간 혹은 업종 간의 이동이 증가하는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무경계 진로 이론이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직업 세계의 변화와 그 변화가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성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나의 미래 경력 개발이나 진로 발달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글짐 안에서의 물리적인 이동뿐만이 아니라 마인드 셋과 태도도 중요하다. 마인드 셋에는 조직과 분야를 넘나들면서 일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무경계 직업적 사고방식이 중요해진다. 이런=유연한 마인드 셋과 태도를 잘 설명하는 진로심리학 용어 중 하나는 홀(D. T. Hall)이 소개한 프로티언 커리어(Protean Career)이다2). 프로티언이라는 용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테우스(Proteus)의 모습처럼 개인이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무쌍하게 자기 모습을 변화시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프로티언 커리어의 핵심은 주체성에 있다. 전통적인 커리어 패러다임의 사다리 타기처럼 경력을 쌓을 때 주어진 사다리 위를 수동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프로티언 커리어는 자신이 지향하는 곳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가지고 정글짐 위에서 서로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커리어 모듈을 조합해서 만들어 간다. 이는 경력의 책임 소재 면으로 볼 때 전통적 커리어 모델에서는 조직이 기회를 부여했다면, 프로티언 커리어는 자신이 직접 주도적으로 경력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무게추가 개인에게 더 많이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그러다 보니 성공의 기준도 달라지고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성공을 판단하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글짐 위에서는 자신이 정의하고 멈추는 곳이 바로 성공의 지점이다. 진로심리학자들은 이를 주관적 심리적 성공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성공의 기준과 모습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나에 대한 이해도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잘 아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이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지속적인 직업 세계에 대한 학습, 전 생애에 걸쳐서 직업적 멀티 페르소나를 개발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요약하자면,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 환경에 자기 주도적으로 잘 적응하고 또 사회적 필요와 변화에 맞게 하나의 직업을 넘어서 다양한 직업적 정체성을 유연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직업적 정체성을 넘어 우리 안의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적 정체성을 발현해 나가는 것이 개인의 진로 발달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장에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위해 개인적 측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회적 측면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유연한 자아상 키우기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제한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발현된 멀티 페르소나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미래 경쟁력과 적응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하나의 면만이 아닌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한 가지 모습으로만 규정하고 그 고정관념 안에서 자신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멀티 페르소나들을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유연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안의 다양성을 수용하며, 다양한 페르소나 가면을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키우고 꺼내 쓰면서 자신의 다양성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연한 자아상을 바탕으로 건강한 멀티 페르소나를 어떻게 잘 키우고 확장해 나갈 수 있을까? 일단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 도널스 위니콧(Donald Wiknnicott)이 소개한 대상관계이론3) 에서 이야기한 진짜 자아(True Self)와 거짓 자아(False Self) 개념을 먼저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이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진짜 자아는 일부러 꾸미지 않는 본연의 자아(Authentic Self)를 이야기하고, 거짓 자아는 사회적 기대나 타인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진짜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생긴 자아를 의미한다. 진짜 자아의 모습은 실제 매우 추상적이고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알아 가는 것은 평생에 걸쳐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추정하고 스스로 확인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연의 자아를 다양한 경로로 경험하고 추정하는 과정에는 ‘유연한 자아상’이 필요하다. 다음 그림에서 ‘유연한 자아’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듯이, ‘나’라는 진짜 자아(True self)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추정하기 위해서는 고정되고 막힌 나에 대한 자아상이 아니라 점선의 유연한 자아상이 필요하다.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열린 선을 통해 아직 발현되지 않는 내 안의 다양한 모습, 멀티 페르소나가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첫째 먼저 자기 안의 다양성을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실제 획일적인 교육을 받아 왔거나 자기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아 보거나 스스로 던져 보지 않고 지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기 안의 다양한 모습과 멀티 페르소나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업적으로 ‘나는 수학과는 거리가 멀어서 숫자와 관련된 일은 무엇이 되었든 잘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직업적으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제한하면서 숫자와 관련 있지만 자신이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업무나 전공조차 탐색할 기회를 아예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

건강한 멀티 페르소나 작동 메커니즘
출처: : 동아비지니스리뷰(DBR)4)


   둘째, 유연한 자아상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발현되는 멀티 페르소나가 얼마나 나의 진짜 자아에 가까운지 그 연결성의 단단함을 인지하고 강화하거나 제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앞의 그림에서는 진짜 자아와의 연결성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작동 기제를 보여 주기 위해 네 개의 멀티 페르소나 가면을 표현했다. 연결선이 굵고 튼튼한 1번 페르소나부터 연결선이 아예 없는 2번, 점선으로 연결된 3번, 실선으로 연결된 4번의 페르소나이다. 네 개의 사례는 우리가 자기 안의 다양한 페르소나들을 건강하게 발현하는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 준다. 즉 1번 페르소나는 진짜 자아와 단단한 선으로 연결된 페르소나이다. 이 경우에는 일터나 일상에서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편안하게 주어진 업무를 즐겁게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2번과 같이 전혀 연결점이 없는 업무나 일의 경우에는 그 일을 하면 할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당신이 공부하거나 일할 때 자기에게 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면, 현재 하는 업무나 직업 환경이 자신의 진짜 자아와 거리가 먼, 즉 관계성이 매우 낮거나 없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진짜 자아와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학업이나 업무의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3번과 4번은 진짜 자아와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가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이다. 1번처럼 연결선이 확실하고 튼튼하지는 않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나 취미 활동을 통해 개발하고 있는 페르소나들이다. 아직은 진짜 자아와의 견고한 연결성이 없지만 또 하나의 건강한 부캐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가면들이라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추가적인 탐색 활동과 경험을 쌓아 나간다면 부캐를 넘어 또 하나의 본캐 페로소나로도 활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마음 챙김 관찰자’이다. 즉 다양한 내 안의 페르소나들의 연결감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관찰하는 ‘관찰하는 자아’의 개념이다. 이를 관찰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페르소나를 더 강화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페르소나는 적절히 제거하거나 정리하기도 한다. 즉 업무적으로 나에게 맞는 옷과 맞지 않는 옷을 구별하고 또 새롭게 옷을 디자인하거나 발굴해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수용적인 ‘마음 챙김 관찰자’와 함께 유연한 자아를 잘 훈련해 나간다면 진짜 자아에 더 잘 어울리는 다양한 본캐와 부캐의 멀티 페르소나들이 풍성해지면서 나를 이해하는 하나의 획일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내 안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도가 넓어질 수 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나만의 고유성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
다양성과 고유성은 다른 단어 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중요한 세트 묶음 단어들이다.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남과 다른 나만의 시그니처, 즉 고유성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조직, 혹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차별점을 만들어 내는 자원이기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과 조직, 나아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내 안의 이런 다양성을 바탕으로 고유성을 어떻게 잘 발현할 수 있을까? 많은 경우, 내 안의 다양성과 고유성이 발현될 때는 주로 나의 강점이 발현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 강점이 발현되는 경우도 많지만, 의외로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이나 약점이 발현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경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스스로가 결핍 요소나 약점을 수용하지 못하고 회피하게 되면서 페르소나로 발현되거나 연결되지 못하기도 한다. 이때 위의 ‘마음 챙김 관찰자’가 약점이나 결핍 요소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의 눈이 아니라 수용해줄 때, 남들과 다른 고유성을 가진 강력한 페르소나가 탄생된다.
   한 예를 들면, ‘아빠 이거 어떻게 해요?(Dad, How do I?)’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미국의 백인 중년 남성 롭의 사례에서도 결핍 요소가 오히려 자신의 강력한 주요 페르소나로 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롭은 아버지의 부재로 사춘기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 생겨나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롭은 어른이 되고 나서 자신처럼 아버지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전 세계에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 어려움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아빠, 이거 어떻게 해요?’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면도하는 방법, 넥타이 매는 법, 샤워기를 고치는 법 등 성장기에 궁금해할 만한 것들에 대해 아버지처럼 하나하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주는 영상을 통해 팬들에게 충고(advice)가 아닌 ‘dadvice’라는 애칭까지 얻게 된다.
   롭의 사례처럼 우리 모두는 강점뿐만 아니라 각자가 다른 취약함, 결핍된 부분들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나로부터 소외되고 외면받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수용될 때 우리 안의 강점 기반의, 혹은 결핍 기반의 다양한 페르소나들은 건강하게 발현되고 또 하나로 통합되고, 본연의 나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내 안의 다양성은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유연하고 수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할 때 다른 사람과 다른 고유성을 가진 다채로운 색을 띠고 발현된다. 다양한 나의 모습이 담긴 페르소나와 진짜 자아의 연결성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하나하나 분절된 자아가 아니라 다양하지만 통합된 정체성을 가진 건강하고 고유한 자아로 그 모습을 인식해 나가게 된다.
내 안의 다양성이 집단 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이끄는 힘
앞서서 개인이 가진 다양한 문화 정체성을 넘어서 일하는 자아로 멀티 페르소나를 발현하면서, 내 안의 다양성이 수용되는 경험을 통해 어떻게 고유성으로 연결돼 나가는지에 대해 소개를 하였다. 그렇다면 이 개인 내의 다양성과 집단 간의 다양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실에서 나와 다른 사회·문화적 소수자 집단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어려움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타인의 경험을 내가 다 알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문화적 소수자들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바로 개인 내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수용 경험을 통해 나와 다른 사회 문화적 집단이 겪어 왔거나 겪고 있는 불편감에 대해 공감이 되면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면, 위에 든 롭의 예시에서처럼 겉으로 보기에 롭은 중산층의 백인 남성이지만, 자신과 인종이나 문화권이 다르더라도 아버지의 부재로 경험한 불편감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공감한 데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집단이 경험하는 불편감을 해결하고자 행동을 취했다는 점이 중요한 지점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자기 안에 직업적 혹은 사회·문화적 정체성과 페르소나가 다양해지면 그 여러 가지 정체성 중에 주류에 속하는 정체성도 있지만 소수자로서의 정체성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자체가 바로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공감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즉 내 안에는 주류 정체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의 정체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소수자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수자와 소수자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즉 문화적 맥락이나 환경이 달라지면 변화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미국에서 유학하고 일하던 시절에 한국 국적을 가진 아시아인, 여성, 비영어권에서 온 인터내셔널 등 세 가지 이상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정체성 중 하나였던 인터내셔널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한국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한국인이라는 주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에 대한 정체성도 문화권에 따라 혹은 직군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고 인식될 수 있다. 여성이 많은 직군에서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소수자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여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직군에서는 남성이 소수자의 경험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문화적 맥락이 바뀌면 나의 사회 문화적 정체성도 바뀐다. 하나의 획일화된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의 특권으로 인식되었던 주류의 정체성도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환경이 변하면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직업적 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획일적인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보다 다양한 직업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개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에 더욱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내가 획일적으로 교수로, 혹은 한 조직의 일원으로, 혹은 대표로 나의 고정된 직업적 정체성을 가지고 평생을 지냈던 경우,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더 큰 상실감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다른 직업군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도가 낮아질 확률이 높다. 지금과 같이 직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직업군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 안의 다양한 부캐를 활성화해 보는 것이 미래의 직업 세계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존중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도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 개인의 직업적 다양성, 멀티 페르소나를 바탕으로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존중을 하게 될수록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직업적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개인 내 다양성의 증진과 수용은 한 개인의 성장이나 경쟁력을 이끄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각기 다른 사회 문화적 집단의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를 높여 주는 핵심 연결선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경쟁력을 넘어서 우리 사회 및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학교와 사회를 향하여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누구나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존중에 대한 욕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지점은 내 안의 다양성 존중과 타인의 다양성 존중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내 안의 다양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타인의 다양성을 먼저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같음보다 다름을 어떻게 잘 다룰 것인가에 대하여 개인 스스로 혹은 학교나 조직에서 함께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적인 다름, 그 다양성을 다룰 때 다름에 대한 존중과 내가 그 다름을 완전히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한 마음과 태도는 인지적인 영역의 교육만 가지고 길러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다양성 교육을 할 때 경험적 교육을 함께 하게 하는데, 경험적 교육의 일부로 소수자의 경험을 해 보게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한 예로 학생들에게 시각적으로 불편한 분들의 경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인지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어둠 속의 대화>5) 라는 전시 참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직접 경험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인지적인 교육과 함께 경험적 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다양성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단계로는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그 다름이 커뮤니티나 학교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서 실제로 수용될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행동들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생은 학생 입장에서 소외되는 친구에게 한번 더 다가가서 말을 걸기, 교사는 교실 내에서 소외되는 친구들이 없는지 관찰하고 한번 더 관심을 기울이기, 조직 리더 역시 팀 내에서 배제되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팀원이 있다면 1:1 미팅을 통해 불편감이나 어려운 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 주기, 연구자나 사회과학자들은 특정 사회·문화적 집단이나 직업적 집단이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기, 상담자는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들을 고려한 상담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기 등, 변화는 이처럼 예시로 든 아주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들은 내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에 대한 긍정이자, 타인에 대한 긍정,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한 긍정의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목차
내 안의 다양성, 미래 경쟁력에 답하다
상담심리와 다양성: 상담실 밖으로 나간 상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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