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흘람은 필자의 정신과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들의 길고도 긴 말들을 아주 열심히 들어 주었고, 그것을 매우 요령껏 나에게 통역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환자들이 울면, 그 환자들의 손을 지그시 잡아 주었고,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 그 태도가 참으로 어른스러웠다. 작은 몸의 아흘람이 자기보다 훨씬 큰 몸집의 환자들을 능숙하게 돕는 모습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리아 난민 진료 장면. 필자와 아흘람, 그리고 환자의 모습
진료를 받으러 온 난민 환자들 모습
진료의 마지막 날이었던 넷째 날, 환자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진료실 아침 시간, 나는 처음으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아흘람에게 질문을 했다. 순간 그녀의 눈에 환한 광채가 났다. 그리고 이슬람과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요르단 출신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라나야 했던 불우한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는 집안이었지만, 온 가족은 모두 독실한 이슬람 신자들이었다. 몇 년 전에는 아버지가,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어머니가 각각 메카 순례를 다녀왔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메카 순례를 가는 것은 돈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었기에, 아흘람의 부모는 각자 따로 싼 값으로 가는 남자끼리, 여자끼리의 순례자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해 갔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직 메카 순례를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코란에 대한 내용으로 옮겨 갔다. 내가 물었다.
“그동안 코란을 몇 번 읽었나요?”
“수도 없이요.”
“수도 없이? 하루에 얼마나 읽는데요?”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씩 코란을 읽어요.”
“그렇게 읽는다면 코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 며칠이나 걸리죠?”
“20일에서 한 달 정도요.”
“수도 없이요.”
“수도 없이? 하루에 얼마나 읽는데요?”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씩 코란을 읽어요.”
“그렇게 읽는다면 코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 며칠이나 걸리죠?”
“20일에서 한 달 정도요.”
그러면서 아흘람은 코란을 제대로 읽으려면 반드시 아랍어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코란에 나오는 아랍어 단어들은 모두가 다 그 하나하나의 특별한 개념 (concept)을 가지는데, 그것을 단지 사전적인 의미 (meaning)만을 가지고 번역하면, 코란의 그 깊은 뜻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속에는 깊은 신앙심과 함께 코란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코란을 그렇게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그럼 성경을 읽은 적은 있나요? 아흘람도 알다시피 이슬람에는 4대 성인이 있고,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가 그들이잖아요. 그래서 무함마드의 코란에 더하여, 예수의 복음서를 읽어 본 적은 있나요?”
“아니요. 집에 아랍어 성경과 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은 있지만, 아직 성경을 읽지는 않았어요.”
“아니요. 집에 아랍어 성경과 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은 있지만, 아직 성경을 읽지는 않았어요.”
기독교인인 필자로서, 이렇게 열심히 코란을 읽고 있는 아흘람에게 불쑥 성경을 읽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것이 어찌 보면 무례하고, 또 어찌 보면 불공평한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언뜻 이런 제안을 했다.
“아흘람은 지금까지 매일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씩 코란을 읽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매일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씩 성경을 읽어 왔어요. 우리 한 번 서로 코란과 성경을 바꿔 읽어 보면 어떨까요?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영어로 된 코란을 사서 앞으로 코란을 읽을 터이니, 아흘람은 이제부터 내가 줄 영어 주석 성경을 가지고 복음서를 읽으면 어떨까요?”
이 제안에 아흘람은 아주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용하는 영어 주석 성경 한 권을 알라딘을 통하여 주문하도록 한국인 거주자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것은 사실 나에게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소위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살아왔기에, 따지고 보면 나에게 기독교와 성경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러다가 아흘람에게 성경을 소개하며 보니, 내가 가진 성경과 아흘람이 가진 코란이 갑자기 매우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비교되는 매우 ‘상대적인’ 그 무엇으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성경과 복음서의 내용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다. 아흘람이 단 한 번만이라도 복음서와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코란과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흘람도 코란의 내용에 대해 아주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단 한 번만이라도 코란을 제대로 읽는다면, 성경과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내가 코란을 읽어 보겠다고 말한 것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했다. 우리의 느닷없는 약속은 그렇게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