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읽을 시는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문호로 꼽히는 셰익스피어
(1564-1616)의 시이다.
내 연인의 눈은 태양 같지 않으며,
그녀의 입술보단 산호가 훨씬 붉다.
눈이 희다면 그녀의 가슴은 왜 그리 시커먼 건지,
머리카락이 금사(金絲)라면 그녀의 머리엔 검은 철사가 자란다.
붉고 흰 장미를 나도 보아 왔지만
그녀의 뺨에선 그런 장미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향수 중엔 내 연인이 풍기는
입 냄새보다 더 기분 좋은 것도 있다.
난 그녀가 말하는 걸 듣길 좋아하긴 하나,
음악이 훨씬 더 감미로운 소리를 갖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난 여신이 걷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걸 인정하겠다.
내 연인은 걸을 때 땅 위를 밟는다.
그러나 맹세컨대 난 내 사랑이 허황된 비교로
잘못 묘사한 여자만큼이나 드물다고 믿는다.
2)
이 시는 형식상 쏘네트
(sonnet)라고 불리는데, 쏘네트는 14행의 정형시를 가리킨다.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모든
쏘네트는 동일한 압운
(押韻)형식을 갖는다. 셰익스피어가
1609년에 출간한 쏘네트 시집에 실린 이 시는 당대의 연애시들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의 많은 연애시 작가들은 연모의 대상인 여성의 외모를 이상화해
찬미했는데, 그들이 특히 즐겨 쓰던 방식은 블라종
(blazon)이었다. 블라종은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부위별로
비유법을 써서 묘사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여성의 머리에서 발로
시선을 이동하며 목록화해 묘사했다. 그녀의 눈은 태양같이 빛나고, 입술은 산호보다 붉고, 피부는 백설 같고, 뺨은 장밋빛이고 등등. 그런데 문제는 많은 시인들이 블라종의 방식을
쓰다 보니 그들의 묘사가 비슷해졌다는 데 있다. 블라종의 많은 비유들이 거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찰스 소렐
(Charles
Sorel)이란사람의 책에 실린 아래 그림은 이러한 관습적
표현들을 한 여인의 초상화 안에 한데 모아 놓았다.
3)
출처: 찰스 소렐(1653)
블라종의 종합판이라 할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여인의 이마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화살을 든 채 앉아 있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여인의 두 눈 역시 화살을 쏘고 있고, 눈썹은 활의 모양을 하고 있다. 어느 남자든 이 여인과 시선을 마주치면 그녀에게 매혹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인의 두
눈동자는 태양이고, 뺨에는 백합과 장미가 피어 있고, 입술은 붉은 산호, 이빨은 진주이다. 머리에 쓴 망에는 심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금껏 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자들의 심장인가? 재미있게도 두 가슴은 지구의
(儀)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 소렐의 삽화 자체가 식상하고 관습화된 블라종에 대한 패러디라 할 수 있다. 시인들이 흔히 쓰는 블라종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보니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여인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이 삽화가 나온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선 여성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묘사는 이미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반세기 전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쏘네트는 블라종의 진부하고 허황된
비유들을 거부하고, 연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판에 박힌 듯한 블라종은 개별 여인의 ‘유니크
(unique)’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기엔 너무나 부적합한 언어가
돼 버렸다. 진부하고 뻔한 비유로 여성 개인이 지닌 다양한 미
(美)를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연인의
눈이 빛나는 태양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점, 산호가
연인의 입술보단 훨씬 붉다는 점, 연인의 피부는 백설 같기는커녕 햇볕에 그을어 까무잡잡하다는 점, 연인의 머리는 금발이 아니라 흑발이라는 점, 연인의 뺨에선 장밋빛을
(그게 어떤
색깔이건 간에) 아예 찾을 수가 없다는 점, 연인의 구취
(口臭)보단 향수 냄새가 훨씬 향긋하다는
점, 연인의 목소리가 사랑스럽긴 하나 솔직히 음악 소리보다는 못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른 시인들은 연인을 여신이라 부르며 떠받드는데 자신의 연인은 여신이 아니기에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땅 위를 밟고 다닌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연인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를 거부함으로써 사랑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마지막 두 행에서 하는 말은 우리의 기대에서 살짝 어긋난다. 그는 ‘난 내 사랑이 허황된 비교로 / 잘못 묘사한 여자만큼이나 드물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다른
시인들이 과장이 넘치는 블라종으로 리얼리티가 매우 떨어지게 묘사한 여자들보다 내 여자가 더 귀하다, 라고 말해야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동등 비교
(as ... as)를 쓰고
있는 것일까? 시인들이 그들의 연애시에서 칭송하는 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여성은 아마도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두 세 가지라도 갖춘 여성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인들이 흠모하는 아름다움을
(일부라도) 지닌 여성이 현실에 무척 드문 것처럼 자신의
연인 또한 현실에서 마주치기엔 무척 드문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그의 연인은 연애시에 흔히 등장하는 여인과는 많이 다른 외모를 갖고 있다. 그가 연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녀에게 그만이 알아본 아름다움, 어쩌면 그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주관성이다. 이 점은 시 본문에 주격 ‘나’와 소유격 ‘나의’
(혹은 ‘내’)가 도합
8번이나 등장
(영어 원문에선 11번)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 연인만이 지닌 아름다움을 획일적이고 진부한
언어로는 담아낼 수 없다. 각자가 사랑하는 연인의 아름다움은
각각 특징이 다르다. 사랑의 본질은 보편적으로 동일하지만 그것의 양태는 연인들마다 제각각이다. 남이 만들어 낸 비유, 처음엔 신선했을지라도 지금은 식상하기 그지없는 표현으로는 나의
고유한 사랑의 감정을 진정성 있게 표현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쏘네트는 화석화된 획일적 언어를 거부하고 개인의 사랑을 개인의 진정성 있는 언어로 표현할 것을 주장한다. 결국
사랑의 다양성은 다양한 사랑의 언어로써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사랑은 나의 언어로만 진심을 담아 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