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과 안전한 공동체, 그리고 공감 교육
박보혜
앤파씨 대표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이사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각 도시에 어울리는 주제어는 뭘까?”
런던은 ‘답답하다’, 스톡홀름은 ‘순응’, 뉴욕은 ‘야망과 공해’.
이내 질문은 주인공을 향한다.
“너의 단어는 뭐야?”
“나는 작가야.”
“그건 너의 직업이잖아. 그거 말고 진짜 모습 말이야.”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이 글을 읽는 우리도 나의 진짜 모습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글쎄….’라는 생각부터 들지 않을까?
   최근 ‘자기다움’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자기답게 살라고 외치고, 회사 면접장에서도 자기다운 인재를 찾는다. 자기다움은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언가여야만 할 것 같고, 청년들은 또다시 ‘자기다움’을 찾아내고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피로감에 휩싸이고 있다. 대체 나답다는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여기에서는 내가 뭔가를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나의 고유한 이야기가 그대로 담길 것 같은 느낌, (나만의 무언가를 정리해서 말하기 위해) 너무 힘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A

   우리는 이 학생의 말에서 진짜 나답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삶은 다 고유하다. 그렇다면 나다움,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나를 표현하는 그럴듯한 몇 단어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날것의 나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가 특별히 색달라서 고유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만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나는 언제 나의 이야기를 가장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게 되니까,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약간 긴장되고 무서워요.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하고 들려요. 그런데 ‘나 이거 기분 좋게 이겨 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여기까지 말할 수 있네?’ 여기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어요.”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B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우리에게는 ‘건강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건강한 공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하며, 내 곁의 ‘타인’을 공감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를 향한 공감으로 확장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본 사람이 타인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공감은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다른 사람의 다름을 다양성으로 존중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공감을 통해 ‘여기는 안전한 곳이야.’라는 감각을 계속해서 일깨우면서 비로소 나를 감싸던 긴장감을 내려놓고 나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제야 다양성의 꽃밭이 만들어질 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공감’그리고 공감에 기반한 ‘안전한 공동체’는 조직 문화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부상하고 있는, 핫한 키워드다.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공감을 교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공감 역시 지식의 전달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경험적으로 공감의 방법을 습득하고 내재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공감을 교육하는 사람들로서 어떻게 학생들의 학습 경험을 효과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특히 2021년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수업에서의 사례를 위주로 다뤄 보고자 한다. 대학과 같은 교육 현장에서, 조직 문화를 고민하는 조직에서 이 사례가 좋은 영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공감을 수업하다: 사회혁신 공감 수업의 실제
박보혜 앤파씨 대표
장르가 다르다_ 공동체로 움직이는 교수들

2021년 9월의 어느 날. 한 학기 동안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교수진 세 사람이 자기소개를 한다. 한양대학교/임팩트리서치랩의 신현상 교수, 진저티프로젝트의 서현선 이사, 그리고 앤파씨의 박보혜 대표. 각자 가르치는 내용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셋이 같이 팀으로 진행을 한단다. 세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것이 수업인지 토크쇼인지 헷갈릴 정도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과는 장르가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학생들에게 안전한 공동체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 또한 안전한 공동체로 움직였다. 수업 중간중간 서로의 마음을 메신저로 나누면서 응원하고, 수업이 끝나면 꼭 함께 회고를 했다. 대학에서는 처음 수업을 진행하는 나에게 특히 이러한 환경은 큰 안정감을 주었다. 물론 이미 나의 모든 취약성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취약성과 공동체성
나는 완벽주의가 심각한 사람이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내가 맡은 바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수를 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회사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고 자책을 많이 했다. 그 마음이 깊어져 회사를 더 이상 운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임팩트리서치랩과 진저티프로젝트 식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의 약해진 마음을 보고서도 나약한 대표라고 비난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공감해 주고 내가 계속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도왔다.
   괜찮지 않아도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중증 괜찮아요 병’이라는 병명을 붙이고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보혜 님은 아직 함께 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맡은 바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상태가 어떤지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보혜 님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한마디로 취약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임신 후 입덧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는데, 계속해서 나의 상태를 집요하게 묻는 통에 그들 앞에서는 나의 힘듦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약함까지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수업 첫 시간, 우리가 서로의 삶을 나누며 공동체가 된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우리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멋지고 빛나는 이야기가 아닌, 나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어쩌면 찌질하고 짠 내 나는 이야기 말이다. 그것은 앞으로 학생들이 본인의 삶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취약함을 내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막상 30분가량 소요된 자기소개를 끝내고 나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대중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에 이런 나의 마음을 교수진과 공유하고 공감을 받고 나니 1차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 힘으로 쉬는 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나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며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오픈했다. 그 순간 학생들은 저마다의 반응으로 나를 응원해 주었고, 나의 마음도, 우리 사이의 공기도 한층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약성에 대해서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경우 신뢰나 취약성을 마치 단단한 땅 위에서 미지의 세상으로 뛰어 넘어가는 것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먼저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낸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이 과정은 거꾸로 진행된다. 취약성은 신뢰에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행한다. 미지의 세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약할 때, 견고한 신뢰의 기반을 쌓아 올릴 수 있다. 1)


   우리가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솔직함이다. 그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용기는 또 다른 이들의 용기를 촉발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취약함을 먼저 드러낸 한 사람의 용기
깊은 공감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공감 실습을 할 때 본인의 사례(예를 들면, 내가 후회하고 있는 일)를 이야기하면, 나머지 서너 사람이 그의 마음을 반영하도록 한다. 이때 공감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디까지 솔직해져도 되는지를 고민한다.
   ‘사회혁신 공감 실습’ 수업에서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수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온라인 환경상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구글 스프레드시트(Google Spreadsheet)의 워크시트(Worksheet)를 활용해서 그곳에 학생들이 자신의 사례를 적으면서 실습하도록 했다. 곧잘 잘 써 내려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1/3가량 되는 학생들은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 동료들에게 약점을 잡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쉽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의 자원을 받아 공감 시연을 하자고 제안했다. 좀처럼 쉽게 자원하기 어려워하는 그때 침묵을 깨고 한 친구가 자원에 나섰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본인이 후회하고 있는 사례를 이야기하고, 그때 본인이 느꼈던 느낌과 중요했던 욕구를 함께 찾아보는 공감을 진행했다. 그 학생의 고민은 본인에게 꽤나 무겁고 어려운 일이었고, 모두가 숨죽여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 꺼내 놓기 어려웠지만, 끝까지 진솔하게 내면을 털어놓은 시연이 끝나고 나자 학생들 사이에 감도는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교육자인 내가 취약성을 드러냈던 것과 동급생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때까지 본인의 사례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던 학생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 용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용기를 준 것이었다. 그날의 성찰 과제(reflection memo)에는 시연을 보고 자신 또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음을 언급한 학생들이 꽤 많았다.

“‘걱정, 불만, 후회 등과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나의 약점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구나.’,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판단, 조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주기도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C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은 커다란 한 걸음이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로부터 비난이나 조롱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라고 온전한 공감을 받게 될 때 나의 내면에서는 치유가, 우리 사이에서는 두터운 신뢰와 안전감이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선 솔직해져도 된다.’라는 믿음이 그렇게 우리를 단순히 ‘같이 수업을 듣는 사이’에서 ‘친밀하고 안전한 공동체’로 만들어 주었다.

신나게 무슨 이야기든 떠들어도 괜찮아
공감 실습 수업에는 ‘체크인 공작단’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서로 편하게 대화하며 마음의 장벽을 깰 수 있는 체크인(check-in)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그날의 수업을 통해 깨닫거나 배운 점들을 나누는 체크아웃(checkout)으로 수업을 끝맺었는데 이 중에서 체크인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해 보는 학생들의 자원 모임이었다. 학생 D도 이 체크인 공작단이었다.

“저는 스무 살 이후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동안 만나 온 사람들과 무탈하게만 지내고 싶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마음도 놓이지 않고 사실 무서웠어요. 처음에 이 수업에서도 제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게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근래 마음이 아팠던 기사문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에도 미처 다 적지 못하고 그냥 ‘…’으로 마무리를 했어요. 적으면서 생각했죠. 이렇게 대충 적어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겠구나. 그런데 우연히 공작단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어요. 사람을 볼 때 충분히 마음을 놓는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 안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또 공감 실습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상하게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오래 보고 싶고요.”


   체크인 공작단은 흡사 수다 모임과 같았다. 매주 수요일 저녁 9시 반부터 교수진과 체크인 공작단 친구들이 모였다. 필수는 아니었고 그냥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였다. 한 시간가량 아주 신나게 다양한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그럼 이번 주에는 이 주제로 체크인을 진행해 볼까?’가 정해졌다. 그날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추억 속 소울푸드(Soul Food)는 무엇인지 등등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고, 모두 배꼽 빠지게 웃었다.
   학생 D는 이야기했다. 이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다고. 원래 외향적이고 도전하길 좋아했던 D이지만, 학교 때문에 서울로 오면서 많이 위축되었고, 코로나19로 인해 더 메말라 버린 마음에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나도 더 표현해 보고 싶다, 뭐든 더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자기의 세상을 많이 이야기해 주잖아요. 제 세상이 넓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의 세상에 놀러 갔다 오니까, ‘재밌는 세상이 있구나. 나도 가 볼래! 내 세상을 넓혀 볼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생산성에 대한 강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을 쓸 때에도, 대화를 나눌 때에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쓸데없는 수다는 시간만 잡아먹는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론부터!’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부터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뭔가를 더 하고 싶다는 ‘동기’가 만들어진다.
   정말로 여기에서는 아무 이야기나 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뭔가를 잘 말해야 한다는 평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수업 시간에 공감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충분한 자기 공감은 나를 사랑하게 하고, 타인을 공감할 마음의 여유를 준다
수업은 공감에 대해 배우고 실습하는 전반부 8주와 배운 공감을 바탕으로 관심 있는 사회문제의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는 후반부 8주로 구성되었다. 전반부의 절반은 나 자신을 공감하는 것을 배우고 실습하는 데 할애했다. 그만큼 자기 공감이 타인 공감, 사회 공감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공감한다고 했을 때 자연스레 ‘타인을 공감하는 것’을 떠올리기 쉬운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공감한다.’는 개념은 굉장히 낯설고 새로웠다. 그만큼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다. 특히 오늘날의 청년들은 평생에 걸친 심한 경쟁과 비교 가운데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고, 가혹하게 구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 자신에게 공감한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나를 채찍질하기만 했지, 나를 이해해 보려 한 적은 없었다. 타인에게는 관대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그런 나에게 자기 공감 실습은 나 자신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갖게 해 주었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E

   이는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닌, 수업에 참가한 대다수 학생들의 고백이다. 학생들은 첫 한 달 동안 ‘지난 일주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 ‘ 후회되는 일’, ‘분노했던 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 등을 주제 삼아 본인의 내면을 느낌·생각·욕구·신념이라는 세밀화된 층위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공감하는 연습을 했다.
   스스로에 공감한다는 것은 본인이 발견한 마음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고 느낌표(!)를 붙이는 것이다. ‘왜 그랬어?’가 아니라 ‘그랬구나!’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공감해 주는 것이다. 자기 공감 실습을 통해 학생들은 치유를 넘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변화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후회했던 일과 그때 들었던 죄책감을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스스로에게 족쇄처럼 만들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더 희생하려고 했고, 이로 인해 나 자신에게 많은 제약을 가했다. 이제는 그런 후회와 죄책감에서 벗어나 내가 하는 일에 자유를 주려고 한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F

   누구나 제대로 된 공감을 받으면, 내면에 일종의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된다. 우리는 비로소 그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을 수가 있다. 학생들은 4주간의 자기 공감 실습 후에 비로소 서로를 공감하는 타인 공감을 실습했다. 그 과정에서 본인들이 지금까지 공감이라 생각하며 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공감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본인들이 지금껏 해 왔던 공감은 잔뜩 힘을 주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었는데 진정한 공감은 쌍방으로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 이다. 이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몸으로 알아 버린 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일상의 관계에서 계속 공감을 실천하고 싶어졌다.

“나와 친구는 항상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대화만 해서 감정 자체에 대한 것은 대화 주제로 삼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타인 공감 실습 후) 고민을 이야기하다 친구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니 서로 벅차오르기도 하였다. 감정을 인정한다는 그 자체로 공감이 가진 힘에 놀랐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G

“투닥거리기만 했던,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동생에게 수험 생활의 힘듦에 대한 공감을 한 것은 아마 내가 동생에게 태어나서 처음 한 공감일 것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더 열심히 공부하는 동생을 보며, 공감은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진정으로 연결해 준다는 것을 체감했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H


내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자기 공감과 타인 공감을 통해 공감이 가진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공감이 너무 좋은 것이기에 ‘언제나 공감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기 쉽다. 공감을 교육하는 나에게도 종종 “너는 당연히 나를 공감해 줘야지!”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내겐 내 마음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공감 역시 내가 기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만큼만 공감해도 된다. 나에게 공감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나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기 위한 제1의 원칙이다.
   학생 I는 자라 온 환경적으로나 성향적으로도 공감력이 높은 학생 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 교회 공동체에서 받아들임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죄책감을 건드리는 것들이 많았던 거죠. 예전에는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해도 죄책감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꼈거든요. 그 죄책감을 숨기려고 오히려 더 잘해 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 수업을 듣고 나서 내가 그들과 거리를 둬도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노력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마음에 좀 더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래요.”


   학생 I의 이야기를 듣는데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내가 공감을 배우기 전까지 나를 움직여 온 에너지 또한 ‘죄책감’이었다.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는 그의 책 『비폭력 대화』에서 이러한 상태를 ‘정서적 노예 단계’라고 말한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과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잘 살피지 못한다. 빈번히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며 나의 욕구를 뒷전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왜 내 욕구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해 주지 않지?’하는 피해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가까운 사람들이 부담스럽고 불편해진다. 심지어 이들을 멀리하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된다. 2)

“새벽에 과제를 하다가 딱 깨달았어요.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던 것들에서도 사실 누리고 있던 것들이 있구나’라고요. 가족에게서 독립하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다른 데로 가면 불안하니까나 자신에 대한 신뢰 없음을 사실 가족한테 투영하고 안정을 누리고 있던 것처럼요. 내가 하기 싫다고 생각한 선택들도 사실은 제가 뭔가를 얻고자 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까 다른 선택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선택의 힘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은 가벼워진다. 죄책감, 두려움, 수치심으로 인해 움직여 왔던 삶이 자발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가벼워지니 타인에게도 가벼워진다.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공감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소위 ‘좋은 일’을 한다는 사람들, 사회혁신/비영리 섹터(sector)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사회를 올바르게 바꾸겠다는 좋은 신념이 강할수록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건 꼭 해야만 해”라는 강요를 하기 쉽다. 이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는 너무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혹독하고 폭력적으로 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이러한 마음에서 기인한다. 10년 이상 사회 혁신/비영리 섹터에 종사하면서 이 섹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섹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에게 건강한 공감을 교육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감 경험의 확장: 그들만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서현선 진저티프로젝트 이사

아쇼카(Ashoka)의 창립자 빌 드레이튼(Bill Drayton)은 사회혁신의 세 가지 요소로 공감과 창의, 협력을 강조했다. 공감이 사회혁신에 있어 핵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직관적이다. 누군가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를 나와 관련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나와 관련 있는,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만 더 가까워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배격하기 쉬운 이 시대에 공감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다.

“평소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개인의 깊숙한 감정과 욕구가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 뉴스에 나오는 소외된 사회 구성원, 혹은 정말 가까이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어렵지만 일일이 헤아려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자체로 정말 값진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J

   자기 공감 실습과 타인 공감 실습을 마친 학생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의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 공감하기 위해 이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및 방법론에 대해선 많이 배워 왔지만, 인터뷰 기획과 실행까지 병행하면서 이해 관계자들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감은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었다.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 없이 문제 해결에만 집중했을 때 이후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너무나 잘 아는 우리들은 학기 후반부에 온전히 인터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학생들에게 주기로 했다.
   수업의 전반부를 통해 자기 자신 그리고 친구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험한 학생들에게 우리는 수업의 후반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즉 사회 혁신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아기를 버리는 엄마들을 위한 베이비박스 문제를 해결하는 비투비의 김윤지 님, 무업 기간을 지나는 청년들(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니트컴퍼니의 전성신 님,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한 활동을 하는 기후미디어허브 주선영 님,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카카오임팩트 전경호님을 초대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사회문제들과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된 이유와 현재의 고민들을 듣는 시간은 수업의 전반부와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제공하였다. 전반부의 수업 경험이 나, 그리고 나와 가까이 있는 친구들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내가 이전에는 그리 관심 없었던 낯선 대상에게까지 나의 시선과 관심을 확장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공감을 배우는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공감을 통해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고민들이 사실은 사회의 흐름들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대상과 주제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연결성과 서로에 대한 영향력을 체감하고 ‘우리’라는 원을 좀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

“이 수업에서는 How보다는 Why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어떤 이론이나 방식을 활용하여 어떻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것을 배우진 않았다. 다만 우리가 왜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멘토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먼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 내 삶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후 문제나 인구문제에 대해서는 수업을 듣기 이전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이 수업을 통해 베이비박스나 니트족 등 내가 관심 갖지 않았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왜 체인지메이커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다양한 수업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현장을 방문하여 체인지메이커들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각자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맺어 내는 결과물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는데, 결국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K

   공감을 배우는 수업의 마무리는 무엇이어야 할까? 우리는 공감을 배우는 과정이 수업 너머의 현실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싶었다. 수업 테두리 안에서만 유효한 경험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 인지 찾고 싶었다. 또한 학생 스스로의 힘으로 공감을 확장하는 방식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싶었다. 비록 이 수업의 공식적인 마무리는 평가와 학점일 수밖에 없지만, 이 수업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가장 강력하게 남겨야 하는 흔적은 학생들에게 쉽게 잊히기 어려운 경험과 시도여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시도한 팀 프로젝트 과제는 4개의 주제-20대의 마음 건강, 코로나와 취약 계층, 환경과 기후변화, 새로운 미션들과 일터-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주제와 연관된 사람을 만나 공감하고 이 경험을 콘텐츠로 남기는 것이었다. 이 과제의 핵심은 지식이나 이론을 리서치하는 데 치중하지 않고 사람과 현장을 찾아가 실제적인 만남과 대화를 경험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 형태로 결과물을 자유롭게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다.
   교수자인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낸 과제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사람과 현장을 찾아가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수업의 과제라는 평가의 압박에 매몰되지 않고 진짜 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팀플을 할 때 흔히 벌어지는 갈등이나 불신의 분위기를 이겨 내고 팀원 간에 우정의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런 수업의 가능성을 나 자신이 먼저 확인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이리라.

“우리 팀은 프로젝트를 통해 발달 장애인 보호자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느끼셨을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동안 받아 왔던 차가운 시선들, 그리고 코로나 이후 그나마 따뜻하게 챙겨 주었던 이웃분들도 어느새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L

   놀랍게도 학생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움직였고, 더 깊은 대화를 만들어 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대상, 발달 장애인의 보호자분을 만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그들이 겪은 일상을 듣고 오기도 하고, 자기 주변 친구들의 마음을 묻고 깊게 대화하는 소그룹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어느새 수업은 경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학생들의 팀 프로젝트 과제를 보면서 나 역시 공감에 대해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감을 통해 경험한 안전함은 창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수업 안에 흐르는 안전함에 대한 감각은 학생들의 개성을 드러내 주는 촉진제가 되었다. 팀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시나리오, 블로그, 잡지 형태의 기사 등 다양했다. 자신들을 닮은 캐릭터를 섬세하게 창조하고 그 페르소나의 블로그를 실제로 만든 학생들의 발표에는 나도 학생들도 감탄을 연발했다.

“이번 ‘청년들의 정신 건강’ 프로젝트를 하면서 ‘표서정’이라는 페르소나가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겨 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우울한 감정도 인정하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마무리한 프로젝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우들에게도 따뜻한 울림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 또한 다른 사람과 충분히 공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M


   나를 이해하는 힘을 넘어, 나다움을 표현하고, 나로부터의 공감을 시작하려는 열망은 결코 수업 안에 한정될 수 없다. 공감 경험은 열망을 낳고 열망은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낳는다. 그렇기에 공감을 배우는 수업의 마무리는 새로운 곳으로 한발 나아가게 만드는 시작이어야만 한다.

“일단은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나 자신은 건강한지, 내 주변 사람들은 건강한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이번 수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사람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최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감을 나누고자 노력 할 것 같다. 또한 공감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싶다. 공감이라는 것이 어떠한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조금 더 알아보고 싶고, 이를 통해 임팩트를 실제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한양대학교 ‘사회혁신 공감 실습’ 참가 학생 N
글을 맺으며
공감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글을 정리하며 앞으로 공감 교육을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 교육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 교육자는 어때야 하는가?
   공감을 교육하는 사람은 본인이 공감을 깊게 받아 본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깊은 공감을 받아 본 사람은 또 다른 공감의 관계를 좀 더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공감 교육은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수업 내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감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공감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를 경험케 하려면 공감의 경험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이다. 교육자 또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자신의 취약성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육자는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하고 완벽한 상태에 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공감 수업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환경은 어때야 하는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무슨 이야기든 안전하게 나누고 들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유롭게 입을 열며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체크인으로 시작해서, 마음을 정리하는 체크아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오디오가 겹치는 문제로 특정 사람들만 이야기하기 쉬운 온라인의 환경에서도 모두가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도록 패들렛(Padlet)과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했다. 소그룹을 적극 활용하는 것 또한 친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오프라인이라면 특별히 공간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 테이블의 배치, 음악, 간식과 같은 작은 요소들이 안전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처음 시작할 때 그라운드 룰(ground rule)을 함께 정하고 시작하며, 중간중간 필요할 때마다 처음의 약속을 상기시키면 좋다.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그라운드 룰이 무슨 큰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자신이 직접 한 말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이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세 번째 평가는 어때야 하는가?
   실컷 공감을 진정성 있게 교육해 놓고 나서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로 경쟁적 모드를 가동하면 이 모든 경험들이 가짜가 될 수 있다. 공감은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 비경쟁적인 가치이다. 평가가 아닌 회고의 의미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다. 평가는 공감을 진행하는 주체를 격려하기 위한 기제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과제를 평가 수단만이 아닌 학생들과 1:1로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기면 좋다. 우리는 학생들의 과제 하나하나마다 공감의 코멘트를 남겼는데, 이것 또한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진심 어린 공감이길 바랐다. 학생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을 법한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과제에서 드러내면서 우리의 진심에 응답해 주었다.

수업이 아닌 공동체
수업은 끝났지만 우리의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일부 학생들은 종종 우리를 찾아왔고, 그들 중 몇몇은 함께 밀양으로 MT까지 다녀왔다. 이를 통해 수업 때 미처 다 알지 못한 그들의 고유한 색깔을 알아 가고 있다.
   공감 실습은 그들에게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그 변화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기나긴 공감 여정의 첫걸음을 막 내디딘 것이다. 지금까지 외면해 온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용기를 얻었다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공감 기반 공동체다.
   현재 진행형의 공감 여정을 함께하면서 상대의 내면을 반영해 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감 수업은 그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청년들이 진한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맛본 경험은 그들의 인생에,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이 사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까? 어느 하나 똑같지 않았던, 다채로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목차
4차 산업혁명의 요람에서 만난 다양성
자기다움과 안전한 공동체, 그리고 공감 교육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