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대담
음악에서의 다양성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사회자

두 대담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술감독이신 진은숙 감독님은 세계적인 작곡가이시고 여러 가지 공연도 기획을 해 오셔서 그 이력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조은아 교수님은 경희대학교 교수이시고 피아니스트이십니다. 그리고 교육 분야, 공공 분야에서 음악과 연관된 다양한 활동을 해 오신 분이죠.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와는 저희가 펴내는 소책자 시리즈 『Diversitas』에 저자로 참여해 주셔서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부에서 김경일 교수님이 다양성 자체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면 2부에서는 ‘우리는 왜 하필 2022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다양성을 이야기할까?’, ‘음악과 다양성의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가벼운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2022년 통영국제 음악제 소식을 듣고 관객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두 가지를 꼽자면 진은숙 작곡가님이 새로 예술감독을 맡게 되셨다는 점, 그리고 음악제의 주제가 ‘Vision in Diversity’로 정해졌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주제를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제 전면에 제시한 것 자체가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는데요……
   감독님께 이런 주제를 선정하신 배경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Vision in Diversity’라는 주제에 대해
진은숙 이번 주제를 정한 데는 굉장히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음악과 가장 가까운 이유를 대자면, 제가 이 직책을 맡은 뒤 한국 문화의 흐름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이 사회에 문화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을 찾은 거죠.
   우선 한국인들의 성향을 분석해 봤는데, 흔히들 클래식은 우리의 전통이 아니다, 현대음악이나 새로운 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과정을 거쳐서 이전의 것까지 다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공연이나 예술 행위를 할 때 한 가지만 선보이는 것이 아니고요, 굉장히 여러 장르를 선보이고, 시대를 넘나드는 굉장히 다양한 작품들을 한 덩어리로 모아서 연주할 때, 개별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청중이 받아들이는 강도가 훨씬 커진다는 것을 제가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주제를 정하게 됐습니다.

진은숙 예술감독


사회자 조은아 교수님은 이 주제를 들으셨을 때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은아 방금 사회자께서 음악계에서는 다양성이라는 주제가 낯설다, 친숙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익숙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인들은 다양한 종류의 서로 다른 음색을 늘 청각적으로 경험하면서 살거든요. 각양각색의 선율과 화성의 입체적 층위가 어우러지면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음악인들의 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방금 진 감독님이 말씀하셨지만 다양한 시대, 장르, 편성을 아우르면서 스스로 음악적인 주제 의식을 표현하기 마련이니까요. 이번 통영음악제도 르네상스 시대의 마드리갈부터 2020년대 현대 창작 음악까지 600년의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고, 다양한 삶,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문화를 악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다양성이란 주제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어요. 예년의 통영국제음악제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자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사회적 메시지로서의 다양성을 음악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약자나 소수자들이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음악이 어떻게 공감과 포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것은 음악인으로서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음악에서는 늘 다뤄 왔던 서로 다른 소리를 아우르는 다양성, 입체적인 소리의 조화, 이런 주제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장될 계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자신만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창을 열고 서로 다른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음악적 미덕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이번 통영국제음악제가 일깨 울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음악 자체가 가진 다양성
사회자 지금 조은아 교수님께서 다양성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음악적 주제로 삼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음악 자체가 원래 다양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리고 『Diversitas』에 예전에 써 주신 ‘실내악, 다채로운 울림이 공존하는 음악 공동체’라는 글에서도 연주자 입장에서 독주할 때와 실내악으로 같이 연주할 때를 비교해 주셨죠. 여러 악기가 서로 어우러지고,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며 연주하는 실내악의 아름다움에서 다양성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의미를 발견하신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들과 서로 다른 선율, 화성, 리듬의 조화라는 음악 그 자체의 다양성에 대해 조금 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조은아 교수


조은아 이번에 통영 음악제에선 바이츠(Veits) 목관 5중주, 노부스(Novus) 현악 4중주 같은 친숙한 편성부터 라셔(Raschèr) 섹소폰 콰르텟,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와 테디 파파브라미(Tedi Papavrami) 같은 흔치 않은 조합까지 다양한 실내악 공연을 만나 보실 수 있었는데요, 실내악은 악기를 만드는 재료의 물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연주법이나 음역, 음색도 제각각입니다. 개성이 다른 다채로운 악기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것이 실내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규모를 확장한 사회적 생명체인 오케스트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사회적 생명체라고 볼 수 있죠.
   오케스트라나 실내악이나 자기 파트만 열심히 연주한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음악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혼자 고립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악기와 협업을 해야 하는 거죠. 결국 사람과 사람의 연결, 즉 화합이 필요한데요. 서로 다른 파트를 끊임없이 경청하는 게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같은 앙상블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차이, 이질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나의 개성과 자유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이건 독주도 마찬가지라 모든 음악에 공통된 사항인데요, 음악에서는 주선율 같은 강자의 주장뿐만 아니라 약자의 침묵, 그러니까 쉼표의 침묵까지 존중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미덕이에요. 그래서 소수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다양성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음악의 침묵, 쉼표의 의미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쉼표의 의미까지 담아 주시니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조은아 교수님은 연주자의 입장에서 다양성의 의미를 음악에서 찾아 주셨는데, 이번에는 진은숙 감독님께 창작자의 입장을 여쭤보고 싶어요. 특히 진 감독님은 서양음악의 전통에 뿌리를 둔 작업을 해 오시면서도 한국의 전통 소리나 음악적 요소를 차용해 결합하는, 그야말로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다양성을 가지고 작업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실험을 통해서 얼마나 음악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는지, 창작자로서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진은숙 작곡가로서의 창작 활동에 앞서 예술가가 태어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배경 등 전반적인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예술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다양성이라는 걸 자유라고 해석하고 있거든요.
   제 개인적 경험을 보면, 80년대에 한국을 떠났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어요. 모든 면에서 굉장히 획일화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예절 등이 굉장히 일률적이었죠. 그런 사회를 떠나서 독일에서 오래 살았고, 특히 베를린에서 수십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했는데, 제 경험으로는 독일에 있지 않았다면 작곡가 진은숙이 태어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톨레랑스(tolerance, 관용) 때문입니다.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이웃에 외국인이 없고 모든 게 똑같았는데, 독일에서는 바로 옆에 사는 사람이 국적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외국인이었죠. 외국인이라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다양한 것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였어요. 거기에서 살면서 창작자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가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예술 문화 분야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나 사람들의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함이 인정되고,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그 다른 것에 대해서 인내심과 톨레랑스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더하는 음악의 새로운 시도들
사회자 말씀을 듣다 보니 아까 김경일 교수님 강연에서 기업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신 부분이 연결되면서, 단지 문화에서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살펴볼 만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국악과 현대음악의 조화뿐 아니라 전자 악기를 고전음악에 넣는다거나, 아니면 요즘은 음악적인 소리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바탕으로 환경 안에 있는 사운드를 음악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잖아요. 그런 작업이나 그런 음악에서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은숙 그런 시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음악이라는 게 순수한 악기 소리로 된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작품들이라고 정의해 왔습니다. 물론 훌륭한 음악이죠. 그런데 그 이후 현대음악에 굉장히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고, 정말 음악이 무엇이냐 하는 아주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작곡가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자기 음악을 쓴 사람들도 있었고요.
   예를 들어 존 케이지(John Cage)의 경우는 스스로 ‘음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으로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4분 33초>같은 작품을 만들었죠. 훨씬 뒤에는 전자음악도 나오고 뮤직 콩크레트(Musique concrète)도 나오고,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물건에서 나오는 소음을 이용해 작곡을 한다든지, 퍼포먼스를 한다든지 해서 음악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해진 상황입니다. 음악의 장르나 형태의 폭이 이만큼 넓었던 시대는 아마 인류 역사상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새로운 미학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더욱더 참신하고 창의적인 예술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음악과 다른 분야의 협업과 소통
사회자 음악 자체가 다양하다는 이야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진 감독님, 2013년에 음악과 수학 간의 규칙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수학자들과 협업을 하신 적이 있잖아요. 이번에는 음악과 다른 분야와의 협업, 소통이 음악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진은숙 당시에는 협업이라기보다는 강의를 같이 한 것이었는데요, 수학이라는 것을 주제로 해서요. 사실 음악이라는 게 논리적인 면 등에서 수학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저희는 ‘수학이 끝나는 부분에서 음악이 시작한다.’ 이렇게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 당시에 제가 음악을 쓰면서 수학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실제 전자음악을 할 때에는 수학적으로 음을 생각하는 방법이 상당히 많고, 또 기술적으로도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곡가로서 제 작품을 만들 때 수학적인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그냥 단순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수학과 김민형 교수님도 함께하셨는데 그분도 나름대로 말씀하시고, 참가한 분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 수학에 대한 연결고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저는 물리학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관심이 있어서 물질의 물리 현상 같은 것을 음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자 이번 다양성 토크 콘서트의 포스터도 소리의 파장을 사용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소리를 듣고 보는지 감각 지각을 연구하는 심리학자인데, 사실 음악도 다 소리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거기에 물리학적인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과 예술이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음악과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조은아 교수님도 인문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음악가로 알려져 있으시고 다른 분야의 분들과 협업을 하시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진 감독님께는 그런 협업이 음악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여쭤봤는데, 이게 음악에만 좋으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음악과의 협업이 다른 학문이나 사회 분야에 미치는 의미가 있을까요?

조은아 제가 대학에 있다 보니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이 졸업할 즈음 방황을 거듭하는 상황을 비일비재하게 겪고 있습니다. 사회의 여러 분야로 진출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서요. 그래서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께 음악가들의 장점을 이렇게 적극 홍보하곤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에는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답변이나 코멘트를 이어 가잖아요. 그런데 음악에서는 두 개 이상의 성부가 동시에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음악 작품을 많이 들으면서 입체적인 성부를 다양하게 접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견해를 듣고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제가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유연한 사고가 장점인데, 음악에는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없어요. ‘반드시 무엇이어야 한다.’, 아니면 ‘이것이 옳다.’ 하는 식의 지식이나 논리가 우위를 차지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연주자는 언제든 무대에서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검열, 겸손이 몸에 배어 있죠. 무대에서는 온갖 돌발 변수가 생기잖아요. 그러다 보니 음악인들은 다사다난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일상에서 위기 대처 능력도 뛰어난 편입니다.
   또 작품을 완성하는 끈기, 세심함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에 대한 완벽주의도 철저히 몸에 배여있고요. 음악대학을 졸업해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우리 사회에 턱없이 부족하죠. 아쉬운 것은, 국문학과 졸업생이 전공과 무관한 식품회사에 취직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음대 졸업생은 그렇지 않거든요. 음악가들이 연주 이외의 역량도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음악계 구성원의 다양성
사회자 관객분들의 호응이 아주 대단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음악계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생태계인데,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나, 인적 구성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클래식 음악계는 특정 계층, 성별, 인종 등의 면에서 다양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유명한 작곡가들을 떠올려 보시면 공감하실 수 있을 텐데요. 진 감독님,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독일로 건너가 활동해 오셨는데, 개인적인 음악 여정을 두고 보실 때 음악 생태계에서 사람들의 다양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진은숙 제가 공부를 시작했던 80년대, 독일 생활을 처음 할 때만 해도 클래식이나 순수 음악 창작계는 전부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작곡가들은 역사를 봐도 여성 작곡가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건 여자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당시 여자들이 자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난 20~30년간 굉장히 바뀐 것 같아요. 여성 작곡가들도 많이 나와서 숫자만 따져 보면 거의 비슷할 정도가 되었고, 연주자들은 그 전부터 여성 비중이 높아졌고요.
   예전에는 비엔나 필하모니나 베를린 필 등 외국 유수 오케스트라에서는 절대 여성 단원을 받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약 30년 전부터는 꾸준히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도 남녀 비율만 볼 때에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섞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성이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저는 능력 있는 여성 음악인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여성 지휘자들도 많이 부상하고 있지요. 또 요즘, 특히 유럽에서는 인종 문제도 생각해서 흑인 연주자, 흑인 작곡가들 쪽으로 더 눈을 돌리고 콘서트하우스 같은 데서도 프로그램의 비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고려하는 추세입니다.
   저는 지금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다양한 구성, 그러니까 여성이나 흑인, 비유럽 출신 음악가 등 그런 사람의 비율을 정해 놓고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런 비율이 없어지고 정말 능력에 따라서 구성원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으면 인종, 국적,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다 골고루 기회를 갖고, 그런 분들이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아가는 방향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제가 조은아 교수님께 드리려는 질문 쪽으로 답변을 이끌어 주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성별이나 인종, 이런 것을 꼭 다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음악을 제일 잘하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음악성이 기준이 되면 된다.’, ‘다른 인적 구성을 고려하는 것 자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여기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요. 그것 역시 경청할 만한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 교수님께 질문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은아 통영의 무대에 오른 음악가들은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은 창조적인 소수입니다. 그래도 유의미한 시도라고 느껴진 지점은 아직 한창 성장 중인 젊은 음악인들을 과감히 발탁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번에 손현준, 장은호, 이성현 등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그 중 이성현은 이제 14학번 대학생에 불과한데도 TIMF 앙상블에 의해 연주되었죠. 젊은 지휘자들도 실제 오케스트라를 무대에서 이끌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정말 힘든데, 어제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던 윤한결이라는 지휘자는 작년 서울에서 열린 지휘자 국제 콩쿠르를 통해 발탁된 인재였습니다.
   사회자님께서 저에게 참고하라고 전해주신 기사가 있었는데요. 단원이 모두 흑인으로 구성된 런던의 치네케(Chineke!)오케스트라에 대한 리포트였습니다. 음악계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항해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창단했던 거죠. 클래식 음악계가 소수자를 포용하는 데 인색하다는 진단에는 저도 상당 부분 공감을 합니다.
   요즘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100명 중 3명을 소수자로 채용하는 제도가 보장되어 있고,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는 구성원의 60%가 취약 계층 출신이잖아요. 저와 함께 통영음악제를 찾은 지인이 묻더군요. 음악제의 제목을 ‘다양성’이라 붙였는데 조직이나 인적 구성부터 어떻게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는지 그게 중요한 지점 아니냐고요.
   그런데 사실 다양성의 보장은 효율이나 경쟁에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잖아요. 시간, 비용도 많이 들고. 구성원이 다양해져서 복잡해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영국제음악제가 기왕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화두로 던졌으니, 미래 방향성을 선도하며 작곡가, 연주자뿐만 아니라 실무진까지 차별이나 소외, 불평등 없이 다양성을 반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김채연 위원장

더 포용하기 위한 음악의 변화
사회자 감사합니다. 저희가 미리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인데요, 관객들이 주신 질문을 조금 더 받아도 될까요? 먼저 진 감독님께 드리는 관객의 질문입니다. 시·청각장애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콘서트의 노력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뭔가 효과가 있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공연 현장의 사례가 있을까요?

진은숙 한국 내의 상황은 아직 잘 모르고요. 유럽의 경우에는 눈이 안보이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말을 못 하는 사람, 특히 그런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 인지는 제가 거기에 관여한 적이 없어서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그런 교육 사례가 있다는 것은 압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그런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리드하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야죠. 장애아를 위한 음악교육의 커리큘럼이 대학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도적으로 만들어서 인력이 배출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게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제가 감각 지각 연구를 하고 있고, 음악과 미술에서의 지각을 연구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더해서 다른 사례를 소개드리면, 미술 작품은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시각장애인들은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건 너무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시각 말고 소리로 작품을 설명해 준다든지, 아니면 3D프린터로 모델을 만들어서 보지는 못하지만 촉각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청각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음악의 표현을 뭔가 다르게……

진은숙 진동으로 느끼게 한다든지요.

사회자 네, 맞습니다. 촉각으로 느끼게 한다든지, 아니면 다양한 컬러로 그걸 표현한다든지 하는 이런 것을 sensory substitution, 감각 대체라고 불러요. 내가 쓸 수 있는 감각으로 다른 감각을 경험하게 하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음악제에서도 감독님이 음악을 영화나 다른 시각적인 포맷으로 전달하는 시도를 담아내셨잖아요. 그래서 그것과도 연관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조 교수님께 ‘일상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라고 하신 관객의 질문을 드립니다. 오늘 행사에서 다양성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마음에 깊이 담고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꼭 생각해 볼 만한 물음인 것 같아요.
일상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세
조은아 일상에서 다양성을 충분히 수용하는 역량과 인성을 저 스스로 갖추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되는데요. 다양성과 관련한 책들을 펼치다보니 ‘귀를 열고 마음을 연다.’라는 문구를 자주 발견하게 되더군요. 지키기 어려운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음악을 통해서라면 그런 능력을 충분히 훈련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어요. 귀 기울여 듣는 경청과 다양한 성부의 조화, 차별과 소외가 없는 앙상블 등의 음악적 요소를 통해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일깨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다짐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진은숙 저도 잠깐 말씀드리자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면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제가 대담을 마무리하기 위해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이 정말 좋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대담이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녁 오케스트라 소리를 들으시면서 연주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소리를 듣는지,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지 그런 생각도 한번 해 보시면 좋겠고요. 남은 통영음악제도 다양성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부 다양성 대담(진은숙 감독, 조은아 교수) 영상
목차
1부 - 강연 D&I의 심리학
2부 - 대담 음악에서의 다양성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