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강연
D&I의 심리학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on)이 역량인 이유에 대해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자

오늘 강연을 해 주실 김경일 교수님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김경일 교수님은 인지심리학자로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십니다. 인간의 판단, 의사 결정, 문제 해결과 창의성에 대해 연구해 오셨고, 이러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여러 주제들에 대중들이 친근하게 다가 갈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감당하시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다양성은 미덕 아니라 역량
김경일 반갑습니다. 저는 심리학자인데요, 김채연 교수님이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데서 청하셨으면 바쁘다고 살짝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국제음악제라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제가 최근 한 5~6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거의 모든 외국계 기업의 요청을 살펴보니까 다양성과 포용성, Diversity와 Inclusion, 보통 D&I로 줄여 말하는 것에 주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IT기업에서부터 정유 회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외국 기업들이 본사 헤드쿼터의 오더를 받아서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강의, 교육, 혹은 프로젝트를 해 달라고 요청해 왔거든요. 왜 그런가 보니 다양성과 포용성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역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다양성과 포용성은 정말 21세기에 필요한, 중요한 역량인 게 맞더라고요.
왜 다양성을 미덕이 아니라 역량으로 보아야 할까요?
   오늘은 다양성과 포용성, 그 중에서도 특히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 어째서 그것이 민주 사회, 민주 시민의 미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 200년 동안 이어질 역량인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예술의 영역까지 치고 들어온 AI
저는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입니다. 그래서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에 주목해 왔는데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동안 인 간이 계속 패배해 왔습니다. 1967년에 MIT 출신 해커가 만든 체스 프로 그램 ‘맥핵(MacHack)’에 아마추어 체스 선수가 지면서 인간이 인공지능 (AI)에 처음으로 패합니다. 이후 1989년에 IBM이 체스 전용 컴퓨터 ‘딥 소트(Deep Thought)’를 만들었고 이후 ‘딥 블루(Deep Blue)’에 이어 ‘디 퍼 블루(Deeper Blue)’로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결국은 천재 체스 챔피언인 러시아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2승3무1패로 이깁니다. 2011년에는 IBM이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인 왓슨 (Watson)이 퀴즈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2014년에는 러시아 연구진이 개발해 ‘유진 구스 트만(Eugene Goostman)’이라고 이름 붙인 챗봇(chatbot)에게 사람들이 속지요. 대화를 하면서도 상대방이 기계인지 모른 것입니다. 또 2016년에는 드디어 전국민이 이세돌 9단의 목소리가 얼마나 독특한지 알게 되는 구글 ‘알파고(AlphaGo)’와의 바둑 대결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4승1패로 알파고의 우세였습니다.

출처: 저자 제공


   이후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2016년에 각 대학 예체능 계열의 커트라인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제가 당시 예술 교육을 하는 대학의 입학처장님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많은 부모님들이 ‘인공지능이 예술은 못하겠지.’ 하고 생각해서 미술과 음악 관련 학과의 경쟁률과 커트라인이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인드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전장을 냅니다. 드로잉 머신인 ‘넥스트 렘브란트(Next Rembrandt)’를 만들어서 렘브란트의 그림 372장을 학습시킨 뒤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렘브란트 전문가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20대의 렘브란트부터 60대의 렘브란트까지 다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죠. 붓으로 덧칠하는 패턴, 잘못되었을 때 살짝 손끝으로 고치는 습관까지 똑같았습니다. 그것이 5년 전이었습니다. 그 이후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해 1만 배 이상 좋아졌답니다. 끔찍한 세상이 왔죠.
인공지능이 따라 그리지 못하는 피카소
하지만 인공지능이 못 그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피카소 그림입니다. 피카소는 화가로서 자기 인생의 절반 가까이 주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반적인 구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물을 분석하고 나눈 뒤 다시 겹쳐 조합하는 입체파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AI는 많이 학습하면 할수록 피카소의 그림을 못 그립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다양하게 합쳐 놓고 AI에게 학습을 시키면, 이상한 걸 만들어 냅니다. 무지개 패턴이나 랜덤 패턴 같은 것을 그리죠. 우리가 볼 때 에는 누가 봐도 피카소의 그림인데,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걸 보면 AI가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AI가 학습한 렘브란트


AI가 따라 그리지 못한 피카소


   AI는 A와 B를 열심히 학습해서 필요할 때 A, B를 정확하게 내보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A와 B를 열심히 경험하거나 학습한 뒤에 A 와 B가 아니라 C라고 합니다. AI가 렘브란트를 학습할 수 있지만 피카소를 학습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C는 무엇이냐? 완전히 새로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C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PDA, 디지털카메라, 전화기를 합쳐서 사실 전화기 기능이 추가된 PDA인데, 이걸 스마트폰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습니다. 네, 스티브 잡스이죠. 그건 제가 보기에 C를 만든 것이라기보다 C라고 주장한 것입니 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혁신가라고 합니다. ‘아, 뭐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자를 조금 비틀거나 모양을 다소 변형시키면 어린아이들은 읽을 수 있지만 AI는 읽지 못합니다. 자동 가입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로봇이 아닙 니다.’라고 선언하면서 ‘7K12B’같이 숫자와 문자를 찌그러뜨려 놓은 걸 읽 고 적어 넣게 하잖아요? AI는 이걸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AI는 에버리지 (average), 즉 평균을 좇아가거든요. 수많은 A와 B를 경험하면서 가장 평균 적인 A와 가장 평균적인 B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중에는 경험이 많 아질 수록 유니크(unique) 즉 자신만의 특징을 찾아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같은 지식을 공부하는데도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죠. 피카소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이 메타인지(meta-cognition)였습니다. 인지는 생각이고 메타는 더 위에 있다는 뜻인데, 내가 나를, 또 내 것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죠. 내가 지금까지 아주 잘 쌓아 온 지식과 기술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가 그 사람이 진짜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혹은 AI가 못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다양성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어떤 다양성을 말하는 것일까요?
최상위 0.1%의 무기, 다양성과 포용성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다양성입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을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진정한 다양성과 포용성이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분야에서 최상위 0.1%의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2010년에 EBS와 함께 <0.1%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도록 해주는 부모나 어른, 또 선배를 만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정말 절실하게 느끼게 된 계기일 것입니다. 당시에 전국의 문·이과 고등학생 62만 5천 명 중 모의고사 700등 안에 들어가는 0.1%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중에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것 같은 집 아이들은 뺐습니다. 아이가 해야 할 고민을 부모가 끊임없이 친절하게 해 주면 그 아이는 보통 바보가 되죠.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고 좋은 대학에 갔는데 어른이 될수록 뭔가 이상하고, 단순하고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그게 <스카이 캐슬> 같은 집에서 자란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기형적으로 암기만 잘 하는 아이들이 있죠. 논리, 연산, 추리 같은 능력은 없고 암기만 잘하는, 시험을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에요. 저도 그런 친구를 한 명 압니다. “이게 답이 뭐냐?”고 물으면 “루트 2.” 하고 바로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라고 물으면 “그냥 그렇게 생겼어” 합니다. 그 아이는 문제를 1만 5천 개 정도 그냥 다 본 거예요. 정말 논리도 없고, 과학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는데, 하나 쓸모가 있었어요. 전화해서 “그 집 짜장면 얼마냐?”고 물으면 “4,500원.”, “그 집 코스 요리는 얼마냐?”고 하면 “27,500원, 봉사료 10%는 뺀 거다.” 하고 바로 답을 해 줬거든요. 그런 데 스마트폰이 나온 다음에는 그 아이에게 전화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빼고 500명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보았습니다. 부모의 학력, 부모의 소득, IQ 차이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차이가 무엇이냐? 나와 엄청 다른 아이들의 질문에도 대답한다, 이것만 달랐습니다.
   그 아이들은 무조건 전교 1등이잖아요. 산술적으로 전국에서 4년제 대학 입시와 관련 있는 고등학교가 2,500개 정도이니까 전국에서 500등 안에 드는 아이들은 전교 1등이 아니라 고등학교 5개를 합친 중에 1등, 그러니까 최소한 그 동네에서는 지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보여 준 유일한 차이는 자기가 전교 1등인데, 전교 꼴찌가 말을 걸어도, 그리고 뭘 물어봐도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답을 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무시하지 않아요.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양육했는지 알아보니, 부모님들이 특별히 위대하신게 아니라 그냥 ‘착하게 살아라.’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너보다 잘 모르는 아이가 와서 질문을 해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아빠는 그런 아이들을 존중했으면 좋겠어. 뭘 물어본다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일이 세상에는 별로 많지 않아.”

이것이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부모님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다양성과 포용성, 뛰어난 전문가를 만드는 원동력
그런데 공부를 해 보셔서 다들 아시겠지만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전교 2, 3등한테 설명해 주는 것보다 전교 꼴찌에게 설명하는 일이 훨씬 어렵습니다. 전교 2, 3등은 “이래서 Y잖아.” 하면 “아, 그러면 다음은 X제곱 이겠구나.” 하고 말 안 한 것까지 이해합니다.
   그런데 전교 꼴찌는 “야, 그 X옆에 있는 2는 왜 그렇게 쪼끄매?”하고 묻습니다. “3년 동안 궁금했는데 물어볼 데가 없었어.”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0.1%의 아이들은 그 제곱을 나타내는 2가 왜 작은지 답을 해 주려고 합니다. 실제로 한 아이가 그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당시 한창 만들어지던 위키피디아를 찾아보고, 주말에 『수의 기원』이라는 책을 열어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훑어보더라고요. 그 아이는 그 여정만으로 이미 엄청나게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 말에 의하면 수많은 링크들을 열며 따라가다 보니 실제로 그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200~300년 전 수학 공식이 만들어질 때에는 수학자들이 엄청 가난했답니다. 그래서 다들 부업을 했는데, 많이 했던 일이 시계 고치는 일이었고요. 정밀 장치인 시계의 역학적 움직임을 비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별자리를 많이 배웠고, 천문학적인 개념도 들어가서 위 첨자, 아래 첨자, 별, 땅 이런 개념이 계속 수학에서 표현되었답니다. 그 아이가 그걸 설명하는데 수학 선생님 세 명이 뒤에서 “와~대박!” 하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와 차이가 많이 있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가진 엄청난 태도입니다.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도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고, 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내친김에 제작진과 저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월스트리트, 나사와 독일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 우리나라의 여의도 등을 가 보며 뛰어난 전문가와 평범한 전문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노력, 즉 시간을 얼마나 썼느냐가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지식, 경험, 노력을 가지고 전문가가 되었지만 뛰어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가 생기는 데, 왜 그런 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왜 그것이 중요하냐 하면 AI가 대체할 사람이 바로 평범한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average에 딱 맞아서 도식처럼 답을 내는 분들이죠.
   AI가 대체하지 못할 뛰어난 전문가, 창조적인 전문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보니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다양성과 포용성, 이 두 가지가 뛰어난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인 것이지요.
   왜냐? 나와 관계없는 분야의 사람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내 말 속에서 두 가지를 절대 쓸 수가 없습니다. 바로 나에게는 친숙한 전문 용어와 약어입니다.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내야 합니다. 그것을 할 때 인간은 자신이 그때까지 쌓아 온 분야의 지식과 정보와 기술을 지혜로 리포맷(reformat) 하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다양한 타인과 끊임없는 소통이 혁신의 길
1979년에 코닥에서 일하던 스티븐 사순(Steven Sasson)이라는 사람이 ‘빛에 노출되면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화학반응을 하는 물질’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매일 만드는 필름에 대해서 6살짜리에게 설명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이미지를 담는 그릇’이라는 표현이 나오더랍니다. 그 뒤에 연구실에 돌아오니 세상의 소리를 담는 그릇도 보이더래요. 카세트 테이프였죠. 그리고 ‘카메라 렌즈에서 나온 이미지가 왜 필름이라는 그릇으로만 가야 하지?’ ‘같은 그릇 이니까 카세트 테이프라는 그릇으로 보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거쳐서 ‘그 둘을 붙여 보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우리 인류사는 이런 식으로 진보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실리콘밸리에 가면 톱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마케터들이 자신이 만들고, 개발하고 파는 물건을 근처의 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에까지 가지고 가서 설명을 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다양성을 볼 수 있겠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재능 기부, talent donation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서는 그것을 talent partnership이라고 부릅니다. Give and take, 즉 설명하면서 얻어 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사람이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입니다. 파인만의 IQ는 120대로 아인슈타인과는 60이나 차이가 났죠.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손꼽힌, 뛰어난 전문가들 이었습니다. 그 둘은 모두 대학 학부 1학년생, 심지어 고등학생들에게도 자주 물리학을 가르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질문을 받으러 갔던 것입니다. 동네 마트 캐셔(cashier)나 소방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물리학을 가르쳤답니다. 전문용어와 약어를 쓸 수 없는 상황 속에 자신들을 집어넣었던 것이죠. 그 과정을 통해 위대한 두 명의 물리학자가 탄생하였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 분야, 내게 친숙한 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우리가 지금 통영국제음악제에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도 이야기하고 음악 하는 분들에게 제가 하는 심리학을 설명하고, 또 그분들에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실제로 그런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의 일을 일반화시키고, 거리를 두고, 다양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가지고 노력하기 시작하면 아주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면서 서로가 몰랐던 통찰을 하게 되죠. 그래서 내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뮤지카콰르텟이라는 연주자분들과 그런 시도를 했습니다. 저는 도스토예프스키를, 그분들은 차이코프스키를 가지고 왔는데, 그분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주제로 연주하고, 저는 차이코프스키에 대해 말을 하는 공연을 했습니다. 관객들은 좀 생소했을 수 있지만 저희는 각자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던거죠.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시면서, 또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AI가 갖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시고, 그것을 한번 가져 보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넛지와 감각을 이용해 다양성에 더 가까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두 분 정도만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주셨는데, 저는 ‘넛지(nudge)’를 사용하시라고 권합니다. 넛지가 뭐냐 하면 ‘그렇게 해야 해’라고 드러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그렇게 가고 싶도록 옆구리를 살짝 찔러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넛지가 뭔지 아세요? “너, 앞으로 오래 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기업체 임원 중에 “내가 굳이 남은 시간도 얼마 없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까?”라고 말하는 분을 보면, 저는 “상무님, 여기서 은퇴하셔도 앞으로 40년은 더 일하셔야 해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가요?” 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은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70~80년대에 미국에서 여성들이 막 사회에 진출할 때 남성들끼리만 일을 하려고 했던 상황에서 나온 테크닉 중 하나입니다. 여성이 남성 보스에게 “부장님, 저 내년에만 보실 거 아니잖아요. 한 30년 저랑 같이 일해야 하는 것 아시죠?” 하면, 상대방이 긴 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다양성을 추구하더라는 것이죠. 이런 재미있는 넛지로부터 출발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내가 볼 시간이 많다 이런 암시를 주셔야 합니다.
   다음은 다양성과 안전에 대해 답을 해 보겠습니다.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심리학에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힘세고, 감정보다는 감각이 더 힘이 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기업에서 상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더니 다양한 답을 하지 못하더라고요. 좀 꺼림칙했던 거죠. 그래서 훨씬 감각적인 이야기를 했죠. “제가 다른 회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탕비실에서 양치질하는 부장을 보면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부서장에게 바란다는 이야기가 200개나 나왔습니다. ‘부장님이 제 의견을 무시 하세요.’는 논리적인 문장입니다 ‘제가 힘들어해도 부장님이 잘 안 봐주세요.’, 이것은 감정적인 이야기죠. 그런데 ‘부장님 발에서 냄새가 나요.’, 이것은 감각적인 이야기예요.
   사람을 다양하게 만들려면 냄새, 소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가장 본능적인 것에 대한 점잖음부터 깨 버려야 합니다. 그걸 깨 버리면 의외로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소리, 냄새, 이런 것이 사람들을 만날 때 진짜 중요해집니다. 우리가 ‘방귀 튼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부부끼리. 그런 식의 아주 가볍고 사소한 것이지만 한 번 쓱 건드려 주면 훨씬 편하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주제를 꺼내기 쉬워집니다.

1부 다양성 강연(김경일 교수) 영상
Intermission: 다양성 영상 'The Values of Diversity' 상영

사회자

강연의 여운을 가지고 다음 순서로 가 보겠습니다. 2부 대담 순서를 시작하기 전에 영상을 상영하며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김경일 교수님 강의 내용 중에 ‘다양성이 미덕이 아니라 역량’이라고 하신 부분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번에 보실 영상도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인데요, 다양성이 왜 역량인지, 어떤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다양성의 가치가 대학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로 환원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해 드리는 영상(animated infographic)입니다. 입장하실 때 작은 소책자를 나눠 드렸는데,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에서 매달 두 편의 다양성 관련 글을 모아서 펴내는 『Diversitas』예요. 그동안 실렸던 글 중에 물리학자이신 성균관대 김범준 교수님이 쓰신 것이 있습니다. ‘다양성의 물리학’이라는 좀 어려운 제목의 글인데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제작은 ‘스튜디오 홀호리’에서 해주셨어요. 함께 감상해 보시죠.


'The Values of Diversity' 영상 캡쳐 화면


The Values of Diversity 영상(한글)
The Values of Diversity 영상(영어)
목차
1부 - 강연 D&I의 심리학
2부 - 대담 음악에서의 다양성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