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의 귀환이라는 기현상
안병일
책방시점 대표
패션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곤 합니다. 때론 ‘레트로(retro)’, ‘뉴트로(newtro)’라는 이름으로 문화나 생활 양식 등 옛스러운 무엇인가가 지금 이곳에 다시 호출되곤 하죠. 하지만 한 번 내리막길에 접어든 특정 업종이나 분야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저는 대표적 사양산업인 책방(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마주하는 질문의 8할은 “이 일 해서 먹고 살 순 있냐?”입니다. 서점만큼 소비자가 사업자를 걱정하는 업종이 있을까 싶습니다.
   책과 서점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매우 독특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독서인구(연간 1권 이상 책을 읽은 인구의 비율)는 2009년 62.1%에서 2019년 50.6%로 연간 독서량은 2009년 17.4권에서 2019년 14.4권으로 각각 감소했습니다. 1) 17.4권이라는 평균을 다시 따지고 보면 10대 청소년이 절대적인 독서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의 독서량은 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사실 독서인구 통계 평균 수치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독서광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서점인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통적인 형태의 서점 역시 지속적인 독서인구 감소와 온라인 시장의 등장 여파로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국서점연합회가 2년마다 펴내는 『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의 서점 수는 2003년 3,589곳에서 2005년 3,429곳, 2007년 3,247곳, 2009년 2,846곳으로 감소했고,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엔 1,976곳으로 줄었습니다. 2) 16년 사이에 반토막 가까이 난 셈인데, 학창시절의 추억이 깃든 서점을 여전히 만나볼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의 통계 수치만 보면 책과 서점은 확실히 사양산업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와 역행하는 현상이 데이터로 감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전통적인 서점이 급감하는 사이 독립서점 등 기존과 결이 다른 형태의 서점은 반대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2015년 이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독립서점 데이터 기반 콘텐츠를 발굴하는 주식회사 동네서점(구 퍼니플랜)이 발표한 ‘동네서점 트렌드’에 따르면 2015년 97곳이었던 독립서점은 2016년 180곳, 2017년 283곳, 2018년 416곳, 2019년 551곳, 2020년 634곳으로 5년 새 6.5배 증가했습니다. 3) 두 번째로 출판사 등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출판산업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8,170곳이던 출판사는 2020년 67,203곳으로 9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4)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을 다루는 출판사와 독립서점이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저는 ‘다양성’이라는 관점으로 이 역설적인 현상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서점 몰락 시대를 역행하는 독립서점 전성시대
2000년대 초반까지 서점은 동네 혹은 상업지구의 핵심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는 지식 공간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류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대형 서점은 어느 지역이건 가장 목 좋은 상업 공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춘천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던 저 역시 학창시절 주된 약속 장소는 명동 입구 청구서적 앞이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다양한 대체 콘텐츠와 그것을 담는 플랫폼의 출현, 이에 맞물린 독서인구 감소 여파로 서점은 확연히 사양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가 추억하던 대부분의 서점이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현상은 특히 고령화가 심한 지역으로 갈수록 뚜렷해집니다. 『서점편람』에 따르면 서점 멸종 예정 지역(서점이 단 한 곳만 남아 있는 기초 지자체)이 전국에 42곳인데 강원 고성, 전북 무주, 전남 강진, 충북 옥천, 경북 고령, 경남 함안 등 대부분 고령화가 심한 인구 소멸 위험지역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조금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2015년을 전후해 이 흐름에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독립서점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2015년 100곳 미만이었던 독립서점은 2020년 634곳으로 늘었습니다. 저도 2019년 강화에 서점을 열었으니 이 대열에 동참한 셈입니다. 있던 서점도 문을 닫는 마당에 무슨 용기로 새로운 서점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우선 이 현상을 파악하려면 독립서점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합니다. 명확한 기준이나 인증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독립서점을 규정하는 것은 저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좁게는 독립출판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일반 도서를 판매하는 곳은 독립서점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최근에는 독립출판물도 정식으로 출판사 등록을 통해 ISBN을 발급해 대중 시장에 진출하는 등 그 경계 자체가 모호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의 의미를 자본과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좀 더 넓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음악, 영화계에서 이른바 ‘인디’를 규정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취급하는가’로 구분하기보다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자본과 유통망에서 자유로운, ‘서점 운영자의 자율성과 취향’이 반영된 공간을 독립서점으로 규정하는 편입니다.
   독립서점은 전통적인 방식의 서점과는 결을 달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서점의 운영방식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존 서점은 규모에 상관없이 일반 간행물과 참고서, 문제집 등 종합서적을 두루 취급했습니다. 기존 서점의 주 수익은 서점 내 도서 판매와 납품에서 발생했습니다. 규모가 더 큰 경우 문구류와 음반을 함께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판매했으며, 도서의 분류는 전통적인 십진분류법을 따랐습니다. 앞서 독서인구 통계를 언급했는데 평균 독서량의 상당 부분은 10대 청소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학습지와 문제지, 청소년 도서는 기존 서점의 주요 판매 품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독립서점의 증감 추세 및 형태별 운영 현황 5)
출처: (주)동네서점


   그에 반해 독립서점은 운영자의 취향과 전문성, 정체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서점의 명칭 또는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쉽게 확인 가능합니다. 동네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형책방(광주-동네책방 숨) 6) , 협동조합 형태(쩜오책방), 북스테이(괴산-숲속의 작은 책방), 독립출판물 취급(헬로인디북스), 여행이나 사진 등 특정 분야만 전문으로 다루는 큐레이션 책방(스페인책방), 상담 또는 책 처방(사적인서점)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죠. 제가 있는 강화도의 경우에도 7곳의 서점이 있는데 그림책, 북스테이, 생태 및 시집 전문 등 각기 다른 정체성을 띠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런 변화가 통계 등 정책적인 부분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점편람』에서도 2019년부터 학습지와 참고서를 팔지 않는 독립서점을 기타 서점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통계에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현재 운영 중인 독립서점의 정확한 현황이 통계에 반영된다면 전체 서점 수는 소폭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는 수익원 및 공간 운영의 다각화입니다. 책은 판매 및 보관 면적이 많이 필요한 데 반해 갈수록 유통 기한은 짧아지고, 그마저도 판매량을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로 기업이 아닌 개인 또는 가족 등 소규모로 운영되는 독립서점은 기존 서점과 달리 운영자의 취향과 정체성에 따른 선택과 집중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납품 시장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발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도서 납품은 예상 수익이 확실한 대신 서점 간 경쟁이 치열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전담할 인력이나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독립서점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최근 지자체마다 조례 등을 통해 지역 서점 이용을 촉진하면서 비정기적으로 200만원 안팎의 소액 납품 의뢰를 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한해 납품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이를 고정적인 수입으로 삼지는 않기에 독립서점 중 상당수는 자발적 납품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수익원의 경우 도서 판매와 더불어 카페, 주점, 북스테이(숙박), 전시, 공간 대관 등 다른 업종을 겸하는 복합형 서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서점이 갖는 수익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고민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도서 판매 외 다른 업종을 겸하는 복합형 서점이 많다 보니 개인이 기존에 운영하던 공간에 서점을 숍인 숍(shop in shop) 형태로 차리거나(서울-아직 독립하지 못한 책방) 주거 공간을 일부 개조해 운영(대부분의 북스테이 책방이 이에 해당), 독서 모임이나 원데이 클래스 개최 등 커뮤니티 공간을 겸하는 등 공간 운영도 다양한 편입니다. 최근엔 차량을 활용해 다른 상업 공간과 협업하는 이동식 책방(북다마스)도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점 대표의 역할 변화입니다. 기존 서점의 경우 도서 판매 및 재고 관리, 납품 등 전통적인 운영 방식에 중점을 두었으며, 대표가 이를 직접 관리하거나 담당하는 직원들을 적절히 채용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반면 독립서점 대표는 ‘N잡러’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독립서점은 대표의 취향과 서점의 정체성 자체가 독자적인 브랜드로 인식됩니다. 때문에 어떤 책을 고르고 맥락에 맞게 진열할 것인지, 즉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이 서점의 경쟁력을 의미합니다. 더불어 규모가 작고 도서 판매만으로는 안정적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독서 모임 및 북토크 등 자체 프로그램 기획과 모객 관리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서점의 자체적인 예산으로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지자체 또는 유관 기관의 지원사업,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 터라 프로젝트 기획자로서의 역량과 역할 역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점의 브랜딩, 프로젝트 홍보 등 마케터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판사는 왜 10년 새 3만 곳이 늘었을까?
유튜브, 넷플릭스 등 대체 콘텐츠 플랫폼의 거센 공세 속에 책 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출판사는 반대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증가세가 아니라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반응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선 출판사 급증의 명암을 살피기보다 왜 그런 현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최근 출판 시장의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2019년 출판사 21세기북스에서 김예지 작가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출간했는데요. 이 책은 앞서 작가가 자비를 들여 소량 생산한 ‘독립출판물’로 독립서점에서 입소문을 타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전의 히트를 친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역시 독립출판물로 나왔다가 이를 주목한 편집자가 정식 출판사를 등록하고 출간했습니다. 이슬아, 서귤, 김봉철 등 독립출판계에서 주목받던 작가들이 대형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판등록을 하는 사례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2012년 시작한 유유출판사의 경우 독립서점 애호가와 월 3~4권 이상 책을 읽는 독자층을 적극 공략해 가장 성공한 1인 출판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는 ‘아무튼’ 시리즈를 함께 출판하고 있는데, 이 역시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탄탄한 수요층을 확보해 2017년 이후 지금까지 45권을 펴냈습니다. 1인 출판사, 소형 출판사들이 독립서점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자 문학동네와 민음사 등 굵직한 출판사들도 동네서점 에디션 제작, 별도 주문 페이지 개설을 통한 직거래 활성화, 북토크 공동 기획 등 상호 교류를 넓히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독립 출판물의 ‘오버그라운드(overground)’ 진출입니다. 초창기의 독립 출판물 제작자들은 대개 자비 출판 또는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제작비 투자를 받아 책을 만들고 직접 독립서점에 입고 요청부터 판매, 유통까지 관리했습니다. 때문에 ISBN(국제표준도서) 등록 등 정식 출간물 등록을 위한 절차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립서점과 독립 출판물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관련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디펍 같은 독립 출판물의 온라인 판매, 유통 플랫폼이 등장했고 인스타그램, 스마트 스토어를 통한 온라인 판매도 활성화됐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창작자가 직접 출판사를 설립하고 정식 ISBN 등록을 거쳐 온/오프라인, 언더/오버 그라운드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슬아 작가는 헤엄출판사를 차리고 이후 자신의 창작물을 이 출판사를 통해 유통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립 출판물 창작자 스스로 저작물에 대한 브랜딩과 마케팅을 하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봐야 합니다.
책이라는 허블 망원경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이 생긴 이래 호황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자조 섞인 말을 너무나도 자주 듣곤 합니다.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책이 다른 매체나 플랫폼에 비해 재미없고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TV마저 사양산업이 되는 시대, 이러한 관점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조금 다르게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책이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최근 문해력, 리터러시(literacy)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글보다 영상에 익숙해 문자 해독력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저는 단순히 해독력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글을 많이 읽어 기술적으로 해독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같은 제도와 문화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존재인 동시에 각자 다른 화두와 고민,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때문에 나 외의 다른 누군가는 기본적으로 이질적이고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리터러시는 이러한 서로의 차이와 간극에 대한 이해와 더 나아가 공감하고 협력하려는 과정, 그러니까 인류가 출현한 이후 계속 고민하고 키워온 힘인 셈이죠. 우리는 책을 통해 나와 다른 세계, 내 바깥의 세계를 처음 만나고 비로소 그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재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제가 책을 사랑하는 까닭은 책이 허블 망원경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각자는 소우주이고 우리는 책이라는 허블 망원경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들여다보기 전까지 타인은 그저 저 멀리 존재하는 먼지일 뿐이죠. 망원경 자체엔 어떤 진리나 정답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서로 다른 소우주와의 조우, 충돌, 이해, 재해석(공감과 비판을 동반한)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갈 뿐이죠. 저는 각자의 우주를 유영하는 존재들의 기록들을 사랑합니다. 이들의 사소한 기록에는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질문과 고민이 담겨 있고, 이는 결국 다시 나를 향합니다. 저는 책이라는 허블 망원경의 쓸모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망원경은 간절히 원하는 어떤 해답을 주진 못하지만 여기에서 만난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나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는 현상과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책이라는 세계와 서점이라는 우주,
그곳을 찾는 사람들
앞서 독립서점의 증가와 독립출판을 중심으로 한 출판사의 양적 성장 현상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번엔 그 현상에 대한 의미를 살펴볼까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다양성이라는 필터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만약 한 사회의 다양성을 척도화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의 수준은 어떨까요? 그리 높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탐사 현장을 서점으로 국한한다면 어떨까요? 전 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희 책방 이야기를 잠깐 해 볼까 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책방은 관점과 질문, 발견이라는 세 가지 주제 중심의 큐레이션 책방인 동시에 북스테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년 세 주제와 관련한 15개 안팎의 세부 항목(일, 취향, 죽음, 가족, 꿈꾸는 세계, 동물권, 페미니즘 등)을 정하고 이에 따라 1,700여 종의 책을 고르고 진열하는데요. ‘일’ 같은 특정한 항목만 해도 일에 대한 철학적 고찰부터, 논쟁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 노동시장 개혁 등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책, 보통 사람들의 자기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까지 수천여 권의 책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세계는 넓고 다양합니다. 지난 2년간 ‘일’ 섹션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수오서재), 『이 별에서의 이별』(양수진, 싱긋),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 21세기북스), 『요즘 것들의 사생활-먹고 사니즘』(이혜민, 900km)이었습니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내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있습니다.

책방시점 전경
출처: 필자 제공


   저희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책은 느린 콘텐츠입니다. 잠깐 책장을 들춰 본다고 해서 책의 가치를 알아볼 순 없습니다. 오래 머물면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정답을 얻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큐레이션하는 책들도 대개 자신을 향한 질문, 솔직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책방에서 책은 앞서도 얘기한 것처럼 각자의 삶이 담긴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때로 낯설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신기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출판사가 다양해지고 이제는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의 모습도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책 하나가 각자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서점은 그 세계가 가득 담긴 하나의 우주이자 여러 형태의 다양성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접점일 것입니다. 서점 또한 각자의 관점과 취향을 반영하는 소우주인 동시에 그 스스로도 하나의 책이기에 서점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새롭고 다양한 세계를 접할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서점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인접한 위치의 비슷한 상업 공간은 경쟁 관계이기 마련인데 서점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 바로 옆에 편의점이 들어온다면 큰일이 나겠지만, 서점은 오히려 환영을 하는 낯선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물론 납품을 경쟁하는 사이라면 달라지겠지만). 김포 지역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곳에 가장 먼저 문을 연 꿈틀책방의 단골 고객들이 지난해 잇따라 같은 김포 지역에 책방 짙은, 코뿔소책방 등 각자의 서점을 열었습니다. 단골이 떠나고 잠재적인 경쟁자가 됐으니 트러블이 생길 법도 하지만 이들 책방은 김포 동네책방 네트워크를 꾸려 ‘동네책방 스탬프 투어’ 등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합니다.
   저는 서점이 많이 생길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각자 다른 관점과 취향, 다른 세계의 책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엔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독립서점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 역시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재조명하고 서점을 거점으로 새로운 지역 콘텐츠가 등장하기 때문인데요. 제주도의 경우 100여 개에 가까운 지역 독립서점이 생겼고 광주와 전주, 강릉 등에도 독립서점이 증가하면서 서점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지역 기반 기획(제주책방예술제, 전주동네책방문학상 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역 소멸, 수도권 과밀화를 우려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역 독립서점의 등장과 새로운 시도는 분명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다양성은 책과 서점, 독자를 통해 구체화된다
2015년 무렵 전국의 특색 있는 서점 여행을 하면서 언젠가 ‘나만의 서점’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마침 2016년 서울 상암의 북바이북이라는 독립서점에서 서점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열려 4주 동안 참여했습니다. ‘술 먹는 책방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엔 저를 포함해 서른 명이 넘게 참여했습니다. 이후 경기콘텐츠 진흥원에서 ‘경기 서점학교’를 개설하는 등 예비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이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독립서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겠지요? 자신이 가진 콘텐츠와 책을 접목한 공간을 열고 싶은 사람, 책을 통해 삶의 궤적이 달라진 사람 등 서점 창업 동기는 다양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동력은 도서 정가제와 가치 소비라고 봅니다. 동시에 이 두 동력은 책과 서점을 통한 다양성 있는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 정가제는 온라인 서점과 대형 마트 등에서 무분별한 도서 할인을 통해 무너진 공정 경쟁 시장을 회복하고 양질의 도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당시 출판계는 할인 경쟁으로 정작 콘텐츠의 질은 황폐화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를 발굴하고 비용을 투자해 좋은 책을 만드는 것보다 책의 단가(제작비, 고료 정산 등)를 낮추는 것이 이득일 테니까요. 더불어 가격 경쟁에서 밀린 서점들이 줄도산하며 출판 시장은 악순환(자본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 베스트셀러 중심의 다양성 훼손, 대형 온라인 서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출판사로 피해 전가 등)하며 결국 피해는 독자가 보는 형국으로 전개됐습니다.
   현행 도서 정가제는 출판사가 정한 정가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느 곳에서나 같은 값에 판매하되 자율적으로 최대 10% 할인, 5%까지의 적립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무료 배송, 이벤트 등을 통해 온라인 서점이 우월적인 상황이긴 하나 최소한의 경쟁 토대는 마련된 상황입니다.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에 앞서 도서 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단순히 출판계의 이른바 파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질의 도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국 곳곳의 서점을 통해 모든 독자가 언제 어디서든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제도입니다.
   다행히 도서 정가제가 정착하며 작가와 독립서점, 독자 사이의 선순환 구조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그 단면을 살펴봤습니다. 여기엔 기꺼이 가치 소비를 하는 독자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이용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일 테니까요. 독립서점을 열고 3년 가까이 운영하며 만난 독자들은 이렇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동네와 로컬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존중하며, 책 구입이 어떤 의미를 갖고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존재와 영향력은 앞으로도 쉽게 통계 수치에 잡히지 않겠지만 한국의 출판 시장을 더 다양하고 의미 있게, 지속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보다 각자의 다양성이 더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면 혹은 그런 사회의 모습을 한발 앞서 보고 싶다면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여행하려는 곳의 독립서점을 한번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생각보다 그 모습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목차
세계의 끝 원더랜드, 책들의 이상향을 찾아서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의 귀환이라는 기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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