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주의적 오류의 근거가 되는 세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is’ 정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직간접 경험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들은 보통 일반화, 변별, 범주화 등의 과정을 거쳐 축약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처음 개를 봤을 때 부모에게 묻는다. “저건 뭐야?” 부모는 “개야”라고 알려 준다. 아이가 또 다른 개를 봤을 때 부모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저건 뭐야?” 부모는 “저것도 개야”라고 알려준다. 이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아이는 개에 대한 정보를 배운다.
물론 처음 고양이를 봤을 때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저것도 개야?” 그럼 부모는 알려준다. “아니, 저건 고양이야.”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개로 일반화하고 고양이와 구분하는 변별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개라는 범주(category)에 대한 지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진짜 개처럼 생긴 고양이나 고양이처럼 생긴 개를 만날 때, 아이는 여전히 헷갈릴 수 있다. 요즘은 개의 친화성을 가진 고양이를 개양이라고 부르는 시대이니, 헷갈릴 가능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성격, 태도, 생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4)
그 사람의 수많은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 행동들 중에 일관성을 발견하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심리적 개념을 그 사람에게 부여하게 된다. 상황과 대상에 상관없이 한결같이(물론 인간이 실제로 100% 한결같을 수는 없다) 특정 행동을 하는 일관성이 발견되면 그건 성격으로 설명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항상 신경질을 내는 사람에게는 ‘성격이 지랄 같다’라고 얘기한다. 반면에 다른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은데 나한테만 신경질을 낸다면, 그건 성격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 대상에게 나타나는 행동의 일관성은 보통 ‘태도’로 설명되는 것이 적절하다. 그냥 날 싫어하는 것이다. 타인이 날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성격이 안 좋다고 믿을 것이다. 그래도 된다. 어차피 성격이나 태도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인성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은 보통 이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이렇듯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고정관념적인 성향을 띠고 불확실성을 내포하게 된다. 아무리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도 일반화와 범주화의 과정에는 정보의 손실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일상과 사회심리학에서 고정관념은 한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되고, 고정관념에 근거해서 우리가 행동한다는 것은 그 믿음을 그 집단 전체의 구성원에게 과일반화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한 개인에 대한 개별적 정보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범주 정보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과 지식은 어느 정도 고정관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봐온 개를 바탕으로 ‘개’라는 범주를 구성할 때,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개의 서로 다른 세부 특성이 모두 포함되지 않는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개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를 볼 일도 없으니 그 미지의 개들에 대한 정보 또한 포함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몇 살이건 어떤 삶을 살아왔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범주 ‘개’는 엄청난 세부 정보가 손실된 하나의 고정관념 같은 지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미래에 어떤 개를 보고 놀랄 수 있다. 크기가 말만 한 개를 만났을 때(실제 수년 전에 미국에서 거의 망아지만 한 개를 본 적이 있다)나 거의 종을 알 수 없게 생긴 동물이 개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여전히 놀랄 여지가 있는 것이다.
타인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어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적믿음이다. 개별적인 행동들에는 그 내용과 형식, 조건과 요건들에서 엄청난 다양한 측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 일관성을 발견하고 그 축약된 일관성으로 그 행동들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규정한다. 그 정보를 근거로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기대하고 대응하며, 그 예상과 다른 행동을 관찰하면 놀라기도 한다. 따라서 의미화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단편적 사건과 행동들, 완전히 새로워서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단일한 존재나 개체 등과 그에 대한 일회성 기억(episodic memory)을 제외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대부분의 지식과 믿음은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 손실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얻는 대부분의 믿음과 지식은 결국 얻는 게있으면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의 속성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언어발달의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언어권의 기본 소리(음소) 의 구성을 습득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권에는 없는 기본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태어날 때는 가지고 있었던)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다른 언어권의 소리는 결국 자신의 모국어의 소리 범주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보고되었다.
5)
결국 그 안에 내포된 수많은 다양성 정보를 손실하는 대가로 우리는 그 범주에 근거한 범주 지식을 얻고 그것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내의 교육과 조직문화에서 다양성 가치를 구현하려는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다양성 현황과 인식을 조사하여 최근에 『고려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2019』를 발간했다. 교내 단위별 구성원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아보는 다양성 지수도 보고되었다. 이 다양성 정도를 추론하기 위한 지수를 계산하는 과정도 결국 <표 1>과 같은 정보의 군집화와 일반화, 변별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세부 정보들이 손실된다. 그래야만 의미가 추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정보도 손실되지 않은 6,122명에 대한 개별 자료는 완벽하지만, 결국 그 자료의 나열은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게 된다.
표 1. KU 다양성 지수 산출을 위한 구성원 집단별 요소
출처: 고려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2019)
그럼 그 세부 정보를 잃으면서 그 고정관념적인 범주 정보에 의존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