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습니다. 생명의 가장 큰 사명은 번식이라고 말입니다. 그때는 그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웠는데 어 느덧 저도 번식에 두 번이나 성공하고 두 딸도 하루 속히 번식하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뭐, 번식이 생명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겠지만 가장 큰 사명이자 기쁨인 것은 맞는 말 같습니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과학책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 자』도 결국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번식이라는 것은 유전자가 자신 이 들어가 존재하는 기계를 교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도킨스는 자신이 걱정한 대로 ‘이기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인 유전자 때문에 사회는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다 보면 유전자를 보관하는 기계가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복제를 하다가 실수를 하기 도 하고 단순 복제를 하는 게 아니라 두 유전자를 새롭게 조합하다 보니 유전자가 변형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니 번식이라는 것은 유전자를 단순 보존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유전자로 변화 시키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변화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덧 번식 과정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을 진화라고 합니다. 진화의 주체는 어떤 생 물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인 것이죠. 유전자는 특정 개체나 종을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랬다면 진화라는 것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죠.
   지구가 탄생한 게 46억 년 전인데 생명은 38억 년 전에야 처음 등장 합니다. 최초의 세포가 생기는 데 8억 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가 등장하는 데는 여기서 무려 38억 년이 더 걸립니다. 생명 진화는 실로 지난 한 사건입니다. 38억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긴 세월입니다. 우리 머리로는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1년이 따지기 편한 시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1년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 학교에 갔는데 금방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학교에 갔더니 금세 겨울방학이 왔고, 다시 겨울이 끝날 때가 되자 2학년이 되더라고요. 이 때 저는 2학년 생활도 어떻게 펼쳐질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죠.
   생명의역사 38억 년을 1년으로 줄여서 생각해 보죠. 38억 년 전 어느 날 바닷가 한구석에서 RNA 분자가 기름 주머니 속에 갇혔습니다. 왜 DNA나 단백질이 아니고 RNA일까요? 잠깐 따져보죠.
   ‘DNA → RNA → 단백질’이라는 생물학의 중심 원리가 있습니다. DNA 는 도서관 서랍에 보관된 설계도, RNA는 복사해서 공장에 가지고 온 설계 도, 단백질은 설계도로 만든 기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세포라는 공장에서 는 단백질이 기계입니다. 단백질 기계가 있어야 세포라는 공장이 돌아갑니다. 기계를 만들려면 우선 설계도가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설계도를 복사하려면 복사기라는 기계가 먼저 있어야 하잖아요. 또 설계도에 따라서 기계를 만들려고 해도 공작기계가 있어야 하고요. 아니 그렇다면 최초에는 설계도가 먼 저 있었을까요, 기계가 먼저 있었을까요? 이 딜레마를 RNA가 해결해 줍니 다. 어떤 RNA는 설계도이면서 기계 역할을 하거든요. 그러니 최초의 세포에는 RNA가 들어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지금도 DNA가 아니라 RNA를 기본 정보장치로 가지고 있는 것 들이 있습니다. 학생과 교수의 대면을 방해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바 로 그런 놈들입니다. 왜 놈이냐고요? 바이러스는 딱히 생명이라고도 할 수 없 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거든요. 살아 있지 않으니 죽을 수도 없어요. 우리 같은 생명이 바이러스라는 생명도 아닌 존재와 싸우려니 쉽지 않습니다.
생명의 짧은 역사
아무튼 RNA를 품은 기름 주머니가 등장한 38억 년 전의 그 시점을 1월 1일 0 시라고 하고 지금을 12월 31일 자정이라고 합시다. 1월 1일에는 지구 대기에 산소 기체가 없었습니다. 산소 없이도 생명은 얼마든지 살 수 있었죠. 바다 깊숙이 존재하는 열수 분출공을 통해 방출되는 지구 내부 에너지가 생물계에 끊임없이 공급되었거든요.
   4월이 되자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생성되는 산소는 바다를 점차 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대 부분의 박테리아들은 산소 때문에 삶이 힘들어졌습니다. 산소는 독이거든요. 쇠가 산소와 결합하면 녹이 슬고, 양초가 산소와 결합하면 연소되어 없어지는 것처럼 유전자는 산소와 결합하면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박테리아 들은 산소를 사용해서 호흡하는 재주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17배나 높아졌죠.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박테리아 가운데 일부는 산소를 사용하는 박테리아를 가까이 두고 살았습니다. 자기 환경에서 산소를 없애주었으니까요. 항상 친하게 지낸 것 만은 아닙니다. 산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박테리아가 산 소를 태우는 박테리아를 가끔 꿀꺽 삼키기도 했습니다. 자연이 다 그렇습니다. 항상 훈훈한 이야기로만 채워지지는 않지요.
   그런데 삼켜진 박테리아가 소화되지 않고 삼킨 박테리아 안에서 생존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마치 우리가 삼킨 기생충이 소화되지 않고 우리 뱃속 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회충은 하루에 밥 한 톨 정도를 뺏어 먹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참지 못해서 구충제로 처치하려 하죠. 그런데 삼켜진 박테리아는 산소를 소모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생성하기 때문에 삼킨 박테리아 에게 안정적인 환경과 동시에 에너지를 제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생충이 있으면 좋겠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입니다.
   6월에서 7월로 넘어갈 무렵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원핵세포와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진핵세포가 있지요. (지금도 박테리아는 원핵세포이고 사람은 진핵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월이 되자 바닷물의 산소 농도는 매우 높아졌습니다. 생명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세포들은 높은 산소 농도에 적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생명들은 새로운 방식을 찾았죠. 그것 이 바로 유성생식입니다. 혼자 복제하는 무성생식에서 벗어나 암컷과 수컷이 각각의 유전자를 합치는 방식을 취한 것이죠. 자기의 유전자가 망가졌다고 14 하더라도 다른 이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면 살아남을 방법이 있잖아요. 또 유성생식 과정에는 엄청난 오류가 생겼습니다. 이것을 돌연변이라고 합니다.
   10월에는 다세포 생명들이 생겼습니다. 유성생식의 결과죠. 세포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세포들이 모여서 한 개의 개체가 되었습니다. 세포마다 위치가 다르니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안쪽에 있는 세포와 겉에 있는 세포의 기능이 같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세포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도 다를 까요? 예를 들어 손가락 끝에 있는 세포의 유전자와 눈에 있는 세포의 유전 자가 다르겠냐는 말입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같은 부모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다를 수가 없지요. 단지 위치에 따라서 역할이 다르 다 보니 모양도 달라졌을 뿐입니다. “우리는 유전자가 같으니 같은 모양을 하고 같은 역할을 해야겠어”라고 세포들이 주장한다면 굳이 모여서 한 개의 개체를 이룰 필요가 없죠. 다른 모양과 다른 역할에 동의하기 때문에 한 개의 개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11월 4일쯤이 되자 대기의 산소 농도가 15퍼센트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요 즘 대기의 산소 농도 21퍼센트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무산소 조건에서 시작한 생명들에게는 가혹한 조건이었죠. 지구 생명들에게 또다시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일부는 적응하여 근근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일부 생명체는 기가 막힌 장치를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단단한 껍데기였습니다.
   바닷속에 널려 있는 이산화탄소와 칼슘을 이용하여 껍데기를 만들었습니다. 단단한 껍데기가 생기자 산소가 아무 곳으로나 침투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에너지 생산 공장으로만 전달되었지요. 껍데기가 단단해지자 드디어 센티미터 단위로 커다랗게 성장하는 생명체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는 눈이 등장했습니다. snow가 아니라 eye 말입니다. 이 시 점을 고생대의 출발점이라고 보면 됩니다. 생명의 역사를 1년이라고 하면 11 월 3일까지는 아직 고생대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11월 4일부터야 고생대가 시작되죠. 눈이 생기자 생명체들은 누구를 쫓아야 하고 누구에게서 도망쳐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몸의 모양과 색깔이 다양해졌고 헤엄치고 잡아먹기 좋은 구조가 생기게 되었죠.
   11월 21일쯤에는 상어가 등장하고 11월 25일에는 나무도 생겼습니다. 육 상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했죠. 절지동물뿐만 아니라 척추동물도 많았습니다. 그사이에 크고 작은 멸종이 이어졌습니다. 자연은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고생대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환경이 크게 변했습니다. 흩어 져 있던 지구 대륙이 하나로 합쳐져서 판게아라고 하는 초대륙이 형성되었습니다. 살기 좋던 해안가와 대륙붕은 줄어들고 사막이 있는 대륙 내부는 넓어 16 졌죠. 한때 30퍼센트 가까이 올라갔던 대기의 산소 농도는 20퍼센트까지 떨어지고 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100만 년 동안이나 화산 폭발이 이어졌습니다. 화산 폭발은 기후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고생대에 살던 생명의 95퍼센트가 멸종했습니다. 이게 세 번째 대멸종입니다. 95퍼센트가 멸종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00마리 가운데 95마리 가 죽고 5마리가 살아남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 십만 마리 가운데 다섯 마 리가 살아남은 겁니다. 95퍼센트가 멸종했다는 것은 100종류 가운데 95종 류는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나머지 5종류라고 해서 잘 살아남은 게 아닙니다. 대부분은 죽었지만 몇 마리씩만 겨우 살아남아서 멸종만 되지 않은 상태지요.
   12월 10일에는 중생대가 시작합니다. 100개의 방이 있었다면 95개의 방 이 텅 비었고 나머지 5개 방에는 몇 마리만 남아있는 상태로 말입니다. 5개의 방에 있던 친구들이 나머지 95개 빈방으로 옮겨갑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물로 변신하는 것이지요. 멸종이란 새로운 탄생의 기회입니다. 대멸종은 아주 큰 기회이고요. 드디어 공룡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2월 24일 자정쯤 지구에는 지름 10킬로미터짜리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습니다. 공룡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지구는 대혼돈에 빠졌습니다. 육 지와 바다의 거대 파충류는 몰살되었습니다. 육지에서는 고양이보다 커다란 17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동물들은 모두 멸종했죠. 12월 25일부터는 신생대가 시작됩니다.
   공룡이 빠진 자리를 포유류들이 차지합니다. 포유류가 이때 생긴 것은 아닙니다. 공룡과 거의 동시에 등장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주먹만 한 크기로 야행성 생활을 하면서 숨죽이며 살았을 뿐이죠. 괜히 덩치를 키우고 낮에 돌아다니다가 공룡의 밥이 될 이유는 없으니까요.
   12월 31일에는 마침내 인류도 등장합니다. 아침 10시에 침팬지와 같은 조 상에서 갈라선 인류는 오후 4시가 되니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 습니다. 밤 11시 50분에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죠. 11시 55분에는 일 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합니다. 아프리카 바깥에는 이미 다양 한 인류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데니소바인, 플로렌스인, 네안데르탈인도 있었지만 호모 사피엔스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인류 종이 아니라 하필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은 큰 행운입니다. 덕분에 우리가 태어났으니까요. 제가 번식에 성공해서 딸 둘을 얻었으니까요. 그리고 12월 31 일 자정에 코로나19 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멸종이라는 행운
역사를 왜 배울까요? 찬란한 선조의 역사를 배워서 뿌듯함을 가지려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걸까요? 역사란 변화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란 주로 망하는 것이죠. 찬란했던 로마제국도 망하고 무자비했던 몽골제국도 망했습니다. 천 년 가까이 유지되던 신라도 망하고 500년 조선도 망했죠.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망한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할지 궁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입니다. 3억 년 동안 바닷속을 지배했던 삼엽충은 왜 멸종했는지, 1억 6천만 년 동안이나 지구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들은 왜 멸종했는지 배우고 어떻게 하면 우리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할지 궁리하기 위해 자연사 박물관을 세우고 자연사를 배우는 것이지요.
   우리는 멸종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기분이 우울해집니다. 여러 가지 걱정을 하지요. 그런데요, 멸종이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멸종은 지구 생태계에 자리를 비워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멸종하면 그 자리는 다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태계는 유지됩니다. 공룡들이 멸종한 덕분에 포유류의 세상이 되었고 덕분에 인류도 등장했잖아요.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덕분에 우리가 문명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이지만 우리는 진화의 역사로 받아들입니다. 없어진 것은 쉽게 잊히지만 만들어진 것은 잘 기억되는 것과 같지요. (그래서 정치인들은 뭔가 없애기보다는 뭔가 새로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야 표를 얻을 수 있거든요.)
   누군가 사라져야 새로운 존재가 등장합니다. 총장님과 학장님이 아무리 훌륭하셔도 물러나 주셔야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이 일어나려면 연속성이 없어야 합니다.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선배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같은 선생님께 배운 후배가 들어온다면 뭐가 달라지겠어요? 같은 가르침이 반복되겠지요. 이런 일은 자연사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연사에서 멸종은 외부 요인으로 일어납니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모두 그랬죠. 지구가 갑자기 얼음덩어리로 변한다든지,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기 조성이 바뀐다든지 거대한 운석과 충돌한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온이 갑자기 5~6도씩 오르거나 내리고, 대기 산소 농도가 떨어지고 산성도는 높아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룡이 멸종한 데에는 공룡의 잘못이 하나도 없었죠.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진화는 전혀 다른 생명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생명체가 등장했다는 뜻은 다른 유전자가 활동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유전자가 활동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유전자가 등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활약할 기회가 없던 유전자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죠. 첫째 경우를 돌연변이라고 합니다.
   유전자 돌연변이는 물리 또는 화학적인 이유로 발생합니다. 어쨌거나 부모가 후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줄 때 그 모습 그대로 가지 않고 변했다는 것이죠. 보통의 경우 돌연변이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유전자는 현재 환경에 가장 적합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환경이 급격히 변할 때 돌연변이는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유전자들이 “와, 환경이 바뀌었네. 안 되겠어. 얼른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뿐이죠. 우연히 일어난 돌연변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해서 생존하게 될 뿐이죠. 이걸 찰스 다윈 선생님은 natural selection이라고 하셨고,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우리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릅니다.
정크 DNA라고?
학교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습니다. 교수실, 강의실, 식당, 도서관…. 각각의 이름이 붙은 공간의 기능과 이름이 바뀌면 우리는 금방 알아챕니다. 학교에는 적당한 이름이 붙지 않은 공간이 더 많습니다. 이런 곳에 살짝 변화가 생겼다고 해도 학교의 정체성이나 기능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름조차 없는 공간이라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름이 붙지 않은 공간이 없는 대학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2만 5천 개의 강의실이 있는 거대한 대학을 생각해 봅시다. 대학이 얼마나 큰지 2만 5천 개나 되는 강의실 사이의 거리가 엄청나게 멉니다. 자전거로 달려서 쉬는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대학입니다. 이런 대학에 25년동안 500번의 벼락이 내리쳤다고 해보죠. 500번의 벼락 가운데 강의실을 때린 것은 몇 개나 될까요? 거의 없습니다.
   이제 대학을 DNA라고 하고 강의실을 유전자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니까 2만 5천 개의 강의실이 있는 대학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강의실마다 번호가 있고 각기 다른 강의를 하는 대학이죠. DNA는 꽈배기 모양으로 꼬인 기다란 분자입니다. 그 위에 단백질 설계도인 유전자가 띄엄띄엄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약 500개의 돌연변이를 물려받습니다. 약 25년쯤 되는 한 세대에 발생하는 돌연변이가 500개인 셈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요? 일어나도 괜찮은 곳에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확률적으로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와 유전자 사이의 널찍한 공간에서 돌연변이가 주로 발생하죠. 이 널찍한 공간 역시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라는 네 가지 염기가 나열되어 있지만 단백질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정보가 없는 DNA 구역이라고 해서 한때는 정크(junk) DNA, 즉 쓰레기 DNA라고 불렀죠. 그런데 정크 DNA가 정말로 필요 없는 쓰레기일까요? 만약에 모든 유전자들이 정크 DNA 없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세대마다 500개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생하고 500개 단백질에서 변형이 생기겠죠.
   요즘은 정크 DNA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단백질에 관한 암호화된 정보만 없을 뿐이지 다른 역할이 있다는 게 알려졌거든요. 주로 비암호화 RNA에 유전정보를 전사하거나 세포분열 등에 일정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암호화 DNA라고 부릅니다. 하긴 자연에 쓸데없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갈릴레오가 쓴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에도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나와 있을 정도로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입니다.
진화는 진보일까?
진화는 한자로 進化라고 씁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라는 뜻이죠. 그런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직관적으로 진화, 즉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등한 생물에서 고등한 생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8억 년 자연사를 살펴보면 정말로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진화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작은 것에서 점점 커다란 쪽으로, 단순한 것에서 점점 복잡한 쪽으로 진화합니다.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단세포 생명에서 다세포 생명으로, 무성 생식에서 유성 생식으로, 작은 동물에서 큰 동물로 진화합니다. 동물의 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척추동물들은 지질시대에 따라 ‘어류 → 양서류 → 파충류 → 조류 → 포유류’ 순서로 등장합니다. 이들의 심장 구조도 같은 순서로 복잡해집니다. 어류의 심장은 1심방 1심실입니다. 어류 다음에 등장한 양서류의 심장은 2심방 1심실이고, 그다음에 등장한 파충류는 2심방 불완전 2심실, 그리고 항온성 동물인 조류와 포유류는 2심방 2심실입니다.
   왠지 하등한 동물에서 고등한 동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가장 나중에 출현한 인류가 있지요. 최후에 등장한 인류가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인류는 스스로 역사를 서술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죠. 뇌도 엄청나게 큽니다. 체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만 큰게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큽니다. 아무리 봐도 가장 발달한 생명체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진화는 과연 진보일까요?
   우선 인류가 가장 나중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닙니다. 영장류는 쉽게 원숭이와 유인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꼬리가 없으니 유인원에 속하죠. 유인원에는 고릴라, 오랑우탄, 사람, 침팬지와 보노보 그리고 긴팔원숭이가 있습니다. 긴팔원숭이는 꼬리가 없는 유인원인데 이름을 잘못 붙인 겁니다. 인류와 침팬지는 7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섭니다. 인류도 다양한 종이 존재했다가 사라지지만 아무튼 모두 인류입니다. 보노보는 200만 년 전에야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서죠. 그러니 인류가 가장 나중에 등장한 유인원은 아닙니다.
   리처드 도킨스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던 진화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대표작은 『풀하우스(Full House)』입니다. 제목에서 뭐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포커 게임이 생각나셨나요? 생명계를 인간 중심으로 보면 인간을 진화의 정점에 두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내려온 오랜 전통입니다. 굴드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역시 번식입니다. 생명의 지고지순한 목적이라는 그 번식 말입니다. 생명이 진화하는 까닭 역시 번식하기 위해서입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해야 잘 번식할 수 있고 그래야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면서 보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진화에 성공한 종이란 무엇일까요? 결국 번식에 성공한 종 아니겠습니까? 찰스 다윈은 ‘모든 생명체는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번식이 진화의 목적이니까요. 결국 진화란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진화를 배울 때 항상 등장하는 예가 있었습니다. 바로 말의 진화죠. 작고 발가락이 많았던 에오히푸스에서 시작한 말은 ‘에오히푸스 → 메소히푸스 → 메리치푸스 → 플리오히푸스→ 에쿠스’ 순으로 진화합니다. 교과서에 등장한 말의 진화 과정 그림에서 말은 더 크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복잡하게 변화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인류의 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렉투스 →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 호모 사피엔스’ 같은 선형으로 묘사되죠.
   교과서의 그림들은 말과 인류의 진화가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단계적으로 진보한 것처럼 말합니다. 한 방향으로 진화하죠. 하지만 말과 인류는 이렇게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변이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종 분화를 겪었습니다. 진화의 과정은 사다리나 사슬 같은 선형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마치 삼각주의 물길처럼 얽히고설킨 망의 형태로 그려져야 하죠.
   말과 사람은 진화에 실패한 대표적인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자신이 태어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멸종하고 유럽으로 건너간 에쿠스만 살아남았습니다.
   서부 영화에 나오는 야생마는 뭐냐고요? 유럽 사람들이 데려온 것들입니다. 스페인 군대가 남미를 침략했을 때 남미 원주민은 말을 처음 봅니다. 낙타가 처음 발생한 곳 역시 북아메리카 대륙이지만 여기서는 낙타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야생 낙타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오스트레일리아입니다. 역시 사람들이 데려온 것들이 방치되어 살고 있는 겁니다.
   한때 30여 계통으로 늘어났던 말은 단 한 계통만 남았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종 호모 사피엔스만 남고 다른 모든 계통은 멸종했습니다. 말과 인류는 진화에 실패한 대표적인 생물인 셈이죠.
성공적인 진화란?
그렇다면 성공한 종이란 어떤 종일까요? 스티븐 제이 굴드는 포유동물 가운데 진화에 가장 성공한 동물은 쥐 같은 설치류와 사슴 같은 우제류라고 합니다. 쥐와 사슴이 진화에 성공했다는 근거는 그들이 더 크고 더 아름답게 진화해서가 아닙니다. 풍부한 다양성 때문이죠. 우제류는 220종이나 되지요. 설치류는 무려 1,730종이 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박쥐도 1,100종쯤 됩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evolution)는 진보(progress)가 아니라 다양성(diversity)의 증가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굴드는 “진화란 어떤 목표 지점을 향해 뻗어 있는 고속도로나 하나의 꼭대기를 가진 사다리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무성한 가지를 가진 나무”라고 친절하게 해설합니다.
   이쯤 되면 그의 책 제목 『풀하우스(Full House)』를 보고 포커 게임을 생각하시는 분은 더 이상 안 계실 겁니다. 그는 인간 중심주의 사고를 깨기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풀하우스란 생명 전체를 뜻합니다. 생명 전체를 하나로 보는 시각을 가지면 인간을 정점에 둘 수 없게 됩니다. 생명계라는 큰 집에서 보면 인간은 유난히 복잡한 생명체에 속하는데, 이 ‘복잡성’은 풀하우스에서는 별난 ‘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술주정뱅이가 술집에서 나와서 비틀비틀 집으로 갑니다. 좁은 골목 왼쪽에는 술집이 있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도랑이 있습니다. 술주정뱅이는 좌우로 비틀거리며 걷다가 결국에는 도랑에 빠지고 말것입니다. 왼쪽으로는 아무리 비틀거려도 건물이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지만 오른쪽으로는 막아주는 건물이 없어서 도랑에 빠지고 마는 것이죠.
   생명의 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테리아에서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골목의 왼쪽 끝에서 시작한 셈이죠. 더 이상 크기가 작아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른쪽으로는 막혀 있지 않죠. 점점 커집니다. 대멸종 같은 큰 사건을 당할 때는 작은 종만 살아남습니다. 진화는 항상 왼쪽 벽에서 시작해서 다시 오른쪽 도랑으로 빠지는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굴드는 단언합니다. “박테리아는 어떤 기준에 비추어보아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물이다”라고 말입니다. 납득하기 어렵다고요? 이유는 많습니다. 박테리아가 살아온 시간, 다양성, 그리고 지구 어디에나 있는 편재성을 따져봤을 때 박테리아를 능가하는 생명은 없습니다.
   박테리아는 38억 년 전이나 5억 4,100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생명의 최빈값이었습니다. 수와 다양성에서 박테리아에 필적할 생명체는 없습니다. 끓는 물에서 생존하는 박테리아, 강산성 호수에서 사는 박테리아, 심지어 빙하와 암석 속에서도 생존하는 박테리아들이 있습니다. 핵전쟁이 나든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쓸든 박테리아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성공적인 진화라면 어느 곳,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서 번식에 성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줄어드는 다양성
인류는 진화에 전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한 종뿐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는 단 25만 년 만에 막대한 힘으로 전 세계를 통합하는 문화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이에 아주 큰일을 이뤄냈죠. 야생동물을 멸종 시키고, 숲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들였습니다.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진화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자연적으로는 등장할 수가 없는 종을 창조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기후변화를 유발하고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지질시대로 구분합니다. 거기에 살았던 생명들이 달라짐에 따라 구분한 시대입니다. 그동안 지구의 지질시대는 운석, 화산, 그리고 대륙판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대멸종을 뜻하는 인류세는 천체와 지구 활동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로지 인류 활동의 결과죠.
   인류의 힘은 대단합니다. 매년 다른 모든 자연 과정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토양, 암석, 침전물을 이동시킵니다.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콘크리트는 지구 표면 전체를 2밀리미터 두께로 바를 수 있을 정도의 양입니다. 지구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44퍼센트는 산업혁명 이후에 인류가 화석연료를 태워 대기로 배출한 것입니다.
   자신의 다양성도 확보하지 못한 인류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생명의 다양성도 줄이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사라진 척추동물의 개체 수는 58퍼센트에 달합니다. 현재의 40대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개체 수가 거의 두 배나 많았다는 말입니다. 멸종이야 자연적인 현상이죠.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멸종의 속도는 자연적인 속도보다 1천 배나 빠릅니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면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인데, 한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기 전에 옆자리마저 비워지면서 생태계 그물이 느슨해져 버렸습니다. 살 곳과 먹을 것이 줄어드니 짝짓기가 힘들고 번식에 실패합니다.
   지금 육지에 사는 포유류의 총 무게 가운데 야생동물의 무게는 3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30퍼센트는 인간, 그리고 67퍼센트는 가축입니다. 가축은 종류별로 조금 먹으면서 빨리 자라고 많이 번식하는 몇 종만 살아남습니다. 자연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장이 선택한 것이죠.
무엇을 할 것인가?
멸종이 뭐가 대수겠습니까? 지금 지구에 살고 있던 생물 종보다 수천~수만배나 많은 종이 살다가 사라졌을 텐데 말입니다. 생태계는 그렇게 변하는 것이죠.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해서 우리가 특별히 더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결국에는 풍성한 생태계를 다시 일구어내곤 했으니까요. 아마 여섯 번째 대멸종 이후에도 자연은 스스로 복구할 것입니다. 우리만 살아남는다면 “아프니까 지구다”, “지구도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야”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멸종이라는 게 뭡니까? 짝짓기 하지 못하고 번식에 실패하는 것 아닙니까?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것도 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짝을 만날 기회가 적어져서 비롯된 것이죠.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76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설마 짝을 만날 기회가 없겠습니까? 그런데 자연사는 우리를 마음 편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지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살펴보면 당시 가장 많은 생물량을 차지했던 생물들은 모두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최대 생물량을 차지하고 있는 생물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입니다.
   인간의 사망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죠. 교통사, 병사, 사고사 등등 많습니다. 하지만 사망의 직접 원인은 한 가지이더군요. 심정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멸종에도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대륙이 합쳐지기도 하고 화산이 터지기도 하고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멸종의 직접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기후변화입니다.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라는 한가한 용어를 쓸 때가 아닙니다. 지구온난화라니요. 온난화는 좋은 것 아닌가요? 따뜻해지면 좋죠.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 대신 지구 가열이라는 분명한 용어를 쓰자고 합니다. 기후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왔잖아요. 변화는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갈 수도 있죠. 이제는 분명하게 기후 위기라고 해야 합니다.
   1820년부터 전 세계가 기상관측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가장 뜨거웠던 7월은 2019년 7월이었습니다. 1820년 이후 가장 뜨거웠던 5월은 2020년 5월이었습니다. 이젠 언제나 가장 최근이 가장 뜨거운 O월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인류가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답은 다양성에 있습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의 다양성을 더 늘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만큼은 유지해야 합니다. 가축도 생산성이 가장 좋은 한 종류뿐 아니라 종류를 다양하게 늘려서 키워야 합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석탄과 석유라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다양한 에너지원을 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야 하니까요. 앞으로 10년 안에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제로(0)로 만들 수 있을까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분명한데 그 일을 통해 우리가 당장 겪어야 하는 경제적인 고통을 감수할 자신이 없어서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번식할 자유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게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진화는 목표의 복잡성에 있지 않습니다. 다양성에 있지요.
   생명 다양성 확보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오늘 무슨 동물을 보셨나요? 개, 고양이, 비둘기, 직박구리, 참새…. 몇 가지 떠오르지 않으실 겁니다. 뭐가 보여야 같이 사는 연습을 하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지렁이, 달팽이, 풍뎅이, 도롱뇽과 함께 같이 사는 연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많이 마주치는 생명체와 함께 연습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사람은 크고 작은 사회를 이루어 삽니다. 각 사회에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사회의 발전은 덩치가 커지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다양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을 구성하는 각 구성원들이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갑시다. 그게 같이 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자연사가 알려준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목차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고정관념은 정확할수록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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