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포괄적 성교육 시작하기: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성교육
황고운
초등학교 교사,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선생님, 섹스가 뭐예요?”
“이거 내 성기 사진이야. 너도 보내 줘.”
“왜 맨날 여자애들이랑 놀아, 게이냐?”
“랜덤 채팅에서 만난 오빠예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학교에서 맞닥뜨리는 학생들의 신체, 정서적 변화와 성적 호기심, 학생들을 향한 성적 위협을 수업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난감한 순간들이 온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대학교에서도 정규 교과 과정으로 다룬 적이 없고, 학교 현장에 나와서도 성교육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초등 공교육 내의 성교육 기준이 없진 않다. 2015년 배포되었다가 성 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잠정 폐기된 ‘성교육 표준안’이 그것이다. 교육부가 2년간 6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 내놓은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성인지 감수성을 길러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성별 고정 관념과 성역할을 강화하고, 여성의 성을 임신, 출산을 위한 것으로 서술 하며 성적 다양성과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교육의 질은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가진 지배적인 관점을 넘어설 수 없다. 결국 건강하고 실질적인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짚어 보고, 교사들이 이 관점을 새로이 하는 데에 서 출발해야 한다. ‘남성의 성욕은 더 크다, 참을 수 없다.’ 같은 오래된 통념부터, 여성의 성을 터부시하고 나아가 월경에 관해 말하기를 부끄러 워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갖추어야 다음 세대를 살아갈 어린이 들에게 유용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수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1)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 회적 측면을 다양하게 다루는 교육과정을 말한다.
   신체 중심의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의 성적 권리를 탐구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나와 타인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갖출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 핵심개념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2)


   성교육을 단순히 성기 기능 중심의 교육이라고 여기는 데서 벗어나 어린이의 삶 전반에서 성과 관련해 일어나는 다양한 의제를 다루는 것이 모두 성교육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성교육
첫 번째 수업, 경계를 지켜요
1)왜 필요한가
성교육은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끼는 방법에 관해 배워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남도 나와 같이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배우는 것이다. 경계 존중에 관한 감각은 후에 성폭력 등 경계 침해를 당했을 때 인식하고 대처하는 데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타인의 존재와 그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방법인 ‘경계 존중’을 어린이가 잘 이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갖고 만든 수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세 가지이다. ①사람마다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계가 다르다. ②상대의 경계를 모르므로 동의를 구해야 하고, 알고 나면 지켜 주어야 한다. ③상대의 거절을 오롯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경계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나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이다. 인간관계에 적용한다면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신체적, 물리적, 언어적, 심리적인 영역을 의미한다 하겠다. 국가 간에는 국경이 있고, 길에는 차도와 보도를 나누는 연석이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존재한다고 비유를 들어 어린이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2) 이렇게 수업해요
인지 발달 단계상 구체적 조작기의 어린이들은 주로 관찰 가능한 개별 경험에서 지식을 습득한다.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해야 하는 이유다. ‘멀리서 걸어오기’, ‘여기는 안 돼’ 활동으로 수업을 열면, 스스로의 경계를 눈과 몸으로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멀리서 걸어오기’는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선 후,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다 불편하면 ‘멈춰!’ 라고 말하고 중단하는 활동이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보고,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경계임을 이해하도록 할 수 있다. 이어서 손이나 어깨 맞대기 등의 활동을 추가로 진행하면, 신체 부위마다 그리고 활동 상대마다 편안하게 느끼는 경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다. ‘멈춰!’라고 말한 순간이 친구와 서로 달랐는지, 달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사람마다 경계가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도록 돕는다. 이때 ‘멈춰’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각자가 편하게 느끼는 경계가 지켜지지 않은 ‘상황’ 때문임을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친구가 나를 싫어해서, 저 친구가 싫어서.’와 같이 사람에서 원인을 찾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여기는 안 돼’ 활동은 서로의 신체 경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전신 그림을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친한 친구가 나를 부를 때’, ‘어른이 나를 칭찬할 때’ 등 여러 상황에서 남이 만지면 싫은 신체 부위에 스티커를 붙여 보게 한다. 아무리 스티커를 넉넉하게 주고 시간을 오래주어도, 어린이마다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어린이는 엉덩이에 스티커를 두 개만 붙이지만 어떤 어린이는 여덟 개나 붙인다. 상체에 스티커를 잔뜩 붙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체가 훨씬 민감한 몸도 있다. 결과물이 서로 이렇게나 다른 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어린이들은 비로소 ‘사람마다 경계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다가가기 전에 상대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서로 다른 학생 활동 결과물
출처: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3)



   이제 경계의 의미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 자동차 구획선이나 육상 트랙, 횡단보도 등을 예로 들며 물건에 구분선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신체나 감정에도 경계가 있다는 점, 이 경계가 나를 지키고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는 선이라는 점을 지도한다.
   경계를 이해했다면 ‘서로의 경계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볼 차례이다. 손을 잡고 싶을 때, 안고 싶을 때, 어깨동무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방법을 논의하게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안아도 돼?라고 질문해요.”, “우리 손 잡자!고 말해요.” 등과 같이 발표한다. 이것이 바로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고, 경계를 존중하는 중요한 방법임을 안내해 주면 된다. 이어서 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연습한다. “응, 좋아!”라고 동의하는 말을 하는 방법도 있고, 말없이 손을 잡는 방법도 있을 터이다. 반대로 불편하다면 “나 손 잡는 거 불편해.”, “안 잡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음을 이야기 나눈다.
   한편, 친구에게 ‘팔짱을 껴도 되는지’ 물었는데 대답이 없을 경우엔 동의한 것인지 아닌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묻는다. 다소 불편했지만 사이가 어색해질까 봐 말을 못했을 수도 있다는 점, 좀 더 확실한 동의 표현을 나누는 법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경계 지키기 역할극’ 활동을 통해 경계 존중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친구 동생이 귀여워서 볼을 만지고 싶을 때 물어보기, 묻지 않고 팔짱을 꼈을 때 사과하기, 삼촌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괜찮다고 표현하기, 고모가 뽀뽀하려는 게 불편하다고 표현하기 등 다양한 상황 중 하나를 골라, 할 말을 적고 연습한 뒤 발표해 본다. 이 활동에는 가족과 친척을 등장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계 존중의 핵심은 ‘동의’에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가족을 비롯한 친근한 사이에서는 상황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수업을 하면 어린이들이 “엄마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뽀뽀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친근한 사이는 대개 서로의 경계를 이미 알고 있거나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어 동의를 생략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자신이 경계를 존중받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불편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두 번째 수업, 월경을 당연하게
1) 왜 필요한가
월경은 가임기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성 건강 문제이면서 가장 터부시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불길하 게 여긴 역사가 있었기에 월경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려 생리현상의 ‘생 리’라고 부르다가, 이 같은 표현도 피하고 ‘그날’, ‘마법’으로 부른다. 외 국도 다르지 않다. 독일에서는 ‘딸기 주간’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선 ‘친 구가 왔다.’고 한단다. 또, 프랑스에서는 과거 영국과의 전쟁을 빗대 “영 국 군대가 상륙했다.”는 표현을 쓴다고....... 오래 이어져 온 이런 태도 가 월경을 부끄럽고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서, 생리대를 사면 일부러 검은 봉투에 담아 주거나 생리통을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기 어려워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교사들은 이 주제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특히 막막해한다. 위에서 말한 문화 속에서, 우리도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자랐고, 교육대학교 정규 교육 과정 안에서 성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에 관해 오해나 편견 없이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월경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당연하게 여기고 다루어야 한다는 관점 아래 월경과 관련된 정보를 나누는 수업이 필요하다.

2) 이렇게 수업해요
검은 상자에 손만 넣어 촉감으로 상자 속 물건을 맞히는 게임을 통해 수업에 대한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 상자 속에는 생리대, 탐폰, 월경컵, 월경팬티 등을 넣어 둔다. 모둠원 한 명이 만져 본 촉감을 다른 모둠원에게 공유하여 정답을 추측하게 해 보는 동안 월경 용품의 기능, 즉 폭신한 흡수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학생들이 월경 용품의 용어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면, 월경에 관해 배울 필요가 생긴 것이다. 수업을 진행할 차례다.
   성인이 낯설어하는 것과 비슷하게, 학생들에게도 낯선 주제다. 이럴때는 놀이나 퀴즈로 접근하는 것이 제격이다. ‘생리 모의고사’를 통해 월경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으면 좋다. 이를테면 ‘생리혈과 소변은 같은 곳에서 나온다’ 같은 OX 퀴즈부터 ‘생리혈은 흐르는 맑은 피, 핏덩이, 딱딱한 고체 중 어떤 형태일까요?’ 같은 선다형 문제를 제시한다. 월경 주기, 월경 기간, 생리대 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월경 지식을 쌓는다. 퀴즈를 진행하기 전에 ‘생리 안 해서 배울 필요 없다.’던 학생은 수업이 끝나고 묻는다. “그럼 우리 엄마도 생리해요?” 아, 이것이 현실이다. 같이 사는 가족이어도 이 정도로 모르고 지내고 있다.
   월경 모의고사를 보고 나면 학생들은 월경에 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월경 현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배울 차례다. 흔히 월경을 고달프고 짜증 나는 일로만 인식하기 마련이다. 물론 사실이지만 부정적으로만 여기는 건 월경을 오래 경험할 여성 청소년에게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월경이 자신의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일’임을 안내하는 것이다. 임신을 하면 엄마의 영양분이 태아에게 집중되는데, 월경은 임신하지 않았을 때 자궁을 깨끗이 씻어 내어 여성 인체에서 영양분이 골고루 기능하도록 몸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월경 전 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을 비롯하여 월경 관련 질병도 안내하고, 정보를 얻고 월경주기를 관리할 수 있는 앱도 소개한다. 일회용 패드, 면 생리대, 탐폰, 생리팬티, 생리컵 등 다양한 월경 용품과 사용 방법도 안내한다. 실물을 만져 보고 물에도 담가 보고, 흡수체가 얼마나 흡수하는지 살펴본다. 여건상 가능하다면 이 과정을 학생들이 조사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속옷에 붙이는 패드밖에 몰랐기에, 오래 앉아 공부하는 학창 시절에 피부가 쉽게 짓무르거나 불편감을 호소하는 친구가 적지 않았다. 보다 쾌적한 월경 생활을 위해 선택지를 넓혀 줄 필요가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월경 예절을 이야기 나누며 마무리한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해서 “얘 생리하나봐!”라고 공공연히 말하거나,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하냐?”같이 말하는 게 매너 있는 태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거나 알리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 하도록 존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함을 이야기 나누는 동안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자란다.
   또한 이 수업을 통해 월경 용품은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나면, 국어 교과와 연계하여 ‘보건복지부에 저소득층 대상의 월경 용품 보급을 제안하기’ 주제로 설득하는 글쓰기도 해 볼 수 있다.

세 번째 수업, 성폭력(가해) 예방 교육
1) 왜 필요한가
성범죄 가해자는 누구일까? 공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성폭력 예방 교육 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사용하곤 한다. 마치 모르는 이가 거칠게 다가와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성범죄 가해자는 가족·친족·또래 등 가까운 관계의 아는 사람인 경우가 모르는 사람인 경우의 3배 이상이고,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경우, 모르는 사람은 고작 5%에 불과하다. 그래서 단순히 ‘주변에 알리고 저항해라.’라는 구호는 현실과 맞지 않고, 약자일 확률이 높은 어린이에게 유효하지도 않은 대응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 수업의 강조점은 두 가지다.
   첫째, 성폭력은 대상보다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저학년 특성상 성폭력을 구별하기 어려워하고, 가해자가 자신과 친밀한 사람일 경우 그들의 행위가 성폭력일 수 있다는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성폭력을 다룰 때 ‘좋은 접촉 대 나쁜 접촉’으로 성 접촉을 구분하고 있는데, 본 수업에서는 ‘안전한 접촉 대 위험한 접촉’으로 용어를 대체한다. 그리고 위험한 접촉의 판단 기준을 마음 상태나 신체의 불안 반응으로 제시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언제든지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 준다.
   둘째, 성폭력 가해에 주목하고 저지하는 것이 성폭력 예방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간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는 흔히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아동 청소년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되기 쉬운 위치이기 때문이지만, 이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은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내가 저항하지 않아서…….’, ‘내가 상대를 따라가서…….’처럼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괴로워하며 성폭력 사실을 고발하지 못해 왔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가해를 예방해야 한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피해 상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문화를 지적하고,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주목하기, 가해 행위가 무엇인지 알기, 가해 행위를 목격했을 때 방관하지 않기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다만 성폭력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원치 않는 성폭력을 겪을 경우 대처하는 방안도 함께 안내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겐 잘못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두려워서 즉각적으로 행위를 거절하지 못하거나 주위 어른들에게 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한다.

2) 이렇게 수업해요
같은 동작이지만 표정, 자세 등으로 미묘하게 다른 상황을 보여 주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게 하며 수업을 열 수 있다. 이를테면 두 사진 다 껴안고 있지만, 한 사진에선 한 사람이 움츠러든 표정과 자세를 보이고, 다른 사진에선 평화로운 표정으로 기뻐하며 서로를 안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각각의 사진을 비교해 보며, 경계를 존중하는 접촉은 ‘안전한 접촉’, 경계를 존중하지 않아 기분이 나빠지고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 ‘위험한 접촉’임을 이해하게 한다. 즉, 몸과 마음의 신호를 알아차려서,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내 몸을 만지거나 보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거나 보라고 할 때가 성폭력 상황임을 알게 한다.
   사례를 통해 안전한 접촉인지, 위험한 접촉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의사가 청진기로 진찰할 때, 이모가 목욕하는 내 몸을 씻길 때는 성폭력일까요? 하고 묻는 것이다. 정답은 뭘까? 안전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다. ‘날 낫게 해 주려는 거구나 편안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아픈 곳도 아닌데 왜 자꾸 만지지? 이상해.’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고,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싫다고 말하거나 믿는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다양한 성폭력의 유형을 살펴보며 경계를 넘을 때는 ‘동의’가 중요함을 주지시키는데, 이때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게 될 수 있는 가해 행위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친구와 접촉하거나 타인의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일들은 흔히 일어난다. 사실은 명시적이고 흔쾌한 동의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음을 함께 이야기 나누면, 일상 속에서 성폭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학생들이 사전에 막을 수 있다.

3) 더 나아가기: 디지털성범죄 예방하기
관련하여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한다면 어떤 내용이 포함돼야 할까? 실제로 초등학교 교실에서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놀라웠던 점은 학생들이 이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온라인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주고받고, 재미를 위해 사진을 합성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즐거운 놀이로 여기고 온라인으로 사진과 영상, 링크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타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공유할 때 주의해야 할 태도, 즉 SNS 예절부터 차근차근 짚어 불법 촬영 범죄까지 이야기해야 학생들이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 촬영 가해 예방 포스터 만들기(2019)
출처: 강선초등학교 6학년 수업 사례


   ‘친구와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도 될까?’, ‘엄마가 내 사진을 SNS에 올려도 되나?’, ‘모르는 사람이 배경에 찍힌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을 땐 어떡하지?’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동의’에 초점을 두고 논의해 볼 수 있다. 이렇게 SNS 예절 수준의 상황부터 점차 확대해 가며 이야기 나누면 불법 촬영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역시 개인의 결정권을 침해하고, 일상의 안전을 깨뜨리는 인권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역시 ‘조심했어야지, 그래서 찍힌 게 누구래?’ 처럼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동의를 구하지 않은 가해자 잘못’에 초점을 맞추어 가해 행동을 저지하는 선량한 시민 편에 서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공식적으로 교실에서 교사와 함께 ‘방관자 되지않기’에 관해 공부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서 음란물 사이트를 퍼 나르거나 같은 반 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캡처하고 이를 품평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평소에는 친구 사이가 나빠질까 봐 말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수업 시간에 동의에 관해 배웠다면 ‘이런 거 하면 안 되지.’라고 말하기 쉬워진다. 방관자가 되는 걸 막는 것이다. 친구들이 호응해 주지 않는다면 성폭력이 될 수 있는 작은 신호들은 자라나기 어렵다. ‘방관하지 않으면 가해도 자라지 못한다.’ 는 점을 강조하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모두가 안전한 학교: 학급 운영과 학교 문화
성평등 수업이 끝난 뒤에, 바로 일상에서 실천하면서 비로소 진짜 배움이 시작된다. 성평등한 교실을 위해 교사는 어떤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 ‘성평등한 교실’이라면 학생들이 나답게 있을 수 있도록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필수적일 것이다. 일상 속에서 성평등을 실천하는 교실을 만들어 가기 위한 꿀팁을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2015 교육과정 중 범교과 학습 주제



1) 남자와 여자로 구분 짓고 역할을 나누지 않아요
“출석 번호대로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앞 글에서 언급한 대로, 이 구분에 따르다 보면 짝꿍도 남녀로 짓고, 체육 시간에도 무심코 남녀 팀으로 나누는데, 그러면 의도치 않게 성별 대결 구도가 돼 버려서 교사가 곤란함을 겪는다. 이런 구분이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5년 남짓의 시간 동안 계속된다면, 학생들은 점차 여자와 남자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서로 다른 존재라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사실 많은 연구는 집단 내 개인차가 집단 간 차이보다 크다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녀가 정말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교실 속 역할에도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체육부장은 남학생이, 환경부장은 여학생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심코 생각하면 ‘여자아이가 꼼꼼하고, 몸 쓰는 일은 남자아이가 더 잘해서’라고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교사나 보호자들에게 익숙한 성역할을 어린이들에게 기대하는 측면도 함께 고려해 보면 어떨까? 사실 엇비슷하게 발달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인데, 꾸미기나 섬세한 일은 여학생들이 잘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운동 시범을 보이는 건 남학생이 잘할 거라는 어른의 성 고정관념에 기반해 역할을 맡기는 일이 많아진다. 여자아이가 얌전하지 않으면 걱정하고, 남자아이가 활발하지 않으면 걱정한다. 여자아이가 글씨를 못 쓰면 염려하고, 남자아이가 운동을 싫어하면 염려한다. 이런 인식이 은연중에 어린이들에게 전달되고, 어른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강화된다. 고학년쯤 되면 서로 무척 다른 집단처럼 보이는 데엔, 보호자나 교사처럼 가까운 성인들의 고정관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모른다.
   ‘남자애들은 단순해서 싸우고 금방 화해하는데, 여자애들은 예민하고 교묘해서 대하기 어려워.’ 교사라면 한 번쯤 하거나 들어 본 말이다. ‘남자애들끼리 같은 모둠을 하면…….’, ‘여자애들은 체육 시간에…….’ 뒤에 이어질 말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고정관념이 모르는 사이에 어린이에게 전해지진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뇌는 구별 짓고, 범주화한 후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례는 쉽게 왜곡하거나 잊어버리는 성질을 가졌다. 어린이가 저마다 가진 다채로운 특성을 알아봐 주려는 번거로운 노력 대신, 고작 둘로 나눈 범주에 기대어 생각하는 일은 위험하다.

2) 학생의 경계를 존중해 주세요
경계 존중 수업 전후로 가장 중요한 건 교사가 일상에서 먼저 학생들에게 경계 존중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학생들은 교사, 양육자로부터 존중받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경계 존중 요구를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하는 성인이 많다. 잘 안 받아들여졌으므로, 본인이 거절해도 되는지 잘 모른다. 체육 활동 시 신체 접촉이 있을 때, 학생의 개인 사정을 물을 때, 또래 관계에 관해 대화 나눌 때 교사가 먼저 경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테면, 체육 활동 시범을 보일 때 당연하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잡는 대신 허락을 구하고, 학생의 허락 및 거절을 오롯이 수용하는 장면을 명시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생들이 ‘자신도 경계를 존중받지 못했을 때 어른에게 거절할 수 있다.’는 감각을 배울 수 있다. 학생의 프라이버시인 가정 상황 등에 대해 질문할 때도 학생이 원치 않으면 공개하지 않아도 좋다는 안내를 먼저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런 사소한 제안만으로도 학생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의사를 존중받는다고 느끼며 교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또한, 학급 홈페이지나 SNS에 학생의 사진을 올릴 때는 동의를 구해야 한다. 흔히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학기 초에 보호자의 동의 서명을 받아 두는데, 정작 학생의 의사는 묻지 않고 단체 사진을 공유하는 일이 많다. 찍기 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사전 동의를 구하고, 동의 얻은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게 되면 다시 동의를 구하고, 학생이 외부 공유나 게시를 원치 않으면 그 의견을 수용해 주면 어떨까? 그렇게 먼저 존중 받아 본 학생들에게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동의의 감각이 자랄 수 있다.

3) 외모 대신 행동을 칭찬해 주세요
가끔 어른들은 어린이를 이렇게 칭찬한다. “얼굴도 잘생겼는데 예의까지 바르네?”, “역시 글씨도 깔끔해, 얼굴만큼 예쁘네.” 외모는 타고난 부분인데 칭찬도 평가의 일종이라서, 타고난 것을 칭찬하는 일이 당사자에게도 주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당사자는 그 부분에 관심이 쏠리고, 주변인은 이를 비교로 느끼고 불필요한 열등감을 가질지 모른다. 청소년기는 자아 형성을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고유한 특성을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주면 어떨까? ‘예쁘다, 잘생겼다.’와 같이 외모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꼼꼼하다, 끈기 있다,’ 등과 같이 행동과 태도의 성장에 주목해 보면 좋겠다.

4) 성평등한 학급 규칙을 만들어 보세요
3월이면 교실마다 학급 안내판을 만든다. 남녀 학생 수와 함께 학급 단체 사진이 들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성별 인원이 꼭 필요한 정보일까? 성별과 개인 정보인 학생들 얼굴 대신 담임교사의 학급 운영 원칙을 넣어 보면 어떨까? 그 학급 운영 원칙 중 하나로 성평등한 학급을 지향한다고 안내하여 담임교사가 이를 중시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교실 내 성평등 문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학년은 토의를 통해 학급 규칙을 직접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때에도 교사가 학급 구성원으로서 성평등을 중시한다는 의견을 내면, 성평등은 학생들 스스로 1년간 주의 깊게 다루는 가치관이 된다.

5)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표현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 혐오 발언이 교실 안에서 표현되었다면, 침착하고 단호하게 즉각 개입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목격한 다수의 학생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구나.’라는 메시지가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로 진지하게 지도할 때는 무슨 의미인지 되묻는 것도 방법이다. “00을 무슨 의미로 사용했지요? 왜 욕설이나 비하처럼 사용하나요?” 명시적으로 행위에 이름을 붙여 본인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방법도 시도할 수 있다. “지금 00라고 했는데, 이는 00이라는 존재를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당사자가 들었다면 무척 상처가 되었을 거예요.” 나아가 교실에서 일어난 소수자 대상의 혐오 표현을 주제로 인권 교육을 할 수 있다면 더 좋다.

6) 다양한 양육자를 인정해 주세요
엄마의 양육 부담은 당연하지 않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보호자가 필요할 때 흔히 엄마를 호출한다. “엄마께 내일까지 싸인 받아오세요~.” 이렇게. ‘주로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니까 그렇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주로, 보통, 일반적으로’보다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기로 했으니까,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 보기로 한다. 또한,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고려하여 엄마, 아빠, 학부모보다 폭넓은 ‘보호자, 양육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비슷하게 녹색어머니회, 마미캅처럼 엄마들이 학교에 와서 학생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던 관행에 따라 붙인 이름도 녹색교통봉사대, 안전지킴이 등의 용어로 바꿔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학부모 상담에는 보통 어머니가 많이 방문한다. 어느 학교나 비슷한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양육과 교육은 어머니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교 방문을 앞둔 아버지가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상담해 보니 아버님들은 ‘유난스러운 아버지로 여겨지진 않을까?’, ‘회사에 아이 담임 면담하러 간다고 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걸로 생각하진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취지를 설명하고, ‘보호자 상담’으로 명명한 뒤 ‘2학기엔 아버님께서 오세요!’ 혹은 ‘1학기 때 안 오셨던 양육자분이 와 주세요.’라고 제안한다. “우리 아빠 바빠서 못 오는데요?” 했던 학생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아버님 혹은 다른 양육자분이 ‘아이에게 더 관심 가져야겠네요.’라고 생각해 보실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단, 1인 앙육 가정이 있는 학급에서는 좀 더 세심하게 계획하고 안내해야 한다.
   학기 초에 쓰는 학생 기초 조사서 한 장으로도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예전에 주로 쓰던 ‘학부형’이라는 단어는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이었다. 어머니보다도 집안의 남자인 형이 보호자로 불렸던 것이다. 이제는 학부모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엄마와 아빠가 아닌 보호자를 포괄하진 못한다.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 미성년자에 대하여 친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보호자’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 연락할 보호자란을 새롭게 만들었더니, 어머니 아닌 양육자가 우선 연락 받기를 바라는 경우가 1/5가량 된다. 학생일로 연락 드릴 때는 으레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었는데, 양식을 바꾼 뒤로 반성하고 바꿔 나가는 중이다. 본인은 ‘부모’가 아닌 양육자인데 조금 더 편하게 기초 조사서에 기입할 수 있었다고 상담 때 말씀해 주신 보호자분도 계셨다.

7) 교사 간 문화를 먼저 성평등하게!
학교에서는 학생을 함께 기른다. 성평등한 학급 운영을 위해서는 동료교사와 함께 성평등한 학교 문화를 먼저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교실 문을 열고 다른 반 선생님이 이런 부탁을 하시기 때문이다. “짐 옮기게 남학생 5명만 보내주세요.” 남성 일반이 여성 일반보다 근육이 크고 힘이 센 것은 ‘차이’이지만, 학교에서 충분히 함께 분담하여 해결할 수 있는 짐 운반 등을 ‘남자의 일’로 여기는 것은 성 고정관념에 기반한 ‘차별’적 생각이다. 이럴 때 그냥 웃어넘기기보다 동료 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짐 옮길 수 있는 학생 5명 손 들어 주세요!”라고 요구하곤 한다.
   아래는 내가 교직 생활하는 동안 들었던 말들이다. 어떻게 바꾸도록 요청할 수 있을지 궁리하며 읽어 보자.

“창고 책상 옮기게, 체육대회 준비하게 남교사들 모여 주세요.”
“어리고 예쁜 선생님이라 인기순으로 뽑힌 거예요, 시상 보조를 맡아 주세요. 교장 선생님의 퇴임식 축하무대 해 주세요.”
“정보부장, 체육부장은 아무래도 남자들이 해야지.”
“김 선생, 화장 안 하면 아이들이 안 좋아해요.”
“정 선생, 언제 결혼해요? 박 선생, 언제 아이 낳아요?”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언어문화를 바꾸자고 제안해 보자. 어렵다면, 웃는 등의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같이 노력하면 천천히 변화는 일어난다.

성평등한 교실 속에서 일어나는 학생의 성장
위에서 말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학생들에게는 어떤 성장이 있을까?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난다. 우리가 성평등 수업과 성평등 학급 운영으로 목격한 변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조금은 뻔뻔하게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나답게 수업’의 놀라운 효과이다. 내 글씨체 원래 이런데 뭐! 운동을 안 좋아하는 이 모습이 나인걸? 주변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안한 마음이 자주 보인다.
   둘째, 차별을 인지하고 정화한다. 학생들이 한 번 차별이 무엇인지 배우고 나면 다른 차별에도 좀 더 민감해진다. 평등하게 존중한다는 감각을 일깨우고 나면 교실 속 차별 언행이 잘 보이고 불편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지적하지 않아도 학생간에 조심스럽고 자유롭게 대화 나누며 차별을 스스로 정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
   셋째, 외모 비하와 그로 인한 사소한 다툼이 줄어든다. 친구를 놀리기 위해 외모를 비하 하는 경우가 많다. 장난으로 그러는 거라 화를 내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분은 나빠지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다툼이 잦아진다. 외모를 평가하지 않기로 약속한 학급에서는 외모를 농담으로 삼지 않고 서로 조심하기에, 흔히 담임교사에게 와서 토로하던 작은 불만이 줄어든다.
   넷째, 차이에 따른 배려로 이해심이 자란다. 성교육 수업 등을 통해 서로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이해해 주는 대화를 해 본 학생들에게는 존중의 씨앗이 자란다. 성별이 나와 달라서 몰랐던 것들에 관해 경청하는 경험은 이해심을 자라게 한다.
   다섯째, 성별로 가르지 않고 함께 어울린다. ‘여자애들이…….’, ‘남자애들이…….’하던 표현을 줄이고 성별보다 각자의 특성을 살리는 모습을 자주 보아온 학생들은 놀랍게도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낸다. 공차기에 익숙지 않은 여학생들에게도 규칙을 바꾸어 기회를 자주 주면 함께 축구게임을 하고, 교실 내 놀이 문화도 세심하게 살피면 성별 구분 없이 어울리게 할 수 있다. 여자/남자가 아니라 ‘우리 반 친구 ○○’로 서로를 바라보고 성별 간 경계를 허물고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여섯째,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해 나간다. 아무래도 사회의 다양한 성차별 이슈를 다루다 보니, 학생들이 교실 밖 세상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학생들이 평등과 존중의 감각을 갖고 세상과 자신을 연결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평등 교육은 분절적이고 지엽적인 지식 공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시민 교육임을, 수업해 나가며 깨닫는다.
나가기, 혹은 나아가기
초등학생 대상의 성평등 수업을 소개했지만, 이건 결국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상 속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이야기다. 성인지감수성은 많은 사람이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다. 자칫하면 ‘치우쳤다, 편향적이다, 갈등을 조장한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라 늘 균형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수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이것은 인권에 관한 논의다. 인권의 한 부분이면서 인권 그 자체이기도 하다. 곧 학교 폭력예방 교육이자 인성 교육, 관계 교육이라고 믿는다.
   더디지만, 학생들은 종종 기대를 뛰어넘는다. 그때의 성취감을 어린이를 곁에 둔 어른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목차
성평등, 교실에 닿다: 다양성과 예민함을 배우는 교실 꿈꾸기
모두를 위한 포괄적 성교육 시작하기: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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