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교실에 닿다:
다양성과 예민함을 배우는 교실 꿈꾸기
김수진
초등학교 교사,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오늘도 체육관에서 자연스럽게 들리는 저 말. 학생들을 두 줄로 정렬시키기 위한 체육 선생님의 외침이다. 못 들은 체하며 지나가 보려 하지만 두 줄로 열 맞춰 ‘보기 좋게’ 선 학생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젠더 갈등’이라 말하는 문제의 시작이 사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은 아닐까 생각하며.
  학교는 성별 구분이 강화되는 장치로 가득하다. 1학년 학생들은 하나같이 핑크색 가방과 파란색 가방을 멘채 학교로 등교한다. 운동장에 떨어져 있는 신발주머니를 보면 여학생 것인지 남학생 것인지 99% 추측할 수 있다.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스케치북에도 여아용, 남아용이 따로 있다. 문구 도매처에서 이미 그렇게 보내 주기 때문에 문제점을 인식 할 틈 따위는 없다. 여아용 스케치북을 받은 한 학생은 크레파스를 집어 들고 자신의 꿈을 그려 본다.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그림을 본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너 도둑 잡을 수 있어? 달리기 엄청 빨라야 해.”, “네가 도둑보다 힘세?” 학생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교사가 지나가며 한마디를 더한다. “여자애 글씨가 이게 뭐니? 또박또박 예쁘게 써야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교실 속 장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 순간이 젠더 구분과 맞서야 하는 번민의 현장이다. 하지만 일일이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교, 성별 구분이 강화되는 공간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는 교대에서 배운 4년의 교과 과정보다 십 수년 동안 학교에서 보고 자란 행태를 따라하기 급급했다. 그러니 출석 번호가 남자 1번, 여자 31번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했다. 게시판에 붙일 작품 이름표를 일일이 만들어 붙일 때도 굳이 분홍색과 파란색 두 색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보호자들은 상담 때마다 “우리 애가 여자애들하고만 놀아서 고민이다.” 라든지, “남자애가 너무 소심해서 걱정이다.” 라는 말들을 풀어 냈고, 나도 진심으로 걱정했다. ‘같은 동성 친구와 못 어울리면 안 되지, 남자애가 소심하면 사회생활 못하지.’ 라며. 나의 성별 구분 사례를 풀어 놓으려면 사흘 밤낮을 새도 부족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와중에도 여자애들끼리, 남자애들끼리 무리 지어 노는 모습은 또 싫어했다는 거다. 남녀 짝을 지어 놓아야 마음이 편안해졌고, 모둠을 구성할 때도 남자 셋, 여자 셋 비율을 맞춰야 좋은 협동 학습의 모델이라 믿었다. 그렇게 교실은 여자와 남자, 단 두 가지의 이름표만 존재하는 듯했다. 성별을 이용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분류하고 구분했다.
   여기까지 읽고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젠데?”
   교실이 이분법적 사고로 성별 구분을 강화하는 곳이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그게 문제라고 인식하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출석 번호가 남녀로 구분된 점을 문제 삼자 다음 해부터는 출석 번호를 여학생이 1번, 남학생이 31번인 것으로 바꾸겠다는 해답을 듣고 머리를 싸맸다. 남녀로 나누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 그냥 구분일 뿐인데 왜 차별이라고 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던 부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생들은 으레 여자 친구들끼리, 남자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논다. 이 무리 짓기에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선생님 남자애들이 때려요~.”, “아니에요, 여자애들이 먼저 욕 하고 도망갔어요.”라며 편 가르기. 둘째, 다른 이성과 친한 학생에게 “너 쟤 좋아하냐?” “너네 사귀냐?”는 말로 놀리기. 셋째, 동성 집단이 아닌 이성 집단과 노는 학생을 “저 XX 게이 같아.”라며 무리에서 완전히 배제하기.
   첫 번째 특징은 구분된 성별 범주를 통해 내가 속한 그룹을 편애하고 나와 다른 그룹은 배척하는 현상이다. 그 안의 개개인을 칭하는 것이 아닌 ‘남자애들’, ‘여자애들’이라며 그룹화하는 말은 교실에서 굉장히 자주 들린다. 예를 들어 “여자애들이 자꾸 때려요!” 라는 말에 속하는 여자애들은 전체 15명 중에 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수진이 다솜이 지윤이가 아니라 ‘여자애들’이라고 명명된다. 나와 다른 성별을 싸워 이겨야 하는 다른 팀처럼 여기며 그렇게 교실은 점점 반으로 갈라진다.
   두 번째 반응은 관계 맺기와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녀 간의 친밀함은 ‘애인’일 때만 형성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남녀 간에 친구가 어디 있냐는 이성애 중심의 고정관념은 차치하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상황 자체가 배제된다. 친구로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서로 좋아하거나, 짝사랑하는 ‘대상’으로 상대를 인식한다. 이는 일상적인 성적 대상화가 전제되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가치를 연애가 가능한지 아닌지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특징은 성 소수자 혐오와 함께 왜곡된 남성성(혹은 여성성)의 문제가 함께 드러나는 상황이다. ‘게이 같다’는 말은 남자끼리 놀지 않거나 일반적인 ‘남성성’을 수행하지 않았을 때 집단에서 배척하는 용어로 사용된다(그 학생의 실제 성적 지향과는 상관없이 칭해진다). 일반적인 남성성, 예를 들면 운동을 좋아하거나 잘해야 하고, 남자들끼리 무리 지어 몰려다니며,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함께 음란물을 공유하는 형태의 끈끈한 우정에 공감·동조하지 않는다면 같은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성별로 무리 짓기는 성별 구분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이며 이 범주를 통해 학생들은 서로를 사회화시킨다. 여자아이는 더 ‘여자아이’처럼, 남 자아이는 더 ‘남자아이’처럼 자란다. 작은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 는 벽으로 자라난다. 사소하게 생각한 성별 구분은 성역할이 되고, 차별 이 되고, 혐오가 된다.
OUTSIDE OF THE BOX,
고정관념 깨기로 시작하는 성평등
반으로 갈라진 교실을 보며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내가 경험한 차별을 학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는게 더 적절 할 것 같다. 차별적인 가치관과 문화를 답습하는 교실을 보며 시급한 문제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만 12세 이전의 어린이들에게 사회구조적 억압과 권력 관계를 논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겨우 우리 동네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3학년에게, 인권이라는 단어가 뭔지 처음 배운 5학년에게 젠더 불평등과 부정의함을 어떻게 논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로 인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차별은 성별 구분으 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꼭 필요했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토론하는 교실을 상상했다.
   그래서 조금은 단순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학생 입장에서 주변의 고정관념이나 차별을 인식하고 조금 더 예민하게 바라보는 건 할 수 있지않을까. 그래서 성 고정관념을 깨고, 젠더 감수성을 기르는 것에 목표를 두고 수업을 만들기로 했다.
   아웃박스는 이 같은 고민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 5명이 모여 만든 교사 모임이다. 성평등 교육을 정의하고, 자료를 개발하고 공유하며 활동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어 간다. 아웃박스라는 이름에 교육의 목표이자 목적이 담겨 있다. 박스에서 벗어나 성 고정관념을 깨고 ‘나다움’을 찾아 가는 것. 더 나아가 단단한 세상을 향해 ‘이거 좀 이상한데?’라고 문제를 던지며 균열을 만들어 내는 시민이 되는 것.
   2020년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성평등 교육환경 조성 및 활성화 조례에서도 성평등 교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개인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바탕으로 성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해소하고, 성평등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여 성적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와 감수성을 배양하며, 성평등을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교육...”1)

   너무 당연한 내용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공교육을 담 당하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이 뻔한 내용마저도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이다. 사회에서는 학교 밖에서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끊임 없이 ‘교육’이 해답이라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는 연간 51시간 이상의 안전 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고, 3학년의 생존 수영이 필수 교육 시간으로 확보되었다(참사가 학생들이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을 맞아 6학년 실과 시간에는 코딩 교육이 의무화 되었다. 학교폭력예방 교육, 자살예방 교육, 영양 교육, 인터넷중독예방 교육, 학생인권 교육, 다문화 교육, 통일 교육, 노동인권 교육, 장애인식 교육, 환경 교육, 독도 교육까지. 각종 법령과 자치 법규를 통해, 학생들에게 교육하라며 교육과정에 욱여넣는다. 하지만 이 많은 교육 중에 놀랍게도 성평등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평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을 갈등 요소로 취급하며 민원이 들어올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성평등 교육이 세뇌고 사상 교육이라며 절대 악 취급을 한다. 국민 청원에는 성평등 교사 모임의 배후가 수상하다며 ‘페미니즘을 주입하는’ 교사 단체 활동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온다. 배후 없이는 저런 ‘이상한’ 교육을 절대 할 리가 없다는 거다. 그 배후로 전교조와 여가부를 언급한다. 얼토당토않은 이 청원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게 성평등 교육의 현실이다.
성평등 교육, 언제 해요?
성평등 수업을 한다고 하면 매번 받는 질문이 있다. 성평등 교육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냐는 것이다. 사실 수업 자체보다 수업 시간 확보와 운영 방안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공교육에서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수업이 이루어진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크게 교과와 범교과 학습 주제로 나뉜다. 먼저 교과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교과별 성취 기준을 통해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 제시된다. 예를 들어 5·6학년군 국어 읽기 영역에는 <글 을 읽고 내용의 타당성과 표현의 적절성을 판단한다>라는 성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성취 기준에 따라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수업이 진행된다. 초등학교 교과별 성취 기준에서 ‘양성평등’, ‘성평등’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국어 시간에도, 사회 시간에도, 도덕 시간에도 공식적으로 성평등을 주제로 수업을 받을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인권이나 가족을 다루는 성취 기준을 통해 성평등을 ‘자연스럽게 녹여서’ 가르쳐야 하며, 실제로 성취 기준에 따르면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시간이라도 성평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다.
   그렇다면 범교과 학습 주제는 어떨까? 범교과 학습 주제란 국가·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학습 내용으로, 교과와 창의적 체험 활동 등 학교 교육 활동 전반에 걸쳐 다루도록 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안전·건강 교육, 인성 교육, 진로 교육, 통일 교육, 독도 교육 등 10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 ‘양성평등’은 인권 교육의 하위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법규나 조례 등으로 성평등 교육을 몇 시간 하라는 필수 의무 시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2022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이 발표되었다.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성평등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2015 교육과정 중 범교과 학습 주제

출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2)



   그럼 성평등 교육, 도대체 언제 할 수 있는가? 법령에도 없고, 교과서에도 없는 성평등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수업 재구성’ 작업이 필요하다. 수업 재구성이란 교사들이 교실의 환경이나 학습자 수준을 고려하여 교실에 필요한 수업을 자율적으로 수정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성취 기준에 따라 주제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말한다. 수업 재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앞서 제시한 <글을 읽고 내용의 타당성과 표현의 적 절성을 판단한다>라는 성취기준은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정보와 표현 판단하기>라는 광고 읽기 단원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 단원에서 교과서에 제시된 광고 대신 성차별이 드러난 광고를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직접 문제점을 파악하도록 과제를 제시했다. 학생들은 직접 광고를 보며 차별적인 표현을 찾아 비판하고, 더 괜찮은 표현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을 거쳤다. 더 나아가 실제 광고를 찍어 보기도 했다. 실제로 수업에서 라면 광고의 ‘사나이 울리는’이라는 문구를 ‘모두를 울리는’, ‘남녀노소 맛있는’이라고 수정해서 광고를 찍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업 하나를 재구성하는 데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한다. 성평등 교육을 하기 위한 수업 재구성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인 교실에서 성평등 수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교사들이 모여 수업 자료를 개발하고 공유하고 있다. 그렇게 선생님들과 함께 만든 수업 중에 나누고 싶은 수업 몇 가지 를 소개한다.
예민함을 배우는 성평등 수업
첫 번째 수업, 박스 열기
초등학교 성평등 교육의 목표는 성 고정관념을 인식하고, 성인지감수성을 함양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수업 주제는 ‘성 고정관념 인식하기’이다. 학생들은 이미 성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이 당연함을 깨고 내 안의 박스를 열기 위한 작업은 성평등한 교실을 만들기 위한 필수 작업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학생들은 아직도 성별 구분과 고정관념 가득한 말을 들으며 자란다. 어떤 말들을 들어 왔는지 고정관념 박스를 실제로 만들어 보기 위해 학생들이 들은 말들을 적어 성별 박스에 붙여보니 대형 박스 겉면을 가득 덮고도 남았다. 붙어 있는 말들은 보호자를 통해, 학교나 학원 선생님을 통해, TV나 유튜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된 것들이었다. 제도적으로는 차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직까지 성별 구분에 의한 성역할과 차별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을 습득한다.

고정관념으로 뒤덮인 박스 겉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나다운’ 말들이 담겨 있는 박스 안쪽 면
출처: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박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될까,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그리고 학생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직접 적어 박스 안에 붙였다. 박스를 열고 나오기 위해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나다움’이 보이는가?
    박스만 볼 때에는 그 안의 내용물이 모두 같을 것이라 쉽게 판단해 버리지만, 사실 박스 안에는 가지각색의 다채로움이 담겨 있었다. 민서는 ‘나는 얌전한게 싫다. 여자라고 소리지르지 말라는 것도 싫다.’라고 적어 박스 안에 담았다. 우현이는 ‘남자는 울어도 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렇게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본인이 가장 편안할때는 언제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마무리되는 이 수업으로 위계와 억압에서 벗어나 ‘나’를 인식하는 순간이 되길 바랐다.

    성 고정관념 인식하기 수업 하나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남자가 무슨 핑크냐?”,“여자는 운동을 못하지.”같은 말은 점차 줄어들고 “그건 고정관념이야.”라며 서로의 말을 점검한다.

두 번째 수업, 집안일은 누구의 일인가요?
서로에게 붙어 있던 성 고정관념이라는 이름표를 인식했다면, 이 이름표로 성역할이 어떻게 부여되는지 알아본다. 전통적 성역할 과업이 수행되는 가정을 통해서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재택 근무나 온라인 수업등이 확대되면서 가사 노동은 더욱 늘어났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외벌이 가정의 경우 집안일은 온전히 주부인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고, 이 인식은 맞벌이 가정인 경우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실제 집안일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외벌이인 가정에서 가정주부인 엄마를 향해 ‘우리 엄마는 집에 누워만 있는다, 맨날 TV만 본다.’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가사 노동 수업은 집안일을 그래프 형식으로 표현해 보고, 집안일로 인해 힘들어하는 당사자에 공감하며, 집안일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할 일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활동은 집안일 그래프 만들기이다. 이 활동을 통해 자기 집에서 해야 하는 집안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누가 하고 있는지 알아보게 된다. 학생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누어 주고, 포스트잇 한 장 한 장에 본인 집에서의 가사 노동을 적어 보게 한다. 설거지, 밥하기, 장보기, 분리수거, 공과금 납부, 빨래하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숙제 검사하기, 강아지 산책시키기 등 생각나는 것을 모두 함께 이야기하고 포스트잇에 적어 보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가사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특히 육아와 관련된 집안일의 경우에는 더 떠올리기 어려워하므로 다양한 예시를 칠판에 적어 가며 참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제 앞에서 쓴 집안일 포스트잇을 자기 집 구성원 중 누가 하고 있는지 막대그래프 형태로 붙여 나타낸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가족 구성원, 세로축은 집안일 개수를 의미한다. 실제 같은 포스트잇 한 장이라고 같은 노동의 시간이나 양을 뜻할 수는 없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가사 노동의 정도를 가시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활동을 할 때는 혹여나 가족 구성원이 드러나 당혹스럽거나 상처받는 학생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을 엄마 아빠 대신 A, B, C 등으로 표시한다. 이렇게 각자 만든 그래프를 모둠원들과 비교해 보며 가사 노동의 분담 정도가 얼마나 유사한지 혹은 상이한지 살펴볼 수 있다. 어느 가정은 구성원 한 명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느 가정은 비슷하게 나누어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활동을 진행하고 나면, 집에 있는 사람이 ‘노는어른’이 아니라 가정생활 유지를 위해 다수의 집안 일을 해 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어지는 활동은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돼지책(Piggy Book)』을 읽고 진행하는 가상 인터뷰 활동이다. 이 활동은 핫시팅(hot seating)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구성원 중의 한 명이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의자에 앉아 청중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인터뷰 형태의 활동을 뜻한다. 『돼지책』은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엄마의 어려움을 그린 그림책이다. ‘너무 중요한 회사’와 ‘너무 중요한 학교’에 다니느라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아빠와 아들들을 향해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외치며 가사 노동의 어려움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책을 읽고 그림책의 인물들에게 묻고 답하는 가상 인터뷰를 통해 가사 노동의 힘듦에 공감하게 된다.
    학생들은 피곳(Piggott) 부인에게 “왜 집안일을 계속 참으며 혼자 다 했나요?”, “왜 집을 나갈 때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를 쓰셨나요?” 와 같은 질문을 던지거나, 피곳씨와 아이들에게는 “왜 집안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즐겁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지막 활동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변화를 실천하는 시간이다. 본인 가정의 상황을 살펴보았고, 그림책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지 반추해 보는 것이다. 가사 노동 실태 조사 그래프 등을 살펴보며 ‘집안일은 여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이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개인의 문제나 본인 가정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접근한다. ‘우리 집은 아닌데요?’라며 외면할게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임을 깨닫고, 가사 노동이 모든 가족 구성원이 분담해야 하는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수업은 처음 활동에서 만들었던 집안일 그래프를 집에 가져가서 가족 구성원 회의를 통해 수정해 보는 과제를 내주며 마무리된다. 집안일 그래프 항목을 포스트잇으로 붙였던 이유는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기 위함이었다. 가족이 함께 집안일 분담 문제를 공유하고 이야기해보며 수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실천될 수 있기를 바랐다.

세 번째 수업, 외모 긍정하기
고학년이 될수록 외모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자기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학생이 많아진다. 사회에서, 미디어에서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몸이나 외모를 소개해 보라고 하면 내 눈은 너무 작고, 뱃살은 통통하고, 머리숱이 부족하다며 나노 단위로 본인의 몸을 평가하는 학생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같은 외모 소개 활동에서 남학생들은 ‘다리가 튼튼하다, 시력이 좋다.’ 등으로 서술한다. 여학생들이 미의 기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의 몸을 재단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은 기능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외모 강압 혹은 부정은 여학생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중학생이 되자마자 쌍커풀 수술을 하겠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TV 속 트와이스, 블랙핑크 같은 예쁜 아이돌의 모습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을 찾는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급식을 거르고 거울만 들여다보는 학생들의 외모 강박은 현재 진행 중이다.
    외모 긍정 수업은 미술 감상 수업으로 진행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는 화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의 <나 나> 시리즈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작가가 표현하는 의도를 함께 고민하는 수업이다. 니키 드 생팔은 열한 살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못해 우울증을 얻었다. 그는 증상 완화를 위해 미술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술 치료를 통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니키 드 생팔, <표적: 가장의 죽음 La mort du patriarche>, 1962
출처: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3)



    그의 초기작은 캔버스에 붙인 물감 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흘러내리게 표현하는 ‘슈팅 페인팅(shooting painting)’ 기법으로 그려졌는데, 이를 통해 내면의 분노와 저항심을 표출했다. 그러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발견하며 조금씩 내면의 평안함을 찾아간 생팔은 <나 나> 시리즈를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보편적인 여성상, 미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도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생팔이 만든 <나 나> 시리즈에는 ‘미의 여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는 영 거리가 멀어 보인다. 활기차고 역동적인 나나를 통해 다양성과 외모 긍정, 그리고 즐거움을 전달하며 모든 여성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며 작가의 의도를 상상해 보고, 감상이 끝난 후 작가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활동을 진행한다. 니 키 드 생팔의 삶이 반영된 작품을 보고 학생들도 이를 오마주하여 자신의 한계나 고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극복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니키 드 생팔, <절제 La tempérance>, 1985
출처: Sprengel Museum 4)


   기존 니키 드 생팔의 나나를 모방하여 평면 회화에 채색을 다르게 하는 수준부터 자신이 선택한 재료로 완전히 새롭게 창작해 내는 수준까지, 교사는 최대한 많은 예시를 제시하여 아이들의 창작 의욕 및 표현력 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한 학생은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제목과 함께 예쁘게 꾸며 내는게 아니라 덩치가 크면 큰 대로, 머리카락이 짧으면 짧은 대로 그리려고 했다며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외모 긍정 수업 후 학생 작품
출처: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한 번의 수업으로 외모 긍정이 실현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가 정한 몸에 관한 기준과 잣대를 돌아보고, 내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기보다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중학생이 되면 쌍커풀 수술을 해야겠다는 결심 대신에 말이다.

네 번째 수업, 혐오에 대항하기
교실 속 혐오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와 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혐오, 혐오 표현이란 단순히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내가 학생 때는 ‘애자야!’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곤 했다. ‘장애자’에서 앞 글자를 빼고 사용하는 말이었다.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너 애자냐?”라며 비꼬거나 조롱하는 농담으로 흔히 쓰였다. 무언가 실수하는 사람을 장애에 빗대어 혐오 하는 동시에, 장애인 자체를 차별하는 혐오가 동시에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럼 요즘은 어떨까. 사회적 약자를 향한 표현들, 차별적인 표현을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일은 계속해서 이어지며 그 형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 5)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사람은 64%에 달한다. 평균 10명 중 6명 이상이 혐오 표현을 경험할 정도로 이제 혐오 표현은 일상생활 속에 만연해 있다.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부터 여성, 이주민, 성 소수자, 난민,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노인에 대한 혐오 표현까지 모든 시민이 혐오 표현의 발화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다.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결정 장애, 암 걸릴 것 같다, 김 여사, 맘충, 흑형, 헬린이, 잼민이’와 같은 단어가 농담처럼 던져지고 번진다. 단순히 어떤 단어를 금지하고 사용하지 말자고 하는 것을 넘어 혐오 표현이 무엇이며 왜 문제인지 다양한 상황을 통해 제시하고, 함께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묘한 혐오를 함께 발견하고, 혐오 표현이 단순히 개인의 기분 나쁨 이나 불쾌함을 유발하는 문제를 넘어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불평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선택 게임’ 형태의 수업을 진행한다. 특정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해 보고, 내 선택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식당 사장이다. 그런데 오늘 식당에서 4살짜리 아이가 뛰다 가 화분을 깨뜨렸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상황에서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1) 역시 아이들이 문제다: “내일부터 우리 식당은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다.” 2) 아이니깐 그럴 수 있다: “주의 표지판을 만들어 화분 옆에 두어야겠다.”

    두 선택지 중에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 한다. 위 상황은 약자인 아동을 향한 차별이 교묘히 숨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식당 사장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면서, 경제적 논리라면 노 키즈 존을 시행해도 문제가 없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혐오가 담긴 여러 상황에 대해 모둠원끼리 짧은 토론을 진행하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결정한다. 제시된 각각의 상황에는 어린이, 장애, 외모, 성별, 인종 등의 혐오가 숨어 있다.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은 매우 격렬하게 토론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꽤나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고 생각한 문제들을 바로 찾아냈다는 점이다. 위의 상황에서도 “아 1번 이 안 좋은 거잖아. 1번을 어떻게 주장해.”라며 어떤 대답이 잘못인지 지적했다. 어른들은 못하는 걸 학생들은 바로 해내는 걸 보고 조금의 희망을 엿보았다.
    모든 상황을 토론했다면,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와 선택을 되돌아보며 혐오와 차별의 순간이 있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식당을 노 키즈 존으 로 하기로 결정했을 때 아동의 어떤 권리가 침해되는지, 어떤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1차 선택에서 선택에 따른 개인 점수가 있었는데, 다시 되풀이할 때는 그 선택에 차별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모둠(사회) 점수가 깎이게 된다. 그리고 개인 점수와 사회 점 수를 비교해 본다. 어떤 모둠에서 개인 점수가 높았더라도 차별적인 선택을 했다면 사회 전체의 점수는 낮아졌음을 확인하며, 이 점수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본다. 별 생각 없이 했던 결정이, 혹은 오히려 합리적 이라 여겼던 선택이 누군가에게 차별로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닫고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한다.
    이 수업을 하고 난 후 학생들은 더 이상 병신, 장애와 같은 단어를 욕처럼 쓰지 않았다. 일부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잼민이, 게임충, 급식충과 같은 단어를 불편하다고 말했다. 특정 단어를 쓰지 말라는 규제를 하지 않아도 그 단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단어를 썼을 때 누가 차별을 받는지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것이다.
우리의 교실은 더 다채로울 수 있다
성 고정관념, 성역할, 외모 긍정, 혐오 표현을 주제로 했던 네 가지 수업 을 소개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성평등 관점으로 사회의 각 영역을 바라보고 분석했다. 그림책 『오, 미자』를 읽고 여성 노동 인권을 조망하며, 영화 ‘우리집’ 을 보고 가족 공동체의 의미를 확장 하고 논의했다. 미디어에서 외모 평가와 성적 대상화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론하고 건강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학생들이 본인들의 양육자를 인터뷰하며 왜 출산 후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적 맥락을 인식했다. 개인의 의식 변화를 넘어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 변화에 동참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성평등 수업을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시간을 확보하고, 학교와 보호자를 설득하고, 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당연함에 균열을 내는 일은 체력과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다. 계급 불평등, 젠더 간 위계와 억압의 메커니즘을 만 13세 이하의 학생들과 나누기 위해 수준을 조정하고 수 업을 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준비한 수업이 모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또다시 혐오 표현을 ‘농담’처럼 던지는 학생들의 해맑은 표정을 보며 잠시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평등한 교실’로 1년을 지내다 보면 점차 변화가 눈에 보인다. 남자끼리, 여자끼리 대신 마음 맞는 친구와 팀을 구성한다. 갈등이 생겨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하는 말을 건넨다. 서로를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차별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도대체 “왜” 그러냐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교실의 이 작은 변화가 사회를 뒤흔들 힘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의 교실은, 우리의 사회는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다.
목차
성평등, 교실에 닿다: 다양성과 예민함을 배우는 교실 꿈꾸기
모두를 위한 포괄적 성교육 시작하기: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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