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사회·문화적 구성:
다문화 교육과 장애
조주희
고려대학교 세종교양교육원 연구교수.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아프리카 교육을 연구하는 70세 정도 되신 교수님의 발표를 들으러 가게 되었다. 발표자를 소개하는 팸플릿에 노란 버스가 S 자로 그려진 시골길을 달리는 그림이 배경으로 있었다. 그분이 고향에서 아주 오랫동안 스쿨버스 운전사로 일하셨다는 설명이 있었다. 당시에 먼지로 뒤덮인 길을 오랫동안 다니셔서 눈을 다치게 되었고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거의 눈이 안 보이신다고 했다.” 1)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던 친구는 팸플릿에 적힌 교수님의 소개가 농담이거나 조금은 과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친구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그런 장소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은 대개 실패할 것이라고 가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상상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나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악한 실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그의 저서 <스티그마: 손상된 정체성의 관리에 대한 소고>에서 ‘신체적으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은 전과자, 민족적·인종적 소수자, 정신 질환자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사회적으로 평가 절하된 위치를 점하게 된다.’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낙인이 찍히게 된 개인은 그 구성원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그 사람에게 투사되는 다양한 은유적 형태의 모욕적인 언어를 포함한 차별과 배제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경멸을 쏟아부을 때 쓰는 ‘병신(病身) 같다’는 말에서 ‘병신’은 ‘불구’와 같은 용어로 신체에 손상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런데 요즘 상대방을 모욕할 때 자주 사용되는 ‘병신’은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할 때 사용했던 용어일까? 아니다.

장애의 사회적 구성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대개 역사적·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각사회 집단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조선 시대 때 ‘병신’이라는 말은 몸에 병(病)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지, 신체에 손상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었다. 또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장애인(the disabled)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방대한 양의 자료를 기반으로 장애인의 역사를 탐구한 정창권은 과거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모든 유형의 장애인이 존재했지만 사회가 이들에게 투사하는 모습이 현재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료를 제시하며 보여 준다. 2)

   조선 후기 풍속 화가인 김준근이 그린 ‘병신’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다양한 유형의 신체적 손상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료는 근대 이전에 몸에 병을 가진 사람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더 자유로웠다는 사회적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음이 여러 사료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김준근, <병신>, 조선말기
출처: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


피터르 브뤼헐, <절름발이 The Cripples>, 1568
출처: 루브르 박물관


피터르 브뤼헐, <맹인의 우화 The Blind Leading the Blind>, 1568
출처: 나폴리 카포디몬테(Capodimonte) 국립 박물관



   16세기에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은 자연과 농민의 생활을 풍속화의 형태로 그려 낸 화가였다. 1568년 벨기에의 사회상을 보여 주는 그의 그림을 통해 당시에 걷지 못하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은 절름발이(the crippled)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맹인(the blind)이었지, 지금과 같이 장애인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근대 자본주의와 장애 4)
장애는 당시의 사회적 구조와 관행에 의해 손상을 가진 사람에게 부여된 활동의 제한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18세기 말 산업의 발달은 모든 노동자에게 장시간 동안의 표준화된 숙련도, 속도, 강도의 노동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손상을 지닌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이들은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갖게 되었으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포함한 경제활동에서 배제되어 갔다.
   이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의 의존성에 대한 해법을 의료화에서 찾게 되는데, 이것은 경제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수용 시설의 한 형태인 특수학교 설립을 통한 장애 아동의 치료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노동력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데 미래의 복지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올바른 투자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장애는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범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고려되고 ‘고쳐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치료되기 전에는 불필요한 인간이라는 메시지는 손상으로 인한 모든 ‘차이’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존 칼라한(John Callahan)은 사지마비를 가진 남자 만화가로 장애 차별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다리가 3개인 사람은 ‘정상’이고 2개인 사람은 ‘비정상’으로 묘사되는데, 장애는 사회가 가진 각기 다른 문화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표준에 관한 기준과 정상에 관한 문화적 기대는 사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장애에 관한 정의는 객관적이거나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5)

존 칼라한의 만화
출처: John Callahan(1990) 6)

장애의 문화적 구성
근대 자본주의와 장애
우리는 장애를 대개 일상적인 활동을 제약하는 생물학적 또는 신체적 손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서양의 의학적 관점에 기반을 둔 것으로, 객관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장애에 관한 인식이 사회들 간에 차이가 있으며, 문화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증거들이 다양한 종족 사회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르네오 중부 푸난바족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거나 비가시적인 존재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분리되어 살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손상을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것이지 입에 담을 수 없거나 숨겨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다. 푸난바족은 서구사회에서 중요시하는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 또한 중요시한다. 따라서 신체적·정신적으로 손상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기의 몫을 수행하며 사회에 속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또 다른 예로 케냐 마사이족은 장애인을 ‘어색하고 느리며 힘들게 걷는다.’는 의미의 ‘도마뱀’이라는 용어로 일컫는다. 쉽게 걸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몸에 손상을 가진 아이는 ‘불운을 지닌 아이’를 뜻하는 ‘엥고키(engoki)’라는 용어로 일컫는다. 마사이족에게 손상은 신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조건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고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둘러싼 사람들이 대개 가지게 되는 “왜 나에게 장애가 생겼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왜 장애가 생기게 되었나?”라는 질문을 공동체에 던진다. 다시 말해서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일과 사회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장애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탐색을 통해 찾고자 한다.

장애의 타자화 7)
우리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일터와 사회적 활동에 온전히 참여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개입하며 그들을 배제한다. 아래의 내러티브는 대부분의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강력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따라서 대개 신체적 손상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사회에 의해 부정적인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다.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낙인화란 장애의 실체라기보다는 장애로 인해 생겨나는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그 사람이 가진 신체적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가진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에 덧붙여진 두려움이다. 장애에 대한 두려움은 장애인의 삶이 비극적일 것이라는 다양한 사회적 압박에 그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

“사람들은 네가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만약 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배웠고, 그것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픔 속에서 성장하면서 찾게 되는 삶의 진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 인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질병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면, 그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조주희 2021, 120)”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매우 다양한데, 그것은 ‘불쌍하다’ 또는 ‘의존적이다’와 같이 많은 부분 부정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는 대개 고통스러운 무언가로 상징화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르다’고 규정되고 이들은 ‘정상인’과 구별지어진다. 장애를 제대로 보여 주는 재현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문화적 기대가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주체로 볼 수 없으며, 장애인은 언제나 타자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적인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비장애인은 장애를 보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장애인에 대해 거부감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화 다양성의 관점에서 장애를 정상적인 차이로 이해하고, 이들 집단의 가치를 소수 문화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장애인이 가진 차이의 경험에서 오는 다른 종류의 관점은 우리 사회의 지식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장애인을 개인적인 불운을 겪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장애의 가치를 이해하는 비장애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을 통해 의식적으로 장애의 다양성에 관해 올바른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양성으로서의 장애에 대한 교육사회학적 이해 8)
교육학 분야에서 장애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장애 차별적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가절하되는 가치인 장애로 인한 차이, 의존성, 수동성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애인을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시민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장애를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이해하면 장애인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과 함께 탄생했으며 장애란 그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조화되고 문화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9)
   교육사회학자들은 학교교육에서 발견되는 장애 지식에 관한 불가시성(invisibility)에 대해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시각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삽화에 대한 비판적인 탐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함으로써 인간을 사회화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학교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은 사회의 문화적 가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전달 된 지식은 기존의 사회질서와 지배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소수의 문화 그리고 비주류를 배제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 사회가 가진 정상성 헤게모니는 정상적인 몸과 엘리트 문화의 의미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인은 사회문화적으로 배제된다. 10) 그리고 이러한 정상성 헤게모니는 장애에 대한 환상과 신비감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타자화에 이바지한다. 11) 시각적인 이미지에 관해 비판적으로 탐구한 수전 손태그(Susan Sontag) 12) 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유쾌하게 즐기고 있는 사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을 본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불행하리라고 상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사진은 우리에게 현실을 가리는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무엇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알려 주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본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각적인 이미지가 전달하는 지식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다이엔 아버스, <무제 6 Untitled 6>, 1970-71
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3)



차이로서의 장애 장애인이 가진 차이는 그들 자신에게는 신기하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관점과 지식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다. 14) 그러나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의 다른 삶이 단순히 호기심이나 온정의 대상이 아니라 차이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신경학자였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는 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한 범위에서 벗어나서 ‘비정상’으로 규정한 사람들의 차이의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에 관한 글을 우리에게 많이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색스는 자폐증을 가진 ‘자연주의자 화가’ 호세(José)와 같은 인물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을까라는 안타까운 의문을 던진다. 호세는 한 번 본 그림을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 능력으로 인해 ‘인간 복사기’로 불렸다. 그러나 색스는 그가 단순히 이미지를 대상으로 옮겨 그리는 것을 넘어 거기에 자신만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부여함으로써 독창적인 그림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호세, <카누를 타는 사람>
Oliver Sacks(2015) 15)

아래의 그림은 호세가 위의 사진을 보고 옮긴 것인데 원래의 이미지에 없는 극적인 요소가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배를 타고 있는 인물들은 호세에 의해 무엇인가를 하는 능동적인 인물들로 그려진 것으로 그만의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색스는 이것이 자폐증을 가진 사람은 외부의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립되어 살아갈 수 있으나, 동시에 독창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 한다. 색스는 장애를 단순히 의학적 관점에서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인간이 가진 차이로 바라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상’에서 벗어나는 차이가 불이익이 되는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차이의 가치가 얼마나 쉽게 우리 사회에서 무시되고 있는지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나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여성인 정지음은 스트라테라(Strattera)와 콘서타(Concerta)라는 약물치료를 받게 되면서 현실감이 생기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일할 수 있게 된 반면, 딴 생각들이 차단되어 공상에서 오던 즐거움과 재미도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16) 그녀의 경험은 장애를 단순히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정상적 차이로 규정하는 문화 다양성에 관한 사고방식이 우리사회에 필요한 이유를 잘 드러내 준다.
나가며: 다문화 교육과 장애
장애로 인한 차이를 가치 있게 바라보는 문화 다양성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에 어떤 함의를 주게 되는 것일까? 장애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관점은 장애로 인한 차이를 없애는 결정을 올바르다고 여긴다. 반면에 장애를 차이로써 가치 있다고 보는 관점은 인간의 기능적인 불완전함을 가치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본다. 장애로 인한 신체적인 한계와 차이에 따른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삶이 언제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는 장애를 가지고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진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장애인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배우지 못하고 매일 종일토록 블록을 쌓는 재활 교육만 받았다면 그가 가진 차이는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17) 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지식과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비장애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기까지 모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경험과 지식이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다문화 교육이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장애의 사회·문화적 구성: 다문화 교육과 장애
인간의 보편성과 다양성: 가치 획일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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