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1> Brahms, J. (1985). Piano Quintet f-minor, op.34 2nd mov. (Andante un poco adagio). Ed. Eulenburg.
브람스 피아노 5중주를 리허설하기 위해 모인 첫날이었다. 다채로운 사운드가 입체적으로 교차하니 연습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서로 간의 악절이 충돌하거나 이구동성으로 에너지를 상승시킬 때, 아래팔의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음악적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혼자서 모든 것을 독백하는 원맨쇼와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다.
2악장으로 넘어가던 순간 비올리스트가 불쑥 말을 건넸다. “템포 지시가 딱 브람스답지 않아? 안단테면 안단테고, 아다지오면 아다지오일 것이지. 안단테에운 포코 아다지오까지 붙였잖아. 거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비올리스트의 일성에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브람스가 악보에 기입한 안단테 운 포코 아다지오
(andante un poco adagio)란 지시는 ‘안단테라도 약간 아다지오스럽게’를 의미한다. 서로 다른 템포에 양다리를 걸친 모호한 지침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악장에서도 브람스가 템포를 지시하는 습관을 일별하다 보면 그가 얼마나 신중하게 템포를 다뤘는지 깨닫게 된다.
4악장을 시작하는 장면, 브람스는 소스테누토
(sostenuto, 깊고 무겁게)라고만 지시하지 않고 포코
(poco, 조금만)를 앞에 덧붙인다. 연주자들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작곡가가 의도한 적절한 중도는 어디까지일까. 음악의 흐름에 내맡겨 깊이 몰입하다가도 혹시 과하게 가라앉은 것은 아닌지 늘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서주에 이어 본격적인 본론이 시작되는 순간도 브람스는 알레그로
(allegro)라고 선명히 요구하지 않는다. 뒤이어 마 논 트로포
(ma non troppo, 그러나 과하지 않게)라고 소심히 토를 단다. 그뿐인가, 결승점을 향해 장렬히 산화해야 할 코다
(coda) 부분에서도 프레스토
(presto)라고 간단히 지시하면 될 걸, 또다시 마 논 트로포라고 사족을 붙인다. 질주하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는 격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브람스 음악을 심형래 버전의 ‘루돌프 사슴코’에 빗대기도 한다. ‘달릴까? 말까?’ 애간장을 태워도 너무 태운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템포라는 음악적 장치를 통해 브람스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일변도의 흐름이 아니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다변적 시간성에 기반을 두고 음악의 흐름을 전개했다. 브람스 특유의 신중함은 그의 〈교향곡 1번〉 4악장에서 또 한번 강화된다. “알레그로 논 트로포 마 콘 브리오
(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알레그로, 과하게는 하지 마. 그래도 생기는 있어야!”
그러므로 앙상블의 협업에 있어 가장 먼저 조율되어야 할 것은 다양한 ‘시점’에 관한 동의였다. 각양각색의 다이내믹과 템포에 음악적인 변화를 주고자 할 때, 어느 지점부터 몰고 갈 것인지, 어디까지 혹은 얼마만큼 크고 작아질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아주 적확하게 형성되어 있어야 했다. 음악이 ‘시간 예술’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인데도, 독주로 고군분투하며 혼자 모든 것을 감행해도 될 때는 미처 몰랐던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