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
재구성된 일상의 다양성
조경숙
만화평론가.
2000년 전후 시작된 웹툰은 2021년 현재, 그 규모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초창기 웹툰은 산업이라고 부르기에 턱없이 작은 규모였지만, 현재는 명실상부 콘텐츠 산업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초창기 웹툰은 개인 홈페이지나 온라인 웹진 등 소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었지만, 지금은 대형 웹툰 플랫폼을 통해 유료로 거래된다. 카카오웹툰, 네이버웹툰 등 국내 굴지의 대형 IT 기업들이 저마다 웹툰 플랫폼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새롭게 출시된 카카오웹툰은 출시한 지 이틀 만에 거래액 1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1)
   IP(콘텐츠 지식재산권) 산업에서도 웹툰은 인기가 좋은 미디어다. 국내 유수의 드라마·영화 제작사는 물론이고 해외 영상 서비스까지 직접 국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물을 다수 제작했다. 영상화 사례가 어느 하나의 장르에 편중된 것도 아니다. 〈유미의 세포들〉(tvN, 2021), 〈미생〉(tvN, 2014), 〈경이로운 소문〉(OCN, 2020-2021), 〈이태원 클라쓰〉(jtbc, 2020) 등의 작품만 살펴보더라도, 로맨스부터 드라마(극서사)·SF에 이르기까지 영상화 되는 작품의 장르가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웹툰 통계를 제공하는 웹툰 미디어 웹툰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현재까지 웹툰의 작품 총수는 완결작을 포함해 5만여 개에 이른다. 2) 그중에서도 디지털 전송권 만료 등에 따라 더이상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품까지 따지자면 그보다 훨씬 작품 수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웹툰 작품은 대체로 학원물/로맨스/무협/액션/판타지/공포/호러 등 다양한 장르에 두루 포진해 있지만, 플랫폼의 특성에 따라 장르가 편중된 경우도 있다. 예컨대 네이버 웹툰에는 학원물 작품이 많고, 카카오페이지에는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웹툰 내 장르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편이다.
   웹툰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에 대한 독자와 시장의 반응이 빠르게 확인되고 또 반영된다는 것이다. 대형 웹툰 포털에 새로운 작품의 연재가 시작되고 나면, 같은 요일 연재작 가운데 랭킹이 매겨져 순위를 손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별점 평균, 댓글 수 등 다양한 정량적 지표를 통해 개별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빠르게 수집되고 손쉽게 확인될 수 있다.
   정량적 지표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정성적 반응 역시 댓글난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웹툰 〈복학왕〉은 2020년 8월 〈광어인간〉 에피소드에서 여성 캐릭터 ‘봉지은’이 마치 성관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한다는 듯한 장면을 그려 독자들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오만 명에 육박하는 이용자들이 해당 회차의 에피소드에 접속하여 별점을 매기고 작품을 비판하는 댓글을 게시했다. 이에 네이버웹툰과 〈복학왕〉의 작가 ‘기안84’는 사과 공지를 올리고, 해당 장면을 수정한 바 있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웹툰 〈고수〉는 사부의 원수들을 죽이기 위해 오랜 시간 동굴에서 수련하다 나온 ‘강룡’이 주인공인데,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니 이미 사부의 원수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미 원수들이 죽어 허망하게 목표를 잃어버린 강룡에 대해 일부 독자들이 ‘언제 원수에게 복수하러 가냐’고 댓글로 항의하자, 작가들은 이를 작품에 반영해 시나리오를 선회하기에 이른다. 프롤로그에 이미 다 그려져 있는 설정 자체를 뒤튼 것이다. 독자는 작품에 댓글을 남기고, 작가들은 이 피드백을 작품에 반영한다.
   또한 웹툰은 독자들의 피드백에 빠르게 반응하는 만큼, 사회적 흐름과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다. 뒤에서 상세히 다룰테지만,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의 원년이라 불리는 2015년 이후 여성서사 웹툰이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그 예 중 하나이다. 2015년 다음 웹툰에서 20대 비혼 청년 여성인 ‘이시다’를 주인공으로 20대 여성의 노동과 주거, 삶에 대해 풀어낸〈혼자를 기르는 법〉(김정연, 다음웹툰)은 연재 당시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웹툰 플랫폼이 아닌 개인 SNS에서 기혼 여성의 결혼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웹툰 〈며느라기〉(수신지)는 SNS 웹툰 최초로 ‘오늘의 우리만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웹툰 산업 안에는 웹툰이 소비되는 현 시대상과 계속하여 접합하며 창발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유의미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그저 서사 측면에서만 새로운 게 아니라, 주제와 연출 등 다양한 각도에서 유의미한 실험을 해낸다. 주연과 조연이 맺던 관계성을 비틀어 새로운 관계적 구도를 만들어 내고, 기존의 클리셰(cliché)를 깨부순다. 또한 지금까지 만화의 주인공으로 서 본 적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늘 비치던 각도가 아닌 새로운 구도에 캐릭터를 세운다.
   많은 장르의 작품이 새로운 시도를 해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제적 다양성을 견인해 온 건 생활툰이다. 생활툰은 특히 웹툰의 탄생과도 함께했던 장르다. 생활툰의 주인공은 대개 작가의 페르소나를 반영하는데, 이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일상의 결을 보여준다. 일상은 모든 사람이 영위하는 단순하고 평범한 서사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정치적인 내러티브가 되기도 한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는 이렇게 썼다. “외관상 빈약한 일상성의 밑에 숨겨진 풍요로움을 폭로하는 일, 경박성 밑에 깔린 심오함을 드러내는 일, 정상의 비정상성을 꿰뚫어보는 일, 이것들은 모두 노동자의 생활에 근거를 둠으로써만, 그리고 노동자의 창조력을 부각시킴으로써만 분명해지고, 또 진실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3) 앙리 르페브르는 노동자의 일상을 맑스주의의 연장에서 정치적 실천이 가능한 공간으로 보았다. 그의 이 같은 표현은 생활툰과도 관련이 깊다. 생활툰은 일상 속의 ‘경박성 밑에 심오함’을, ‘정상의 비정상’을 꿰뚫어 그를 공론장으로 내보이는 장르다. 생활툰은 대개 귀여운 그림체와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소수자들의 일상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감각을 일깨워낸다. 사회를 이루는 이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일상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사회적인 의미를 길어 올리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생활툰에서 자전서사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며, 주요 작품들을 통해 생활툰이 확장한 세계의 모습을 탐구하고자 한다.
일상의 발견:
성소수자, 장애인의 목소리

스노우캣의 혼자 놀기 (Snowcat 지음, Snowcat 그림, 미메시스)


생활툰은 웹툰의 시작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18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한 〈만화포럼칸〉에서 만화 연구자들은 〈스노우캣〉(1998, 권윤주)을 최초의 웹툰으로 합의한 바 있다. 4) 〈스노우캣〉은 권윤주 작가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스노우캣’ 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연재하던 생활툰이다. 여기에 그는 단순히 일상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취향과 감성을 적절히 드러내어 당대 청년들의 공감대를 샀다. 1990년대 후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되어 온 생활툰 〈스노우캣〉, 〈마린블루스〉는 1세대 생활툰이라고 불린다.
   1세대 생활툰 작가들은 당초 개인 홈페이지에서 시작했지만, 작품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 만화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고, 캐릭터 상품을 내는 등 그들이 게시한 만화가 사업화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생활툰 작가들의 성과에 힘입듯, 그 이후 생활툰은 개인 홈페이지를 넘어 다음, 네이버와 같은 온라인 포탈 서비스에서 무료 웹툰 서비스로 론칭(launching) 되기에 이르렀다. 개그를 중심으로 일상을 시트콤처럼 풀어낸 〈마음의 소리〉(조석, 네이버웹툰),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재치 있게 그린 〈낢이 사는 이야기〉(낢, 네이버웹툰), 만화가 부부의 일상을 담은 〈결혼해도 똑같네〉(네온비, 다음웹툰) 등 플랫폼에 연재되는 생활툰도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해졌다.
   ‘재미있고 귀여운 만화’로 소비되던 생활툰 장르에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 된 건 2010년을 전후해서다. 네이버웹툰에 처음으로 성 소수자 당사자가 그린 생활툰 〈모두에게 완자가〉(완자, 네이버웹툰, 2012~2015)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레즈비언 커플의 생활툰으로, 작가인 ‘완자’와 애인인 ‘야부’가 주된 등장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재가 진행되던 시점까지 10년이 넘게 사귀었다. 완자 작가는 사회에서 학습되어 오던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동성애의 모습 이외에도 “잘 먹고 잘 사는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작품 창작의 계기를 밝혔다. 그 말마따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성 소수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5)
   웹툰 초반부에는 완자와 야부가 만나게 된 이야기와 데이트 모습들이 소소하게 그려진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완자와 야부는 서로를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치고 싶어서 하교 후 늘 같은 패스트푸드점에 들른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인사만 나누다가, 나중엔 핸드폰으로 시시콜콜하게 문자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엔 연인으로 발전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에서 손을 꼭 붙든 완자와 야부 커플의 모습은 다른 커플들과 다르지 않다. 회사 반경 1km 이내에서 스킨십을 절대적으로 삼가고 직장 동료들에게 애인을 숨겨야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비밀 커플과도 유사한 모습이다.
   레즈비언으로서 완자와 야부가 감수해야 했던 특수한 경험은 ‘아웃팅(outing)’에서 드러난다. 아웃팅은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적 지향이 알려지는 것을 뜻한다. 완자와 야부의 아웃팅은 어처구니없이, 순식간에 자행됐다. 야부와 완자가 교제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주변의 친구들을 포함하여 학교의 담임선생님, 학원 친구들, 학원 선생님들까지 그들을 싸늘하게 대한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매일같이 종례 후 완자를 따로 불러내어 ‘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며 기도를 하고, 학원 선생들은 강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공동체 생활(규범)을 모르는 애들이 있다’며 완자-야부 커플을 비난한다. 완자와 야부가 겪어낸 아웃팅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무겁고 진지하게 그려진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보편적인 연인의 모습과 성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적 상황을 대비시켜 보여주며, 평범한 연애의 시간과 성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경험들이 ‘보통의 일상’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향해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는 형태를 취한다. 그 때문에 에피소드의 상당수는 완자와 야부뿐만 아니라 그들 커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완자와 야부의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애 생활툰이라기보다, 성 소수자의 차별과 일상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독자를 대상으로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와 다른 방식으로 성 소수자의 일상을 그려 낸 작품이 있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작품 종반을 향해 달려가던 2014년, 다음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게이 생활툰 〈이게 뭐야〉(지지, 다음웹툰, 2014~2021)다.
   〈이게 뭐야〉의 전략은 사뭇 다르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연애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방식으로 주로 공통점을 그렸다면, 〈이게 뭐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둘만의 연애의 모습을 표현해낸다. 〈이게 뭐야〉의 주된 연인인 ‘지지’와 ‘로별’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치고 박고 싸우는 혈투를 하고 있고, 삐친 연인의 기분을 풀어주다가도 갑작스럽게 성관계로 전환되기도 하는 이 두 연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특히 성관계 장면에서는 생활툰이 고수하는 귀엽고 단조로운 캐릭터의 모습이 아니라 실사체를 사용하여 보다 노골적인 동성 성애의 모습을 연출한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애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직시하며 호모포비아를 향해 설득하는 발화를 기본으로 한다면, 〈이게 뭐야〉는 누가 뭐라든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한다는 컨셉으로 양분되어 있다. 성 소수자 당사자가 발화하는 일상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을 지니지만, 서로 다른 층위의 일상을 내보이며 다양성의 지평을 넓혔다.

나는 귀머거리다 (라일라 지음, 라일라 그림, 서울미디어코믹스)


소수자성을 지닌 당사자가 자신의 일상을 직접 이야기하는 생활툰 가운데에는 장애를 주제로 하는 작품도 있다. 청각 장애인인 작가 ‘라일라’가 그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 네이버웹툰, 2015~2017)이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집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등 지극히 작가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게 평범한 장면 들로 보이지만 열쇠를 두고 와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다른 가족이 라일라를 깨워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학교에서 청각 장애인이 수업을 어떻게 듣는지에 대한 것, 자막이 없는 한국 영화를 감상하기 어려워하는 것 등 작가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절대 쉽지만은 않은 일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족들은 잠자는 라일라를 깨우기 위해 창문 사이로 나뭇가지를 넣어 라일라를 찔러 깨우거나, 갖고 있는 고구마를 던져 자신이 창밖에 있음을 보이려 한다. 고등학교 때에는 선생님이 농담을 해도 혼자 듣지 못해 웃을 수 없었는데, 대학교에서는 수업 도우미가 지원되어 교수님의 농담도 바로 보고 웃을 수 있다. 독자들은 웹툰에 펼쳐진 구체적인 상황과 장면을 통해 청각 장애인 라일라에게 대입됨으로써, 그 의 시각으로 새롭게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얘기들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사실 청각 장애인이면 다른 장애에 비해 불편한 게 별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도 자꾸 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2화 베스트 댓글 중)

“작가님도 아버님도 내가 비장애인이기에 몰랐었던 불편이 이렇게 크구나..(중략) 청각 장애인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6화 베스트 댓글 중)

   〈모두에게 완자가〉의 일상과 〈나는 귀머거리다〉의 일상은 다르다. 전자가 작품을 통해 ‘성 소수자도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획득한다면, 후자는 반대로 누구에게나 평등하리라 생각되는 보편적 상황 속에 감추어진 소수자성을 꺼내놓는다. 이 두 가지 다른 전략은 이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도 연관되어 있다. 완자가 아웃팅 당했을 때 선생님들이 보였던 반응마따나 성 소수자는 다른 이들에게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들을 수 없는 수업을 듣는 라일라처럼 장애인은 있어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들에게 ‘일상’은 사회적 차별에 대해 독자의 공감대를 얻는 동시에 서로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요긴한 소재로써 활용된다.
페미니즘 리부트와 생활툰:
혼자를 기르는 법, 며느라기
2015년은 웹툰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시기다.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덕택이다. 이 시기 생활툰 장르도 페미니즘 리부트 바람에 큰 영향을 받았다. 2015년 디시인사이드에 ‘메르스 갤러리’가 생겨 난 이후, ‘메갈리안’은 2015년 이후 페미니스트들을 지칭하는 하나의 멸칭으로 자리 잡았다. 이 당시 웹툰계에도 큰 파급을 일으킨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넥슨 〈클로저스〉 게임 성우 교체 사건이다. 당시 넥슨에서 서비스하던 게임 〈클로저스〉의 여성 캐릭터 목소리를 맡은 성우가 개인 SNS에 게시한 사진 한 장이 논란이 됐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가 찍혀 있었는데, 이 티셔츠는 메갈리아 커뮤니티에서 낸 굿즈 중 하나였다. 이에 〈클로저스〉의 일부 게임 유저들이 즉각 반발하여 넥슨에 해당 성우의 하차를 요구했고, 넥슨에서도 이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 일이 공론화되자 이번에는 SNS에 넥슨을 향한 비판적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성우 교체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 가운데에는 웹툰 작가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서도 대응에는 편차가 있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직접 넥슨에 대한 비판 의견을 게시했지만, 대다수는 비판 의견을 리트윗하거나 공유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안티-페미니즘을 표방한 이들은 성우를 옹호하는 웹툰 작가들을 찾아내 그들의 작품이 연재되는 플랫폼에 몰려와 낮은 별점과 악성 댓글을 악의적으로 쏟아 부었다. 작가 개인의 SNS를 검열할 뿐만 아니라, SNS의 활동을 작품에 반영해 부당한 공격을 일삼은 것이다.
   이 외에도 웹툰계에 불어온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은 매우 컸다. 독자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소비했던 성적 대상화 연출을 지적하고, 작품 내에 돌출된 성차별적 요소를 비판했다. 일부 웹툰 작가는 독자들의 비판을 수용해 장면을 직접 수정하기도 했다. 웹툰 〈뷰티풀 군바리〉의 경우에는 과도한 성적 대상화 연출로 인해, 연재 중단 청원이 일기도 했다. 또한 미투 운동 등을 통해 SNS에서 여성들의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그와 같은 궤를 이루며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이 창작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은 <혼자를 기르는법>, <며느라기>, <단지> (단지, 레진코믹스, 2015~2017)다.

혼자를 기르는 법. 1, 2 (김정연 지음, 창비)


이들 작품은 매회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세 작품 모두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기도 했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홀로 사는 여성 청년의 목소리를, 〈단지〉는 가부장제 아래 억압당해왔던 딸들의 이야기를, 〈며느라기〉는 일상적으로 차별 받아 온 며느리의 시점을 담아낸 생활툰이다.
   먼저 살펴 볼 웹툰 〈혼자를 기르는법〉의 주인공은 ‘이시다’. ‘이시다’는 기존 생활툰과 달리 허구의 인물이다. 기존의 생활툰은 작가가 주로 주인공 캐릭터로서 카툰화되어 등장했다. 〈낢이 사는 이야기〉의 ‘낢’은 작가 ‘낢’과 동일 인물로 상정되고, 〈마음의 소리〉의 ‘조석’도 작가 ‘조석’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작가의 페르소나를 강하게 반영한 캐릭터로, 캐릭터가 둘러싼 인간관계나 그가 지닌 욕망은 모두 작가의 것으로 등치시켜 이해되곤 한다. 반면 ‘이시다’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일부 반영되어 있긴 하나, 이름도 인간관계도 직업도 모두 작가의 그것과 같지않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이시다’가 겪는 일상만큼은 실제 서울을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매우 현실적이다.
   ‘시다’는 현실과 이상의 낙차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다. 본래 ‘이시다’라는 이름은 높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지만, 사무실에서 이시다는 ‘시다’(막내)로 굴려진다. 그는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 정반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가구를 갖고 싶었지만 꽃무늬가 덕지덕지 인쇄된 가구를 들이고, 스스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을 원했지만 세 들어 사는 입장이라 인테리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시다의 처지는 시다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 햄스터 ‘주윤발’의 상황도 비견된다. 작은 케이지 안에서 쉼없이 바퀴를 굴리는 윤발을 보며 시다는 시간의 쳇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일상을 굴리는 자신을 대입한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는 1인 청년 가구의 현실을 노동과 주거 면에서 짙게 드러냈지만, 무엇보다도 20대 여성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민낯을 투명하게 그려낸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밤늦게 놀다가 골목길에서 담배를 태우던 ‘시다’는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시다에게 태연히 접근한 두 명의 남자는 “감사하니까... 오빠들이 재밌게 해줄게.”라며 시다를 위협한다. 시다는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놓고 내달릴 정도로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온다. “자정을 넘긴 딸들만이 서울을 알아갑니다.” 그 경험에 대해 시다는 담담하게 독백한다. 그리고 피해를 조심해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당하는 현실을 ‘안전’ 감옥에 빗대 표현한다(〈혼자를 기르는 법〉 16화 중).
   여기서 시다가 겪었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안전 문제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터져나온 ‘동시대성’의 목소리 중 하나다. 2015년부터 SNS 등지에서 ‘#나는_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를 달고 쏟아진 글들은 일상 속에서 겪었던 성폭력 사례를 담아냈다. 여성과 안전에 대한 주제는 〈혼자를 기르는 법〉 외의 다른 생활툰에서도 드러난다. 웹툰 〈어바웃 블랭크〉(모모, 케이툰)에서는 여성의 자취방을 노린 범죄에 대한 뉴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그 뉴스 이후 자신의 방에 누가 침입할까 두려워하는 주인공 ‘봄’의 모습이 그려진다. 뉴스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봄’의 방문을 누군가 덜컥거리며 열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나오고, ‘봄’은 그 이후로 자신의 방에 걸개를 설치하다가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억울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어바웃 블랭크〉 34화 중)
   웹툰 〈며느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특히 〈며느라기〉는 웹툰 플랫폼이 아닌 작가 개인의 SNS에서 연재되어 온 작품이다. SNS 플랫폼에서 유통되기 편한 정사각형의 이미지를 연속시켜 컷툰처럼 연출한 〈며느라기〉는 신혼부부 ‘민사린’과 ‘무구영’의 결혼생활을 담아냈다. 특히 결혼생활 중에서도 시가와 며느리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 냈다.

며느라기 (수신지 지음, 수신지 그림, 귤프레스)


이 작품은 아침드라마 처럼 격정적인 고부 갈등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별의 순간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명절 가족 모임에서 여성들은 부엌으로, 남성들은 소파로 양분화되는 모습이나 명절에는 항상 시가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관습, 며느리에게는 찬밥을 주고 갓 지은 더운밥은 다른 가족에게 나누는 차별 같은 것들이다. 〈며느라기〉는 밥을 짓는 것부터 먹는 데에까지 미치는 차별의 순간들을 며느리의 관점에서 섬세하게 조명한다.
   〈며느라기〉 연재 당시, 〈며느라기〉에 쏟아지던 독자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며느라기 연재 계정의 팔로워는 60만 명에 달했고, 업로드하자마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며느라기〉를 영상화한 웹드라마 〈며느라기〉는 공개한 지 이틀 만에 90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며느라기〉를 그린 ‘수신지’ 작가는 인터뷰에서 “연재하면서 댓글을 보니까 너무 많은 사람이 이걸로 고통받고 바꾸고 싶지만 못 바꾼다는 걸 느꼈다” 고 말한다.
   그간의 생활툰에서 ‘며느리’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주체였다. 생활툰이 다양해지면서 결혼과 육아를 소재로 한 생활툰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나, 그 안에 엄마/아내로서의 여성은 있더라도 며느리로서의 면면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대다수의 생활툰이 실존하는 인물, 실재하는 관계를 반영하는 만큼 아무래도 작가 스스로 조심스러웠으리라 추측된다. 작품 안에서 다루는 에피소드에 의거해 독자들이 실존하는 인물에게 공격을 삼은 일도 왕왕 있었기 때문에, 시부모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건 작가 개인에게도 큰 부담이었으리라. 며느리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으로 며느리 캐릭터를 작품에 등장시킨 사례는 웹툰 〈아랫집 시누이〉(김진, 네이버웹툰)에서 볼 수 있다. 〈아랫집 시누이〉에서 며느리로 등장하는 새언니 ‘두나’는 늘 웃는 얼굴로만 등장한다. ‘두나’는 언제나 싹싹하고 시 가족에게 살가운 며느리다. 그런 ‘두나’의 모습은 시누이인 ‘진’과 비견되며, 시가와 갈등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완벽한 며느리 상으로서만 부각된다.
   반면 〈며느라기〉는 다양한 며느리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남편인 구영에게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지만 시가에는 순종적이며 시부모에게 귀염받고 싶어하는 며느리 ‘민사린’과 그런 사린과 달리 시가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앞세우는 큰며느리 ‘정혜린’이다. 앞서 〈아랫집 시누이〉에서 시가와 아무런 갈등 없이 늘 웃는 얼굴로 존재하는 두나와 달리 혜린과 사린은 며느리로서 맞닥뜨리는 매 순간 갈등하고, 고민하고, 대화하고, 해결하려 한다. 가상의 인물이 실존 인물보다 더 실존적 캐릭터로 등장해 일상의 고민을 길어 올리는 모습이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며느라기〉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대표적 여성 서사 만화로서 주목받는다. 기존에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며, 많은 독자의 공감을 모아낸 것이다.
생활툰, 자전서사 만화의
밑거름이 되다.
생활툰은 자전 서사의 문법과도 관련이 깊다. 조윤숙은 생활툰을 “자전적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현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구조”라고 일컬으며, “일상의 누적이 사후적으로 자전적 작품을 구성"하는 형태라고 분석했다. 6) 작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가 자신이 겪은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형상화한다는 데에서 생활툰을 ‘자전적 서사’라고 부른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물결과 더불어 독특한 형식의 자전 만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생활툰의 이러한 특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단지 작가의 〈단지〉이다. 〈단지〉는 가정폭력에 점철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담은 생활툰이다. 〈단지〉 안에 그려진 가족사진에서는 다른 가족과 달리 주인공 ‘단지’에게만 고양이 귀와 꼬리가 달려있다.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 포용 되지 못하고, 동떨어진 듯한 주인공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다. 특히 〈단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가족 안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지를 선명하게 표현했다.

단지 1, 2 (단지 지음, 단지 그림, 레진코믹스)


   〈단지〉에서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주로 지목되는 건 엄마다. 단지는 세 남매 중에 둘째로, 위아래로 남자 형제가 있다. 자녀가 세 명이나 되지만 엄마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있어 언제나 단지만을 찾는다. 단지는 아래 동생을 돌보아야 하며, 가사를 도와야 하고, 일이 있어도 만사 제치고 엄마를 도와야 한다. 그런데도 단지에게 엄마는 언제나 폭력적이다. 한 번은 서랍장을 열기 힘들어하는 어린 단지에게 엄마는 “병신같은 년,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해? 이걸로 눈깔을 콱 찔러버릴까 보다!”하며 송곳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그 송곳 사건은 단지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는다. 엄마는 언제나 단지에게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고, 화내는 존재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정폭력의 가해자로서 ‘엄마’를 조명함과 동시에 엄마 역시 가부장제 안의 피해자였음을 중첩적으로 밝혀낸다. 표면적으로는 엄마와 딸이 대립하고 있는 것 같지만, 기실 그 안에서 이득을 누리는 것은 가족 안의 남성들이다.
   〈단지〉는 생활툰의 형식으로 속 깊은 가정폭력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단순화된 캐릭터, 단조로운 컷을 통해 이야기의 장벽을 보다 낮추면서 다가간다. 특히 〈단지〉는 마치 친구에게 대화하듯 작품을 구성했다. 박인하 만화 평론가는 〈단지〉의 이러한 구성에 대해 “〈단지〉의 주인공 ‘단지’는 칸 안에서 말을 하고, 〈단지〉를 그린 ‘단지’는 칸 바깥에서 설명한다. 칸 안에서 스스로 말하기가 상처를 ‘되돌아보는 행위’라면, 만화 밖의 독자들에게 말 걸기는 ‘대화하기’다.”라고 분석한다. 7) 〈단지〉의 서사가 독자들을 향한 ‘말 걸기’였던 만큼, 독자들도 〈단지〉의 이야기에 기꺼이 응답했다. 〈단지〉 시즌 1이 작가 개인의 가정폭력 서사였다면, 시즌 2는 작가에게 메시지를 보낸 독자들의 경험들로 채워졌다. 단지는 독자들이 보낸 사연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다. 사연을 보낸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단지〉 이후 웹툰/만화를 통한 자전 서사는 점차 확대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딜리헙’, ‘포스타입’ 등 웹 콘텐츠를 작가가 자율적으로 연재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의 등장도 크게 기여했다. 기존 웹툰 플랫폼은 작품이 플랫폼 회사에 발탁되어야 정식 연재가 가능한 반면, 오픈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콘텐츠를 유/무료로 설정하여 업로드할 수 있다.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자살생존자입니다〉, 교회 내 성폭력 가해자 목회인의 자녀가 그린 〈요정 이야기〉, 작품 연재 종료 후 차기작을 내지 못한 만화가의 일상을 다룬 〈꾸질이 이야기〉와 같은 작품들이 모두 오픈 플랫폼에서 연재됐다. 이들 작품군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일상을 깊이 있게 다뤄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는다는 것
나의 세상을 다른 사람과 연결시킬 때 나는 그 세계에 대한 나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세계를 전할 때 나는 동시에 이 세계를 전유했던 내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8)

   생활툰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일상을 공론장에 꺼내놓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작품 이외에도 유의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생활툰 작품이 꽤 많다. 웹툰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현이씨, 케이툰)에서 주인공 ‘현이’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눈물을 쏟는다. 그는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증과 대면하며 자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이를 만화의 컷으로 옮겨 그린다. 한편 웹툰〈안녕, 외롭고 수상한 가게〉(최임수, 레진코믹스)는 카페를 차린 자영업자 ‘임수’의 이야기다. 카페를 찾아오는 여러 진상 손님, 사랑을 듬뿍 주는 단골 손님, 커피 재료들을 날라주는 업체 등 작은 카페에 오가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임수’는 카페를 차린 것이 잘한 일이었는지 고민한다. 또한 쇼쇼 작가가 그린 웹툰 〈아기 낳는 만화〉(쇼쇼, 네이버웹툰)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자신의 일상을 만화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생활툰 작가는 독자를 의식하며 경험을 다듬고 생각을 발전시킨다. 일상 속에서 평범한 실마리를 잡아채 자기만의 사유로 밀고 나가고, 서로 다른 여러 사건을 한데 조합하면서 맥락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재인식하고, 그 세계 안의 자아를 다시 위치시키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생활툰이다. 비슷한 수준에서 유사한 일상을 영위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경험을 인식하고 말하기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서사가 된다. 생활툰이 담아내는 것은 ‘재구성된 일상’이고, 세계와 주체의 재인식이다. 생활툰 작품들은 단지 서로 다른 일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작가가 지닌 고유한 자기인식을 보여준다.
   트래픽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웹툰 시장이 2013~2016년 사이 유료회차 결제 모델을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결제율이 낮은 생활툰은 웹툰 시장에서 다소 위축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독립일기〉, 〈모죠의 일기〉 등 청년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웹툰은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생활툰은 웹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만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왔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가능성이 엿보이는 장르다. 독자들은 생활툰을 통해 자신과 다른 위치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다른 주체들의 삶을 이해하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더 전진하는 사유를 바라보며 자신의 인식을 확장 하기도 한다. 일상을 통해 생활툰이 만들어졌지만, 생활툰을 통해 더 많은 일상에 변화가 이는 것이다. 간혹 생활툰은 ‘귀엽고 그리기 쉬운 만화’라는 오명을 쓰곤 하지만, 생활툰은 언제나 일상을 다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너른 지향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장르였다. 생활툰 안에 담길 더 다양한 일상, 더 많은 주체의 목소리를 기대한다.
목차
생활툰: 재구성된 일상의 다양성
실내악, 다양한 울림이 공존하는 음악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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