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캣의 혼자 놀기 (Snowcat 지음, Snowcat 그림, 미메시스)
생활툰은 웹툰의 시작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2018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한 〈만화포럼칸〉에서 만화 연구자들은 〈스노우캣〉(1998, 권윤주)을 최초의 웹툰으로 합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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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캣〉은 권윤주 작가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스노우캣’ 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연재하던 생활툰이다. 여기에 그는 단순히 일상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취향과 감성을 적절히 드러내어 당대 청년들의 공감대를 샀다. 1990년대 후반 작가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되어 온 생활툰 〈스노우캣〉, 〈마린블루스〉는 1세대 생활툰이라고 불린다.
1세대 생활툰 작가들은 당초 개인 홈페이지에서 시작했지만, 작품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 만화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고, 캐릭터 상품을 내는 등 그들이 게시한 만화가 사업화의 영역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생활툰 작가들의 성과에 힘입듯, 그 이후 생활툰은 개인 홈페이지를 넘어 다음, 네이버와 같은 온라인 포탈 서비스에서 무료 웹툰 서비스로 론칭
(launching) 되기에 이르렀다. 개그를 중심으로 일상을 시트콤처럼 풀어낸 〈마음의 소리〉
(조석, 네이버웹툰),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을 재치 있게 그린 〈낢이 사는 이야기〉
(낢, 네이버웹툰), 만화가 부부의 일상을 담은 〈결혼해도 똑같네〉
(네온비, 다음웹툰) 등 플랫폼에 연재되는 생활툰도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해졌다.
‘재미있고 귀여운 만화’로 소비되던 생활툰 장르에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 된 건 2010년을 전후해서다. 네이버웹툰에 처음으로 성 소수자 당사자가 그린 생활툰 〈모두에게 완자가〉
(완자, 네이버웹툰, 2012~2015)가 연재되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레즈비언 커플의 생활툰으로, 작가인 ‘완자’와 애인인 ‘야부’가 주된 등장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재가 진행되던 시점까지 10년이 넘게 사귀었다. 완자 작가는 사회에서 학습되어 오던 단편적이고 부정적인 동성애의 모습 이외에도 “잘 먹고 잘 사는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작품 창작의 계기를 밝혔다. 그 말마따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성 소수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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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초반부에는 완자와 야부가 만나게 된 이야기와 데이트 모습들이 소소하게 그려진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완자와 야부는 서로를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치고 싶어서 하교 후 늘 같은 패스트푸드점에 들른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인사만 나누다가, 나중엔 핸드폰으로 시시콜콜하게 문자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엔 연인으로 발전한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에서 손을 꼭 붙든 완자와 야부 커플의 모습은 다른 커플들과 다르지 않다. 회사 반경 1km 이내에서 스킨십을 절대적으로 삼가고 직장 동료들에게 애인을 숨겨야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비밀 커플과도 유사한 모습이다.
레즈비언으로서 완자와 야부가 감수해야 했던 특수한 경험은 ‘아웃팅
(outing)’에서 드러난다. 아웃팅은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성적 지향이 알려지는 것을 뜻한다. 완자와 야부의 아웃팅은 어처구니없이, 순식간에 자행됐다. 야부와 완자가 교제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주변의 친구들을 포함하여 학교의 담임선생님, 학원 친구들, 학원 선생님들까지 그들을 싸늘하게 대한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매일같이 종례 후 완자를 따로 불러내어 ‘죄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며 기도를 하고, 학원 선생들은 강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공동체 생활
(규범)을 모르는 애들이 있다’며 완자-야부 커플을 비난한다. 완자와 야부가 겪어낸 아웃팅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무겁고 진지하게 그려진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보편적인 연인의 모습과 성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적 상황을 대비시켜 보여주며, 평범한 연애의 시간과 성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경험들이 ‘보통의 일상’ 속에 공존한다는 것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을 향해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는 형태를 취한다. 그 때문에 에피소드의 상당수는 완자와 야부뿐만 아니라 그들 커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모두에게 완자가〉는 완자와 야부의 연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애 생활툰이라기보다, 성 소수자의 차별과 일상이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독자를 대상으로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와 다른 방식으로 성 소수자의 일상을 그려 낸 작품이 있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작품 종반을 향해 달려가던 2014년, 다음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게이 생활툰 〈이게 뭐야〉
(지지, 다음웹툰, 2014~2021)다.
〈이게 뭐야〉의 전략은 사뭇 다르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연애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방식으로 주로 공통점을 그렸다면, 〈이게 뭐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둘만의 연애의 모습을 표현해낸다. 〈이게 뭐야〉의 주된 연인인 ‘지지’와 ‘로별’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치고 박고 싸우는 혈투를 하고 있고, 삐친 연인의 기분을 풀어주다가도 갑작스럽게 성관계로 전환되기도 하는 이 두 연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특히 성관계 장면에서는 생활툰이 고수하는 귀엽고 단조로운 캐릭터의 모습이 아니라 실사체를 사용하여 보다 노골적인 동성 성애의 모습을 연출한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애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직시하며 호모포비아를 향해 설득하는 발화를 기본으로 한다면, 〈이게 뭐야〉는 누가 뭐라든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한다는 컨셉으로 양분되어 있다. 성 소수자 당사자가 발화하는 일상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을 지니지만, 서로 다른 층위의 일상을 내보이며 다양성의 지평을 넓혔다.
나는 귀머거리다 (라일라 지음, 라일라 그림, 서울미디어코믹스)
소수자성을 지닌 당사자가 자신의 일상을 직접 이야기하는 생활툰 가운데에는 장애를 주제로 하는 작품도 있다. 청각 장애인인 작가 ‘라일라’가 그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라일라, 네이버웹툰, 2015~2017)이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집에서 잠을 자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등 지극히 작가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게 평범한 장면 들로 보이지만 열쇠를 두고 와 집에 들어갈 수 없는 다른 가족이 라일라를 깨워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학교에서 청각 장애인이 수업을 어떻게 듣는지에 대한 것, 자막이 없는 한국 영화를 감상하기 어려워하는 것 등 작가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절대 쉽지만은 않은 일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족들은 잠자는 라일라를 깨우기 위해 창문 사이로 나뭇가지를 넣어 라일라를 찔러 깨우거나, 갖고 있는 고구마를 던져 자신이 창밖에 있음을 보이려 한다. 고등학교 때에는 선생님이 농담을 해도 혼자 듣지 못해 웃을 수 없었는데, 대학교에서는 수업 도우미가 지원되어 교수님의 농담도 바로 보고 웃을 수 있다. 독자들은 웹툰에 펼쳐진 구체적인 상황과 장면을 통해 청각 장애인 라일라에게 대입됨으로써, 그 의 시각으로 새롭게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얘기들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사실 청각 장애인이면 다른 장애에 비해 불편한 게 별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도 자꾸 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2화 베스트 댓글 중)
“작가님도 아버님도 내가 비장애인이기에 몰랐었던 불편이 이렇게 크구나..(중략) 청각 장애인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6화 베스트 댓글 중)
〈모두에게 완자가〉의 일상과 〈나는 귀머거리다〉의 일상은 다르다. 전자가 작품을 통해 ‘성 소수자도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획득한다면, 후자는 반대로 누구에게나 평등하리라 생각되는 보편적 상황 속에 감추어진 소수자성을 꺼내놓는다. 이 두 가지 다른 전략은 이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도 연관되어 있다. 완자가 아웃팅 당했을 때 선생님들이 보였던 반응마따나 성 소수자는 다른 이들에게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들을 수 없는 수업을 듣는 라일라처럼 장애인은 있어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이들에게 ‘일상’은 사회적 차별에 대해 독자의 공감대를 얻는 동시에 서로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요긴한 소재로써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