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권과 함께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평등권’
(equal protection)도 소수자 차별금지를 위해 종종 활용되는 논거입니다.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중 ‘Loving’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범죄’로 규정한 버지니아 주법에 대항하여 사랑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Loving 씨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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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 씨 부부는 워싱턴 DC에서 결혼을 하고 버지니아 주에 가정을 꾸리고 있었는데, 아닌 밤중에 경찰에게 체포를 당하고 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결국 버지니아 주에서는 살 수 없게 되어 다른 주에서 살고 있던 차에, 마침 인종차별 사건의 원고를 찾던 ACLU의 변호사가 이 부부를 설득하여 대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내용입니다.
< Loving v. Virginia 판결의 주인공인 Loving 부부 >
‘Loving’ 영화 중 한 장면을 보고 그린 것입니다. 내용도 따뜻하거니와, 미국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영화이므로 시간되실 때 감상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법률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고, 반드시 구체적으로 이익을 침해당한 누군가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피임약 교부 사건에서 시민단체가 유죄선고를 받기 위해 직접 클리닉을 열었던 것처럼, 미국에서는 ACLU 등 인권운동 단체들이 피해를 본 사람을 찾아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할테니 원고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만큼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일이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자, 시민단체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흑인 대법관인 Thurgood Marshall은 ‘인종 분리 교육’이 위헌이라고 선언한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인권운동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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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연방대법원은 Plessy라는 판결에서 공공서비스의 수준이 동일하다면 인종으로 분리를 해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separate but equal” 원칙을 정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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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은 공립학교에서 ‘백인 교실,’ ‘흑인 교실’을 나누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비로소 Brown 판결에서 대법원은 대법관 만장일치로 ‘인종에 기초한 차별’은 압도적인 공익적 사유가 없는 한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평등원칙을 위반한다는 원칙을 정립하게 됩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남부지역이 이 판결에 불복해 시민 간에 심각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 >
‘Notorious RBG’는 긴스버그 대법관 평전의 제목입니다. 한 로스쿨 학생이 ‘Notorious B.I.G.’라는 랩 음악에서 따와 이름 붙인 것으로, 인권변호사이자 대법관으로서 논리정연하고 꼿꼿하게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의견을 관철해 온 모습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Ruth Bader Ginsburg 대법관도 ACLU 변호사로서 백인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었습니다. 검은 법복위에 특유의 칼라 장식을 올려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하기도 했지요. 그는 1972년 ACLU에 ‘여권 신장 프로젝트팀’을 만들었고, 1973년 Frontiero 사건에서 여성 군인과 남성 군인에게 서로 다른 복지혜택 요건을 적용하는 것은 ‘성별에 기초한 부당한 차별’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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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남성 군인은 부인에 대한 설명 없이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던 반면, 여군은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고 합니다. 긴스버그는 같은 논리적 기초 위에서 남성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배우자의 사망 후 아이를 단독 양육하게 되었을 때 사회보장 혜택이 남편을 잃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통해 부인을 잃은 남성들도 똑같이 수혜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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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일련의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프라이버시권 또는 평등원칙 위반 논거에 기해 다양성을 억압하는 법률을 폐지해 나갔습니다. 이제 법원은 인종, 성별, 성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적 대우는 일단 모두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압도적 공익적 요청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헌법 위반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차별에 이러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국가 답게 ‘부’로 인해 차별이 생기는 경우에는 엄격심사 원칙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Rodriguez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세금이 많이 걷히는 지역의 공립학교는 부유해지고, 가난한 지역의 공립학교는 더욱 열악해지도록 예산구조가 짜여져 있더라도, 주 정부가 재정여력 등 합리적 근거를 댈 수 있다면 헌법상 평등원칙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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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교육받을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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