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권리
TV가 재현하는 성소수자
박지훈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다양성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인가? 과연 그런가?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다양성 존중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얼마나 설득적인가?
   개인적으로 다양성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3년 전 여성 게이머 갓건배를 둘러싼 남성혐오 논쟁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고려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이 논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올렸다. 남성혐오를 정당화 하는 논문을 지도한 교수들이 제정신이냐며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의 실명을 언급했는데 지도 교수인 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작년 초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근처 식당에서 발생했다. 대학원생 한 명과 점심을 먹으며 학위논문 주제인 여성혐오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간 남학생이 식당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대학원생에게 “그런 이야기 식당에서 안 하면 안 돼요?”라고 시비조로 말을 건넸고 내가 “왜죠?”라고 묻자 “밥맛 떨어지잖아요?”라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응수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은 다양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태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둘러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은 인터넷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려대학교 안에서도 존재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감은 다양성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지난 몇 년간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백래쉬(backlash)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에 나는 다양성이 당위적 입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하나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혐오는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성소수자에게 향하는 듯 강하다. 유력 정치인도, 심지어 소수자인 여성들도 성소수자에 대한 불인정과 혐오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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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2월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성별정정을 한 사람의 입학을 거세게 반대하는 재학생들 및 졸업생들의 여론에 부담감을 느껴 입학포기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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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8월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지하철역 내부의 현수막 광고가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든 상태로 찢긴 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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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2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금태섭 예비후보가 한 토론회에서 안철수 예비후보에게 광화문에서 개최되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퀴어문화축제를 보고 싶지 않은 개인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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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3월 군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을 당했던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서 성적지향과 젠더 정체성은 빠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물론 고려대학교 내에서도 섹슈얼리티는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2000년대 초 홍석천과 하리수의 커밍아웃을 통해 한국사회 내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성적 다양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안전한 삶을 살아갈 권리는 보장되는가? 성소수자 입학생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학생회관에 걸어도 찢기지 않고, 교수나 학생이 성소수자의 권익에 대한 논문을 써도 혐오와 조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대학당국은 보장하는가? 나는 여전히 이와 같은 질문에 회의적이다. 성소수자 입장에서 변하지 않은 환경은 2007년 입법예고 되었던 차별금지법제정안이 14년째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다.
   본고에서는 리처드슨(Richardson, 2000) 2) 이 논의한 성적 권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미디어가 재현하는 또는 재현하지 않는 성소수자의 이미지가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성적 권리 또는
성적 시민권
성소수자의 권리라고 하면 차별금지법이나 동성결혼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 더 포괄적이다. 리처드슨은 성적 권리(sexual rights) 또는 성적 시민권(sexual citizenship)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과 관련된 세 가지 차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그의 논의를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시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성적권리 중 첫째는 성적 실천(sexual practice)과 관련된 것으로 다양한 형태의 성적 행위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대부분 사회는 특정한 종류의 성적 실천만을 정상적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성향이 있다. 성적 행위의 (비)정상성은 법과 제도에 의해 규정된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1960년대 후반까지 서로 다른 인종 간 결혼과 출산을 금지하는법(anti-miscegenation laws)을 통해 백인과 비백인 간의 성적 실천을 금지했으며, 2003년 연방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 많은 주에서 시행되었던 소도미법(sodomy law)은 항문성교, 구강성교 등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성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소도미법이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비정상·불법으로 규정한 것과 유사하게, 한국의 군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함으로써 동성 연인간의 성관계도 부적절할 뿐 아니라 위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2017년에는 육군 중앙수사단이 의도적으로 군대 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에 의해 형사 처벌하도록 지시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2) 대법원은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세 차례(2002년, 2011년, 2016년) 내린 바 있다. 올해 2월 SBS가 그룹 퀸의 보컬 프레드 머큐리의 삶을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면서 남성 간 키스 장면을 삭제해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동성애자의 성적 실천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성 간 성애 표현은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지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행위로 정의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성적 권리의 두 번째 측면은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과 관련된 것으로 개인이 스스로 본인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규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이다. 성소수자는 LGBT(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규정할 수 없는 정체성을 포함하는 ‘퀴어’의 범주로 확장되어왔다. 이에 개인은 본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할 권리, 규정하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공적 영역에서 본인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권리, 즉 없는 존재처럼 취급 당하지 않을 권리와 본인의 정체성을 밝혀도 안전할 권리는 특히 중요하다. 리처드슨은 성적인 욕망이 사적 영역으로만 제한되고, 공적 영역에서 성적 정체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성적 시민권을 획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사적 영역에서의 권리보다 공적 영역에서의 권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에 시작해 2011년에 폐지된 미국의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제도(Don’t Ask Don’t Tell)는 군대 내에서 공공연히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군복무를 할 수 있지만, 성적 지향을 말하면 전출 당하거나 강제 전역을 당하게 함으로써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게 만든 제도이다.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제도가 폐기된 후 미 육군 역사상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최초의 장성 태미 스미스 준장은 2016년 주한 미8군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제도가 폐지된 후인 2012년 오랫동안 사귄 파트너와 결혼을 했고 한국에서 살게 되었는데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동성부부가 호모포비아가 강한 한국에 거주했다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트레이시 헤프너(좌)와 그의 아내 태미 스미스 준장(오른쪽)
출처: http://www.todayus.com/?p=52940


   고려대학교는 어떠한가? 수업 시간에 본인의 성적 지향이나 비규범적 성 정체성을 밝혀도 안전한가? 성소수자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치 강의실에는 성소수자 학생이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아닌가?
   몇 년 전 내가 경험했던 일이다. 학생 발표를 위한 여러 조를 구성했는데 나는 한 조의 구성원 4명 중 3명이 비이성애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4명은 서로의 성적 지향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발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성소수자로서 겪었던 경험과 생각을 공유했다면 이 주제에 대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 외에 다른 학생들에게 본인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았다. 교실을 안전한 환경으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소수자의 권리에 있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중요한 이유도 한 개인이 비 규범적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혔을 때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2월에 제주에서 활동 중인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다음 달 3월에는 강제 전역을 당했던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기홍은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라는 말을 남겼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소수자에 대한 가해지는 편견과 혐오에 대한 제도적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 권리의 마지막 측면은 성적 관계(sexual relationship)에 관한 것으로 다양한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받을 권리이다. 어떤 성적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해줄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마다 상이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백인-비백인 간의 결혼과 출산이 1960년대 후반까지 많은 주에서 범죄로 간주되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2003년), 캐나다(20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2006년), 노르웨이(2009년), 스웨덴(2009) 등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는데 미국의 경우 2015년 이전에는 일부의 주들만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나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이 헌법에서 보장받는 권리라는 판결을 내린 후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기에 이른다. 반면 한국에서는 동성결혼 허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3년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김조광수와 배우자 김승환은 대한민국 헌법과 민법이 동성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음을 보고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려 했으나 서대문구청이 이를 거부했다. 이후 이들 부부가 서대문구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해서 동성결혼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비규범적 성적 권리에 대한 공적인 인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성결혼은 동성 간 성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뿐 아니라 배우자 초청 이민, 연금, 증여, 보호자 권리, 세금 혜택 등과 관련이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동성결혼이 허락된다면 동성부부는 재산의 부부공동명의 등기가 가능하고, 재산의 증여도 가능하며, 해외에 발령이 난 경우 배우자를 초청할 수 있을 것이며, 배우자의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고, 배우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면회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동성커플에게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 20년이 지났다. 그간 무엇이 변했는가? 강의실에서, 동아리에서, 직장에서, 혹은 가족 내에서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밝혀도 안전한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가운 시선과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고 한 명의 개인으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통해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비판적인 성찰이 가능해질 것이다.
성소수자의 과소재현(underrepresentation)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어떻게 재현되는가? 미디어는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이미지 구성을 통해서 우리의 현실 인식을 형성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미디어가 성소수자를 재현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본고에서는 가장 중요한 미디어 중 하나인 TV가 재현하는 성소수자의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성소수자는 실제 인물이건, 성소수자 역할의 인물이건 TV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200개가 훌쩍 넘는 한국의 모든 TV 채널을 매일 24시간, 일주일동안 모니터링한다고 가정하자. 과연 몇 명의 성소수자가 등장할까? 단언컨대 홍석천이 거의 유일한 성소수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만큼 성소수자는 TV에서 잘 재현되지 않는다. 특정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간혹 다룰 뿐이다. 그리고 성소수자 중에서 레즈비언과 양성애자들은 더더욱 재현되지 않는다. 이는 유명인 중 커밍아웃한 레즈비언과 양성애자가 부재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유명인이 거의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사회가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는 방송에서 과소재현(underrepresentation)되는데 미디어에서 재현되지 않는 소수자 집단은 상징적 소멸(symbolic annihilation), 즉 사회적인 중요성과 존재감을 박탈당하게 된다 3) . 성소수자의 과소재현은 성소수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없는 존재’ 취급을 당하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성소수자가 TV에 등장하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존재가 무시되기 쉽고 성소수자 관련 의제가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기 어렵게 된다.
   성소수자가 재현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게이 코드라고 불리는 유사 동성애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는 유행처럼 제작되어왔다. 〈커피프린스 1호점〉(MBC, 2007), 〈성균관 스캔들〉(KBS, 2010), 〈개인의 취향〉(MBC, 2010), 〈구르미 그린 달빛〉(KBS, 2016)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이 상대방의 성별 또는 성적지향을 착각함으로 발생하는 오해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는데 이야기적으로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모든 상황을 알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자 카페 사장은 남성 직원과 사랑에 빠지지만 시청자들은 남성 직원이 실제로는 여성임을 알기 때문에 남성과 남성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사랑으로 이야기를 읽는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경우 왕자가 내시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시청자는 그 내시가 남장 여자임을 이미 드라마 초반부터 알고 있으므로 그 서사를 이성 간의 사랑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사 동성애를 다루는 드라마는 한국사회에서 한 번도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반면 유사 동성애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경우에는 백래시를 경험하는 것이 거의 정해진 공식과도 같다. SBS 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2010)는 지상파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게이 커플을 고정 등장인물로 포함했는데 ‘국가와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은 조선일보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이듬해인 2011년 8월 K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스페셜: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여러 세대 레즈비언들의 삶을 다루었는데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비난이 쇄도했고 이로 인해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2010년 9월 29일 조선일보 35면 하단광고


   케이블 방송도 성소수자 재현과 관련된 백래시를 겪었다. 2012년 9월 케이블 채널 KBS Joy에서 〈XY그녀〉라는 트랜스젠더 토크쇼가 첫 방송되었는데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으로 인해 방영이 보류되다가 결국 ‘첫방이 막방’이되고 말았다. 2015년 2월에는 두 여고생의 키스 장면을 보여준 JTBC의 〈선암여고 탐정단〉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거센 항의를 받았는데 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와 벌점 2점을 받았고 이는 제재수위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4) 가장 최근에는 2021년 2월 설 연휴 기간에 SBS에서 방송된 〈보헤미안 랩소디〉가 두 남성 간 키스신을 삭제해 논란을 빚었다. 이 소식은 해외에도 전해졌고 퀸의 객원 보컬로 참여해온 아담 램버트는 SNS에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성소수자 재현에 대한 시청자들의 무관용, 동성 간 성애 표현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징계는 성소수자의 욕망과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를 비정상적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삭제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앞서 논의한 성적 권리, 즉 공적 영역에서 본인의 성적 지향을 알릴 수 있는 권리, 즉 없는 존재처럼 취급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재현
성소수자들은 주로 정형화된 이미지, 즉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기반으로 재현된다. 미디어는 스테레오타입을 통해 성소수자를 타자화시키고 비정상성을 강화하며 이성애 규범주의를 재생한다. 특히 동성애와 에이즈를 결부 시키는 고전적인 재현방식은 오랫동안 유지되어왔고 성소수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
   스테레오타입은 대부분 소수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테레오타입이 완전히 허위는 아니고 진실의 알갱이(kernel of truth)를 가지고 있는데 왜 문제가 되는가? 스테레오타입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소수자는 스테레오타입을 근거로 사회적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를 들어 흑인은 범죄자라는 스테레오타입으로 인해 더 많은 의심을 받고 경찰의 잦은 불심검문이 정당화된다. 둘째, 소수자 집단에 속한 개인의 역량은 정형화된 스테레오타입으로 한정되기 쉽다. 돌봄 노동과 같이 여성에게 부과된 사회적 기대가 여성의 역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적으로 문란한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게이로 살아가는 개인은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그가 유능한 사업가, 디자이너, 회사원, 의사,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적으로 문란한 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2020년 5월 이태원의 게이클럽과 속칭 ‘찜방’으로 알려진 블랙수면방에서 벌어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한 뉴스 보도는 게이와 성적 문란함, 도덕적 타락, 그에 대한 형벌로 주어진 에이즈가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관련 뉴스 보도는 게이의 비정상적인 성적욕망 해소방식을 부각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끔과 동시에 게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고 사회적 낙인을 또다시 부여했다.
   본인을 현직 기자로 밝힌 한 개인은 같은 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게이클럽을 게이클럽이라고 ‘진실’을 보도하게 해주세요! 초대형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내용을 발췌 한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특수한 문화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검진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사태가 신천지 발 감염을 능가하는 초대형 집단 감염으로 번질 우려도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주로 찾는 유흥업소들은 종로와 이태원에 몰려있습니다. 이태원 게이클럽에서는 동성애자를 위한 시간대별 쇼가 제공되는데, 종로에서 술을 먹고 쇼를 보기 위해 이태원으로 이동하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용인 66번 확진자의 경우처럼,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클럽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트너를 찾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클럽으로 이동하는 동성애자들의 전형적인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게이들이 찜방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성관계를 맺게 되는 것, 게이들이 여러 게이클럽을 돌아다니며 연애 상대를 찾는 현상 그 자체를 비난하기에 앞서, 일부 게이들이 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지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게이들도 이성애자들처럼 자유롭게 본인을 드러내고 데이트 상대를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우리 사회가 게이임을 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라면 게이들이 굳이 폐쇄적인 장소에서 친구와 연인을 찾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또 게이의 문란함을 비판하기에 앞서 대한민국 도처에 깔린 이성애자 남성을 위한 성매매 산업에 대해서도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성소수자의
재현을 위한 조건
보다 많은 성소수자, 보다 다양한 성소수자 이미지가 생산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성소수자 이미지 변화를 위한 조건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에 갤럽이 발표한 동성결혼, 동성애,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조사 5) 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동성애를 사랑의 한 형태로 보았고 37%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동성애자의 방송연예 활동에 대해 응답자의 26%는 문제된다고 답변했고 67%는 문제없다고 답변했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찬성 35%, 반대 56%로 반대가 우세했지만, 19∼29세 응답자의 62%는 찬성의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한국사회에는 동성애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지만, 성적다양성에 대해 보다 관용적인 젊은 세대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늘어날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향후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성소수자가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스테레오타입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성소수자의 이미지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경제적 조건이다.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시장, 소비자, 시청자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여 방송사, 기업, 광고주들이 성소수자를 타깃으로 하는 콘텐츠와 제품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퀴어 문화축제나 LGBT영화제에는 버드와이저, AVIS 등 굴지의 대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OUTFEST라고 하는 성소수자 아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관련 행사를 주최하는 조직에는 HBO, AT&T뿐 아니라 한국의 현대 자동차도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퀴어문화축제에는 구글, 더바디샵 정도를 제외하고는 기업 스폰서 참여가 거의 없다. 이는 아직까지 한국의 성소수자가 소비자나 시장으로서의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시장과 소비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때 보다 긍정적인 미디어 재현이 가능해지는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시청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보다 많은 재현, 긍정적 재현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송될 경우 시청자들의 비난이 쇄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한국의 시청자 대부분이 성소수자 재현을 거부한다는 근거로 간주하면 안된다. 갤럽 조사가 보여준 바와 같이 동성애자의 방송 활동에 대해 응답자의 67%는 문제없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즉, 성소수자 재현을 반대하는 일부의 시청자들이 주로 방송사나 언론사에 악성 민원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 시청자들도 보다 긍정적인 성소수자 재현을 적극적으로 방송사에 요구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적 재현이 이루어질 경우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미디어가 성소수자를 재현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한편 각 신문사의 독자권익위원회,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에 성소수자 전문가를 위촉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산업은 학계의 비판보다도 이들 위원회의 반응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S 시청자위원회는 청년, 환경, 장애인, 여성, 인권 등 다양한 영역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소수자를 대표할 수 있는 위원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속한 전문가를 시청자위원회와 독자권익위원회 등에 위촉한다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의견을 대변하고 왜곡적이고 고정관념을 재생하는 콘텐츠에 시정을 요구함으로써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있는 역량 있는 창작자들이 적극적으로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SBS 주말연속극 〈완전한 사랑〉(2003), 〈인생은 아름다워〉(2010)가 게이를 고정 인물로 포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청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의지를 관찰시킨 작가 김수현 덕분이라고 본다. 영화 〈아가씨〉가 여성 간의 사랑을 서사의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박찬욱 감독이 가진 역량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몇 년 방송사에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는데 제작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성소수자의 인권문제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내 학생 중에도 대학 졸업 후 방송사나 신문사에 입사하여 성소수자 시선에서 그려진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기사를 쓰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경우가 있고, 실제로 그 의지가 반영된 일도 있었다.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있는 역량 있는 창작자가 많아질수록 더 다양한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최근 유튜브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재현의 주체가 됨으로써 다양한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로 인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중 일부 콘텐츠는 성소수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얻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러한 영상들이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스테레오타입을 재생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하는 것이다. 성소수자가 성소수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활용하는 것 역시 성소수자들이 생존을 위해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본고의 서두에서 숙명여대 사례를 간단히 언급했지만 최근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소수자인 여성들로부터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의 합성어)라는 단어가 사용될 정도다. 서구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중산층 백인 여성의 문제를 의제화하면서 시작했지만 유색인종의 여성, 비 서구 여성의 문제를 포함하는 형태로 발전되어왔다. 가장 발전된 형태의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 인종, 계급, 민족,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정체성과 교차하며 이루어지는 점에 주목한다. 나아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유사한 논리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다른 존재들을 인지하고 이들의 문제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물학적 여성의 인권만을 페미니즘의 의제로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 페미니즘의 퇴보라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대학 내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의제가 다른 의제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억압의 교차성을 강조하는 다양성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수자 인권에 대한 거부,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만큼 다양성의 문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이 다양성을 교육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관련된 과목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대학에서 다양성, 성소수자 권리와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가 아니라면 어디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인가?
   2020년 고려대학교는 사람 중심의 창의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목표 아래 (1) 공감소통 역량 (2) 사회적 책임 역량 (3) 융합적 사고 역량 (4)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 (5) 글로벌 역량 (6) 도전적 리더 역량 등 총 6대 핵심역량을 설정했다. 공감소통 역량이 첫 번째 역량인 이유는 이것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리더의 소양으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언컨대 다양성에 대한 존중 없이 공감소통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내 다양성 교육, 특히 소수자 내에서도 더 많은 차별과 편견을 받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도모하고 학내외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 비교과활동이 추진되기 바란다.
목차
한국 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
성소수자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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