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다양성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3년 전 여성 게이머 갓건배를 둘러싼 남성혐오 논쟁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고려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이 논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올렸다. 남성혐오를 정당화 하는 논문을 지도한 교수들이 제정신이냐며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의 실명을 언급했는데 지도 교수인 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작년 초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근처 식당에서 발생했다. 대학원생 한 명과 점심을 먹으며 학위논문 주제인 여성혐오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간 남학생이 식당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대학원생에게 “그런 이야기 식당에서 안 하면 안 돼요?”라고 시비조로 말을 건넸고 내가 “왜죠?”라고 묻자 “밥맛 떨어지잖아요?”라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응수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사건은 다양성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태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둘러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은 인터넷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려대학교 안에서도 존재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감은 다양성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지난 몇 년간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백래쉬(backlash)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에 나는 다양성이 당위적 입장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하나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혐오는 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성소수자에게 향하는 듯 강하다. 유력 정치인도, 심지어 소수자인 여성들도 성소수자에 대한 불인정과 혐오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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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2월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성별정정을 한 사람의 입학을 거세게 반대하는 재학생들 및 졸업생들의 여론에 부담감을 느껴 입학포기를 결심했다.
- 2020년 8월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지하철역 내부의 현수막 광고가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든 상태로 찢긴 채 발견되었다.
- 2021년 2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금태섭 예비후보가 한 토론회에서 안철수 예비후보에게 광화문에서 개최되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퀴어문화축제를 보고 싶지 않은 개인의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 2021년 3월 군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을 당했던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서 성적지향과 젠더 정체성은 빠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물론 고려대학교 내에서도 섹슈얼리티는 다양성에 대한 논의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2000년대 초 홍석천과 하리수의 커밍아웃을 통해 한국사회 내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성적 다양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안전한 삶을 살아갈 권리는 보장되는가? 성소수자 입학생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학생회관에 걸어도 찢기지 않고, 교수나 학생이 성소수자의 권익에 대한 논문을 써도 혐오와 조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대학당국은 보장하는가? 나는 여전히 이와 같은 질문에 회의적이다. 성소수자 입장에서 변하지 않은 환경은 2007년 입법예고 되었던 차별금지법제정안이 14년째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다.
본고에서는 리처드슨(Richardson, 2000) 2) 이 논의한 성적 권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미디어가 재현하는 또는 재현하지 않는 성소수자의 이미지가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논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