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스포츠평론가.
‘선수로 크게 성장하려면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
   한국 스포츠계의 오랜 속설이다. 토털 사커(total soccer)의 창시자인 네덜란드의 명장 리누스 미셸(Rinus Michels) 감독의 ‘승리는 어제 내린 눈일 뿐’이라든지 역시 네덜란드 출신으로 20세기 후반의 유럽 축구 미학을 대표하는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의 유명한 말, 즉 ‘축구를 하기는 쉽다. 그러나 쉽게 축구를 하는 것은 어렵다’와 같은, 그런 수준의 명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선수가 되고 프로가 되고 국가대표로 뽑히려면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속설은, 어떤 본질을 순식간에 드러내는 말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아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감독이고 지도자다. 다른 분야에도 어느 정도 통하는 말이다. 자상한 담임을 잘 만나고 꼼꼼한 지도교수를 잘 만나고 추진력과 리더십을 지닌 직장 상사를 잘 만나는 것은, 특히 한국처럼 무한경쟁 속에서 연줄과 인맥이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통용된다. 그럼에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속설과 충언이 한국의 스포츠계에서는 그 어떤 조건에 우선하는 대헌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아버지’ 곧 감독을 잘 만나면, 뛰어난 지도력과 자상한 인격을 지닌 그로 인하여 해당 선수(아직 학생일 경우 이제 겨우 청소년기에 접어든 유망주)가 앞으로 운동선수로 성장하고 활동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20세기, 그러니까 시스템이나 규칙보다는 개인의 독특한 경험과 인맥, 일정한 헌신성이 압도했던 시기에는 아버지를 잘 만나야 상급학교 진학이나 직업선수로의 길이 열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감독들이 제자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길러낸 역사가 틀림없이 있다.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인 성취는 이러한 헌신과 정성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여자프로배구를 시작으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로까지 번진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사태는 21세기가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20세기의 훈육과 통제와 폭행이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유명축구 선수인 K와 관련된 ‘학교 폭력’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는데, 필자가 심히 우려하는 것은, K선수를 옹호하기 위해 당시 함께 합숙했던 동료가 쓴 글이다.
   요약하자면 “그때 축구부 합숙소가 군대 막사처럼 생겼다. 20명~30명이 다 같이 모여서 생활했다. 당시는 체벌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선배들이 후배 선수들을 거칠게 다룰 때였다.” 그런 시공간에서 K 선수가 ‘나쁜 짓’을 할 수 없었다는 증언인데, 필자는 그 행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바로 그와 같은 환경을 문제 삼고 싶다. 한 번 더 들어보자. “모든 스케줄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수시로 감독했고, 우리들은 딴짓을 할 수 없었다. 선수들이 일탈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통제를 받았다.”
   이 자체가 문제 아닌가. 이 자체가 근절해야 할 과거 아닌가. 이 자체가 군림하고 통제하는 한국 스포츠의 오래된 ‘아버지’ 문화 아닌가. K 선수가 초등학교 다닐 때니까, 벌써 십수 년 전의 일 아닌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을 위하여, 다음 소식을 아울러 전한다.
   2021년 2월 19일 〈한국일보〉는 수도권 15세 이하 축구클럽의 ‘아버지’가 축구화 등으로 선수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 ‘아버지’는 수년간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고 어린 선수(정확히 말하면 중학생)의 고막이 파열되는 일까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아버지’는 경기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아이들 뺨을 때리고, 일부 학생들에게는 얼굴에 침을” 뱉고 선수단 버스에서 축구화로 폭행을 가했다. 2021년 2월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어느 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아버지’가 하키채로 선수들(실은 고등학생)을 폭행한 사건을 연속 보도했다. 이 ‘아버지’ 역시 경기 부진을 이유로 “너! 안 돼. 반드시 안 돼, 이 개XX야!”라고 폭언과 폭행을 가하였다.
   이런 사례만으로, 필자에게 허락된 분량을 다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지금이 순간에도 한국 스포츠의 폭력문화는 비일비재하다. 2019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에 4만7천여 학생 선수가 있고 그중 20%에 달하는 1만여 명이 합숙 생활을 하고 있다. 대체로 한 방에서 7명 이상 생활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한 방에 10명 이상이 생활한다. 어느 중학교 축구부 학생들은 전체 25명이 1층과 2층에서 생활하는데 각 층은 방이 따로 없고 전체가 트여 있다. 어느 축구 명문 고교도 10인실 1개, 7인실 3개, 6인실 2개에서 생활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생활의 차압, 관계의 긴장, 위계질서의 강화, 시공간의 압력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의 통제와 물리적 폭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십수 년 동안 아니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능력(수완?) 있는 ‘아버지’를 만나야 하고, 바로 그 ‘아버지’의 지도(통제?)를 받아야 하고 그의 경험(인맥?)에 편승해야 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부 ‘아버지’들의 일탈일까, 시스템의 부재 또한 허점일까, 남의 자식이야 어찌 되었든 자기 자식만큼은 성공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스포츠 그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일까.
   필자는 오랫동안 스포츠 현장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단적으로 압축하건대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의 이중나선에 의한 것이며 이제는 그 이중나선을 끊고, 스포츠가 사회 속으로 들어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와 국가주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James Geertz)가 발리의 닭싸움을 통하여 이미 밝혔듯이, 스포츠는 전문 선수들의 경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전이다. 기어츠는 발리의 닭싸움에 대하여 “인간과 짐승, 선과 악, 에고(Ego)와 이드(Id), 고무된 남성성이 발휘하는 창조적인 힘과 제어되지 않은 동물성의 파괴적인 힘이 혐오, 잔인성, 폭력 그리고 죽음의 유혈 드라마” 1) 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이른바 ‘문명사회’의 학자가 ‘미개하고 야만’적인 원시 사회에 대하여 배타적으로 판단하고 서술한 것이 아니다. 기어츠는 그와 같은 ‘유혈 드라마’가 현대 세계의 스포츠 문화 전체에서 충분히 확인된다고 말한다. 닭싸움을 보면 발리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듯이 야구를 보면 미국인을 알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기어츠는 눈앞에서 닭이 싸우고 있지만 실제로 싸우는 것은 인간이며 따라서 발리의 닭싸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지위를 둘러싼 유혈극”이라고 강조한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이러한 설명을 〈Diversitas〉 독자들이 즉각적으로 흥분하며 순식간에 동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닭싸움을 ‘고연전’으로 바꿔서 읽어보는 것이다. ‘한일전’을 대입해도 괜찮다. 발리의 닭싸움이든 ‘고연전’의 농구 경기든 ‘한일전’의 축구 경기든 그 모든 스포츠는 ‘집단, 명예, 지위’의 상징 전쟁이다.
   이러한 속성을 지닌 스포츠는, 19세기 이후 서구 사회의 전면적인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조응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강고한 결합을 문화적으로 가능케 하는 순간접착제가 되었다. 중세 이래 복잡하게 전개된 영토 분쟁 속에서, 유럽의 국가들이 자국 영토 내의 주민들을 군사적 이거나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문화적인 방법으로 ‘국민화’하는 길은 ‘국가를 응원’하게 하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도시의 발달은 기존의 마을공동체를 해체 시켰다. 농부들은 쟁기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홉스봄(Eric Hobsbawm)에 따르면 19세기 중엽은 역사상 최대의 인간의 이동이 시작된 시기로 이 양상에는 도시로 향한 농촌으로부터의 인구 유출, 지역 간의 이동, 마을에서 마을로의 이동, 대양의 횡단, 변경지역으로의 인구 유입 등이 전개되었는바 이는 “세계적인 근대 경제의 발전이 인구의 대규모적인 이동을 요구하고 있었고 또 새로이 개선된 교통기관 덕분이 그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도 비용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게 되었는가 하면 게다가 또 세계적인 근대 경제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이 보다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기” 2)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로 몰려든 근대의 시민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한 새로운 도시로의 정착 과정에서, 비단 신체의 이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정 상태의 내면화까지 수행해야 했다. 그것은 사계절의 기후에 따른 순환적인 삶, 일손 부족을 품앗이로 채우는 노동의 연대, 농사와 종교 생활의 주기에 따른 놀이로서의 세시풍속 등의 농촌공동체와는 다른 것이었다. 도시에서는, 기존의 농촌공동체적 정서나 놀이가 반근대적이고 반문명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인 것으로 배척받았다. 그 체제의 이행 지대가 학교였다. 근대 초기의 학교는, 산업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근대 도시인을 양성하기 위해 여전히 농촌 공동체의 유습에 젖어 있는 청소년들을 집합하고 훈육하는 이행의 공간이었는데, 그 과도기적 공간은 따라서 외견상 물리적 폭력으로 보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광범위한 시민 교육을 통해 산업화 구조에 맞는 사람들이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근대의 교육 기관들은 무엇보다 교칙을 통해 학생들을 통제(혹은 교육)하고자 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문명화 과정〉에서 15세기의 폭력적인 행동 양태나 16세기 파리에서 벌어진 요하네스 축제의 고양이 화형식 같은 것을 예로 들면서 중세의 이 격렬한 스포츠 문화가 점점 ‘세련화’, ‘문명화’를 거쳐 사라지거나 완화되는 것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중세 때 거침없이 표현되었던 감정들이 근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세련되고 합리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문명화된 사회의 일상에서 정확하게 규정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고 썼다. 엘리아스는 여우사냥 같은 놀이 문화를 예로 들어 공격적으로 표출되던 쾌락이 수동적이고 순화된 관전의 쾌락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이 ‘스포츠화’(sportization) 과정은 근대 유럽 특히 영국에서 폭력성이 강했던 민속 경기가 조직화 과정을 통하여 점차 근대스포츠로 변화하게 되고, 이로써 영국 시민 사회의 자기 통제와 자기 규율이 증대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요컨대 스포츠의 문명화 과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의미는, 김덕영에 따르면 근대적 시민이 “삶과 행위에 있어서는 이성적인 심리적 기제를 수단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근대적 자아의 결정적인 특징인 내적인 자아 통제 기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기능은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을 통해 보장” 3)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근대 국가는 스포츠 등을 통한 문화 정치를 통해 대중의 신체적 통제와 감정의 순응을 기도하였다. 근대 국가는 이른바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기제로서 스포츠를 선택하여 그 행위의 교육적 측면, 교양적 요소, 정서 순응의 효과를 기도하였다.
   그 대표적인 문화적 행위가 올림픽 개막식이다. 스포츠 메가이벤트의 국가주의적 스펙터클 문화 정치의 일반적 속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문화적 파시즘의 전시장이 되기도 했다. 로버트 팩스턴이 강조한 바와 같이 파시즘의 일반적인 정치적 행동 양상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 4) 으로 하거니와, 1936년의 베를린올림픽이나 1964년의 도쿄올림픽 그리고 2008년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통하여 우리는 그 ‘강하거나 약한’ 형태의 문화적 파시즘 혹은 권헌익이 강조한 바와 같은 문화적 스펙터클을 통한 통치 즉 ‘극장국가’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의도가, 늘 언제나 쾌속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20세기 내내 저마다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거쳐왔고 그것이 그 사회의 의미있는 발전을 정체시키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식적으로 말하여,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팽배해지면 시민혁명이 일어나거나 그에 준하는 저항이 지속되어 국가(또는 그 무렵의 지배권력)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러나 혁명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도식을 거부하고, 바로 그 국가가 혁명에 준하는 대대적인 조치를 취하여 위기를 타개해 나간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이를 ‘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목표는 언제나 새롭고 더 높은 단계의 문명 유형을 낳고, 그 문명과 폭넓은 일반대중의 도덕을 경제적 생산 장치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요구에 적응시키며, 그리하여 물리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유형의 인간성” 5) 을 만드는 데 있다.
   1988 서울올림픽이 증명하듯이, 전후 제3세계에 출현한 비정상적 독재 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독재 국가의 강력한 극우적 지향과 스포츠 국가주의가 결합하여 스포츠를 통한 ‘과민족화 프로젝트’, 즉 “정당성을 결여한 전체주의 국가, 또는 반근대적 독재 체제에 대해 대중이 감정적 애착을 갖도록 선동하는 감정의 정치” 6) 가 작동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 비단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인 올림픽만이 아니라 미시적인 스포츠 정책 자체가 ‘국가주의’에 기반하여 수립되고 집행되었다. 임식과 허진석은 박정희 정권의 “체육 정책은 명백하게 국민의 신체 능력을 국가 잠재력의 일부로 간주했으며, 국민의 신체능력 향상을 위한 정책의 수립과 시행이 국가의 의무이고 국민의 신체능력 향상 행위가 애국이라는 합리화의 구조를 형성함으로서 ‘체육 애국주의’로 확장” 7) 되었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확장’의 과정으로 체육전문고교, 태릉선수촌, 대체복무, 연금 및 포상 등의 ‘국위선양’ 프로젝트가 전개되었고 전두환 정권은 아예 이 ‘국위선양’을 〈국민체육진흥법〉의 제1조 목적에 추가함으로써 ‘국가주의 체육’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스포츠와 가족주의
이러한 ‘동원체제’는 그에 수반하는 일반 시민들의 강렬한 신분 상승의 욕망과 결합하여 전개된다. 한국의 경우, 그것은 단순히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서, ‘가족주의’라는 강렬한 행위 동기로 집약되어 표출되었다.
   가족주의는 개인의 사회적 행위와 윤리적 태도를 결정함에 있어 가족 집단의 유지와 이익이 다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 등의 여러 사례가 말해주듯이 박정희 정권의 문화적 통치는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지 국민동원령 체제의 강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가족주의의 이데올로기화는 8) 박정희 체제의 정당성 확보전략의 일환으로 유교의 충효사상과 함께 정권의 정당성과 대중적 동의를 유도하는 정치 전략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임금 상승과 사회복지에 대한 대중적 수요의 통제 효과”까지 발휘하게 된다.
   이렇게 국가주의는 가족주의를 견인하고 가족주의는 국가주의에 의지한다. 국가는 확대된 가족이고 가족은 축소된 국가다. 그 사이에, 사회는 없다. 도시화, 산업화, 시민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사회적 관계와 집단이 작동해야 하는데 식민지와 독재와 가난의 과정에서 사회가 형성될 여지와 시간은 부족하였다. 문밖을 나서면 국가만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김동춘이 밝혔다시피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는 오랜 유교적 전통 문화라기보다는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의 억압과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자본주의적 경쟁체제 하에서의 생존과 지위 획득” 9) 과 관련이 있다. 이 불안하고도 공포스러운 맹진의 근원은 멀게는 전쟁과 그 이후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치른 팽팽한 사회 경쟁 경험이었고 가깝게는 무엇보다 1997년의 IMF 사태였다. 10)
   IMF 사태는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해체되는 결절점이지만, 그러나 형태적인 해체와 달리, 그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의 격렬한 경쟁 체제에서, 가족주의는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훨씬 더 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IMF 사태 이후 가족은 더욱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극단적인 경우 해체되거나 붕괴되었고 그렇지 않다 해도 언제든 위험천만한 야만의 사회 상태에 먹잇감으로 내던져질 수도 있다는 공포 의식에 사로잡혔다. 90년대에 아주 잠깐 ‘중산층’의 신기루를 맛본 한국 사회의 가족은 자녀의 진학과 부동산에 몰입하였다.
   이제 다시 스포츠로 눈을 돌려보면, 국가주의와 가족주의가 이중나선으로 결합하여 돌진해온 한국의 드라마에서 ‘국위선양’, ‘골프대디’, ‘사커맘’ 등의 용어가 수시로 접합하였는지, 그리고 이른바 ‘아버지’, 즉 감독의 권위가 그토록 강하였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사태로 ‘합숙소 문제, 선수 폭행, 입시 비리’ 등이 한국 스포츠의 이면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하였는지 알 수 있다. 스포츠가 ‘사회’에서 다양하고 왕성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국가’의 상징이거나 ‘가족’의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실제의 부모들의 일그러진 욕망도 함께 작동한다. 2011년 4월 7일 자 〈뉴시스〉 기사를 보자. 2010년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을 거둔 호주 동포 정연진(당시 21세)은 그 무렵 자신을 15살 때부터 가르쳐온 호주 출신의 골프 코치 트레버 플레이크모어와 결별하게 된다. 플레이크모어에 따르면 그는 정연진 선수의 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내가 아들의 정신력을 너무 약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정연진의 아버지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강한 한국인의 정신력이 없어지고 서구화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고 했다.
스포츠,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2020년 8월 4일, 한국 스포츠의 중요한 전환이 되는 법이 통과됐다. 전두환 정권 당시 ‘국위선양’을 제일의 목표로 추가했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1조(목적)의 ‘국위 선양’이 ‘연대’, ‘인권’, ‘행복’, ‘공동체’ 등으로 바뀌었다.
   통상적으로 국위 선양하면 스포츠 선수나 예술가들 혹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세계적 수준의 성취를 거둬서 국가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확산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용어의 역사적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국위 선양’은 일제의 잔재로 여기서 ‘국위’는 단순한 국가의 위상이 아니라 ‘일본 천황’을 뜻한다. ‘천황의 존엄과 영광을 선양’, 즉 널리 알리는 것이 국위선양으로 19세기 메이지유신 때 만들어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수많은 ‘국가 의례’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다.
   이것이 해방 이후,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그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뜻으로 활용된 것이다. 특히 스포츠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법제화되었는데, 그럼에도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될 때는 이 단어가 포함되지 않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 때 개정하면서 추가된 것이고, 그 이후 우리가 모두 목격한 바와 같이 한국의 스포츠는 국가주의 일변도로 급발진하였으며 개별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바로 이 정책의 가속페달을 직접 밟으면서 생존을 넘어 생계까지 도모하게 된 것이다.
   그랬는데 이 그 용어가 법적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연대’ ‘인권’ ‘행복’ ‘공동체’ 등의 단어가 들어갔다. 이것이 단순히 용어의 대체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20세기 국가주의 용어 대신 21세기의 다양성 용어가 대체되긴 했어도, 실제 스포츠 현장은 여전히 구습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스포츠의 가치와 역할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이미 2010년대 이후 IOC는 물론이고 세계 스포츠 학계는 기존의 올림픽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왔다. 그 결정체가 2014년에 결의된 IOC의 ‘올림픽 어젠다 2020’이다. IOC는 올림픽 유치 과정 간소화를 기조로 도시·국가 간 올림픽 분산 개최, 유치 비용 절감, 타 스포츠 단체와 협조 등의 개혁안을 승인했다. 이는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 유치가 환경 파괴와 경제 파탄의 이유로 지목되고 심지어 20세기의 유산인 국가주의적 갈등의 격전장이 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자성의 결과다.
   최근 IOC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결정을 내렸다. 지난 3월 12일, IOC는 새로운 개혁안인 ‘올림픽 어젠다 2020+5’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그 핵심은 IOC의 디지털화, e스포츠 수용, 선수들의 권리 및 책임 강화, 클린 스포츠 활성화, 올림픽의 지속성 및 고유성 강화 등이다. 역시 천문학적인 올림픽 개최 비용의 최소화와 막전 막후에 벌어지는 유치 로비전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대응이다.
   요컨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기존 올림픽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대안이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고,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뉴노멀 올림픽’이 신속하게 가시화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뉴노멀 올림픽’이라고 했을 때, 그것을 당장의 코로나 사태에만 연관하여 ‘비대면, 디지털, 뉴미디어’ 등의 기술 작동 방식에만 집중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만약 가까운 장래에 코로나를 극복하게 되면, 과거와 같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엄청난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를 동반하는 올림픽으로 회귀해도 된다는 것인가.
   21세기 초엽의 인류사적 화두, 즉 환경생태의 위기, 분쟁과 전쟁의 위협, 인종차별, 사회 내의 다양한 혐오와 차별 등이 결합될 것이고,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스포츠가 실현되어야 한다.
   국내로 눈을 돌려 보면, 전국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스포츠가 참여할 폭이 상당히 넓다. 우리의 군소 도시들이 활력 잃고 인구 변동, 주거, 교육, 교통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3년 도시재생 관련 법률이 제정됐고 그 이후 7년 동안 국토교통부가 주도하는 다양한 사업이 전개됐다. 여기에 2018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참여해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이 수년째 전개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스포츠가 결합하게 되면 스포츠와 관련된 도시 인프라의 확장, 스포츠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주민들의 관계망,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를 전공한 청년세대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Bilbao)는 1980년대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했다.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 보행 위주 교통체계 개선, 각종 스포츠 시설과 클럽을 통한 실핏줄 같은 인간관계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민 중심의, 시민 참여의, 시민이 실제로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원동력이었다. 영국도 1990년대 말에 도시재생뉴딜사업(NDC)을 전개하였다. 이 약자의 ‘C’는 ‘Communities’, 즉 공동체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공동체, 학교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추진하였다. 리버풀, 쉐필드, 선덜랜드 등은 단지 ‘축구 종가’의 영국의 ‘명문 클럽’이 아니라 스포츠로 도시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와 일상 문화를 실핏줄처럼 연결하는 ‘문화 인프라’ 그 자체다.
스포츠 다양성을 위하여
다시 강조하건대 문화와 체육이 결합되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화쪽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과 체육 쪽의 ‘스포츠 도시 사업’이 따로 전개되고 있다. 문화적 도시재생에는 문화기획자나 공동체미술 전문가들이 대체로 참여하고 있다. 쇠퇴한 도심이나 낙후한 소도시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러나 어떤 점에서 그곳의 주민들은 그 작업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는 수가 있다. 한편 체육 쪽의 ‘스포츠 도시’ 사업은 대체로 시설 증개축 사업이다. 이 사업을 냉소적으로 보면, 건강한 사람이 더 건강해지고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더 저렴하고 자유롭게 이용하는 사업이 된다.
   이렇게 여전히 그 주무부처 안에서도 스포츠는 일반적 의미의 문화 전체와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시민 전체가 아니라 체육 직능 분야의 폐쇄적인 일자리나 그 공간으로 제약된다.
   이를 흔들어야 한다. 스포츠를 문화 전체로 확산하고 그 시설을 시민들의 일상 문화 전체와 연결하고 그 공간에서 다양한 신체와 다양한 기호와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건강한 신체와 강건한 정신’이 아니라 ‘다양한 신체와 다양한 가치’를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
   더욱이 다른 여러 문화적 도시재생의 방법에 비해 스포츠 및 그 시설은 주민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지역공동체의 접착제이자 도시재생의 윤활유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스포츠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 그 가치와 역할의 변화는 우리의 오래된 스포츠 문화 즉 ‘뛰어난 선수들이 격전을 벌이면 우리는 그것을 구경한다’는 관습을 서서히 해체하게 될 것이다.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의 이중나선이 서서히 끊어지고, 21세기의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러하였듯이 스포츠에서도 ‘다양성’이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이렇게 ‘다양성’이 실현될 때, 선수들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그에 따른 다양한 일자리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고려대를 포함하여, 전국의 수많은 체육 관련 학과 학생 및 전문 학생선수들에게 새로운 가치의 실현과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스포츠의 새로운 가치와 역할에 따라 국가 스포츠 정책이 전환하고 그에 따라 스포츠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서 시민들의 삶과 일상 문화의 리듬 속에서 재구성되면 굳이 기존 위계질서의 맨 끄트머리 꼬리칸에 줄을 서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럴 때에 ‘선수들은 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는 오랜 폐습의 속설은 사라질 것이다.
목차
한국 스포츠,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
성소수자의 권리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