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커져서 이제는 양성평등이 거의 달성되었고, 남성들이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드러내고 말은 못하더라도 ‘우는 암탉’에 대한 못마땅함과 걱정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여학생이 반장을 맡거나, 그룹 활동의 리더가 되는 것이 초중등학교에서는 이제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 되었지만, 사회의 여러 직책에서 성인 여성이 리더가 되는 상황은 여전히 낯설고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여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궤적은 전 세계 중진국 이상의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험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EU와 OECD의 통계를 모아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Glass-ceiling index)에서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중 8년간 연거푸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바로 위로 일본과 터키가 있고,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알려진 스위스가 우리보다는 큰 점수차로 그 위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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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남녀 간의 임금 차이가 35%로 가장 심하고
(일본은 25%),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이 59%밖에 되지 않으며
(남성은 79%), 상장기업 임원의 2%만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비교 대상 국가들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이러한 통계지표들이 우리나라의 성별 간 불평등한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예전보다 나아졌으니, 문제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는 판단은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기분적 느낌일 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수면위로 크게 불거진 문제 중 하나가 젊은 여성들의 자살이 증가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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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장숙랑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30대인 80년대생과 20대인 90년대생 여성들은 그들의 엄마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하여 거의 5배와 7배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근본 원인을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데서 오는 좌절로 꼽는다. 여성을 핵심 인력으로 쓰거나 키우지 않고, 보조 인력이나 잉여 인력으로만 활용하는 전통적인 인사 관행들이 학창 시절에 우수했던 여학생들을 사회에서 좌절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정부가 대처방안으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인사 관행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막는 곳곳의 장애물들이 얼마나 빨리 제거될지 의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생태계에서 여학생이 성장하여 여교수가 되는 경력사다리를 전공별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0년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의 학부에는 약 2백만 명의 학생이 적을 두고 있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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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여학생 비율은 전공별로 57.8%
(인문)부터 20.1%
(공학)까지 분포하며 전체 평균은 42.4%이다. 대학원생 중 여성 비율은 약 51%인데 전공별 분포는 대부분 학부생 분포와 비슷하고, 사회과학
(58%)과 예술 체육 계열
(64%)은 학부생 분포보다 약 10% 정도 높다. 대학원에서 학위
(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문 후속세대들이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할 때 대부분은 시간강사나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 등과 같은 비전임 교원의 자격으로 대학에 적을 둔다. 이들 비전임 교원의 숫자는 전국 4년제 일반대학에서 약 8만 3천 명 정도로 집계된다. 이들 중 약 40%가 여성이다. 경력사다리의 최상위인 전임 교수의 경우, 전국 약 6만 6천 명 중 24.7%가 여성이다.
표. 4년제 일반대학 학생과 교수의 전공계열별 성별 구성
- 학부 및 교수 통계는 출처에 명시된 바와 같이, 4년제 일반대학 기준(교육대학, 산업대학, 기술대학, 방송통신대학 등을 제외한 191개로 전체 4년제 대학의 약 84%에 달함)이고, 학부생수 및 대학원생수는 재학생, 휴학생 등을 포함.
- 계열분류는 출처에 제시된 분류를 따르되, 교육을 사회에 포함하여 재산정.
※ 출처: 2020 교육통계 분석자료집(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2020.12.)
이들을 인문, 사회, 예체능, 자연, 공학, 의약학 전공별로 대별하여 대학원생과 비전임교원, 전임교원의 직위에 따라 여성 비율을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그림 참조). 그래프를 보면, 모든 전공계열에서 경력사다리가 얼마나 가파른 각도로 꺾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공학계열
(20%)을 제외한 모든 전공에서 대학원 여학생의 비율은 45%를 상회한다. 대학원생에서 비전임 교원을 거쳐 전임교원으로 옮겨가는 경력사다리에서 여성 비율이 모든 전공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통계수치는 여학생들이 연구생태계의 경력사다리에서 남성에 비해 많은 이탈을 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비전임 교원들이 전임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라 본다면, 대학은 가용한 인재풀에서 여성을 전임교수로 제대로 임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통계가 드러내고 있다.
그림. 전공계열별 경력사다리(대학원생→비전임교원→전임교원)의 여성 비율
우리나라 일반대학에서 전임 교수의 수가 가장 많은 전공은 공학계열이다. 총 14,500명의 공학계열 교수 중 900명 정도가 여성이다. 공학계열 여학생의 비율이 약 20%이고 비전임교원도 17%가 여성임을 고려할 때 공학 계열의 여교수가 대학원과 비전임교원의 여학생 수를 반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보다 약 3배 정도의 인원으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학 계열의 여학생 수는 서양은 물론이고 아시아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적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경우 여학생 비율이 13%인데, 미국 MIT
(46%)나 칼텍
(38%)에 비해 한참 적은 수치이다. 공학 계열로 우수한 여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롤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여학생 친화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교수를 더 많이 임용하는 것이다.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여성 롤모델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수학과목의 경우 여교수가 여학생의 학습효과에 더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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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젊은 여성 공학자들이 대학원과 비전임교원 풀에 상당수 배출되어 있으니, 이들을 전임교원으로 부지런히 임용한다면, 초중등 여학생들을 공학 계열로 유인하는 윈윈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