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책은 일반적으로 국가 수준에서 수립된다. 물론 경제적인 요건, 인구학적인 상황에 따라 도시나 지역 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인지, 이민자들의 체류 조건, 시민권 요건 등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중앙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부딪히는 실질적인 문제들 특히 주거·보건·교육 등의 문제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인 지역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국가 수준의 이민정책 목표와 지역에서 요구하는 구체적 정책 사이에 간격이 생겨나며, 이러한 이유로 국가 수준의 이민정책과 지역 수준의 이민정책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다. 국가 수준의 통일성과 지역 수준의 다양성 간의 조화를 위해서는 이민자들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적 맥락의 이민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약 39억 명인 도시 거주 인구는 2050년에 6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 이주는 이러한 도시화 현상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도시 내에서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을 심화하고 있다.
다음의 표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을 보여 준다. 두바이, 브뤼셀 등은 예외로 하더라도 런던, 로스앤젤레스, 싱가포르, 시드니 등의 도시는 30% 후반에 해당하는 이민자 비율을 가지고 있다.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은 이들 도시가 위치한 국가의 평균 이민자 비율을 훨씬 상회하며, 많은 이민자들이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거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캐나다 이민자의 46%가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고, 미국 이민자의 40%가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으며, 호주 이민자의 28%가 시드니와 멜버른에 거주하고 있다
8).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
출처: IOM, 2015
앞서 소개한 시민 통합 모델과 다양성 정책이 이민자 개인의 참여와 수용국 사회와의 쌍방향적 교류, 소통, 공유를 강조한다고 볼 때, 도시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민자 집단과 외국인 집단이 상호작용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집단들 간의 접점을 제공하기에 이민자와 외국인 집단을 추상화하여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중앙정부와는 달리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점에서 중앙정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적 고민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이민자 통합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통합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 도시는 이민자와 외국인 집단 및 내국인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서로 교류한다는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상호 문화도시
(intercultural city)의 모범적인 사례를 선정하고 이를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상호 문화도시는 다인종 도시가 다른 국적, 언어, 종교, 문화 등을 가진 다양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을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원으로 인식하며 공적 영역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교류와 공유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적 교류와 공유는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같은 보편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차별 금지, 평등 보장과 같은 적극적인 정책들이 시행된다. 정책 추진 체계 면에서도 시 정부는 시민사회, 기업, 전문가들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문화 간 교류와 공유를 촉진하려고 한다. 코펜하겐은 ‘We Are Copenhageners’ 캠페인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 공동의 기본 가치 공유를 추구하면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뉴욕시는 높은 이민자 인구 비율에 맞게 다양한 이민자 커뮤니티의 참여를 촉진하고, 이민자 리더십 양성을 통해 이민자 통합에 노력하고 있다.
이민자 통합 정책에 있어서 그 흐름이 다양한 문화 집단 간의 단순한 공존에서 이민자 개인의 참여와 소통, 공유로 전환됨에 따라 문화 집단 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도시는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기반 속에 이루어지는 문화 간 공유를 통해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문제가 아닌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함으로써 벽과 경계를 만드는 다양성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접촉 지대를 넓히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
(social infrastructure)를 구축하여 다양성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응집력 감소를 방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