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솔루션 (creative solution),
젠더 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다
김홍탁
Founder, 2kg_creative solution lab.
일전에 몇몇 교수님과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이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에 우려를 나타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제일 높고 출산율이 제일 낮은 나라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현재가 암울하다는 것이고, 출산율이 낮다는 것은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통계는 현실을 해석할 수 있게 만든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데이터는 아니다.
   특히 자살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그 교수님의 말 중에 내 관심을 끈 것은 대한민국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왜 그런가요? 라고 물었더니 상존하는 우울증이 큰 문제라 했다. 우울증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학 시절까지는 능력을 발휘하던 자신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남성 중심 사회의 결탁된 권력이 빚어내는 차별에 대한 자괴감과 증오심, 더욱이 결혼했을 경우 거의 홀로 육아 및 가사 일을 담당해야 하는 부담감 등이 큰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충분히 묘사됐던 내용이기도 하다. 기사를 좀 더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WHO의 1985~2015년 자살사망자 통계를 활용해 연령별 자살사망률에서 가장 평균인 1951년생을 기준으로 잡고, 5년씩 구분해 자살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봤다. 한국의 경우 출생연도가 비교적 최근일수록 자살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1956년생 여성에 비해 1970년생 여성이, 1970년생 여성에 비해 1997년생 여성의 자살률이 높았다. 1951년생 여성에 비해 1982년생 여성의 자살률은 5배 높았고 1986년생과 1996년생은 각각 6배와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37세인 1982년생 여성들이 현재 68세인 1951년생 여성들보다 5배 이상 더 많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1)
   이렇게 행복하지 못한 환경은 비혼과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조금 길 정도로 대한민국 여성의 행복하지 않은 삶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것이 여권 신장 운동의 중추신경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권 신장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것은 이 세상이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구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누리는 존재고, 특히 저개발국가에선 여성을 도구로 취급하는 존재다. 최초의 남자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을 뜻하는 고유명사라 한다. 달리 말해 애당초 여자는 사람이란 범주의 절대 기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권 신장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은 저널, 논문, 방송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왔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의 페미니즘 운동이지만 지금까지 강력한 임팩트를 사회에 던졌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이 윤간을 당하고 가족에게도 낙인찍히는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반면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의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해져, 늦었지만 다행인 변화도 있다. 더뎌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21세기 현재 페미니즘은 성소수자 인권과 더불어 젠더 평등(gender equality)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젠더 평등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운동의 대표적인 용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UN이 정한 지속가능발전 목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다섯 번째 항목으로 지정됨에 따라 체계적 접근을 통해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는 전 지구적 사명으로 자리 잡았다. 한 마디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정의 내리고 해결하는 사회운동의 푯대가 된 것이다.

유엔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2)


창의력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든다
지금까지 젠더 평등과 같은 인권 문제는 당사자나 인권단체 주도의 사회운동으로 표출됐으나, 그에 덧붙여 놀라운 변화가 있었으니 광고계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다. 상품의 브랜딩에 힘쓰고, 제품 판매에 영향을 주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눈을 돌린다는 것이 얼핏 이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광고인들은 솔루션 개발에 두뇌와 마음의 근육이 발달된 사람들인데, 그 근육을 오랫동안 커머셜에 써왔을 뿐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무브먼트로 만들기 위해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유명인들은 자신의 지명도를 통해 빠르게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면 광고인들은 실질적인 솔루션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 역할은 몰랐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부터 잘못된 법을 바꿔 사회변혁을 이끄는 것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 같은 광고계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무엇보다 전 세계 유수의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이전에 광고제라고 불렸던)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카테고리를 새롭게 론칭하고 이에 관련된 세미나를 여는 등 여론 형성에 앞서 왔기 때문이다. 세계 3대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인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뉴욕의 ‘원쇼(One Show)’, 런던의 ‘디엔에이디(D&AD)’가 좋은 예다. 3) 이 3대 거물의 행보가 해를 거듭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지평을 넓혀 온 결과, 세계 광고산업계도 그 생태계를 바꿔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2012년 빌게이츠는 칸 라이언즈와 손잡고 칸 키메라(Cannes Chimera)라는 프로젝트를 론칭했다.
   이는 전 세계인들에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여 최종 선정된 우승자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프로젝트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이면 칸 라이언즈에서 선정한 심사위원들이 1차 온라인 심사로 10개의 팀을 선발한다. 이 팀들은 미국 시애틀에 있는 게이츠 재단 본부에 모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하고, 그곳에 모인 심사위원들과 워크숍을 하며 더욱 숙성된 솔루션으로 다듬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크리에이티브한 솔루션이 필요했기에 빌 게이츠는 칸 라이언즈의 도움을 빌렸고, 칸 라이언즈 사무국은 멘토링을 해줄 수 있는 세계 유수의 크리에이터들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해 지원했다.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을 창출하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머리를 맞댄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을 보여준 명쾌한 사례다. 4)
   2016년 칸 라이언즈에는 세미나 헤드라이너(headliner)로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등장했다.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 유엔 사무총장이 스피커로 등장하는 것이 의외의 경우라 느껴질 수 있지만, 반기문 총장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15년간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 목표 설정을 주도했고, 세계의 크리에이터들이 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칸 라이언즈에 등장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반총장의 키노트 스피치가 끝난 후 전 세계 광고업계를 좌우하는 6개의 홀딩 컴퍼니(WPP, Omnicom, IP, Publicis, 덴츠, Havas) 회장들이 나타나 자리를 함께 한 점이다. WPP 그룹의 마틴 소렐을 비롯,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레전드들이 자리했다. 반기문 총장은 수많은 스타 광고사를 소유하고 있는 6명의 홀딩컴퍼니 회장에게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을 광고인들의 창의력을 발휘해 창조해 줄 것을 약속 받았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가짓수도 늘어가는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문제가 복잡할수록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가장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이 광고인들이라 생각한 것이다. 당시의 행사는 목적의 숭고함과 방법의 독특함 때문에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각인되었다.
   이후 2018년엔 칸 라이언즈에서 지속가능발전 목표 ‘SDGs’ 자체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론칭했으며, 2년 후인 올해 2020년엔 뉴욕 원쇼에서도 ‘SDP(Sustainable Development Pencil)’라는 카테고리가 새롭게 론칭되면서 17가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심사하고 수상하는 장을 마련했다. 이 두 거물급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 지속가능발전 목표 자체를 카테고리로 론칭했다는 사실은 창의력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한 핵심 인자라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 특히 지속가능발전 목표 세 번째인 건강과 웰빙(good health and well-being), 네 번째인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 다섯 번째인 젠더 평등(gender equality), 그리고 열 번째 불평등 해소(reduced inequalities) 카테고리에서 여성의 성 평등과 삶의 질을 위한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 선보이면서 마케터, NGO, 해당 국가기관, 종교단체는 물론 일반인들도 영감 받고 참고할 수 있는 성공적 케이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외에도 칸 라이언즈나 원쇼에는 ‘건강과 웰니스(health & wellness)’ 자체를 별도의 카테고리로 두었는데, 이 카테고리에서도 빈곤국 여성들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솔루션들이 창출되고 있다. 또한 칸 라이언즈에서는 유리천정을 뜻하는 ‘글래스(glass)’ 카테고리를 설정하여 여성 인권에 대한 솔루션을 특별히 다루고 있다.
세상을 바꾼 창의적 솔루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어떤 형태의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 이 시대에 탄생했고, 그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에 소개되는 사례는 주로 칸 라이언즈의 SDGs와 원쇼의 SDP 카테고리에서 빛을 발했던 솔루션이다. 특히 올해 첫 회를 맞이한 원쇼 SDP의 초대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은 필자의 심사 경험이 좀 더 구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다. 소개될 여섯 가지 사례를 통해 여성 인권과 보건, 남녀평등, 그리고 성소수자 LGBTQIA 5) 의 평등권을 주창하는 솔루션이 어떠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근래에 여권신장에 대한 주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인도나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의 여성 인권, 즉 취약한 보건과 교육, 성 착취 및 폭력 등이 주로 해결해야 할 이슈였다면, 최근엔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는 남녀 간 임금 평등이나 기회의 균등을 다루는 솔루션이 갑자기 많아졌다. 새로운 이슈가 부각된다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한 마디로 여성 인권의 현주소는 여전히 선진국과 저개발국 모두를 아우르는 다층적인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여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솔루션
Title: Project Free Period
Client: Stayfree India
Agency: DDB Mudra Group
Category: SDGs4_Quality Education/ SDGs5_Gender Equality

배경 여성의 인권 평등을 다룰 때 항상 좋지 않은 사례로 등장하는 나라가 인도다. 성적 억압, 교육 차별, 사회적 지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여전히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면, 불가촉천민(수드라) 급에 해당하는 것이 하층 여성일 것이다. 어떤 여성에게는 생리가 아마도 코로나19처럼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싶은 골칫거리이겠지만, 반대로 생리 기간이 꼭 있었으면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인도 사창가에서 성을 파는 여성들이다. 생리 기간 3일만큼은 손님을 받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말로 표현 못 할 가슴 아린 현실이다. 누구에겐 없었으면 싶은 3일이 누구에겐 꼭 있어야 할 3일이다.

인도의 성매매 여성의 직업교육 프로젝트 ‘Free Period’ 6)


솔루션 그들은 이 3일 동안 아이들과 쉬거나, 빨래 등의 밀린 일을 한다. 인도의 여성 위생용품 회사인 스테이프리 인디아(Stayfree India)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를 구상할 수 있는 것은 단 3일인 생리 기간뿐이란 점에 착안해, 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투자를 시작했다. 인도의 로컬 NGO 페르나(Perna)와 함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들을 교육시켰다. 예를 들면 뷰티 마사지, 헤나 디자인, 양초 만들기 등이다. 새로움을 익히지 않고는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백 퍼센트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을 딸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일이었다.

결과 그렇지 않아도 인도에서 생리는 불결한 것으로 여겨져, 생리 기간 중인 여성은 사원에 가거나 심지어 부엌에 들어가는 것까지 터부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육 프로그램은 그들의 생리 기간을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순간으로 바꿔 놓았다. 통계를 보니 프로젝트 이후 십만 일의 생리일이 배움의 날로 탈바꿈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인도에서 가장 터부시되는 매춘부와 생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요구하는 사회적 의제를 이끌어 냈다. 무엇보다 그들이 지금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날 꿈을 꾸게 해주고,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결심을 하게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여성 리더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솔루션
Title: Lessons in Herstory
Client: Daughters of the Evolution
Agency: Goodby, Silverstein & Partners, Inc.
Category: SDGs4_Quality Education/ SDGs5_Gender Equality

배경 미국 역사책을 장식한 위인들은 거의 모두 남성이다. 교과서의 89%가 남성에 관련된, 말 그대로 남자에 의해 쓰인 남자의 이야기(history)였다.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영웅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에이브러햄 링컨, 에드가 알랜 포우, 토마스 제퍼슨 말고는 없는 것일까? 결국 어렸을 때부터 배운 교육이 문제다.

솔루션 ‘우리의 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다(Helping our daughters create the world they want to live in)’는 취지로 설립된 ‘진화의 딸들(Daughters of the Evolution)’이란 단체는 세미나, 워크숍, 그리고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남성과 함께 평행선을 달리며 오늘의 미국을 형성해 온, 그러나 빛을 보지 못한 여성들을 어떻게 소개할까라는 과제가 그들이 집중한 프로젝트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증강현실(AR) 기술을 도입했다.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 위에 폰을 갖다 대면 동시대의 리더였던 여성의 이야기가 증강현실로 펼쳐진다. 한마디로 매직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여자 군 입대가 금지되었던 시절 미국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군이었던 캐세이 윌리암스(Cathay Williams)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아이들은 마술 같은 교과서에 몰입하면서 남녀 영웅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고 생각의 균형을 이루게 됐다. 이 AR앱엔 19세기 미국의 여성 영웅 75명의 허스토리(her-story)가 숨어 있다.

결과 수많은 교육기관에서 이 앱을 교재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이 미국의 역사를 다시 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역사에서 잊힌 여성의 파워를 부각시키면서 역사를 바꾸고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또한 ‘진화의 딸들(Daughters of the Evolution)’과 같은 여성 리더를 키우기 위한 체계적인 조직이 탄생했다는 것, 그들의 노력을 통해 공교육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을 위한 솔루션
Title: Fearless Girl
Client: State Street Global Advisory
Agency: McCann New York
Category: SDGs5_Gender Equality/ SDGs10_Reduced Inequalities

배경 2017년 3월 7일 뉴욕 맨해튼 남쪽 월스트리트에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하기 위해 작지만 당당한 소녀상 하나가 세워졌다. 소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맞은편에 있는 월가의 상징인 황소를 늠름하게 쳐다보고 있다. 투자자문회사 SSGA(State Street Global Advisory)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21세기인 지금도 기업이나 단체가 남성 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반기를 든다. 한 마디로 여성 리더십의 힘과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솔루션 SSGA는 ‘Gender Diversity Index’ 펀드의 일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아웃도어 퍼포먼스를 펼쳤다. ‘Gender Diversity Index’는 시니어 리더십에 여성을 포진시킴으로써 젠더 다양성을 실현한 기업을 지지하는 활동을 펼친다. 소녀의 발치에는 “여성 리더십의 힘을 믿어라. 그녀가 차이를 만든다(Know the power of woman in leadership. SHE makes a difference)”라고 적혀 있다. 작가 크리스틴 비스벌(Kristen Visbal)이 만든 이 설치물은 이곳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으며, 기념촬영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을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이 소녀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며 남성의 권력으로 상징되는 황소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는 일상이 연출됐다. 공공 설치 예술의 힘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여성의 날을 프로모션의 테마로 잡은 점,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자 남성성의 상징인 월가의 황소상 앞을 장소로 택해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자 한 점이 이 솔루션의 영리함이다.

공공 설치미술 작품을 통한 여성 인권 증진 프로젝트 ‘Fearless Girl’ 7)


결과 이 프로젝트는 740만 USD의 가치를 지닌 홍보 효과를 얻어냄으로써 여성의 리더십을 부각하려는 애초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이 솔루션은 또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미국이 직면한 여권 신장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저개발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종교적 성차별 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 드문 사례로서 의의를 지닌다.

여성의 경제적 차별 폐지 솔루션
Title: Art Gap
Client: Standard Chartered
Agency: TBWA
Category: SDGs5_Gender Equality

배경 남녀 간 임금 차이가 가장 크게 나는 직업은 무엇일까? 방송인? 스포츠 선수? 금융업계 임원? 쉽게 추측이 안 된다. 그 답은 놀랍게도 아티스트다. 2017년 옥스퍼드 대학 연구에 의하면 아트마켓에서 여성 아티스트 작품은 남성 아티스트의 작품보다 평균 47.6% 낮게 팔린다고 한다. 절반 값이란 얘기다. 이런 상황이 평등해지려면, 여성 아티스트가 그림을 47.6%만 그리면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한국 아트 시장에서 남녀 작가의 작품 가격 차이는 34.6%다). 세계 경제 포럼에 의하면 지구촌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완전히 없어지는 데 217년 걸린다고 한다. 8)

솔루션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실행에 옮긴 전시회가 열렸다. 화폭의 절반이 비어 있는 기획전이다. 전시회 타이틀도 ‘아트 갭(Art Gap)’. 아트 갭은 2019년 중동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큰 손 컬렉터들이 모이는 두바이의 ‘월드 아트 두바이(World Art Dubai)’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11개국 19명의 여성 작가들이 캔버스의 절반만을 채웠다. 이 행사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스탠다드 차터드 뱅크가 기획했는데, 스탠다드 차터드 뱅크는 ‘히어 포 굿(Here for good)’이라는 사회공헌 캠페인 주제 아래 남녀 간 임금 평등(gender pay equality)에 꾸준히 주목해 왔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불공정한 가격 격차를 없애려는 이 아트 무브먼트는 그림으로 선언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전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결과 이 전시엔 단 나흘 동안 일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고, 140만 USD의 언드미디어(earned media) 효과를 기록하면서 남녀 간 임금 평등에 대한 인식을 확연히 높였다. 방문객 중에는 정부와 은행권, UN의 고위 관계자, CEO, 아티스트 등의 인플루언서들이 대거 포진했으며 이들이 인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권익을 위한 제도 개혁 솔루션
Title: The Tampon Book ‘a book against tax discrimination’
Client: The Female Company
Agency: Scholz & Friends, Berlin
Category: SDGs5_Gender Equality/ SDGs3_Good Health and Well-being

배경 배경 독일에서 오일 페인팅이나 캐비아(caviar), 그리고 요즘 한국에서 아주 핫한 식재료인 트러플에 부과되는 세금은 얼마일까? 7%다. 그러면 여성들이 생리 중 활용하는 위생 필수품 탐폰은? 무려 19%다. 독일에서 럭셔리 상품에 부과하는 가장 상위에 속하는 부가가치세율이다. 탐폰이 오일 페인팅보다 더 럭셔리한 상품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남자가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50년 전 독일에서는 남자들만 모여 법을 제정했는데, 당시 여성 위생용품에 19%라는 엄청난 세율을 부과했다. 그리고 그 법이 여전히 유효했던 것 이다. 심지어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이런 어리석은 법을 개정했는데, 칸트를 배출한 이성의 나라 독일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존재했던 것이다.

솔루션 온라인으로 탐폰을 판매하는 ‘더 피메일 컴퍼니(The Female Company)’에서 묘안을 생각했다. 책에는 7%의 세금만 부과되기에, 책 속에 탐폰을 끼워 넣어 책값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탐폰북(Tampon Book)’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40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엔 15개의 탐폰이 들어있고, 책 내용은 성 불평등, 어리석은 세금책정 제도, 생리에 대한 올바른 사회 인식에 관련된 삽화와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일주일도 안 돼 1만 권이 판매됐다. 스마트한 세금 회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결과 정작 중요한 것은 탐폰북이 법을 개정하게 만든 사실이다. 독일의 가장 큰 방송 매체들이 탐폰북을 다뤘다. 여론이 형성되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는 탄원이 필요 인원수 15만 명을 넘겼다. 인플루언서, 정치인, 저널리스트들이 연대해 법 개정 운동을 열렬히 지지했다. 마침내 2019년 11월 7일 독일은 탐폰세를 폐지했다. 탐폰북이 법을 바꾼 것이다. 탐폰북은 흥미로운 책이자 스마트한 판매방식이었고, 무엇보다 50년 동안 묵혀 있던 근본 문제를 해결한 실질적인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었다.

성소수자의 권익 증진 솔루션
Title: The Wedding of Siri & Alexa_The first A.I. Marriage
Client: Vienna Tourist Board
Agency: Serviceplan and Plan.Net
Category: SSDGs5_Gender Equality/ SDGs10_Reduced Inequalities

배경 2019년 6월 비엔나 관광공사(Vienna Tourist Board)는 비엔나에서 개최된 게이 커플 축제 ‘유로 프라이드(Euro Pride)’에서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AI인 시리(Siri)와 알렉사(Alexa)의 결혼식을 치른 것. 타이틀에서도 보이듯이 세계 최초의 AI 결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그 둘은 게이 커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상에 그 둘이 게이었다니.

솔루션 이 유별난 이벤트는 비엔나에서 열리는 게이 축제를 돋보이게 했다. 더욱이 유로 프라이드 2019 행사는 2019년 1월 1일부터 모든 종류의 결혼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비엔나시를 홍보하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선 셀 수도 없이 많은 축제가 열린다. 주최 측에서는 매번 새로운 무엇인가를 궁리한다. 그래도 AI 결혼에 버금가는 깜짝쇼를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시리와 알렉사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와이프라 부르며 결혼 선서를 하고 동성 결혼의 신기원을 이룬다. 인공지능 시대에나 가능한 인공지능적 아이디어다. 영상 마지막 부분에는 “비엔나는 LGBTQIA와 심지어 AI에게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이 싹트는 곳입니다”란 내용의 자막이 뜬다. AI 결혼식이란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젠더 평등의 주목도를 높이고,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의 도시로서의 비엔나를 잘 부각시킨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높은 호응을 받았다.

AI 게이 커플의 결혼식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대변한 프로젝트 ‘The Wedding of Siri & Alexa’ 9)


결과 이후 전 세계 게이 커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시리와 알렉사의 결혼 세리머니를 만들면서 자신들의 관계를 축하했고, 그 결과 시리와 알렉사의 결혼은 게이 커플 결혼의 상징처럼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게이 커플의 당당한 행보를 알리는 가장 독창적인 사례로 꼽히면서 효과적인 인식 높이기의 모범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성 AI의 결혼이란 아이디어로 젠더 평등을 색다르게 주창한 것도 놀랍지만, 우리로 치면 관광공사와 같은 관공서에서 이런 용감한 아이디어를 실행했다는 사실이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인간이 화성을 여행할 수 있는 꿈을 실현해가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권익의 관점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거의 모든 부분의 평등을 저해하는 기저 요소인 빈부격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점점 더 그 격차를 벌리고 있다. 영국 의회 보고서에 의하면 2030년 즈음에는 상위 1%의 수퍼 리치들이 전 세계 부의 64%를 차지할 것이라 한다. 10) 그에 따라 선진국과 저개발국가 간의 여성 삶의 질의 격차 역시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소개된 사례를 통해 선진국에서도 오래전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낡은 법이 여성의 일상생활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과 아트 산업에서도 남녀 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 같은 선진국에서의 불평등 사례는 계속 밝혀질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여전히 상식 이하의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벽장에서 나오길 꺼려하는 것도 21세기의 현실이다.
   이러한 모순들은 구조적인 것이기에 그 원인을 잘 파악해내지 못하면 솔루션은 피상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지역의 문화나 제도를 잘 이해하여 그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거나 (예, Project Free Period, Lessons in Herstory),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발화점을 잘 포착해 바이럴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솔루션(예, Fearless Girl, Art Gap, The Tampon Book, The Wedding of Siri & Alexa)을 창출했다. 이 모든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앞으로 더 욱더 광고인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 개발에 몰두하게 될 전망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목차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creative solution), 젠더 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다
인공지능의 윤리학 : 차별적 위계(difference as differentials)가 아닌 다양성(diversity)의 알고리즘을 꿈꾸며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