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규정하는 기준은 사회마다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어떤 특정한 속성만을 정상으로 간주해서 그에 강제로 순응하게 한다면,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넘치고 그로 인한 부조리와 울분, 모멸감이 쌓이게 된다.
타이포그래피 역시 다수자와 평균 개념에만 그 기준을 둔다면, 소통을 위한 본연의 목적을 잊고 평균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길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신체적이고 사회적으로 특수한 조건에 따른 다양한 기준들과 보호 장치 역시 필요로 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서울에 사는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이 기준으로 상정된다. 성별, 연령, 지역, 신체 건강 상태 등에 따른 기준이다. 그에 따라 지역적으로는 지방 거주자, 신체 상태로는 환자와 장애자, 성별로는 여성, 연령으로는 고령자와 어린이들이 표준의 범주 바깥에 위치하는 약자와 소수자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준에서 제외 될 때 기준 바깥에서는 큰 불편이 생기게 되고, 사회 속의 불편들은 서로 연결된다.
성별이나 연령 등에 따라 달라지는 신체적 조건을 살피려면 새로운 기준을 두어야 한다. 이렇듯 기존의 규칙에 수정을 가하려면, 그 규칙이 적용되어온 기존의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평균으로 상정되어온 기준을 살펴보자.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은 불특정 다수 사용자를 전제로 한다. 적절한 폰트를 만들거나 고르는 데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본이 되는 기준으로 세 가지가 있다. 가시성, 판독성, 가독성.
‘가시성’은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고, ‘판독성’은 서로 다른 글자를 빠르게 판독하게 해주는 힘이며, ‘가독성’은 긴 글을 읽을 때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패션에 비유하면 가시성은 편하지는 않더라도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는 하이힐에 해당하고, 가독성은 42.195km를 지치지 않고 완주하게 해주는 마라톤화에 해당한다. 마라톤화를 신고 뛰어봐야 디자인이 잘 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듯이, 가독성 높은 폰트 역시 오래 읽어봐야 기능적으로 디자인이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가시성은 큰 글자와 제목, 짧은 단어 정도의 영역이며, 가독성은 작은 글자와 긴 글의 영역이다. 우리 눈은 작은 글자일수록 점점 디테일을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큰 사이즈에서 아름다운 글자와 작은 사이즈에서 일 잘하는 글자는 서로 영역이 다르다. 글자는 큰 글자에서 작은 글자로 이행할 때 ‘보기’에서 ‘읽기’로, ‘비주얼
(visual)’의 영역에서 ‘옵티컬
(optical)’의 영역으로 이동하며 기능성이 점점 중요해지게 된다.
가시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심미적인 쾌적함이 떨어지고, 판독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정확한 정보를 읽기 어려워져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으며, 가독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눈과 신체에 큰 피로가 온다. 즉 일상의 영역에서 디자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불특정 다수가 배려를 덜 받게 된다. 사회적인 피로감과 모멸감이 쌓이게 된다.
이 불특정 다수의 기준이 지금까지는 건강한 성인 남성의 신체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 타이포그래피는 고령자와 어린이, 왼손잡이나 자폐 등 소수 성향의 사람들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두고 규칙을 수정하며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고령자
국내에서는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대한 인식이 낮고, 특히 가독성 영역에서의 피로가 만연해 있다. 〈그림 2〉의 오른쪽 위와 같은 제품이나 의약 설명서의 경우, 읽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기본적으로 눈을 위한 배려가 갖춰져 있지 않다. 이 의약품에서 ‘성인 1일 3회’라는 복용량과 ‘데워 마시되,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위험하다’는 내용은 일반 사용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시트르산나트륨수화물’ 같은 내용에 비해 뚜렷이 구분되어 전달되어야 할 텐데, 앞의 두 가지 정보를 알아내려면 젊은 시력으로도 불빛이 밝은 데에 가서 시려 오는 눈을 비비며 한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면 고령자들은 더 큰 불편을 감당 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림 1.
(위. 왼쪽) 고령자의 시선 추적. 인지심리학자 키스 레이너의 논문을 바탕으로 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소피 베이어가 만든 학술발표 자료 화면(출처: Age-related deficits and their effects on reading, Sofie Beier, ATypI 2019, Tokyo, Japan).
(위. 오른쪽) 한국어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읽기 힘든 타이포그래피의 예. 사용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조차 위계화되어 있지 않다. 아래는 텍스트를 확대한 모습.
(아래) 글씨를 처음 익히는 어린이를 위한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 글씨체. 20세기 내내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다.
고령자를 위한 타이포그래피는 흔히 생각하듯 글자를 크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다. 글자와 관련해서는 시력뿐 아니라 인지의 형식까지 달라진다. 어린이들이 움직이는 것과 새로운 것에 반응한다면, 고령자들은 고정된 것과 익숙함에 반응한다. 이것은 진화론 적으로도 설명될 것 같다. 어린이들은 앞으로 펼쳐진 미래에 계속 새롭게 적응해가야 하지만, 노인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활용한다. 기술과 사회가 지금처럼 급변하지 않던 시대에 연령에 따라 인간이 적응해온 방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시시각각 변화가 가속되는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성격이 완고해지는 듯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주로 2~30대이고, 디자인 결정권자는 4~50대인 경우가 많다. 노인의 신체와 인지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분들 가까이에서 과학적인 연구로 추론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디자인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을지 모른다는 자각도 필요하다. 새롭고 기발한 장치는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지만, 고령자들은 피로감을 느끼며 새로 적응하기를 포기하기 쉽다. 익숙함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글자 크기는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면이나 화면에는 늘 제한이 있고 글자의 크기, 전달하려는 단어 및 메시지의 양, 공간의 면적은 함수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항상 적정한 선이 있다. 너무 커지면 감정적으로도 공격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다만 시력 저하가 오기 전의 젊은 눈이 잘 적응하는 긴 글의 평균 글자 크기보다는 다소 큰 사이즈를 갖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
〈그림 2〉의 왼쪽 위 그림은 인지심리학자이며 시각 인식 전문가인 키스 레이너
(Keith Rayner)의 시선 추적 연구를 타이포그래퍼 소피 베이어
(Sofie Beier)가 도해한 것이다. 인간의 눈은 텍스트를 읽을 때, I, t,o,o,k…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 단위로 도약을 한다. 이것을 ‘안구 도약 운동
(saccade)’이라고 한다. 젊은 독자와 70세 이상 나이 든 독자는 그림에서처럼 안구 도약에 큰 차이를 보인다. 고령자들은 한 번에 시선이 오래 고정된 채 머무르고 파악하는 분량이 많아 도약 거리가 긴 대신, 시선이 도약하는 운동량은 적다.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가는 역행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글자 크기가 너무 커져도 내용 파악에 지장을 준다. 글자가 지나치게 커져서 행갈이가 자주 일어나면 오히려 인지와 기억에 큰 방해가 된다.
글자와 글줄, 텍스트 주위로 흰 공간을 넉넉하게 주어서 눈을 편안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흰 공간을 ‘화이트 스페이스
(white space)’라고 한다. 흰 공간이 많은 것은 젊은 사람들의 독서에도 편안함을 준다. 다만 읽기에는 편해도 전체적인 텍스트의 짜임새가 느슨해 보이는 터라 디자인이 타이트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못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디자인의 심미성을 추구하는 잡지, 또는 한 지면에 많은 정보를 담아서 치열한 인상을 주어야 하는 신문에서는 흰 공간을 상대적으로 적게 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면 〈그림 2〉 오른쪽 위의 의약품 설명서처럼 우리 일상에 흔한 가독성 타이포그래피의 사례가 어떤 불편을 주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약품 사용법은 나이 드신 분들이 참고해야 할 경우가 많은데 신문보다도 정보가 빽빽하다. 지면 공간이 부족하면 중요한 정보만이라도 짧게 요약하여 주목하게 만들어서 위계를 차별화하는 등의 장치로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고령자와 달리, 현역으로 활동하는 젊은 성인들은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 그래서 어린이에 대해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 어린이들은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를 관철시키는 데에 어른보다 어려움을 겪는다. 당사자로서의 어린이가 겪는 일은 어린이의 언어로 언어화하기 어렵다.
2019년에 〈초등학교 성장 단계에 따른 국어 교과서 타이포그래피 제안: 쓰기의 행동 양상 및 읽기의 감각과 인지 양상〉이라는 교과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5학년 교실의 수업을 참관한 바 있다. 타이포그래피 전문가의 시선으로 교육 현장을 직접 관찰한 결과, 현행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러 요인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의 작고 약한 신체와 아직 미숙한 인지에는 글자 크기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성인과는 다른 기준들이 적용되어야 한다. 읽기의 경우, 글자에 갓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는 판독성의 문제가 가독성 이상으로 부각되는 식이다. 연구를 진행하며 어린이의 정서나 심리에 비해 몸과 운동을 배려하는 연구와 문헌이 국내에 무척 드물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전술한 보고서에는 몇 가지 포괄적인 제안을 담았는데, 여기서는 그중 ‘쓰기의 행동 양상’에 관해서만 예로 들고자 한다. 그중 두 가지를 들자면, ‘종이’와 ‘쓰기 교본용 글씨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 ‘종이’의 문제에 있어서 교과서는 책인 동시에 글씨를 쓰는 공책의 성격을 가지는 특수한 매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책은 읽기의 공간이고, 공책은 쓰기의 공간이다. 그런데 책의 기능에만 치중해, 공책과 쓰기의 기능이 간과된 측면들이 보인다. 인간의 몸과 정서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재질과 물성 등 물리적인 조건이 적절해야 한다. 글씨 쓰기에 있어 사용자 환경에 해당하는 것은 종이의 상태다. 책과 공책, 드로잉 북 등 용도에 따라 다른 성격의 종이가 선택된다. 교과서에서는 책으로서 그래픽과 그림의 발색이 선명한 것도 중요하지만, 공책으로서 힘을 덜 주고도 편안하게 글씨가 써지는 것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행 국어 교과서는 전자의 시각적인 효과만 고려하느라 후자가 갖추어야 할 어린이 인체 친화성을 크게 놓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쓰기란 종이와 필기도구와 인간 신체 간의 상호작용이다. 글씨를 쓸 때는 인간의 신체와 필기도구, 종이가 서로 힘의 줄다리기를 한다. 초등학생은 신체가 아직 발달 중이고, 쓰기 도구로는 주로 연필이 권장된다. 연필은 거친 표면에 갈려야 흔적이 잘 남겨지는 필기도구다. 그런데 지금 교과서에서는 코팅된 종이를 사용한다. 따라서 종이가 받아주어야 할 힘이 어린이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화려한 그래픽 모양새와 발색이 좋은 인쇄 품질에 더 가치를 둔 터라 코팅 종이를 택한 듯하다. 이렇게 되면 글씨를 쓰기 싫어질 뿐만 아니라 힘이 과도하게 든다. 보다 적절한 재질의 종이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그 종이는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씨름하는 생활 공간이다.
공책의 역할도 해야 하는 교과서의 종이는 눅눅하지 않고 사각사각하게 써지는 단단한 강도,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연필 색을 안정감 있고 산뜻하게 재현하는 표면 텍스처, 연필 쥔 손에 부드러운 질감, 연필이 미끄러지지 않고 색이 균질하게 묻는 재질, 연필 가루가 번져 손에 묻어 지저분해지지 않고 지우개로 잘 지워지는 등의 쾌적한 쓰기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교과서는 글자를 읽는 책이기도 하니, 눈에 편한 백색도 역시 필요하다.
둘째, ‘국내 교과서의 쓰기 교육용 글자체’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쉽다. 한 가지는, 초등학생들이 쓰는 연필과 달리 펜으로 쓴 글씨여서 필기도구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87년 5차 교육과정부터는 연필 아닌 펜으로 쓴 글씨가 교과서에 교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어른의 노련한 글씨가 첫걸음부터 본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막 글씨 쓰기를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서예에서 보이는 붓의 강약과 속도까지 갖춘 어른 글씨체를 바로 목표로 해서 따라 쓰게 하면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피아노 교육에 비유하면, 바이엘과 체르니를 거치지 않은 채 쇼팽부터 치는 격이다. 이런 글씨체를 본으로 채택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어른 시각으로 판단한 보수적인 관습에 의존한 결과라고 짐작된다.
따라서 긴 안목으로 어린이의 신체 발달에 맞게 단순화한 쓰기 교육용 한글 폰트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림 2〉 아래를 보면, 독일의 초등학교 교과서의 공식 교본용 글씨체들은 성인의 글씨체보다 훨씬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단순한 글씨체는 성인의 글씨로 이행하는 중간 과정의 단계이다. 독일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쓰기를 배우는 어린이용 글씨를 단순화한 폰트로 개발하는 데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졌고, 이후 전개 양상은 복잡했지만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 반영되고 있다. 어린이의 작은 손과 충분치 않은 악력, 아직 정교하지 않은 단순한 움직임뿐 아니라 손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신체 움직임의 리듬까지 배려한 중간 단계 글씨체를 개발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초등학생의 글씨 중에 비교적 모범적이고 또박또박 쓴 글씨들을 살펴보면 초중종성의 음소들이 크고, 부리가 없으며 형태가 단순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형상에서 드러나는 어린이 신체의 편의를 연구하고 효과적으로 접목해서, 노련한 어른의 글씨로 단계적으로 성숙해갈 수 있도록 초심자형 글씨 형태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보인다.
어린이들이 쓰기와 읽기를 학습하는 글자의 타이포그래피적 공간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교과서와 교재다. 좋은 타이포그래피와 적절한 물성을 갖춘 교재를 확보하는 것은 어린이의 신체와 정서를 살피고, 학습 능력을 고양하게 할 뿐 아니라, 감수성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교육적이고 사회적인 의의가 있다. 또 글자와 관련된 활동에 대해 어린이가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거북함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사회역학자 김승섭은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화된 인체로 여겨온 사고방식이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으며, ‘표준화된 신체’를 가진 남성을 기준으로 측정된 수치가 적용되는 동안 남성 아닌 여성, 성인 아닌 다른 연령층은 피해를입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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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아 불편하고 아팠던 경험들은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지며,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처까지 기억한다. 어린이들은 불편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인지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 고통과 아픔, 분노와 모멸로 쌓여간다.
어린이의 몸은 사회적 약자의 몸이다. 이런 약자들을 대할 때는, 기존의 관습에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여겨져온 그간 ‘상식’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글자 및 글자를 둘러싼 환경을 초등학생들의 연령별 신체 상황과 세심하게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